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역대급 재능
이순신은 공항에 도착했다.
“뭐라도 좀 먹을래?”
루카가 물었다.
이순신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 잠시 밖을 바라보았다.
“잘 있어. 내 추억들…”
슈우우우우웅.
이순신은 루카의 손을 잡고 스페인으로 왔다.
그러기 위해서 많은 것을 포기했다.
친구, 추억, 게임 계정… 무엇보다 다니던 학교를 자퇴했다.
팀과 팀 간의 계약이 얽히면 문제가 복잡해지지만, 자퇴를 한 시점에서 이순신은 무소속 선수가 되기 때문이었다.
강제성이나 편법은 피파가 조사할 일이며,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고 루카는 자신만만했다.
그러나 상대는 피파였다.
입단 테스트 및 스카우트 등 편법을 써서 계약과 상관없이 유망주를 지키기 위한 18세 미만 해외이적 금지조항은 유효했다.
전 소속팀인 동수원중학교보다 나은 교육환경, 훨씬 좋은 훈련 시설, 생활 및 적응에 도와줄 수 있는 조건을 충족했음을 어필해도 소용없었다.
“이제 어떡해요?”
순신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스페인에 온 지 6개월 만에 당장 짐을 싸서 한국에 돌아가게 생겼다.
인생에서 찾아온 첫 번째 위기였다.
“날 원망하니?”
“그렇진 않아요… 당신을 따라온 건 내 선택이었으니까요.”
이순신은 루카를 원망하지 않았다.
그가 없었다면 당장 이런 기회도 없었을 테니까…
한국으로 돌아가면 2학년부터 다시 다녀야 하나? 그래도 여기서 보낸 6개월이 결코 헛되진 않겠지.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마음의 준비를 끝냈다.
“순신. 한국으로 가지 않아도 된다! 넌 앞으로 나만 믿고 따라오면 된다.”
루카가 악마처럼 웃었다.
의외로 문제는 쉽게 해결됐다.
계속 축구를 할 수 있게 되었을 뿐 아니라, 엄청난 선물도 줬다.
“순신아!”
“엄마!!!”
이순신의 엄마가 큰 결심을 했다.
한국에서의 모든 신변을 정리하고 스페인으로 날아온 것이다.
***
바르셀로나FC 후베닐 A팀은 지역의 레알마드리드 유스팀과 연습경기를 가졌다.
세계 최고의 리그 중 하나인 프리메라리그에 데뷔하기 위해서 어린 선수들은 뜨거운 땀을 흘리고 있었다.
스코어는 1:1.
매서운 눈빛에는 라이벌팀답게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하프라인 부근에서 양 팀의 치열한 공방이 이어질 때, 바르셀로나에서 8번을 달고 있던 선수가 외쳤다.
“아우 또 빠세(Auto-pase)!!”
어느덧 스페인어도 제법 익숙해진 순신이 외침이었다.
7번을 달고 있는 선수는 이순신을 향해서 전방으로 쓰루패스를 찔러줬다.
레알 유스팀의 수비수가 자신의 뒤로 빠지는 공을 쳐다보고 180도 몸을 돌렸다.
턴오버가 빠른 편은 아니었다.
순신은 거북이 같은 수비수들을 기다리지 않고 이미 달리고 있었다.
“너희들 따위에게 발목 잡힐 순 없지.”
왼발로 공을 잡은 순신은 골대를 향해 달렸다.
수비 뒷공간을 침투한 그를 막을 수 있는 선수는 없었다.
출렁.
골키퍼까지 제치고 가볍게 두 번째 골을 넣었다.
삐이이익-
휘슬과 함께 경기가 종료됐다.
2:1로 순신의 팀이 승리했다.
1골 1어시스트.
경기를 지배하고 이끈 건 한국에서 온 큰 소년이었다.
“잘했다. 순신.”
경기를 지켜보던 순신네 감독은 매우 흡족했다.
“쟤는 뉘 집 아들인데 저렇게 잘한대?”
“우리 집 아들이에요.”
오랜만에 아들의 경기를 보러온 순신의 엄마도 흡족한 표정이었다.
비디오를 통해서 보는 것과 직접 보는 골 장면의 감동은 엄연히 달랐다.
“엄마~~~!”
순신은 엄마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응. 순신아. 잘했어! 네가 최고야!”
그녀는 아들이 다치지 않고,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때면, 하루의 피로가 싹 가셨다.
루카도 그 옆에서 매우 흡족한 얼굴로 박수쳤다.
그러나 얼굴에는 탐욕이 드리웠다.
‘저 녀석은 확실히 돈이 된다.’
선수의 성장과 명예? 이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오로지 돈이 되느냐, 아니냐가 중요했다.
순신의 가치가 어디까지 상승할 수 있을까?
머릿속으로 신나게 계산기를 두드렸다.
그렇게 원석이 보석이 되듯 순신은 시간이 지날수록 잘 가공된 다이아몬드가 되어갔다.
어느덧 이순신은 만 18세가 되었다.
이제 성인팀과도 정식으로 계약을 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188Cm에 82Kg의 피지컬은 결코 유럽 선수들에게도 밀리지 않았다.
“넌 어디서 뛰고 싶니?”
감독이 물었다.
“중앙 공격수나 쉐도우 스트라이커, 측면 공격수… 어디든 상관없습니다. 어느 위치에 있던지 골을 넣겠습니다.”
감독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순신 받아!”
골을 달라고 소리치지 않아도 공은 자연스럽게 순신에게 향했다.
순신이 골을 넣으면, 패스를 한 사람은 어시스트를 기록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커다란 메시를 보는 거 같아. 실력뿐만 아니라 상품성도 뛰어나. 자네들 생각은 어때?”
“바티칸도 저 악마의 재능을 막을 순 없을 겁니다. 슬슬 정식 계약 준비를 하시죠?”
“좋아.”
바르셀로나의 수뇌부 측도 긍정적으로 순신과의 계약을 검토하고 있었다.
순신은 오후 수업을 끝내고 짐을 챙겼다.
“순신. 내일 휴가지? 시간 있으면 신나게 토마토나 던지러 가자.”
“미안. 난 내일 집으로 가서 엄마랑 시간을 보낼 거야.”
“이런 마마보이 자식!”
순신은 씨익 웃으며 축제에 같이 가자는 친구의 말을 거절했다.
부우우우웅.
루카가 숙소 앞에다가 붉은색 람보르기니를 끌고 왔다.
이순신이 차에 타자마자 루카는 무언가를 건넸다.
“순신. 한국에서 연락이 왔다.”
루카는 대한축구협회에서 온 공문을 건넸다.
순신은 쓰윽 훑어보더니 무시했다.
“20세 대표? 관심 없어요. 국가대표라면 모를까.”
“정말이야?”
루카는 씨익 웃었다.
순신은 심각한 얼굴로 루카를 바라보았다.
“글쎄요. 불러주면 가야죠.”
순신 역시 씨익 웃었다.
거친 환경 속에서 월드컵 우승이라는 꿈은 한층 더 강해졌다.
이순신이 20세 대표를 성공적으로 끝냈음에도 불구하고, 17세 대표에 또다시 차출되었을 때는 루카가 거절했다.
선수가 소속팀에서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대한축구협회는 이순신이 있다면 사상 첫 우승도 가능하리라 여겼다.
그들은 오랜 회의 끝에 대승적인 차원에서 순신의 차출 거부를 승인했다.
올림픽, 아시안게임, 아시안컵, 월드컵 앞으로 순신이 나가야 할 대회는 많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의 실패를 답습하여 무리하게 선수를 차출하는 것보단 비밀병기로 성장을 시키는 것을 택했다.
그를 취재하는 기자들이 연일 골 소식을 국내에 전했기 때문에 많은 해외 축구팬들의 까방권도 얻었다.
그동안 과도한 관심과 청소년, 국가대표, 올림픽 대표 등 혹사 논란을 겪어왔기에 축구팬들은 진심을 다해서 순신을 지키고자 했다.
그런데 이번 20세 대표를 거부하면서 이순신에 대한 호의 여론에 균열 조짐이 보였다.
심지어 국가대표가 아니면 굳이 차출에 응하지 않겠다는 워딩의 자극적인 기사로 인해서 정작 한국 축구팬들은 인터넷에서 치열하게 키보드 배틀이 벌어졌다.
“혹시 이순신 귀화를 고려하는 거 아니야?”
그러는 와중에 누군가 던진 음모론으로 게시판은 더더욱 시끄러웠다.
- 이름을 봐라! 귀화할 이름인가?
- 솔직히 군대 문제 때문이라도 나 같아도 귀화하겠다.
- 그건 님피셜이고요. 이순신은 자력으로 병역면제 가능!
순신은 기사들에 달린 댓글들을 보며 씨익 웃었다.
왜들 남의 인생에 이러쿵저러쿵하는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 어느덧 엄마가 운영하는 민박집에 도착했다.
“순신아. 어서 와~ 요번 주도 훈련이 많이 힘들었네. 얼굴이 반쪽이네.”
“아니에요. 엄마!”
도리어 이순신이 안서러워하는 엄마의 어깨를 위로했다.
“아니에요. 엄마도 별일 없었죠? 보내준 돈 아낌없이 팍팍 쓰세요. 곧 1군 계약하면 더 큰 돈이 들어올 테니까.”
“그래. 우리 아들 걱정하지 않게 팍팍 쓸게!”
순신은 엄마와 함께 주말 동안 즐거운 휴식을 보냈다.
***
초록색 검색창 실시간 검색어 1위 이순신.
-FC 바르셀로나 정식 계약.-
-바 “그는 지금이라도 당장 뛸 수 있어…”-
순신이 자신의 이름과 등 번호가 새겨진 바르셀로나 유니폼을 찍은 오피셜 사진이 공개되었다.
대한민국은 난리를 넘어서 미친 순간이었다.
18살 나이에 빅클럽과 계약을 한 것은 한국 축구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국뽕. 여기 주모 한 사발이오!
축구팬들이 국뽕을 한 사발 들이키고 거나하게 취할 찰나였다.
빡!
모니터든, 휴대폰이든 뚝배기 깨지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이순신 1군 계약조건에 귀화 옵션도 포함.-
-성공을 위해 나라를 버린 배신자?-
-이제 나는 스페인 국민입니다.-
이순신의 계약조건에는 스페인 귀화가 포함되어 있었다.
사실 유망주들에 대한 귀화는 이전부터 심심찮게 들려왔었다.
대부분 루머이거나, 선수 본인이 거절한 사례가 많았는데 선수 본인이 귀화를 인정한 적은 처음이었다.
급기야 스페인에서 긴급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순신은 카메라 셔터 세례를 받으며 기자회견장에 입장했다.
말끔하게 차려입은 정장에, 머리에는 한껏 힘을 줬다.
“이순신 선수. 1군 계약조건에 귀화 옵션이 포함되었다는 게 사실입니까?”
“도대체 뭘 보고 기사를 쓰신 겁니까? 기사 그대로입니다.”
순간 기자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는 귀화 옵션을 처음 언급한 기자였기 때문이었다.
조회수나 뽑아먹어 보려고 의례 낚시성 제목을 달았는데, 그것이 결국 성지글이 되었다.
“어떤 이유에서 스페인 귀화를 선택하신 것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순신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제 꿈은 월드컵 우승입니다.”
월드컵 우승.
한국에서는 게임에서나 가능한 말이었다.
“당찬 포부를 가지고 있네요. 한국에서는 월드컵 우승의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보시는 겁니까?”
“아시안컵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하는데 어떻게 월드컵 우승을 합니까? 해외에서 활약하는 한두 명한테 의존하는 축구. 그마저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한국 축구는 월드컵 우승이 불가능합니다.”
기자들은 순신의 팩트 폭격에 얼굴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곳저곳에서 술렁거렸다.
기존에 한국 축구에는 앙팡 테리블이니, 악동이니 불리며 흔히 말해서 당돌하다. ‘싸가지 없다’라는 선수들이 종종 있었지만,
순신은 그 차원을 훌쩍 뛰어넘었다.
“혹시 군 면제 때문입니까? 정당하게 메달을 획득하고 당당하게 면제받는 것이 어떻습니까?”
“군 면제 때문에 축구를 하는 게 아닙니다!”
이순신은 책상을 쾅 쳤다.
기자회견장에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잠시 마음을 진정시킨 이순신은 말을 이어나갔다.
“월드컵에서 우승한다고 해도 군 면제를 받을 수 없습니다. 나라를 위해서가 아니라 축구선수로의 야망입니다. 독일국가대표인 포돌스키 선수나 클로제 선수도 태생은 폴란드지만, 독일 대표팀을 선택했습니다. 프랑스의 지네디 지단 선수도 알제리 태생이지만 프랑스 대표팀의 일원이 되어 월드컵 우승을 이루었습니다. 문제 있습니까? 아니면 저만 문제입니까?”
논리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순신에게만 이중 잣대가 적용되는 것이기도 했다.
“본인이 스페인 대표팀에 뽑힐 정도로 실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합니까? 설령 20세 스페인 대표에 뽑히더라도 성인팀은 차원이 다릅니다.”
조롱과 저주를 담은 기자의 질문에 이순신은 씨익 웃었다.
“기자님이야말로 함부로 펜을 굴릴 수 있는 실력인지 묻고 싶습니다. 당신들이 아무리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도 그라운드에서 목숨 걸고 뛰는 건 선수 본인이고, 욕을 먹는 것도 선수 본인입니다.”
이것은 그야말로 선전포고였다.
이순신은 자리에 일어나면서 기자들을 향해서 한마디 했다.
“내 인생은 내가 알아서 합니다. 이것이 옳다, 그르다고 함부로 판단하지 말아 주세요. 나는 축구선수로 꼭 성공할 테니까 댁들 인생이나 잘 챙기십시오.”
이순신은 루카와 함께 기자회견장을 나갔다.
“음. 굳이 마지막 말은 하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 거 같다.”
루카가 말했다.
“루카. 배수의 진이라는 말 들어봤어요?”
“그게 뭔데?”
“뒤에 물을 등지고, 앞에 있는 적들과 맞서 싸운다는 뜻이에요. 도망칠 곳이 없으니 죽기 살기로 싸워야 하죠. 이제 저에게 돌아갈 곳은 없어요. 무조건 이곳에서 축구선수로 성공할 거예요.”
이순신의 눈빛이 번뜩였다.
이 정도 각오가 없다면 스페인 대표가 되어 월드컵 우승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순신은 모든 걸 걸었을 정도로 절박했다.
***
4년 뒤.
순신이 있는 곳은 스페인 축구대표팀의 라커룸이 아니었다.
날씨가 좋은 어느 주말.
양구에 있는 대한민국 육군의 한 내무반에서 짱 박혀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