소설리스트

골 넣는 수비수-6화 (7/161)

6화. 수비한다고 골 못 넣는 거 아니잖아요.

수비하는 데 골을 넣는다?

단순히 미친놈이 지껄인 말로 치부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묘하게 설득이 있는 건 이순신의 카리스마 덕분이었을까?

이순신이 차분하게 말했다.

“지금 저희 팀의 약점은 공격보다는 수비인 거 같습니다. 그러므로 안정적으로 수비를 하면 저쪽은 공격 기회가 차단되고, 우리는 더 많은 기회를 얻게 되죠!”

“그냥 공만 돌리다 끝나 버리는 거 아냐?”

텐션이 한껏 올라간 이순신이 결국 울분을 토해냈다.

“형님들 그 만화 봤잖아요.”

머슬FC 선수들이 이순신의 입을 주목했다.

“리바운드를 제압하는 자가 시합을 지배한다.”

이순신의 말에 머슬FC 형님들의 뒤통수에는 백보드를 부숴버릴 듯한 강력한 덩크가 꽂혔다.

가슴 한편에서는 웅장함이 찡하게 울렸고…….

감동의 여운에 흠뻑 취한 황 관장이 입을 열었다.

“순신이 말도 일리가 있어. 우리 쪽에서 유일하게 골을 넣었기 때문에 분명히 빡세게 견제를 할 거야.”

머슬FC의 선수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공격수를 수비수로 넣는 건 프로의 세계에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전술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동네스리가!

포지션 변경쯤이야 문제 될 것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너 수비는 해본 적 있냐?”

“미쳤냐? 선출이면 말 다 했지. 쟤가 대충해도 너보단 잘할걸?”

두 사람의 말은 모두 옳았다.

이순신이 수비를 해본 것은 공격수로서 전진 압박 수비와 군대에서 해본 것이 전부였다.

그래도 경기를 읽는 흐름과 피지컬로 어지간한 동네스리가 선수들보단 뛰어났다.

볼 컨트롤, 축구 지능, 센스는 일반인과는 차원이 달랐다.

여기에 자신감은 옵션이었다.

“잘할 수 있습니다. 한 번만 믿어주십시오! 역습한다면 분명 오늘은 우리가 이깁니다!”

이순신의 확신의 찬 목소리를 들은 황 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기회가 있을 때 중거리를 때리고, 세트피스일 때 공격에 가담하는 빌드업이라면!”

“오호. 그런 전술이!”

별로 대단할 건 없는 일반적인 전술이지만, 이순신은 칭찬했다.

“제 말이 그 말입니다!”

“그래! 순신이는 후반전에 수비로 가자!”

단순한 머슬FC의 회원들과 황 관장의 눈빛이 빛났다.

삐이이이익-

3쿼터를 알리는 휘슬이 울렸다.

순신은 센터백(CB), 황 관장은 중앙미드필더(Cm)로 자리를 옮겼다.

툭!

드랍FC의 선축으로 맷코치를 비롯한 삼각 편대가 달렸다.

이순신은 중앙수비수 중 한자리를 담당했다.

[백의종군 리베로 특성이 활성화되었습니다.]

[1성 언성 스킬이 활성화됩니다.]

[동료들에게 지시를 할 수 있습니다.]

그제야 이순신은 씨익 웃었다.

언성 스킬 덕분에 거침없이 형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용진 형. 붙기만 해!”

이순신은 수비를 진두지휘했다.

풀백을 보고 있던 강용진(RB)은 자신에게 반말을 한 지도 모른 채 수비에 집중했다.

순신의 말대로 그저 거리를 좁히는 것만으로도 크로스의 정확도를 떨어트렸다.

“아!”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크로스에 맷코치는 탄식했다.

그런데 그 골을 이순신이 정확히 가로챘다.

“역습이다! 막아! 이 녀석 막아!”

맷코치가 당황해서 소리 질렀다.

이순신의 드리블 실력은 자신이 본 사람 중에서는 오늘 경기에 참여하지 못한 국성이 다음으로 뛰어났다.

70m 드리블.

이곳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수비들이 몰릴 때, 이순신은 멈칫했다.

그리고 전방을 향해 힘껏 공을 찼다.

수비로 4~5명을 제치는 것보다 패스로 5명을 제치기가 훨씬 쉬웠다.

머슬FC의 원탑 공격수(ST)와 드랍FC의 골키퍼가 뛰쳐나왔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덩치와 비교하면 새가슴이었던 그는 슛에 실패하고 욕먹긴 싫었다.

“뒤로 패스!”

그는 뒤꿈치로 공을 뒤로 찼다.

고개를 돌리니 이순신이 빠르게 뛰어오는 중이었다.

‘헉!’

공을 받은 이순신을 골대를 보았다.

다소 거리는 있지만, 골키퍼가 없어서 텅 빈 골대.

[1성 비격진천뢰슛을 사용하시겠습니까?(3/3)]

‘당연하지.’

이순신은 발등으로 굴러오는 공을 찼다.

퍼엉!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리며 공은 골대로 향해서 날아갔다.

철렁~

‘쩐다!’

비격진천뢰.

임진왜란 당시 조선군이 사용했던 폭탄인데 폭발할 때 하늘을 진동하는 소리가 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골을 넣으면 관중들이 환호하니 그야말로 어울리는 이름이네?’

이순신은 본인도 놀랐는지 그렇게 좋아하던 세레머니도 잊었다.

“와! 역전이다!”

하지만 황 관장을 비롯한 팀 동료들이 가만두질 않았다.

모두 순신을 에워싸고 방방 뛰었다.

전열을 가다듬고 다시 원래의 위치로 돌아간 이순신은 생각했다.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서는 사용할 수 없는 중거리 스킬. 현재 레벨에서 사용할 수 있는 스킬 횟수는 고작 3번. 위치에 따라 정확도는 차이가 있다.’

스킬의 사용방법은 심플했다.

스킬을 사용할 때마다 체력이 소모됐다.

즉 체력 훈련을 열심히 하면 그만큼 더 많은 스킬을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상점창.’

[아직 상점창을 활성화할 수 없습니다.]

경고 메시지에 이순신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쩝. 어쩔 수 없지. 그런데 이 경기에서 이기면 상점창을 열 수 있을까?’

카이저 코치는 스킬은 상점창을 통해서 구매할 수 있다고 알려줬다.

훈련을 통해서 포인트를 얻을 수 있었는데, 공식 시합 후에도 포인트를 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지금까지 얻은 포인트는 미비하다. 저축개념으로 한꺼번에 쓰는 것도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삐이익-

휘슬이 올리고 상대편의 공격이 시작됐다.

역습을 당해서 그런지 이번에는 신중하게 자기 진영에서 볼을 돌렸다.

그 사이 이순신은 스킬에 대해서 연구했다.

‘상대편의 현 수준에서 성공할 확률은 무려 97~100%라는 건 때리면 들어간다는 뜻.’

이순신은 스킬창을 떠올렸다.

비격진천뢰였다.

그동안 훈련의 성과로 충무공이 특별히 열어준 상점창에서 얻은 스킬이었다.

천성이 공격수.

그런 그에게 수비수가 사용할 수 있는 슛 스킬은 무엇보다 소중했다.

‘어차피 10번을 막아도 1번을 못 막아서 지면 그 경기는 모조리 다 수비 탓이다. 그럴 바에 최소 한 골이라도 넣어두면 마음은 편하지.’

[카이저는 슛 스킬만 믿고 너무 나대지 말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어쨌든 그는 지금 매우 못마땅합니다.]

‘그럴 만도 하지. 태클이나 수비 관련 스킬들도 있었지만, 결국 내가 최종적으로 선택한 건 슛이었으니까. 하지만 이 경기에서 필요한 건 슛이다.’

수비수가 뭔 놈의 슛이냐? 할 수 있지만, 빌드업이 중요시되는 현대축구에서 이것은 확실히 무기였다.

브라질에서 UFO 슛을 때린 오른쪽 풀백처럼 공격수 출신인 이순신에게는 확실한 무기였다.

그때 맷이 드리블을 치며 머슬FC의 진영으로 넘어왔다.

‘침착하게. 먼저 달려들지 않는다.’

이순신과 맷이 대치했다.

머슬FC의 선수 하나가 달려오려고 할 때 이순신은 손을 뻗어서 제지 시켰다.

“뺏어봐.”

맷이 씨익 웃으면서 도발했다.

하지만 감전을 겪으며 수비를 배운 이순신은 그 정도 도발에 넘어가지 않았다.

드랍FC 선수 하나가 맷을 도와주러 접근했다.

그 순간 맷이 재빠르게 드리블을 시도했다.

타다닥.

이순신은 그저 조용히 따라붙었다.

“꽤 끈질기네.”

슬슬 맷은 짜증이 났다.

결국, 억지로 이순신을 뚫으려고 하다가 공을 터치라인 밖으로 내보냈다.

드랍FC의 스로인.

이번에도 재빨리 이순신이 따라붙었다.

“여기야!”

맷코치가 공을 달라고 손을 들었다.

드랍FC의 선수는 맷코치에게 볼을 주고자 했지만, 이순신이 거리를 두며 견제했다.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어느새 이순신이 가까이 왔다.

당황한 그는 근처의 빈 곳에 패스했다.

“너무 짧아!”

맷코치가 따라가기에는 어정쩡한 거리였다.

그 순간 이순신은 재빨리 커트했다.

“모두 들어가!”

이순신의 지시에 머슬FC는 앞만 보고 뛰었다.

맷코치가 매우 빠른 속도로 접근했다.

공을 빼앗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반칙해서라도 흐름을 끊고자 했다.

툭!

“윽…….”

오히려 이순신의 어깨를 맞고 튕겨 나간 건 맷코치였다.

“뭐가 이렇게 단단해?”

이순신이 롱패스를 시도하려고 했다.

“패스다! 막아!”

드랍FC 선수들이 뿔뿔이 흩어지면서 수비진영을 갖췄다.

그 말인즉슨 이순신의 눈앞은 말 그대로 비어있다는 뜻!

드리블.

수비수의 말도 안 되는 드리블이 시작됐다.

‘어차피 마땅히 줄 곳도 없고.’

중앙선까지 넘어온 순신은 미드필더에게 패스를 찔러넣었다.

하지만 컨트롤이 미숙한 미드필더는 공을 띄우고 말았다.

상대편은 재빨리 헤딩으로 걷어냈다.

그 공이 자신의 편으로 갔으면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이순신의 발 앞에 떨어졌다.

“땡큐염.”

이순신은 두 번째 비격진천뢰를 사용했다!

슛 성공률은 97%

하필이면 3%의 확률이 지금 터졌다.

“이런. 씨바…….”

팡!

공은 골대를 맞고 튕겨 나왔다.

골대 앞은 그야말로 혼전 상황.

공이 이리저리 튕기더니 황 관장 앞에 떨어졌다.

골대 앞에는 아무도 없었고, 상대편 수비수들이 재빨리 달려왔다.

“황 관장! 때려!”

이순신이 크게 소리 질렀다.

뭔가 이상함을 느꼈지만, 황 관장은 온 힘을 다해 볼을 찼다.

안타깝게도 공이 붕 떴다.

퉁! 퉁. 툭.

그러나 골대 위쪽을 맞은 공은 땅바닥에 튕기며 골대 안으로 멋지게 들어갔다.

승리의 V자를 그리며!

“우아아아아!”

황 관장은 두 손을 들고 소리를 질렀다.

스코어는 4 : 2!

3쿼터 공격의 시발점은 이순신의 발끝에서 시작됐다.

“와, 쟤 뭐예요?”

맷코치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너희들 얘 모르냐? 얘가 바로 이순신이다!”

이순신.

축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직도 회자 되는 비운의 천재.

왠지 낯이 익다 싶었으나 긴가민가한 의심이 확신으로 돌아섰다.

“어쩐지 볼 차는 게 다르더라.”

“이건 졌어. 못 이겨.”

삐이익-

3쿼터가 끝났다.

압도적인 실력 차를 경험한 맷코치를 비롯한 드랍FC 선수들은 전의를 잃었다.

“4쿼터는 최대한 수비에 집중해서 추가 실점만 안 당하게 하자.”

“네…….”

“춘삼이 형. 선수교체요.”

치킨 냄새가 어디선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맷코치는 깜짝 놀랐다.

“국성아. 네가 어떻게?”

“오늘 경기 잘하고 있나 잠깐 보러 왔는데 이게 무슨 일입니까?”

“하하. 축구라는 게 뭐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는 거 아니냐?”

“역전승 갑시다!”

최국성이 몸을 풀자 맷코치는 든든했다.

한편 머슬FC 벤치의 황 관장은 호들갑 떨었다.

“난리 났다. 난리 났어. 국성이가 와 버렸네.”

“누군데요?”

이순신이 천진난만하게 물었다.

“너 저 사람 누군지 모르냐?”

“네.”

“음……. 그러니까 별로 좋은 이야기는 아닌데 승부 조작 사건 전까지는 한국의 천재 공격수로 불렀어. 지금은 보다시피 치킨집 사장님이지만.”

“아. 그래요? 그래도 제가 더 잘할걸요?”

이순신이 너스레를 떨었다.

한편, 이순신의 패기에 머슬FC 선수들은 껄껄 웃었다.

“순신아. 네가 잘하긴 하지만, 국성이는 국가대표 출신이야. 맘만 먹으면 10골도 넣을 수 있을걸? 후반전엔 전원 수비에 집중하자. 1골 정도만 먹혀도 우리가 이겨!”

이순신은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스포츠에서 경쟁과 함께 따라다니는 것은 ‘비교’다.

그것이 오랜만에 이순신이 가진 승부욕에 불이 붙었다.

뿌리 끝까지!

더더욱 지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뭔가 활활 타오르는 건 이순신뿐만이 아니었다.

[충무공이 매서운 눈빛으로 최국성을 노려봅니다.]

[최국성 선수를 무실점으로 막으면 추가 보상이 지급됩니다.]

‘추가 보상? 이거 좀 더 열심히 해야겠는데?’

이순신은 찬찬히 스킬을 살펴보았다.

최국성을 무실점으로 막기 위해 선택한 스킬은 ‘비격진천뢰’면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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