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받고 각성 더!-238화 (238/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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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장. 종전#1-

한계였다.

환수는 기본적으로 영력을 베이스로 하는 생명체였다.

준혁이 만든 [융합]이라는 스킬로 모든 환수가 하나가 되었을 때도 아예 영력으로 빚어낸 형태를 가졌었다.

그러던 중에 청랑, 흑호, 백효, 적사가 [융합]으로 합류했다.

준혁과 함께 했던 4마리 환수는 영력이 아닌 에테르 베이트로 진화한 상태였고, 그것을 바탕으로 근원을 태워 에테르를 사용할 수 있었다.

그 힘으로 싸웠다.

하지만 이제 한계였다.

몸에서 자체적으로 내던 빛도 이제는 꽤 희미한 상태였다.

이제는 소진할 근원조차 부족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결국 소멸을 맞이하리라.

겨우 한 존재의 소멸이라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문제는 지금 이 환수는, 환계에 존재하는 환수 전체라는 점이었다.

각 왕들이 [징집]으로 일족을 모두 받아 들였고, 그 왕들끼리 다시 [융합]으로 하나가 되었다.

즉, 환수가 죽으면 환계의 환수는 단 한 마리도 남지 않게 된다.

그 세계를 이루는 존재가 단 하나도 남지 않는다는 것은 곧 ‘종말’을 뜻한다.

콰콰쾅!

연달아 들어온 에테르 덩어리에 속절없이 얻어맞고 튕겨 나갔다.

진짜 한계점이 코앞이었다.

-서둘러!

환수는 준혁을 향해 버럭 고함을 치고는 품고 있던 에테르를 완전히 개방했다.

“후우!”

준혁의 손에 순식간에 빛 덩어리가 떠올랐다.

함께 있던 동료들에게는 이미 익숙한 광경이었다.

익숙한 만큼 잘 알고, 그렇기 때문에 지금 준혁의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단번에 알아챘다.

“뭐예요? 이미 만들어 놨던 거에요?”

준혁이 스킬을 만들 때는 그것을 만들어낸 과정이 필요하다.

구상하고, 설계하고, 설계에 따라 에테르를 조각하고, 그것을 조립해 장치를 만든다.

거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준혁은 그 과정을 생략하고 단번에 장치를 뽑아 올렸다.

이미 만들어 놓았었다는 뜻이다.

“안 쓰고 싶었다.”

준혁의 손에서 퍼져나간 빛 덩어리들이 동료들에게 전해졌다.

평소보다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그만큼 복잡한 스킬이라는 방증이었다.

그렇게 각각에게 스킬이 이식되는 짧은 시간 동안, 준혁에게 귓속말처럼 [텔레파시]가 날아들었다.

-세연이한테는 말하지 마라.

김준석이었다.

-뭘?

-내가 이 일에 자원한 거. 이거 알았다가는 평생 바가지다.

농담처럼 건네는 말에 준혁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지었다.

준혁은 조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세연은 그 누구보다 마음이 큰 사람이었다.

슬퍼할 수도, 원망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은 이해해줄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준혁이 이걸 말할 생각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이런 이야기를 말할 상황을 만들 생각이 없었다.

-꼭 찾을게.

-응?

-방법. 원래대로 돌아올 방법.

-알아 인마. 돌아온 후에도 말하지 말라고, 그때야말로 평생 바가지 감이니까.

두 형제가 희미하게 미소를 주고받았다.

아직 스킬을 이식하는 데 시간이 조금 더 필요했다.

약간의 여유를 확인한 준혁이 김준석을 향해 말했다.

-솔직히 말해봐.

-응? 뭘?

-내가 원상복구 안 시킬까봐 형도 하겠다고 한 거지?

-어? 무, 무슨 소리야?

-어이, 형님아. 빤히 보이거든?

-그, 그랬냐?

김준석이 슬쩍 준혁의 시선을 피했다.

준혁은 제대로 정곡을 찔렀다.

김준석은 자신의 동생을 잘 알고 있었다.

만약 자신이 [융합]에 포함되지 않는다면, 어쩌면 준혁은 원상 복구할 방법을 찾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시도는 하더라도 어느 순간 포기할 가능성도 크다고 봤다.

자신의 가족에게는 그 누구보다 따뜻하지만, 그 외의 사람에게는

하지만 자신이 포함된다면 모든 세계를 뒤져서라도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그렇게 판단하고 자원했다.

함께 했던 동료들을 위해 보험을 자처한 것이었다.

-뭐…….

김준석이 할말을 찾지 못해 얼버무리자, 준혁이 말을 이었다.

-이 사람들도 이미 내 가족이거든?

-아!

김준석이 저도 모르게 탄성을 터트렸다. 뒤이어 밀려온 것은 민망함이었다.

-험, 험험!

-뭐, 형 덕분에 다들 마음 편해 보이니 그것도 뭐 괜찮지.

-그, 그래.

그때 마침 스킬의 이식이 마무리 되었다.

-시작하죠.

특별히 설명할 필요도, 비장한 다짐을 건넬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시간도 없다.

준혁은 말이 끝나는 동시에 [융합]을 펼쳤다.

그리고 12명의 동료들 역시 망설임 없이 방금 이식받은 [융합]을 전개했다.

콰르릉!

날카롭게 내려꽂힌 시퍼런 뇌전이 환수의 몸을 관통했다.

온힘을 다해 뇌전의 충격을 흩어 놓는 순간, 던전이 득달같이 달려들며 주먹을 뻗었다.

단순한 주먹이 아니었다.

순간적으로 순수한 에테르 덩어리로 변한 주먹에는 수백 종의 장치가 작동하고 있었다.

꽝!

통렬하게 터지는 폭음과 함께 환수가 또 한 번 튕겨나갔다.

그런데 이번의 충격은 앞서의 것들과 확연히 달랐다.

-이, 이런!

오른쪽 뒷다리가 사라지고 없었다.

던전이 손에 담은 수백 종의 장치가 서로 연계되며 만들어낸 효과였다.

복잡한 계산 끝에 만들어내는 던전의 무기였다.

방금 전이 그 테스트.

던전이 제 주먹을 들어 올리며 중얼거렸다.

“나도 너희처럼 이름을 붙여볼까? 소멸이라고 부르면 괜찮겠군.”

던전이 만들어낸 궁극의 스킬이며 무기였다.

이는 단순히 싸움을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

대원칙에 닿기 위해 만든 무기이기도 했다.

그 사이에 있는 무수한 벽을 넘기 위해서였다.

“그럼 이제 마무리를…….”

말을 하던 던전이 갑자기 뒤를 돌아보았다.

한 존재가 빛을 뿜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존재가 아니었다. 던전과 거의 비슷한 수준의 기운을 뿜어내고 있는 파괴적인 존재였다.

그리고 지금 이런 일을 만들 수 있는 자는 단 하나 밖에 없었다.

“김준혁?”

던전이 황급히 방향을 틀어 몸을 날렸다.

가장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할 존재가 지금 탄생하려 하고 있었다.

슈우욱, 쾅!

던전의 손에 맺힌 [소멸]이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이놈!”

던전의 입에서 고함이 터져나왔다.

준혁을 향해 [소멸]을 뻗는 순간 그 사이로 무언가가 끼어든 것이었다.

지금 이상황에 끼어들 수 있는 존재 또한 하나밖에 없었다.

환수였다.

환수는 몸통의 절반이 소멸한 괴기스러운 상태로 던전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던전이 움직일 때마다 환수 또한 위치를 옮기며 준혁과의 사이를 가로막는다.

“네놈부터 마무리해주마!”

그렇게 말하는 던전은 이미 환수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기다렸다는 듯 환수의 몸에서 작은 빛덩어리 하나가 갈라져 나왔다.

그것은 손톱만큼 작은 크기였는데, 형태가 환수와 똑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환수가 생각한 최후의 방법이었다.

씨앗.

환계의 멸망을 막기 위해 아주 작은 ‘자신’을 복제해 밖으로 내보냈다.

저것을 토대로 환계가 다시 살아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이제 최후까지 발악하는 수밖에.

[소멸]을 품은 던전의 주먹이 환수의 머리로 쇄도했다.

쾅!

또 한 번 울려퍼진 폭음.

“이, 이놈!”

던전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환수는 멀쩡했다.

여전히 하반신이 통째로 날아간 기괴한 모습이었지만 소멸하지 않았다.

또 한 번 누군가가 끼어든 덕분이었다.

준혁이었다.

“후우우…….”

준혁이 긴 숨을 내보내며 던전과 마주 섰다.

그런 준혁의 모습에 던전이 오히려 차분해진 모습으로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하지. 대단하다.”

“딱히 너 한테 칭찬받고 싶은 생각은 없는데?”

그런데 준혁의 모습이 원래의 모습과 달랐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얼굴도 체형도 원래 준혁의 그것이 아니었다.

분명 인간의 근육과 피부를 가지고 있는데 사람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았다.

마치 사람과 똑같이 생긴 인형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 인형이 표정을 짓고 말을 하니 더더욱 어색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이는 준혁이 [융합]의 효과를 극대화 하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융합]은 그 재료가 된 존재들이 자기 자신을 포기하면 포기할수록 효율이 극대화 된다.

환수 또한 그렇기에 초기에 던전을 상대할 수 있는 힘을 낼 수 있었다.

준혁도 그렇게 했다.

참가한 12명의 동료가 그랬듯, 잔신을 포기했다.

그로 인해 인간과 같은 느낌이 들편서도 완전히 인간의 격, 아니 거의 신격에 가까웠던 준혁의 격을 또 한 번 뛰어 넘은 것이었다.

물론, 준혁은 약간의 자아를 남겨두기는 했다.

그래야만 나중에 해야 할 일을 명확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던전의 말에 비꼬듯 대답한 것도 남겨운 ‘자아’의 영향이었다.

-어이, 환수.

-말하라.

-좀 피해 있어.

-뭐?

-이제는 방해된다. 안전하게 피해 있어라.

그 말에 환수는 망설임없이 거리를 벌렸다.

이미 준혁이 가진 힘이 자신을 까마득히 초월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너한테 인간계와 환계의 운명이 달려 있군.

-뭐, 그렇게 됐다.

-부탁한다.

그리고 환수는 준혁의 전장에서 완전히 멀어졌다.

준혁의 몸에서 후광과도 같은 빛이 번져나왔다.

그리고 그것을 신호로 진짜 초월적인 두 존재의, 마지막 싸움이 시작되었다.

지잉-!

두 존재의 충돌은 더 이상 폭음고 시끄러운 충돌음도 나지 않았다.

아주 미약한 소리만이 울려 퍼질 뿐이었다.

그런데 싸우는 광경이 기이하기 짝이 없었다.

준혁이 휘두르는 것은 여전히 가장 익숙한 육모방망이였다.

소리도 없이 날카롭게 휘두른 몽둥이가 허공을 한 번 훑는다.

그런데 단 한 번 휘두른 방방이가 여덟 방향에서 던전을 두드렸다.

그리고 던전이 들어올린 팔이 여덟 방향에서 날아든 방망이를 동시에 막아냈다.

그런데 정작 몽둥이를 휘두르고, 그것을 막는 두 존재의 모습은 싸움과 달랐다.

두 존재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서로 마주 보고만 있었다.

그런데도 파괴적인 공방이 쉴 새 없이 오고간다.

시간과 공간, 그리고 차원까지도 뛰어넘는 존재이기에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준혁과 던전은 단순히 마주보고 있는 것만이 아니라 평온하게 대화까지 주고 받았다.

“나를 들여다 본 존재가 인간이었다는 이야기는 이미 했었지?”

“그랬지.”

“하지만 너는 그 인간을 뛰어넘지는 못하는구나.”

“무슨 개소리야?”

“그 인간은 단일한 개체로 자신의 힘을 키워 나를 마주 보았었다. 그에 비하면 너는 결국 자신의 존재를 지우고 반죽이 되어 새로 빚어야만 지금의 격에 이를 수 있었지.”

“그게 뭐?”

“그게 네놈의 한계라는 뜻이다. 그런 수준으로는 나를 넘어설 수 없다는 얘기지.”

던전의 말에 준혁이 저도 모르게 피식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멍청한 놈.”

“뭐?”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두 존재의 싸움은 한층 더 치열하게 변하고 있었다.

이제는 단순히 하늘에서 힘을 흩뿌리는 것을 넘어, 지구 전체를 뒤흔들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 반응은 해수면의 움직임이 사납게 변한 것이었다.

준혁이 던전을 향해 말을 이었다.

“이걸 보고도 네가 멍청하다는 걸 깨닫지 못한다면, 그건 진짜 멍청한 거라고 봐야지.”

“무슨 말…….”

되묻던 던전이 저도 모르게 말꼬리를 흐렸다.

그와 동시에 격렬하던 두 존재의 싸움도 일시적으로 멎었다.

사납게 변해가던 해수면이 순식간에 잠잠하게 변한 것은 당연한 수순.

그 속에서 준혁이 한층 더 짙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육모방망이를 들어 올렸다.

“각오해라.”

준혁의 육모방망이에서 뿜어내는 빛, 그 속에 담겨 있는 수백의 장치의 조합.

그것은 던전이 만들었던 예의 그 스킬, [소멸]이었다

“네놈이 어떻게…….”

“주둥이로 싸우냐?”

던전의 말을 끊은 준혁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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