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동네스리가
남들 눈에는 보이진 않지만, 세계 일류급 코치의 지도를 받는 이순신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했다.
혹자들은 말한다.
운동 혼자서 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그것은 운동에 대해서, 훈련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사람들의 지껄임이다.
마이클 타이슨도 경호원을 뒀었다.
파퀴아오, 하빕, 코리안 좀비가 비싼 돈을 들여가면서 코치를 고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쾌락, 유혹이 눈웃음만 쳐도 쉽게 악수를 하는 인간은 너무나 나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헉, 헉, 헉, 헉! 겁나 힘들다.”
최고의 코치는 수비 스킬뿐만 아니라 체력 훈련도 열심히 시켰다.
목적 없이 10Km를 달리는 것, 목적을 이루기 위해 10Km를 달리는 것, 옆에서 누군가 페이스를 맞춰주며 10Km를 달리는 것은 전혀 달랐다.
삑- 삑-
특히 셔틀런을 할 때 그 효과는 극대화됐다.
딩크형이 2002년에 와서 도입시킨 유명한 체력 강화 훈련법. 무려 체력등급과 경찰, 소방 공무원 시험에도 아직 있는 종목이었다.
[100M 달리기 기록은 무용지물이다. 순간적으로 20m를 다릴 수 있는 체력과 근성을 갖춰야 한다. -딩크형-]
왕복달리기는 대표적인 지구력 향상을 위한 훈련방법인데 혼자서는 무리가 있었지만, 홀로그램이 같이 뛰어줬다.
심지어 하나, 둘도 아닌 5~6개의 홀로그램!
“독하네. 독해. 분명 성공적으로 부활할 거야! 그때 되면 우리 헬스장도 홍보 효과를 좀 더 보겠지. 후훗”
황 관장의 눈에는 그저 혼자 달리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순신은 그렇게 수비수로서 차근차근 성장했다.
그러던 중 가끔 이것도 훈련인가란 생각이 들었다.
[회원님들에게 하루에 10번 인사를 하십시오.]
기술과 체력. 노력과 재능으로 선수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인성…….
그것이 개차반이라 이순신은 어떤 수모를 겪었는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묵묵히 일과를 수행했다.
반짝반짝.
하루에 두 번만 청소하면 된다고 했건만, 틈만 나면 청소했다.
자연스럽게 주부회원님들과 얼굴을 익힌 이순신은 그들을 볼 때마다 꼬박꼬박 90도로 인사했다.
“황 관장님, 아들 제대하려면 멀지 않았어요?”
“하하. 아들이 아니라 축구선수입니다. 우리 센터에서 재활 훈련을 하고 있죠.”
“어머. 그래요? 난 하도 열심히 쓸고 닦길래 아드님인 줄 알았지. 알바생이 참 일을 잘하네요. 잘 뽑았어.”
“하하하. 감사합니다.”
이순신의 평판은 그렇게 조용히 쌓여갔다.
그리고 마침내 고대하던 그 날이 왔다.
축구화 끈을 묶어 볼 날이!
오히려 이순신보다 더 부푼 기대감으로 일주일을 살았던 건 황 관장이었다.
***
일주일에 한 번씩 있는 조기 축구회.
사활을 건 축구는 아닐지언정, 헬스와 크로스핏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작은 전쟁.
드랍FC였다.
그들은 크로스핏 회원들 출신들로 이루어진 팀이었다.
크로스핏터들답게 엄청난 체력과 힘을 겸비했으며, 과거 태권도, 역도, 육상 등 선출도 즐비했다.
반면 머슬FC는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 위주였다.
피지컬과 파워는 뛰어났지만, 드랍FC와 비교했을 때 한 수 아래였다.
전적도 1승 7패.
상대적으로 열세였다.
“자 오늘은 이겨보자고!”
“넵!”
머슬FC는 다 함께 황 관장의 구령에 맞춰서 몸을 풀었다.
그때 드랍FC의 헤드코치인 맷이 싱글벙글 웃으며 다가왔다.
“형님. 오늘은 선수들 컨디션 어떻습니까?”
맷은 강춘삼이라는 거지 같은 이름을 가리기 위해 쓰는 닉네임일 뿐.
해외여행 한 번 가본 적 없는 원주민이었다.
“어. 맷코치! 우린 항상 최상이지.”
“그런데 못 보던 젊은 선수가 하나 있네요?”
“응. 얼마 전에 새로 뽑은 아르바이트생이야.”
“어이쿠. 주말에 연장근무인가요? 요즘 애들은 그런 거 싫어해요.”
“걱정하지 마. 축구 잘……. 좋아한다고 해서 심심하면 나오라고 했는데 나왔네. 허허허!”
“아쉽네요. 오늘 왕창 깨지고서 다음부터는 안 나오겠네요.”
“하하하! 이 친구 농담도!”
“허허. 하지만 오늘은 저희가 질지도 모르겠는데요!? 저희 팀 에이스가 빠진 상태라…….”
“그러고 보니 국성이가 안 보이네?”
“국성이는 오늘 저녁 장사 준비로 바빠서 못 올 거예요. 아시잖아요. 오늘 국대 경기 있는 거.”
“어이쿠. 에이스가 빠졌으니 오늘은 우리가 이기겠는걸? 이쪽 신규 선수랑 맞대결하면 꽤 재밌을 거 같았는데.”
“하하하. 그럼 기대합니다.”
맷코치는 얼굴에 아주 잠깐 비웃음이 스쳐 지나갔다.
이것은 그간의 전적에서 나온 무의식중의 행동이었지 결코 악의는 결코 없었다.
“오늘은 우리가 이길 거야. 맷코치.”
“하하하. 원래는 진 팀이 회식을 쏘지만, 형님네가 이기면 오늘은 제가 회를 쏘겠습니다!”
“콜.”
두 사람은 악수하며 씨익 웃었다.
형제보다 더욱 우애가 돈독했다.
이어지는 머슬FC의 작전타임.
“일단 최전방 포지션에는 이순신이 뛴다!”
“관장님! 이건 너무 한 거 아니냐고요?”
“그러게요.”
기존 선수들의 반발이 이어졌다.
“저. 관장님. 저는 공격보다는 수비하고 싶은데요?”
“하하. 순신아. 형들 앞에서 너무 위축되지 않아도 된다. 여기서 너 축구 잘하는 거 모르는 사람 있냐? 저쪽 팀 빼고 말이다!”
이순신은 난감했다.
그동안 갈고 닦은 수련의 성과를 써보고 싶었는데, 시작부터 나가리였다.
“그럼 일단 벤치에서 시작하자. 그럼 다들 불만 없지?”
“네. 알겠습니다…….”
이순신은 아쉬움을 뒤로한 채 경기에 임했다.
삐이이익-
오늘은 이긴다.
동상이몽을 꿈꾸던 두 팀의 경기가 시작됐다.
엄청난 신체조건과 체력으로 압박하는 드랍FC.
최전방에는 드랍FC에서 날강두라 불리는 맷이 치고 달렸다.
그는 빠르고, 날렵했다.
머슬FC의 수비는 견고한 나무.
그만큼 제치기 쉬웠다.
“고오오올!”
초반 러시에 성공한 드랍FC가 1:0으로 앞서갔다.
“어이쿠, 먹혔네? 역시 날강두다워.”
실점을 하고도 황 관장은 싱글벙글 웃었다.
미친 게 아니었다.
그에게는 고작 한 골일 뿐이었다.
자기 옆에서 비밀병기인 이순신을 굳게 믿고 또 믿었다.
선수들의 반발과 팀워크를 위해서 우선 이순신은 벤치에서 출발했다.
선출이라는 말에 기존의 주전 선수들이 벤치로 내려가는 걸 두려워했다.
결국, 황 관장이 기다리는 건 바로 명분이었다.
자신의 자리보다 팀의 승리가 더 중요한 게 축구 아니었던가?
극단적 수비와 ‘아무나 받아라.’ 크로스가 난무했다.
적어도 2골은 더 먹힐 수 있었지만, 12번째 선수인 골대의 선방으로 한 점 뒤진 채 15분짜리 1쿼터를 마쳤다.
“고생하셨습니다.”
“고맙다.”
이순신은 의기소침한 선수들에게 수건과 물을 챙겨줬다.
팀의 막내 역할을 다했다.
선수들과 어색함이 조금은 줄어들었다고 생각한 황 관장이 결단을 내렸다.
“2쿼터에는 선수교체가 있다. 나랑 순신이가 들어간다. 순신이. 준비됐지?”
“네.”
이순신은 빨리 뛰어보고 싶었다.
공격수로 뛴다는 점이 좀 아쉬웠지만 상관없었다.
11 : 11로 선수 구성을 맞춘 경기는 몇 년 만이었으니까.
삐이이이익-
2쿼터의 호루라기가 울렸다.
이순신과 황 관장은 최전방에서 킥오프를 시작했다.
황 관장에게 패스하는 이순신.
그는 곧바로 상대 진형으로 달렸다.
“자 마음껏 몸 좀 풀어봐.”
황 관장이 앞으로 공을 뻥 찼다.
“어이쿠.”
그의 생각으로는 조금 높았다.
부우우웅-
하지만 이순신이 뛰어올라서 가슴으로 공을 받아냈다.
이미 중학교부터 완성된 피지컬.
드랍 FC선수들이 ‘박스점프’와 ‘역도’로 하체를 단련했지만, 거대한 이순신의 점프는 고중량 바벨을 마주한 공포와 다름없었다.
“와, 저거 뭔데?”
드랍FC의 통곡의 벽으로 불리는 장신 수비수 둘이 당황했는지 스텝이 꼬이면서 이순신을 놓쳤다.
공을 받은 이순신은 가볍게 좌우를 살폈다.
머슬FC의 단점은 스피드…….
자신을 받쳐줄 선수가 아무도 없었다.
뒤쪽에서 황 관장을 비롯한 공격진이 뛰어왔다.
‘공을 줄 때가 마땅치 않다. 그렇다면…….’
치고!
달려라!
야구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길게 공을 앞으로 찬 이순신은 달리고 또 달렸다.
엄청난 가속도를 보이며 광풍을 뿜어낸 순신을 그 누구도 쉽사리 막지 못했다.
50m!
40m!
30m!
20m!
골대와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다 이순신은 슛을 날렸다.
부우우우웅-
‘젠장. 이게 무슨 일이고!’
드랍FC 골키퍼 처지에서는 공이 흔들리며 다가왔다.
눈을 질끈 감고 그는 손을 뻗었다.
퍽!
[코너킥!]
이순신의 슈팅이 아쉽게도 골키퍼의 손을 맞고 밖으로 났다.
드랍FC선수들이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는 것도 잠시…….
황 관장이 코너킥을 올렸다.
드랍FC선수와 이순신이 동시에 뛰어올랐다.
이순신은 헤딩으로 공의 방향을 아래로 틀었다.
툭!
V자를 그리며 드랍FC골키퍼의 가랑이 속을 지나갔다.
철렁~
공은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면서 그물을 흔들었다.
“고오오오오골!”
이순신이 자기 진영으로 돌아왔다.
예전 같으면 화려한 세레머니를 했겠지만, 백의종군 이순신은 겸손하게 돌아왔다.
“쟤 옛날의 걔 아냐? 귀화한다고 깝죽거렸던 애.”
드랍FC에서 누군가 이순신을 알아보았다.
“그래? 황형이 그거 믿고 오늘 승리를 확신했단 말이지?”
맷코치는 흐르는 땀을 닦으며 씨익 웃었다.
삐이이익!
킥오프.
2:1 패스에 이은 측면 돌파!
“막아!”
‘아냐. 달려가면 안 돼. 자리를 지켜야 한단 말이야.’
황 관장의 지시에 공만 쫓아가는 모습을 보며 이순신은 답답했다.
하지만 XX동 로빈으로 불리는 박명기를 막을 순 없었다.
왼발로 올린 크로스가 맷코치를 지나서 XX동 메시로 불리는 드랍FC 선수에게 정확히 연결됐다.
고이고이 종이학을 한 번, 두 번 접은 후 왼발 슛!
꽤 평범한 슛이었지만, 덩치만 큰 머슬FC선수의 순발력으로는 도저히 잡을 수 없었다.
1 : 2로 역전당했다.
하지만 피지컬을 앞세운 이순신의 공격으로 2쿼터 말미에 겨우 동점을 만들었다.
머슬FC는 3쿼터를 앞두고 작전타임을 가졌다.
“난 이제 힘들어서 못 뛰고, 순신이가 이번엔 원톱으로 뛰자. 어때?”
황 관장이 숨을 헐떡이며 물었다.
“좋죠. 우리가 죽기 살기로 막고 순신이가 어떻게든 한 골만 더 넣으면 올해는 한 번 이겨보겠네요!”
머슬 FC 선수들은 느낌이 왔다!
이길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런데 순신의 입에서 폭탄이 터졌다.
“저도 좀 힘들어서 그러는데 수비로 뛰면 안 될까요?”
“뭐!?”
순간 머슬FC 선수들이 일제히 이순신을 쳐다보았다.
축구는 골을 넣어야 이기는 경기다.
승리가 목전에 있는데 공격수가 수비를 본다니.
이건 무슨 개 같은 소리인가 싶었다.
하지만 이순신에게도 나름의 이유는 분명했다.
물론 체력이 부족한 건 사실이었다.
제대한 지 고작 1주일이 지났을 뿐이었다.
그동안 운동을 열심히 해 온 헬스인들이나 크로스핏터들에 비하면 90분은커녕 45분을 온전히 뛸 체력은 없었다.
‘무엇보다 시스템이 발생하려면 수비수로 뛰어야 한다는 말이지…….’
이순신이 경기에 들어서자 눈앞에 오랜만에 메시지창이 떴었다.
[공격수 포지션에서는 리베로 클래스가 발동하지 않습니다.]
리베로.
쉽게 말하면 수비수이면서도 공격에도 적극적으로 가담하는 선수란 뜻이다.
즉 기본적으로는 수비수란 이야기였다.
독일의 베켄바워, 차붐바라기 마테우스, 한국의 홍명보 선수가 대표적인 리베로였다.
하지만 독일의 두 선수는 워낙 공격본능이 강한 선수였고, 홍명보는 중거리 슛의 강력한 이미지 때문이지, 사실은 그렇게 많은 골을 넣지 못했다.
근래에는 수트라이커라 불리는 선수들도 리베로보다는 어쩌다가 골을 넣는……. 즉 골 결정력이 조금 특출난 선수들이다.
그렇기에 확인해보고 싶었다.
과거 공격수 시절과 어떤 스킬의 차이가 있는지, 능력치는 어떻게 다른지 말이다.
그런데 이 아저씨들의 표정이 영 안 좋았다.
‘후……. 이런 말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결국, 순신이 입을 열었다.
“수비한다고 골 못 넣는 거 아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