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중학교 전국대회 결승전.
수원의 동수원중학교 vs 부산의 광무 중학교.
“골!!! 골입니다! 광무 중학교가 1:0으로 앞서갑니다.”
첫 골이 먹힌 동수원중학교의 선수들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울 만도 했지만…
선수들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간만에 한 골 먹혔네’라는 표정을 지을 정도로 여유로웠다.
동수원 중학교에서 주장 완장을 찬 선수는 킥오프 위치에서 같은 팀 선수들을 향해 소리쳤다.
“자. 1골 먹혔으니 3골 박아주자!”
동수원중의 선수들은 씨익 웃었다.
그만큼 최전방에서 공격을 진두지휘하는 공격수 이순신을 굳게 믿고 있었다.
단순히 인성만 좋은 것은 아니었다.
15살. 동수원중학교 최전방 공격수인 순신이 중학교 무대에서 골을 넣는 건 그 무엇보다 쉬운 일이었다.
185Cm / 80Kg.
다부진 피지컬은 웬만한 또래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크고 어깨 한 뼘은 더 넓었다.
“이순신 선수. 공을 잡았습니다!”
이순신이 뛰기 시작하면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코너킥, 세트 피스.
상대편은 그저 이순신을 막는 데 급급했다.
그렇다고 단순히 키만 큰 전봇대는 아니었다.
거침없이 달렸다.
예측된 수비는 연습용 콘을 재끼는 것보다 쉬웠다.
“키퍼가 앞으로 나옵니다!”
순신과 골키퍼가 1:1 상황이 됐다.
광무중 감독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됐어! 막았어! 각이 안 나와!”
이순신은 골키퍼의 다리에 걸려서 뒤로 넘어졌다.
“페널티킥!!!!! 주심 새꺄! 눈이 삐었냐? 안 불고 뭐해!”
동수원중학교 감독은 자리에서 번쩍 일어났다.
충분히 페널티킥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주심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판단했는지 휘슬을 불지 않았다.
디스 이즈 사커(This is soccer)!
오심도 축구의 한 부분이었다.
이순신이 넘어지면서 찬 공은 아름다운 궤적을 그리면서 골대를 향해서 날아갔다. 왼쪽 발등에 공이 제대로 걸렸다.
부우웅~!
드넓게 깔린 천연잔디는 왕을 영접하듯이 엎드려서 고개를 들지 못했다.
쿵~!
촤아아아아악!
공은 땅바닥에 바운드가 된 뒤 그물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삐이이익!
너무나 아름다운 골이었다.
그 뒤로 이순신은 손쉽게 두 골을 더 넣었다.
“해… 해트트릭입니다! 동수원중의 이순신 선수가 해트트릭을 달성했습니다! 스코어는 3:1!!!”
이순신은 두 눈을 감고 양손을 펼쳤다.
농구부 및 각종 운동부에서 제의가 왔었다.
그가 축구를 선택한 이유는 딱 하나!
바로 이 순간 때문이었다.
세레머니 타임.
농구는 슛을 쏘고 바로 백코트를 해야 되지만, 축구 경기장의 시간은 멈췄다.
골을 넣은 사람에게만이 누릴 수 있는 일종의 특권이었다.
관중들의 환호성, 동료와 상대 선수들의 부러움과 질투, 차곡차곡 쌓여가는 기록은 모두 순신의 것이었다.
“이순신 선수. 정말 대단합니다. 앞으로 한국 축구를 책임질 역대급 재능입니다!”
“이순신! 이순신! 이순신!”
순신은 자신의 이름을 외치는 관중들의 목소리가 듣기 좋았다.
최종 스코어는 5:1.
4골 1 어시스트.
이순신의 활약에 힘입어 동수원중학교는 창단 이래 처음으로 전국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그 외에도 최우수 선수상, 득점왕도 모두 순신이 차지했다.
“이거 물건이 나왔네~”
“그러게 말이야. 당장이라도 우리 학교로 데리고 오고 싶다.”
“학교는 무슨. 당장 프로에서 뛰어도 손색이 없겠구만.”
“아직도 2학년이지? 내년에는 더 날아다니겠네.”
“차근범, 박성지, 손민흥을 뛰어넘을 녀석이야.”
한국 축구업계 관계자들은 차세대 한국 축구 스트라이커의 계보를 이을 이순신이라는 이름을 똑똑히 기억했다.
그리고 다가올 16세 이하 월드컵 대회에서 활약을 해주길 기대했다.
***
예상대로 이순신은 국제대회에서도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16세 대회가 아니라 선배들을 제치고 20세 대회에서!
“저 선수 누구야?”
외국 스카우터와 기자들은 이순신의 활약을 주목했다.
비록 팀은 아르헨티나전에서 4:3, 나이지리아와의 경기에서는 3:2, 프랑스와 경기에서는 5:4를 기록하며 3전 전패로 탈락했다.
그러나 결과보다 과정이 너무나 재밌었다.
약팀이 강팀을 상대로 매 경기 골을 뽑아냈다.
한국팀이 기록한 10골 중 순신이 기록한 골은 무려 8골씩이나 됐다.
4강전이 끝난 시점까지 득점 부분에서 2등보다 1골 차이로 앞섰다.
국내 언론들은 피파가 주관하는 남자축구대회에서 한국 최초로 득점왕이 나오는 거 아닌가 싶었다.
“줄리앙의 슛! 아 키퍼의 손을 맞고 살짝 빗나갑니다!”
결승전에서 프랑스의 주장이자 최전방공격수인 줄리앙은 2골을 추가했지만, 총 7골로 아쉽게 득점은 2등.
MVP와 팀 우승에 만족해야만 했다.
‘내가 그 팀에 있었으면 여기까지도 못 올라왔겠지.’
줄리앙은 우승의 기쁨을 뒤로한 채 자신의 라이벌로서 이순신이라는 이름을 기억해뒀다.
자신은 강팀에 어울리는 11명 중의 한 명이었다면, 이순신은 혼자서 팀의 멱살을 잡고 이끌 수 있는 선수였으니까.
정작 이순신은 그런 줄리앙의 눈빛을 신경 쓰지 않았다.
우승보다 더 값진 것을 얻었다.
한국 대표팀 감독은 이순신에게 엄지를 치켜세웠다.
“한국 최초의 득점왕이다. 이미 넌 역대 한국 축구의 공격수가 이루지 못한 걸 해냈으니 앞으로도 기대하마.”
“네. 감독님!”
이순신도 환한 미소로 답했다.
과연 자신이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세계적인 선수들도 자신과 같은 능력이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이순신이 감독과 함께 로비를 걸어갈 때 한 금발의 남자가 그들을 유심히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