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받고 각성 더!-237화 (237/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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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장. 던전-난타전#3-

‘방법? 무슨 방법이 있는데?’

해답이 나오지 않을 공허한 질문이 준혁의 머릿속을 부유했다.

준혁은 사람이다.

하지만 사람의 범주에서, 사람의 인지 범위 안에서 가늠할 수 없는 능력을 가졌다.

시스템을 소유하고 있으며, 에테르를 이용해 장치를 만들고, 그것을 스킬로 이식할 수 있다.

평범한 사람을 각성시킬 수도 있다.

이 정도면 일반적인 관점으로 볼 때 기적을 일으키는, 신에 버금가는 존재로 보이는 수준이다.

하지만 준혁은 사람이다.

기쁘거나 즐거우면 웃는다.

무심한 편이지만 가끔 슬픔을 느끼면 울고 분노하면 화를 낸다.

그리고 매우 희귀하지만 절망할 때도 있다.

지금이 그랬다.

온몸이 축 늘어지고, 한 올의 힘도 나지가 않았다.

‘어떻게?’

같은 질문만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끊임없이 맴돌 뿐이다.

그러는 동안에도 환수는 던전을 상대로 난타전을 이어가고 있었다.

거대한 앞발을 휘둘렀다. 앞발에 얹힌 묵직함이 던전의 몸통을 두드렸다.

그와 동시에 던전이 내지른 주먹 또한 환수의 몸통을 꿰뚫을 듯 옹골차게 틀어박혔다.

빡, 빠악!

한 대를 치면, 동시에 한 대를 얻어 맞는다.

마치 링 중앙에서 캔버스에 두 발을 박아 넣고 쉴 새 없이 주먹을 주고 받는 듯한 모습이다.

하지만 누가봐도 그 우위는 확연했다.

던전이었다.

맞은 공격에 흔들리는 정도에서 큰 차이가 났다.

마치 헤비급과 라이트급의 난타전 같다.

던전의 의도는 단 하나였다.

테스트.

환수를, 준혁의 [와해]로 잃어버렸던 장치를 모두 복구한 자신의 힘을 테스트할 상대로 보고 있었다.

던전의 주먹이 박힐 때마다, 환수의 몸체를 이루고 있는 빛이 순간순간 희미해졌다.

빠르게 빛을 복구하지만, 이내 날아든 주먹에 또 한 번 빛이 꺼진다.

빛이 점멸하는 환수의 몸에 비해, 던전의 몸 주변에서는 서서히 후광과도 같은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무표정하던 던전의 얼굴에 픽 하고 미소가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던전의 움직임이 변했다.

그에 따라 환수의 움직임이 더욱 바쁘게 변했다.

부웅, 붕!

후려치고, 물고, 들이받는다.

하지만 사납게 휘두른 앞발은 허무하게 빈 공간을 할퀴었다.

거세게 송곳니를 들이밀었지만 허무한 이빨끼리 부딪치는 소리만 울려퍼졌다.

온몸을 던져 들이받지만, 투우사에게 희롱당하는 소의 신세가 될 뿐이었다.

그에 반해 던전의 공격은 단 한 번의 실패도 없이 들어맞았다.

빠악!

머리를 후려친 주먹에 환수의 고개가 세차게 돌아갔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턱!

던전이 뻗은 손이 환수의 아래턱을 움켜쥐었다.

환수가 황급히 앞발을 휘두르며 떼어내려하지만, 이미 몸은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 있었다.

던전이 환수의 턱을 쥐고 크게 휘둘러 던진다.

콰앙-!

아무것도 없는 하늘에서 격렬한 충돌음이 일어났다.

환수의 몸이 내던져진 그 앞에 갑자기 거대한 절벽이 떠오른 것이었다.

무시무시한 피지컬을 가진 환수가 들이받혔는데도 절벽을 멀쩡했다.

그 대신 환수의 몸에서 빛이 꺼졌다.

그 직후, 마치 신기루라도 된 양 절벽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신수, 그 중에서도 특히 굉황의 권능이었던 [현실 조작]이었다.

던전은 자신의 원래 기능을 회복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신수들이 가지고 있던 권능까지도 제 것으로 만든 것이었다.

꽝, 꽈광!

싸움은 순식간에 일방적인 구타로 변했다.

단순한 구타가 아니다.

하늘에서 떨어진 벼락이 환수의 몸을 두드렸다.

바람이 환수의 몸뚱이를 난도질하고, 아주 작은 바다가 갑자기 밀려와 환수를 삼켰다.

환수는 마치 고장난 형광등처럼 온몸이 쉴 새 없이 깜빡거렸다.

그럼에도 환수는 끈질기게 덤벼 들었다.

오히려 한층 과격한 힘을 내뿜으며 몸을 날렸다.

말 그대로 악전고투였다.

감정이 매우 무딘 환수의 머릿속에도 절망이라는 것이 서서히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절망감은 멀찍이 떨어져 있던 혼원길드의 헌터들에게도 순식간에 전염되었다.

-방법이…….

-없다.

-우리는 지금껏 도대체 뭘…….

공허한 대화가 소리 없이 웅성거린다.

배면계를 다녀온 10명, 거기에 던전 관리자였던 2명.

이들은 각자 시작은 달랐지만, 마지막에는 하나의 목표를 바라보고 걸었다.

세상을 구한다.

거창하기 짝이 없는 목표였다.

처음부터 그런 목표를 갖고 있지는 않았지만, 어느새 그것을 향해 달렸다.

목숨을 걸었고, 죽도록 노력했다.

자신들을 이끄는 준혁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해 그렇게 노력했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 뼈를 깎는 노력을 비웃고 있었다.

아니, 비웃기라도 하면 다행이다.

한 톨의 먼지 수준의 취급도 받지 못하고 있었다.

가장 뼈아픈 사실은, 그런 취급을 받는데도 화도 낼 수 없다는 점이었다.

자존심도 상하지 않았다.

지금 상황에서 자존심이 상한다는 건 자신이 그냥 눈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상대의 수준은 물론 자신의 수준 조차 깨닫지 못하는 눈이라면 이 자리에 있는 게 말이 안 된다.

오히려 현실을 제대로 인지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세상의 인간들 중에서 가장 강한 수준이라고 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머릿속으로 오가는 대화들 사이에서 강이찬의 힘없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리 그럼 이대로…….

그때였다.

지금껏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던 최유나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사람들에게는 이야기도 하지 않은 채 영력 날개를 펄럭여 준혁에게로 날아갔다.

그리고 그 곁에는 김준석이 나란히 날고 있었다.

두 사람은 빠르게 준혁 앞에 도착했다.

‘아!’

김준석의 눈동자가 크게 동요했다.

온몸을 축 늘어트리고 있는 준혁의 손끝이, 아니 온몸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묻지 않아도, 뜯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공포였다.

준혁은, 인간들 중에 가장 강한 자신의 동생은, 아니 같은 인간의 범주에 넣는 게 오히려 실례일 것 같은 자신의 동생이 겁을 먹고 있었다.

“혁아…….”

“후우웁!”

김준석이 꺼내려던 말이 갑작스러운 깊은 숨소리에 끊어졌다.

최유나였다.

어깨가 들썩일 정도로 들이마신 공기가 폐부를 가득 채웠다가 다시 길게 새어 나왔다.

갑작스러운 두 사람의 움직임에 다른 10명이 동시에 말을 멈추고 시선을 모았다.

그리고.

빡!

통렬하게 휘두른 최유나의 주먹이 준혁의 얼굴을 후려쳤다.

“헉!”

함께 날아온 김준석조차 기겁할 정도의 상황.

“아, 아니 유나 씨 지금 뭐하는…….”

김준석은 준혁을 절망에서 건져내기 위해 왔다.

최유나도 같은 마음일 거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다짜고짜 주먹부터 휘두르니 놀랄 수밖에.

“어…….”

준혁의 고개가 서서히 들어 올려졌다.

흐리멍텅한 눈동자에 서서히 초점이 돌아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뿐이다.

준혁의 얼굴에는 여전히 아무런 의욕이 없었다.

그런 준혁을 향해 최유나가 입을 열었다.

“합체.”

순간, 강이찬이 황급히 손을 들어 제 입을 틀어 막았다.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최유나가 얼굴을 붉히며 ‘합체’라는 말을 한 탓이었다.

저도 모르게 몹쓸 드립이 입에서 튀어나갈 뻔했다.

하지만 지금 최유나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는 아직 알 수가 없었다.

“뭐?”

준혁 또한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강이찬, 합체.”

그제야 이해가 갔다.

강이찬이 했던 말, 힘을 모으기 위해 우리끼리 하나가 되면 안 되냐고 한 그 말이 떠올랐다.

준혁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건 못해.”

강이찬이 말을 꺼냈을 때 이미 안 된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최유나의 표정은 단호했다.

“가능!”

그리고 손가락을 들어 던전과 싸우는 환수를 가리키며 다시 한 번 말했다.

“모두 가능!”

“아!”

최유나의 손짓을 따라 고개를 움직이던 강이찬이 반사적으로 탄성을 내질렀다.

“그러고 보니!”

최유나는 말을 잘 못하는 것이지 결코 머리가 나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기민하게 상황을 읽고 움직일 줄 알았다.

희한한 건, 실력이 상승하면 할수록 더욱 더 말을 못한다는 점이었다.

실제로 과거에는 충분히 문장을 만들어 하던 말이, 지금은 거의 단어만 내뱉는 수준이다.

어쨌든 최유나는 명확하게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준혁이 환수의 스킬인 [징집]을 이용해, 다른 환수 종끼리도 합쳐질 수 있는 스킬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부작용이 있기는 하지만 불가능하지는 않았다고 이야기하기도 했었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그것이 불가능할 이유가 없다.

그것이 최유나의 추측이었다.

최유나의 말을 이해한 나머지 동료들이 황급히 준혁 주위로 날아 들었다.

“가능하면 지금 해요.”

“왜 안 된다고 말한 겁니까?”

준혁을 몰아세우듯 한 마디씩 던진다.

하지만 준혁은 여전히 고개를 내저었다.

“죽습니다.”

“뭐?”

-사람과 환수는 다릅니다.

준혁은 [감응]을 통해 생각을 전달했다.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생각으로 전달하는 것이 대화의 속도가 빠르기 때문이었다.

-환수들은 원래 징집이라는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징집을 통해 일족의 왕이 일족을 흡수했다가, 다시 원상복구 시킬 수 있죠.

유민섭이 빠르게 물었다.

-그게 특별히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까?

-합쳐졌다가 나뉘는 특성을 미리 갖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그 특성을 보완하면, 다른 종끼리 합쳐도 다시 되돌아 올 수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부작용은 있지만.

-하지만 시스템 안에서 만난 신수도 합쳤다가 떨어졌다고 들은 것 같습니다만?

-그들은 신의 격을 갖고 있습니다. 아무리 합쳐져도 그 엄청난 격이 자아를 유지하도록 해주죠. 하지만 인간은…….

환수처럼 다시 나뉘는 특성을 갖고 있지도 않았고, 신수처럼 초월적인 격을 갖고 있지도 않다.

짧은 정적이 흐른 후 강이찬이 물었다.

-합쳐지면 죽는 다는 말이, 영원히 원래대로 나뉘지 않는다는 말이가요?

-그렇지.

-그 말은 즉…….

강이찬이 갑자기 말꼬리를 흐리는 바람에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합체까지는 가능하다는 말이네요?

-어? 그, 그렇게 되나?

-가만, 그러면…….

또 한 번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소리없는 웅성거림이 울렸다.

그것을 가라앉힌 사람은 유민섭이었다.

-그걸 하면, 저 새끼 이길 수 있습니까?

-해봐야 압니다.

-가능성은요?

-반반.

준혁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최유나가 외쳤다.

“할게요!”

거침없는 결정에 다들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모두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100% 죽을 상황에서 50%라도 살 확률이 있는 게 어디야? 나도 합니다.”

유민섭이 말하자, 리처드 개런이 그 말에 반박했다.

“아니지, 이러나 저러나 어차피 우리는 100% 죽지. 그럼 이왕 죽는 거 좋은 방향으로 죽는 게 낫다고 말해야지.”

“내 생각도 그래요.”

“합니다.”

다들 한 마디씩 던지며 최유나 뒤에 나란히 자리를 잡았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마치 순서를 기다리든 줄을 선다.

그리고 마지막에 남은 사람은 김준석이었다.

“나도 한다.”

준혁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형!”

“인마, 이럴 때 나만 빠지면 동생 찬스야. 그런 거 적폐라는 거 모르냐? 이럴 때 하나라도 힘을 보태는 게 낫지.”

“죽는다고!”

“아니.”

단호한 김준석의 말에 준혁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뭐? 어떻게?”

“네가 방법을 찾겠지.”

“그게 무슨?”

“네 형수랑 조카를 위해서라도 나를 다시 살리려고 할 거 아니냐. 그러니 내가 꼭 같이 해야지. 안 그래?”

“도대체 무슨 근거로?”

준혁이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김준석을 보았다.

최유나를 필두로 줄 서 있는 동료들에게는 확실히 미안한 말이었다.

욕을 먹어도 싸다.

그래도 상관 없었다.

이 일만큼은 형을 빼고 싶었다.

하지만 김준석이 준혁을 아는 만큼, 준혁도 김준석을 알고 있었다.

이런 결정을 내렸다면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김준석의 입에서 협박히 새어나왔다.

“안 끼워주면 그냥 저기로 달려들 거야.”

김준석이 가리킨 곳은 던전과 환수의 싸움판이었다.

당연히 저기에 달려들면 100% 죽는다.

“후웁!”

준혁은 급히 숨을 골랐다.

그리고 동료들을 보며 말했다.

“방법을 꼭 찾겠습니다.”

합쳐져 존재가 흩어진 사람들을 다시 원래대로 되돌릴 방법.

때마침 환수의 목소리가 준혁의 머릿속으로 파고 들었다.

-서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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