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받고 각성 더!-240화 (완결) (240/240)

-240-

-78장. 종전#3-

준혁의 주먹이 던전의 몸 곳곳을 후려쳤다.

쉴 새 없이 폭음이 울렸다.

던전은 최선을 다해 대항하고 있었지만, 하릴없이 밀려 나기만 할 뿐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던전이 바쁘게 눈동자를 굴렸다. 하지만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이다.

던전이 빈손이라면, 준혁은 커다란 칼을 들고 있는 상황이었다.

거기에 서로의 역량이 동일하다면?

칼을 든 쪽이 절대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파팡!

연달아 날아와 꽂힌 주먹이 던전의 안면을 강타했다.

“흡!”

던전의 얼굴에 또 한 번 놀란 표정이 떠올랐다.

‘이건 또 뭐지?’

던전은 이미 백여 번 준혁의 ‘탄생’이 담긴 주먹에 맞았다.

그런데 그 ‘탄생’이 또다시 변하고 있었다.

‘도대체 어디까지 가려는 것인가?’

‘탄생’은 ‘소멸’을 베이스로 두고 진화한 스킬이었다.

그러한 사실과 두 스킬의 이름을 두고 생각하면 ‘소멸’과 ‘탄생’은 정반대의 작용을 할 것 같은 느낌이다.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소멸’의 모든 작용을 빠르게 진행시킨다.

하지만 ‘소멸’의 종점이 파괴라면, ‘탄생’은 거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간다.

모든 사물은 순환한다.

식물은 영양분이 되어 초식동물의 살이 되고, 그 초식동물은 보다 큰 동물의 먹이가 되어 또 다른 피와 살이 된다.

먹이사슬의 정점에 도달해도 순환의 고리는 끊어지지 않는다.

모든 생물의 마지막은 공평한 죽음이고, 그렇게 죽은 동물의 사체는 새로운 형태의 양분으로 식물의 싹을 틔운다.

유기물이 아닌 무기물도 결국 넓게 보면 같은 과정으로 끝없이 순환한다.

생성되고, 존재하고, 파괴되고, 원래와는 다른 형태로 또다시 생성되는 순환의 무한한 반복.

준혁이 추가한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소멸에서 끊어지는 것이 아닌, 순환의 고리를 이어 주는 것.

이를 다르게 해석하면 ‘탄생’은 오직 ‘소멸’을 맞받아칠 때만 효과가 있다는 뜻이었다.

‘소멸’의 작용을 진행시켜 그 효과를 없애는 것은 물론 새로운 에너지를 생성시켜 던전에게 데미지를 밀어 넣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약점이기도 했다.

던전이 이 사실을 깨닫는 순간 싸움은 다시 평행을 유지하며 언제까지고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던전은 아직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이는 탄생도 죽음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존재이기에 그런 것이다.

하지만 던전은 한편으로는 장치에 대해서 그 어떤 존재보다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순환의 고리에 대해 이해하지 못해도, 준혁의 ‘탄생’을 계속 들여다보면 언젠가는 파악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준혁은 ‘탄생’의 메커니즘을 진화시키고 있었다.

그에 따라 얻어맞기만 하던 던전의 표정이 변했다.

“무슨 짓을 하는 거냐?”

버럭 소리를 지르며 물었지만 준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던전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한 가지는 확실했다.

가드를 뚫고 들어오는 공격에 데미지가 거의 없었다.

던전은 빠르게 상황을 계산했다.

이대로 있다가는 결국 소멸하게 될 것이다.

죽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소멸하게 되면 에테르 단위로 산산이 흩어져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는 사실 정도는 이해하고 있었다.

그럴 생각은 없었다.

연달아 들어오는 준혁의 주먹에 그대로 몸을 내밀었다.

어차피 쌓이지도 않는 데미지였다. 그렇다면 그대로 맞아 주는 대신 준혁이 사용하는 스킬의 구조를 파악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아까 그건 분명 소멸과 다르지 않으면서도 무언가가 추가된 형태였다. 무엇이 추가된 거지?’

준혁의 스킬은 이미 변화하는 중이기에, 지금의 스킬보다는 ‘탄생’이라 불린 스킬을 살펴야 했다.

그래야만 지금 변화한 스킬에 대해 이해할 수 있을 터였다.

‘그러고 보니 탄생이라는 이름?’

던전이 얻은 단서는 스킬의 이름이었다.

‘어떻게 소멸을 진행시켰는데 탄생이라는 것이 나올 수 있지?’

차근차근 뜯어본다.

머릿속이 터져 버릴 정도로 무수한 사고가 복잡하게 뒤엉켰다.

하지만 던전은 오직 그 단서 하나만을 붙들고 깊이깊이 파고들었다.

‘아!’

그리고 깨달은 한 가지.

명확한 실체가 잡히지는 않았지만 어렴풋이 전체의 틀이 눈에 들어오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나의 ‘세계’가 가지는 에너지의 양은 동일하다.

다만 그 에너지가 빚어 내는 형태가 시시각각 변할 뿐이다.

그러다 해당 세계가 가질 수 있는 에너지의 총량을 초과할 때가 있다.

바로 그때가 던전 시스템이 해당 세계로 들어서는 시점이다.

그중 던전이 붙잡은 부분은 다름 아닌 에너지의 형태가 변하면서도 동일한 양이 유지된다는 점이었다.

‘그거였군!’

똑같은 에너지지만 다른 형태로 빚어진다는 사실.

즉, 소멸되더라도 그것은 곧 새로운 무언가의 일부가 된다는 뜻이다.

준혁은 그것을 가속했다.

즉, 에너지가 변하는 주기를 매우 짧게 만들었다는 의미.

해법은 바로 나왔다.

“이제 알았다!”

회심의 미소를 지은 던전이 곧장 몸에 두르고 있던 ‘소멸’을 정지시켰다.

그리고 보았다.

준혁의 입가에 떠오른 아주 환한 미소를 말이다.

지금 상황은 준혁이 기다리고 있던 상황이었다.

‘탄생’의 약점은 준혁도 이미 생각해 두고 있었다.

그렇기에 ‘탄생’을 진화시켰고, ‘소멸’에 대한 반작용이 없도록 차곡차곡 설계를 새롭게 했다.

‘소멸’도 ‘탄생’도 아닌 동시에 단순한 물리적 충격도 아닌, 그러면서도 던전에게 데미지를 줄 수 있는 게 무엇일까.

던전이 ‘탄생’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깊은 고민을 한 만큼, 준혁도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 내기 위해 고민을 거듭했다.

기존에 갖고 있던 스킬은 소용없었다.

그와 궤를 같이하는 것 또한 놈은 순식간에 파악하고 되받아칠 터였다.

준혁은 그 해답을 찾기 위해 ‘탄생’을 들여다보았다.

끊임없는 순환의 고리.

‘중간에 멈춰 버리는 건?’

‘소멸’과 다를 바가 없다.

‘거꾸로?’

그것은 오히려 준혁 자신에게 데미지가 되돌아오게 만드는 짓이었다.

순행의 반대는 역행이고, 역행이란 충격의 방향까지도 뒤집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머릿속에 번개가 치듯 강렬한 충격과 함께 떠오른 한 가지가 있었다.

그것은 자신과 하나가 된 동료들을 다시 그들 개개인으로 되돌려주는 방법과도 맞닿아 있었다.

‘탄생’을 만든 후 준혁은 불가능할 것 같은 ‘융합’의 온전한 해제에 대한 단서를 잡았다.

소멸과 탄생으로 이어지는 순환의 고리에 자신을 집어넣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단순하게 적용해서는 안 됐다.

소멸 후 과거의 모습으로 재탄생시킬 수 없다면, 그것은 자신마저도 에너지 단위로 흩어지는 결과가 올 뿐이었다.

소멸과 탄생 사이에 의도를 집어넣어야 했다.

그것은 던전도, 준혁처럼 신격을 초월한 존재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신’이었다.

‘신’의 다른 의미는 ‘세계’라는 거대한 장치를 돌리는 대원칙이다.

온전한 ‘인간’으로 돌아가기 위해 ‘신’이 되어야 한다는 뜻.

지독한 역설이었다.

그리고 준혁은 그 역설 속에서 답을 찾았다.

오직 ‘신’만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권능이 있었다.

그것은 ‘창조’였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는 것.

준혁이 던전을 없애기 위해 생각한 것이 바로 그 ‘창조’였다.

부수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

부수고, 그 부순 것을 다시 만드는 것은 의미가 없다.

던전의 내부는 수많은 장치, 법칙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것을 부수고 다시 만들어 봐야, 법칙이 사라지고 만들어질 뿐이다.

문제는 던전의 내부는 온전한 하나의 세상이기도 하다는 점이었다.

재탄생한다 해도 그 세상 속에 부족한 것이 만들어진다.

1부터 100까지의 숫자 중 50을 지운 후, 무언가를 새로 만들면 사라진 50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것은 의미가 없다.

데미지도 없다.

그러니 없애고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냥 만들어야 했다.

1부터 100까지의 숫자가 있다면 101을 만들어 넣는 것.

부족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 과하게 만드는 것.

온전한 하나의 세상인 던전에게는 그조차도 치명적인 데미지가 된다.

준혁은 그 비밀을 알기 위해 깊이, 더욱 깊이 소멸과 탄생의 순환 고리를 살폈다.

그 속에 비밀이 있으리라.

소멸하고, 새롭게 탄생한다.

그리고 또 소멸하고 탄생한다.

준혁의 눈앞에서 그 순환의 고리가 쉼 없이 반복되었다.

하지만 ‘창조’의 비밀은 알 수가 없었다.

‘젠장! 이 다음으로 어떻게 해야 갈 수 있는 거야?’

준혁은 신수를 비웃었다.

신이 되겠다며 한계가 없는 탐욕을 보이는 그 모습이 우습기 짝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자신이 그러고 있으니 웃음마저 나왔다.

‘생겨라. 제발!’

그때였다.

‘뭐?’

준혁의 손안에 아주 미약한 빛 하나가 떠올랐다.

‘이거?’

에테르였다.

잘게 부수고 부수어 미약하기 짝이 없는 한 톨의 에테르.

그것이 준혁의 손에 떠올라 있었다.

‘어떻게?’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새로운 에너지가 생겼다.

‘창조’였다.

하지만 말이 안 된다.

특별히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이게 가능하단 말인가.

황급히 조금 전의 상황을 되짚어 보았다.

‘생겨라!’ 하고 간절하게 원한 것 외에는 한 게 없다.

‘설마?’

준혁은 조금 전의 그것을 되풀이했다.

여지없이 준혁의 손바닥 위에 에테르 입자 하나가 떠올랐다.

이번에는 처음보다 조금 크다.

‘하, 하하!’

섬전 같은 무언가가 뇌를 관통한 듯한 충격이 날아들었다.

그것을 시작으로 준혁의 머릿속에 거대한 무언가가 마구 밀고 들어왔다.

그것은 하나의 ‘세상’이었다.

준혁은 그제야 깨달았다.

‘신격이라는 게 그런 거였나?’

허망할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결과였다.

‘신격’이라는 것은 신에 가까운 수준에 올랐다는 의미인 동시에, 신이 될 자격이라는 의미도 함께 갖고 있었던 것이다.

신격을 얻은 순간 이미 신이 될 수 있는 준비는 모두 끝났다는 것이다.

거기에서 부족한 한 가지가 바로 ‘창조’라는 권능이다.

문제는 신격을 얻었다는 것은 ‘창조’의 권능 또한 이미 품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

‘이 멍청한 짐승 놈들!’

신수들이 신이 되기 위해 해야 하는 것은, 탐욕스럽에 자신을 먹어 치우고 또 한 번 성장하는 것이 아니었다.

‘창조’의 권능을 향해 끊임없이 사색하고 ‘세계’의 비밀을 들여다보고 이해하는 것이었다.

모두가 이미 신이 될 수 있었지만, 너무나 단순한 한 가지를 깨닫지 못하고 엉뚱한 것만을 끝없이 갈망했던 것이다.

물론 아직 완전한 신, 대원칙이 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던전을 없애기에는 충분했다.

그때 마침, 던전이 몸에 두르고 있던 ‘소멸’을 해제했다.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다행이다!”

“다행?”

“타이밍이 기가 막히네.”

“무슨 소리…….”

툭!

가볍게 휘두른 준혁의 주먹이 던전의 몸에 닿았다.

그리고.

고오오오오!

갑자기 던전의 몸에서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오며 거대한 에테르의 소용돌이가 생성되었다.

거듭 말하지만 던전의 내부는 이미 완성된 하나의 세계였다.

세상 여기저기에 존재하는 자연의 세계가 아니라, 만들어진 하나의 세계였다.

이는 그 자체로 하나의 완벽함을 갖추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거기에 무언가가 보태진다면?

그 무언가가 먼지처럼 작은 크기라 해도 완벽함은 깨어진다.

그것은 세상의 괴멸이다.

던전은 그렇게 허망하게 괴멸을 맞이했다.

고오오오-!

남은 것은 거대한 에테르 폭풍.

준혁은 재빨리 손을 내밀었다.

이번에 꺼내 든 것은 ‘소멸’이었다.

에테르 폭풍에 ‘소멸’이 닿았다.

과아아앙-!

굉음과 함께 하늘이 뒤흔들렸다.

‘소멸’과 ‘소멸’의 충돌이 아닌, 하나의 ‘소멸’만이 작용해 만들어 낸 결과는 무시무시했다.

그렇게 세상은 고요함을 맞이했다.

-대단하군.

멀찍이 떨어져 사태를 관망하던 환수가 어느새 다가와 말했다.

-음?

-스스로 대원칙이 된 인간이 있다니, 대단하다고 말할 수밖에.

그 말에 준혁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것도 내려놔야지.

-뭐?

-딱히 신이 되고 싶은 생각도 없고, 아직 신이라고 말하기는 부족하지.

-그게 무슨 의미인가?

-신이 감정을 가질까?

-음?

-난 아직 신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신이 되어야 하지.

-그렇군.

-물론 신이 되는 것이 목적은 아니야.

준혁의 말에 환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인간으로 돌아가기 위해 신이 되는 거야.

-나로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긴데?

-뭐, 이해를 바라고 한 말은 아니니까. 일단 너부터 되돌려야겠다.

완전한 신이 된 것은 아니지만, 그에 버금가는 힘은 갖고 있었다.

그 힘으로 ‘융합’의 부작용을 지우고 환수를 원래대로 돌이키는 것이 가능했다.

가벼운 손짓이 환수를 쓸고 지나간 순간, 환수가 잔상이 생기듯 분열하더니 순식간에 각각의 환수로 되돌아갔다.

그중에는 당연히 청랑, 흑호, 백효, 적사도 있었다.

네 마리 환수가 빠르게 준혁의 곁으로 모였다.

준혁은 네 마리 환수를 손으로 쓸어 자기 안에 품었다.

‘융합’은 아니었다. 그저 품에 안는 것, 반려동물을 안아 올리는 것과 비슷한 것이었다.

-환계에 있는 인간들 조금만 더 데리고 있어라.

-그러지.

사실 필요하지 않은 부탁이었다.

지금의 준혁에게 ‘시간’이라는 개념은 보통의 존재와 다르게 흐르기 때문이었다.

-그럼 나중에.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준혁은 한 점 빛이 되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

많은 시간이 흘렀다.

준혁은 차원과 차원, 세계와 세계를 이동하며 끊임없이 진리를 탐구했다.

신의 반열에는 올랐지만 완전한 신이 되지는 못했다.

완전함에 도달해야 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머릿속 한편을 차지하는 두려움이 있었다.

진짜 ‘신’이 된다면 과연 지금의 감정, 지금의 목표가 그대로 유지될까.

하지만 해야 했다.

준혁은 끈질기게 파고들었다.

끊임없는 노력.

그것은 준혁이 가장 잘하는 일 중 하나였다.

프로 선수 시절에도 준혁의 가장 큰 장점은 막대한 훈련량이었다.

그렇게 끈질기게 파고든 끝에 준혁은 마침내 ‘완성’되었다.

“큭!”

동시에 신음을 베어 물었다.

갑자기 몸이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과 함께 머릿속이 멍해지고 있었다.

언젠가 한 번 느꼈던 상황이다.

무아(無我).

아직 더블 각성도 하기 전, 시스템의 내부에서 들여다보았던 대원칙.

그 대원칙에 저도 모르게 빨려 들어 그 일부가 되어 가려던 그 순간의 느낌이었다.

적어도 이것은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정작 일이 닥치고 보니 알 수가 있었다.

신이 된다는 것은 결국 세상의 법칙으로서만 존재한다는 뜻이었다.

인간 세상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전지전능한 그런 초월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생각을 더 이어 가기도 전에 준혁은 대원칙에 완전히 동화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쿠쿵!

갑자기 세계의 일부분이 크게 흔들렸다.

한 번이 아니다.

쿠쿵, 쿵!

천천히 시작된 박동이 어느새 빠르게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 속에서 눈을 뜬 건 당연히 준혁이었다.

준혁은 대원칙이 되었을 때 원래의 ‘자아’를 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고, 그것에 대비해 무언가를 심어 놓았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자신의 자아.

‘융합’을 할 때 자아를 유지하기 위해 보관하고 있던 그것이었다.

존재마저 지워진 상태에서 준혁의 눈은 자신의 원래 세계.

그 세계에 사는 존재들이 ‘지구’라 부르는 곳을 바라보았다.

신이 된 준혁에게 시간이라는 것은 무의미한 개념.

세상은 준혁이 떠났을 때와 똑같은 시점(時點)이었다.

준혁은 네 마리 환수를 내보냈다.

-고마웠다. 이제 돌아가.

-네, 주인님!

-알았다, 주인 놈아.

-알겠습니다.

-배고파!

짧은 작별 인사와 함께 네 마리 환수가 곧바로 환계로 돌아갔다.

차원과 차원 사이를 누비며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기에 더 이상의 인사는 필요하지 않았다.

이제 곧 흑호가 도약을 통해 환계로 피난한 사람들을 데리고 올 터였다.

-후우.

실체가 존재하지도 않으면서 준혁은 길게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한 점의 망설임도 없이 품고 있던 신성을 흩어 놓았다.

그리고 혼원 길드의 사옥에 갑자기 13명의 인영이 솟아올랐다.

[에필로그]

“아무튼 우리 준혁 형님 진짜 대단하긴 하다니까?”

강이찬이 손에 든 맥주잔을 기울이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강이찬의 옆에는 횡으로 길게 늘어선 의자에 익숙한 얼굴들이 앉은 채 주전부리를 손에 들고 크게 소리 지르고 있었다.

“4번! 타자! 김준혁! 홈~ 런! 김준혁!”

쌀쌀한 날씨에 시작된 한국 시리즈가 어느덧 7차전까지 이르러 있었다.

“와, 나 진짜!”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구시렁거리는 사람이 있었다.

유민섭이었다.

“나는 팬서스 팬인데 왜 적진에 앉아 있…….”

유민섭이 갑자기 말꼬리를 흐렸다.

왼쪽 자리에서 노려보는 지유의 눈초리가 그렇게 매서울 수 없는 탓이었다.

“이참에 갈아타시죠?”

김준석이 말했지만 유민섭은 꿋꿋했다.

“국적 세탁보다 힘든 게 팀 세탁이라는 말 못 들어 봤어요?”

“뭐, 그럼 준혁이가 있는 한 영원히 콩라인이죠.”

“선수는 은퇴를 하지만 팬은 은퇴 안 합……. 헙!”

유민섭이 황급히 헛바람을 들이켜며 제 입을 막았다.

오른쪽에 앉아 있는 최유나와 리쉬옌의 살기 어린 눈초리 때문이었다.

그 외에 준혁과 함께했던 동료들이 모두 나란히 앉아 있었다.

그때였다.

따악-!

경쾌하면서도 큰 소리와 함께 새하얀 공 하나가 빠르게 허공을 갈랐다.

공의 궤적을 좇던 유민섭이 저도 모르게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와아아아아-!

뒤이어 창원 웨일즈 홈 팬 응원석이 함성으로 뒤덮였다.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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