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군대스리가
스페인 국가대표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차라리 다시 태어나는 게 더 빠를 지경이었다.
인종차별, 부상, 외로움, 고독, 무엇보다 다른 선수들은 피지컬이나 실력이 무섭게 상승하는데 자신은 항상 제자리인 거 같은 정체기.
모든 것은 슬럼프가 되었다.
“할 만큼 했다. 순신아. 이제 그만 돌아가자.”
엄마의 간곡한 요청에 이순신은 한국으로 돌아왔다.
군대를 가는 조건으로 국적회복을 할 수 있었다.
병무청도, 본인도 시끄러워지는 걸 원치 않았기에 조용히 입대했다.
다시는 축구를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하고 싶지 않았다.
신병을 거치고 자대에 배치받은 후 이순신이 딱 한 번 축구를 한 적이 있었다.
사단장님이 방문하시면 어떨까?
사. 단. 장!
“여기에 선출이 있다지?”
축구를 좋아하던 사단장은 특별히 이순신이 있는 부대에 방문했다.
“사단장이요? 2년만 지나면 안 볼 사람인데 알게 뭡니까? 전 축구 안 합니다.”
외국물 마인드에 소대장은 당황했다.
“부탁이다. 제발 한 번만 뛰어다오. 그러면 제대하는 그 날까지 네가 뭘 하든 건드리지 않으마.”
“하- 약속 지키십시오.”
“그래그래. 우리 순신이 착하다!”
소대장의 간곡한 부탁에 이순신은 필드로 나왔다.
“X발. 이게 무슨 축구야?”
군대에서는 사단장이 공을 잡으면 모세의 기적을 볼 수 있었다.
허나 그 앞에 순신이 서 있었다.
“어디 선출을 한 번 제쳐 볼까?”
사단장은 씨익 웃으면서 드리블을 쳤는데…
빡!
“으아아아악!”
“괜찮으십니까? 사단장님!!!”
이순신은 공과 함께 사단장의 정강이를 후려쳤다.
후려치기만 하면 그나마 다행인데 선수 출신의 각력은 연약한 사단장의 뼈를 동강 냈다.
“의무관! 의무관!”
“의무관 말고 119!!!”
이순신은 머리를 긁적였다.
‘왜들 나리야…’
이순신은 알 수 없었다.
“이새끼야. 미쳤어. 영창 가고 싶냐?”
“그러길래 제가 안 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게 말이야 방구야!”
“이러려고 한국 온 게 아닌데…”
“다시 말해봐. 뭐라고!?”
이순신이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가 풀었다.
“죄송합니다. 영창에서 뵙겠습니다.”
“뭐?”
“하기 싫은 거 억지로 시키신 분이 소대장님 아니십니까? 같이 갑시다.”
소대장은 잠시 잊고 있었다.
한국 축구계의 역대급 또라이가 눈앞에 있다는 사실을.
‘모든 것인 축구를 잃고 군대로 끌려온 막장 인생 때문에 진급에 발목이 잡힐 수 없지…’
다행히 사단장은 그럴 수 있다면서 호쾌하게 넘어갔고, 소대장은 죽었다 살아났다.
하지만 이순신은 전설이 되었다.
관심병사 이순신.
그 이후로 그 누구도 순신에게 축구를 하자고 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운동 습관이 남아있어서 그런지 이순신은 군 생활 하나만큼은 기똥차게 잘했다.
다만 그에겐 금기어가 있었다.
“이 상병님. 어제 축구경기 보셨습니까?”
“뭐, 이 새끼야?”
평소에는 착한 상사인데 축구 이야기만 나오면 눈깔이 뒤집히는 악마 상사.
“죄송합니다!”
그것 빼고는 그럭저럭 무난한 군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시간이 덧없이 흘렀다.
어느덧 이순신은 병장이 되었다.
이순신은 내무반에서 이불을 덮은 채 누워 있었다.
평화로운 주말. 소중한 주말이었다.
평화롭게 나른하게 보내고 싶었는데 분대장이 협조를 안 했다.
“오늘은 이기자! 지면 다 대가리 박고 내무반까지 기어오는 거다!”
“네엡!”
상병, 일병, 이병의 기합이 잔뜩 들어갔다.
옆 분대와 전투 축구를 앞두고 있었다.
이긴 쪽은 그날 PX에서 20만 원어치는 쓸어 담을 수 있는 빅 기회!
군대 월급이 많이 올랐어도 돈이란 쓰면 쓸수록 부족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분대장은 기필코 승리를 다짐하고 있었는데…
“아서라. 그러다가 영창 간다. 시대가 어느 땐데.”
이순신은 무심하게 분대장이 애써 끌어올린 사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너무하신 거 아닙니까? 이 병장님! 전투를 앞둔 저희들이 지길 바라십니까?”
“응. 지길 바란다.”
“그러지 말고 같이 뛰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거기 신병이 기가 막히게 볼을 잘 차는 놈이 들어왔다고 합니다. 이 병장님만 나서주신다면…”
순간 이순신이 눈을 부릅떴다.
살기. 패기. 독기가 가득 서린 눈빛이었다.
급기야 이순신이 이불을 걷고 일어났다.
저벅. 저벅. 저벅.
이순신이 주머니에 손을 넣고 분대장을 향해서 걸어갔다.
“다시 말해봐.”
“…볼 좀 같이 차주십시오.”
지고 싶지 않았던 분대장이 목숨을 걸고 말했다…
이순신이 주머니에 있던 손을 뺐다.
무의식적으로 분대장이 방어 자세를 취했다.
“받아.”
이순신이 주머니에서 10만 원가량을 꺼냈다.
“뭐… 뭡니까?”
“너네 또 질 거 아냐? 이거라도 보태야 두당 만 원이라도 덜 낼 거 아냐?”
“거 너무 하신 거 아닙니까? 질 거라뇨!”
“응. 100%”
이순신이 돈을 건네고 다시 이불을 덮었다.
“분대장아.”
“네?”
“넌 공 차지 말고 상대편 조인트만 까. 군대 축구는 그래야 이겨.”
어이없는 조언.
그러나 그것이 분대의 사기를 증진시켰다.
“우아아아아! 공 말고 조인트! 그럼 이긴다! 가시죠! 분대장님!”
“그래. 가자!”
분대장은 부대원들을 이끌고 운동장으로 나갔다.
그러자 고요함이 내무반을 가득 채웠다.
‘존나 심심하네.’
이순신은 비어있는 내무반에서 TV 채널을 무의미하게 돌리고 있었다.
-롤~ 롤~ 롤~ 롤~
“오. 저번에 위문 공연에 왔던 애들이잖아? 패스.”
걸그룹이라면 환장할 상황이지만 순신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수컷 사자가 암컷 사자의 뒤로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수컷은 짝짓기를 시도합니다.
“다큐멘터리 어서 가시고~”
챱. 챱.
미모의 중년 여성이 자신과 배 속의 아기를 두고 바람을 핀 중국 출신의 전남편 뺨을 왼쪽 한 번, 오른쪽 한 번 시장 통닭으로 후려쳤다.
그런 다음 옆에 있는 두리안으로 머리를 찍었다.
-내 인생을 망친 널 이것들처럼 부셔버릴거야! 니 이징 스 러!
“내 인생이 더 막장이고요~!”
그러다가 순간 채널을 돌리던 손가락이 멈칫했다.
-프랑스와 스페인의 친선경기가 지금 막 시작됩니다.
“쟤네들은?”
이순신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프리킥을 준비하는 줄리앙 선수. 그대로 무회전 슛이 골망을 흔듭니다! 프랑스가 1:0으로 앞서갑니다!!!
줄리앙.
이순신이 과거에 출전했던 청소년대회의 우승팀 주역 중 한 명이었다.
“공을 잡은 스페인. 그래도 슛! 아 빗나갑니다.”
“puta madre!!”
한국에서 ‘ㅅㅂ’쯤 되는 욕이었다.
순신은 자기도 모르게 욕을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귀화 선언을 한 이후의 스페인 생활이 떠올랐다.
그때 스페인 선수가 공을 잡았다.
“스페인의 수비수! 멋지게 태클을 성공합니다!”
TV를 보다가 이순신이 익숙한 얼굴이 나왔다.
과거에 자신에게 백태클을 하다가 도리어 발을 밟힌 녀석이었다.
“이름이 뭐였더라… 저 자식은 그때 내가 밟았던 녀석인데? 인성이 개 같은…”
이순신은 욕을 하다 말았다.
어쨌거나 그는 국가대표가 되어 경기를 뛰는 중이고, 자신은 이곳에 처박혀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 옆에는 자신을 디아블로라고 했던 미드필더도 서 있었다.
“난 도대체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야.”
가슴이 답답해졌다.
짜증이 파도처럼 휘몰아쳤다.
팍!
이순신이 TV를 향해 리모컨을 던졌다.
하지만 에임이 개판이어서 텔레비전이 아닌 애꿎은 벽에 부딪혀서 리모컨만 산산조각이 났다.
“루카!”
TV에는 관중에서 축구를 보던 루카의 모습이 비쳤다.
이순신을 스페인으로 꼬드겼던 루카.
“내가 그때 그 새끼만 안 따라갔어도 인생이 이렇게까지 꼬이진 않았을 텐데…”
이순신은 루카가 했던 악마의 제안을 떠올렸다.
***
“올라(Ola). 오늘 경기 아쉬웠다.”
올라는 파도라는 뜻을 가진 스페인어였다.
순신은 놀란 눈으로 루카를 쳐다보았다.
칭찬과 폭언뿐인 루카의 입에서 처음으로 위로의 말이 나왔다.
“네?”
-공은 둥글다. 계속 축구를 하다 보면 우린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순신은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잠시 생각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우리의 계약은 이 순간 부로 종료된다.”
그제야 사태파악이 된 이순신은 소리쳤다.
“갑자기 그런 게 어딨어요?”
“계약서 안 읽어봤나? 너는 내가 원하는 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다른 팀으로의 이적을 알아봤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어. 스페인 선수들은 너를 동료로 원하지 않아.”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다는 게 이런 말일까?
감기 때문에 머리가 어지럽고 기침이 계속 나는데 이별 통보를 받는 기분이 이런 것일까?
이제 막 20살이 된 선수에게 방출통보는 사형선고와 같았다.
루카는 순신의 등을 두드린 후 자리를 떴다.
“어이 잠깐 얘기 좀 할까? 아까 슈팅을 보니까 감이 오더라고.”
그는 이순신 대신 떠오르고 있는 유망주에게 다가가 칭찬했다.
빠른 손절과 영업 재개였다.
그것이 이순신이 기억하는 축구선수로서의 마지막 날이었다.
한국행 비행기에서 바라본 창문으로 축구장이 보였다.
과연 다시 축구를 할 수 있을까?
‘미련을 접자.’
루카의 배신이 마지막까지 겨우 버티던 이순신의 자존심과 정신을 와르르 무너트렸다.
***
이순신은 배알이 꼴려서 더는 볼 수 없었다.
“존나 재미없네.”
순신은 TV를 끄고, 벌러덩 누웠다.
천장에서 아까 본 줄리앙의 슛이 아른거렸다.
“ㅅㅂ. 전역하려면 얼마나 남았지?”
날짜를 확인해보니 무려 한 달이나 남았다.
“시간 존나 안가네. 그런데 나가서 뭐하지?”
중학교 중퇴의 21세 청년은 축구경기보다 더 중요한 건 앞날에 대한 걱정이었다.
덜컥.
그때 내무반의 문이 열렸다.
이등병 하나가 일병을 엎고 급하게 들어오더니, 자리에 눕혔다.
“뭐냐?”
순신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그게 말입니다. 강순돌 일병이 골대에 머리를 부딪쳐서 뇌진탕 증세를 보이길래 급히 여기로 데려왔습니다.”
군기가 바짝 뜬 이등병의 얼굴에는 아직도 놀라움이 가시질 않았다.
“븅신 새끼. 어? 대가리에 피 나는 거 같은데?”
“의무관님이 일단 쉬다가 어지럽거나 토하면, 일반병원으로 이송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저… 괜찮으시다면 강순돌 일병님 상태 좀 봐주실 수 있겠습니까? 분대장님이 최대한 빨리 돌아오라고 하셔서…”
“응. 내가 볼 테니까 넌 나가봐라.”
“넵. 알겠습니다.”
이등병은 경례를 하고 나가봤다.
“젠장. 말년에 이등병 수발이나 들게 되다니…”
“이 병장님.”
다시 자리에 누우려고 했던 순신을 일병이 불렀다.
“뭐냐? 물 갖다 줄까?”
강순돌 일병은 괴로운 표정으로 눈을 질끈 감고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저 대신 뛰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뭐?”
순신의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이등병 때도 구타를 당할지언정 공을 차진 않았다.
그 사실은 군대 전설처럼 내려와서 어제 들어온 이등병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새끼가 미치지 않고서야 나보고 축구를 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