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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장. 던전-개전#2-
던전의 몸이 하늘에 뜬 상태로 발작이라도 일어난 듯 사지가 마구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아예 눈을 까뒤집고 입에는 게거품을 물었다.
“그륵, 그르륵!”
준혁은 [탐색]과 [심안]을 전개한 채 던전의 움직임을 세밀하게 살폈다.
‘조금만 더!’
아직 움직일 때가 아니었다.
조금 더 기다려야 했다.
그러는 한편, 준혁의 눈에 담긴 감정은 초조함이었다.
‘과연 제대로 먹힐까?’
준혁이 준비한 것은 트로이의 목마였다.
지구상에 신수들에 의한 영력 각성자가 등장한 것을 알게 됐을 때 준혁은 그들에 대한 것들을 파악하려고 애썼었다.
직접 접근해서 만나보고, 이야기를 들으며 대부분의 의문은 해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모두 풀린 것은 아니었다.
분포.
10만이라는 영력 각성자들의 균일한 분포에 준혁은 가장 강한 의혹을 품었었다.
그리고 그것이 해결되지 않았다.
무언가 숨겨진 것이 있으리라.
그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위해 영력 각성자들을 관찰했다.
하지만 특별히 보이는 것이 없었다.
그러다 문득 한 가지가 불현 듯 떠올랐다.
카잔시였다.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 무언가’라는 공통점으로 인해 비슷했던 일이 자연스레 연상된 것이었다.
카잔시 지하에서도 [탐색]으로 찾지 못한 장치가 있었다.
에너지의 흐름마저 숨기는 장치.
혹시 이 영력 각성자들에게도 그것이 장착된 것은 아닐까?
린디웨는 소멸하기 전에 자신의 기억을 준혁에게 넘겨 주었었다.
그 기억을 토대로 숨겨진 장치를 찾는 것은 준혁에게는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다.
그결과 각성자들의 몸에 장착된 장치를 찾았고, 그것이 어떤 일을 하는지 알게 되었다.
장치에는 여러 개의 기능이 담겨 있었다.
첫 번째는 자기 복제와 전이였다.
그것을 통해 지구상에 있는 모든 인간의 몸에 장치가 장착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너무나 균일한 분포 비율은 효율적인 장치의 확산을 위해서라는 것도 확인했다.
두 번째는 인간이 가진 생명력을 에테르로 전환하는 기능이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이 각성자들을 통해 영력을 받아들이는 존재의 몸에도 장치가 복제되어 은밀하게 주입되는 기능이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기능으로 인해 준혁은 던전의 계획을 눈치챌 수 있었다.
두 번째 기능은 인간의 생명력을 에테르로 바꾸는 것이었다.
하지만 신수들은 에테르를 다루지 못한다.
저 장치와 관계있는 존재들 중 에테르를 다룰 수 있는 것은 던전이 유일했다.
그리고 신수마저 에테르로 바꿔 버린다.
결국 그 모든 것을 던전이 흡수할 수 있도록 설계된 장치였다.
그런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가만히 놔둘 준혁이 아니었다.
장치에 손을 댔다.
장치가 원래 가지고 있던 모든 기능을 망가트렸다.
그 대신 [와해]를 심었다.
스위치가 켜지면 영력 각성자들의 영력을, [와해]를 품은 에테르로 바꿔 전송하도록 바꿨다.
당연히 해당 각성자들은 각성이 풀린다.
그 대신 목숨을 잃지는 않도록 손을 보았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했다.
코어를 흡수한 시스템을 [와해]만으로 무력화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래서 또 하나 심은 것인 트로이의 목마였다.
정확하게는 굉황의 뼈에 박아 넣은 무상곤이었다.
굉황을 에테르화 시킬 때 무상곤을 분해했고, 던전이 에테르를 흡수할 때 함께 그 몸안에 밀어 넣은 것이었다.
던전에게 말을 시킨 것은 그 무상곤이 제 기능을 할 때 까지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물론, 그 과정에서 겸사겸사 그 동안 품고 있던 궁금증도 풀었다.
그리고 지금 무상곤이 완벽하게 제 기능을 할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었다.
주변에서 하나둘 게이트가 열리며 환수와 헌터 듀오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준비해요.”
덤덤한 준혁의 목소리에 딜러들이 각자 가지고 있는 최고의 공격 스킬을 준비한다.
탱커는 가장 전방에서 근접 딜러들을 보호할 준비를 하고, 서포터들은 최대한의 버프를 밀어 넣었다.
마지막으로 힐러들 역시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치유 스킬을 양손에 장전했다.
준혁도 준비에 들어갔다.
손끝에서 자아낸 에테르의 실타래를 꼬고 얽어 하나의 모양을 성형해 낸다.
그렇게 만들어낸 것은 다섯 자루의 하얀 빛의 장창.
“후웁!”
큰 호흡을 머금으며 창 한 자루를 투창하듯 쥐는 그 순간, 퍼덕거리던 던전의 사지가 갑자기 우뚝 멈췄다.
“하앗!”
평소 내지르지 않던 거친 기합을 내지르며 손에 든 장창을 총알처럼 쏘아냈다.
슈우욱, 푹!
장창이 던전의 가슴팍으로 파고 들었다. 그리고 준혁이 만든 장창은 모두 다섯 자루.
나머지 네 자루 장창이 뒤이어 던전의 몸에 틀어박혔다.
가슴팍에서 시작해 머리와 목, 그리고 양쪽 어깨까지, 다섯 자루 장창이 꼬치 꿰듯 던전의 몸을 관통한 채 박혀 있었다.
“끅!”
그제야 정신을 차린 던전의 입에서 짧은 신음이 튀어나온다.
“쳐!”
유민섭의 명령과 동시에 헌터들의 무기가 빛을 뿜는다.
최유나의 장검에서 응축된 에테르가 폭발하고, 강이찬이 쏘아낸 에테르가 날카로운 빛의 화살로 변해 날아갔다.
전사 계열, 마법사 계열 딜러들의 공격이 한꺼번에 쏟아지고 환수들까지 가담하는데도 서로 아무런 간섭이 생기지 않았다.
모든 공격이 정확하게 던전의 몸에 틀어박혔다.
당연하지만 준혁도 가만히 기다리지 않았다.
던전의 몸에 박힌 장창을 손으로 쥔 채 [와해]를 한껏 쏟아 부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준혁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파지지직!
던전의 몸에서 시퍼런 스파크가 튀어 오르고 있었지만, 점점 손을 타고 되돌아오는 반발력이 거세지고 있었다.
‘제길!’
와락 인상을 구기는 그 순간, 까뒤집어졌던 던전의 두 눈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섬뜩하기만치 무감정한 두 눈동자를 보는 순간 준혁이 큰 소리로 외쳤다.
“피해!”
콰앙-!
외침과 폭음이 똑같은 시간이 울려퍼졌다.
“크윽!”
황급히 두 팔을 교차에 전방을 막은 준혁이 무지막지한 힘에 주르륵 뒤로 밀려났다.
그리고 하늘에는 준혁과 던전 단 둘만 남아 있었다.
주변에서 공격을 퍼붓던 100여 쌍의 환수와 헌터 듀오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없었다.
걱정할 일은 아니었다.
준혁의 대비가 잘 작동했다는 의미였기 때문이었다.
준혁이 만든 [회피]의 발동이었다.
이전의 [회피]는 사용자를 가까운 근처로 이동시키지만, 준혁이 개량한 것은 미리 정해 놓은 안전지역으로 이동시키는 스킬이었다.
“그으으윽!”
그 사이 던전이 이상한 소리를 내며 두 손을 움찔 떨었다.
준혁은 기다리지 않고 놈을 향해 쇄도했다.
놈의 몸에 여전히 박혀 있는 장창을 두손으로 쥐고 비틀며 [와해]를 밀어 넣었다.
콰지지지직!
“크아아악!”
던전의 몸에서 시퍼런 스파크가 튀어 오르고, 그에 따라 비명이 울려퍼졌다.
“크아아아!”
시퍼런 스파크는 준혁까지 휘감은 채 강렬한 에너지를 사방으로 내뿜었다.
준혁은 온몸이 튀겨지는 고통을 참으며 끊임없이 와해를 밀어 넣었다.
콰앙!
던전이 이를 악문 채 휘두른 손이 또 한 번 준혁을 후려쳤다.
또 다시 튕겨나간 준혁의 온몸이 축 늘어졌다.
“끅, 끄으윽!”
몸에 힘이 단 한 올도 들어가지 않았다.
사지가 축 늘어진 채 수면의 낙엽처럼 이리저리 몸이 흔들렸다.
던전에게 와해를 밀어 넣으면서 되돌아온 반발력에, 육체의 구조가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
이대로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아예 재가 되어 흩어져버릴 터.
서둘러 몸속의 장치를 작동시켰다.
이 싸움을 위해 만들어 놓은 [재생] 장치였다.
희미하게 명멸하는 빛과 함께 몸속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육체를 재구성한다.
그 사이 던전도 최대한으로 에테르를 끌어모았다.
던전 또한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준혁이 최대치로 밀어 넣고 증폭한 [와해]가 시스템으로부터 이전한 모든 장치를 교란시키고 있었다.
던전은 최대한 빠른 속도로 자신의 상태를 점검했다.
‘이건 방법이 없다!’
파고든 와해를 배출할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그냥 둘 수는 없는 노릇.
“끄으으윽!”
던전이 입으로 긴 신음을 흘리며 몸속의 모든 장치를 활성화시켰다.
던전의 온몸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나오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완전한 하나의 빛 덩어리로 변했다.
그 직후 인간 형상의 빛 덩어리가 격렬하게 떨리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사방으로 빛의 입자가 되어 흩어졌다.
‘저, 저건 또 무슨?’
[재생]을 통해 몸을 재구성하던 준혁의 두 눈이 찢어질 정도로 커졌다.
넓게 퍼진 빛의 입자 중 몇 개가 새까맣게 변했다. 그리고 그 옆에 아주 작은 새로운 빛의 입자가 하나 떠올랐다.
그 후 새까맣게 잿가루처럼 변한 입자가 아래를 향해 추락하기 시작했다.
‘탐색!’
준혁은 충격으로 정지시켰던 [탐색]을 다시 펼쳤다.
새까맣게 변하는 입자와 그 옆에 새롭게 떠오르는 입자를 살폈다.
‘미친!’
추락하는 검은 덩어리들은 준혁이 밀어 넣은 [와해]였다.
아직 떠 있는 빛의 입자 중 새까맣게 변하는 것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었다.
‘쉽지 않겠군.’
준혁은 이를 악물었다.
[탐색]의 시야 속에서 준혁은 확실하게 볼 수 있었다.
빛의 입자 하나하나는 놈의 몸을 구성하는 이전 시스템의 코어를 포함한 모든 장치들이었다.
검게 물든 것은, 정확하게는 [와해] 그 자체가 아닌 [와해]로 인해 기능을 상실한 장치들이었다.
그리고 검게 물든 입자 옆에 새롭게 떠오르는 것은 [와해]로 망가진 장치의 열화 복제판이었다.
이 열화 복제판은 구조는 동일했지만 제 기능은 할 수 없는 상태의 장치들이었다.
즉, 놈은 지금 자신의 구성요소 중 [와해]로 망가진 것들을 버리고 빈 곳을 채워 넣은 구조물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와해]를 중화시킬 방법을 찾을 수 없으니 아예 몸의 일부를 떼어내 피해를 최소화하는 선택을 한 것이었다.
‘어떤 의미로든 무서운 놈.’
빛의 입자 속에 파고든 [와해]가 모두 사라졌다.
뒤이어 빛의 입자가 다시 뭉쳐 인간의 형상을 빚기 시작했다.
준혁의 [재생]도 거의 마무리 되어 가고 있었다.
우우우웅-!
두 존재가 경쟁이라도 한 층 더 밝은 빛을 뿜어낸다.
‘빨리!’
단 1초라도 놈보다 먼저 재생을 끝내야 했다.
‘됐다!’
몸의 재구성이 완전히 끝나자마자 준혁은 황급히 허공을 박차고 날았다.
콰아-!
공기를 찢어발기며 쇄도하는 준혁의 손에는 에테르의 칼이 새롭게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심안]을 펼치고 [탐색]도 열었다.
놈의 몸도 이제 완전한 재구성이 마무리 되고 있었다.
‘젠장!’
쇄도하던 준혁이 이를 악물었다.
휘두른 칼이 놈의 몸에 채 닿기도 전에 던전의 재구성이 끝났다.
기다렸다는 듯 휘두르는 놈의 팔이 하얀 빛을 머금은 채 준혁의 칼을 후려쳤다.
꽈앙-!
강렬한 기운이 사방으로 터져나가며 두 개의 신형이 서로 튕겨 나갔다.
준혁은 재빨리 충격을 해소하며 균형을 잡았다.
그리고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되돌아온 충격이 아까와 확연히 달랐다.
충분히 버틸 수 있는 수준으로 위력이 떨어졌다.
게다가 충돌로 인해 던전 또한 뒤로 밀려났다.
서로 가진 힘이 비슷한 수준이라는 의미였다.
‘후, 준비 안 해 놨으면 그대로 끝장 났겠군.’
영력 각성자를 통해 미리 데미지를 준 것이 천만 다행이었다.
그러는 한편으로는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로 무섭기도 했다.
그렇게 힘을 뺐는데도 겨우 동등한 수준이라니.
물론 겁을 먹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입가에 짙은 미소를 떠올렸다.
“이제 좀 해볼만 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