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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장. 굉황-격전#1-
콰콰쾅!
거대한 굉황의 얼굴 곳곳에서 강렬한 폭발이 일어났다.
준혁은 대궁으로 형태를 바꾼 무상곤의 빈 시위를 쉴 새 없이 튕겼고, 기관총이라도 된 듯 무수히 많은 에테르 화살이 허공을 꿰뚫었다.
직선으로 뻗어 가고, 위아래로 우회하는가 하면, 아예 사라졌다가 엉뚱한 곳에서 튀어나와 박히는 에테르 화살이 허공을 뒤덮은 광경은 일대의 장관이었다.
굉황의 얼굴 곳곳에 잿빛 영력이 피어올라 화살의 궤적을 막아섰다.
하지만 단 한 대의 화살도 막아 내지 못한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뻗어 가면서도 준혁의 화살은 순간순간 궤도를 비틀며 빈틈으로 파고들었다.
굉황의 거대하기 짝이 없는 몸집을 생각하면 준혁이 쏘아 내는 화살은 먼지만큼 작다.
아무리 폭발이 일어나도 조금의 데미지도 들어가지 않을 것 같은 광경이었다.
하지만 준혁이 다루는 에테르는 엄청나게 압축되어 있는 에너지다.
폭발이 일어날 때마다 굉황은 뇌가 통째로 흔들리는 것 같은 충격을 받고 있었다.
크하아-!
굉황의 거대한 포효와 함께 짙은 영력이 하늘을 잔뜩 덮었다.
그 거대한 몸뚱이를 완전히 감싸는 영력의 막.
퍼퍼펑!
에테르 화살이 굉황의 몸에 닿지도 못하고 영력의 막에 부딪쳐 그대로 터져 나간다.
아무리 준혁의 화살이 자유자재로 움직인다 해도 존재하지 않는 빈틈을 뚫을 방법은 없다.
“쯧!”
준혁은 조금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무상곤을 원래의 형태로 되돌렸다.
그와 동시에 굉황이 쏟아 낸 영력들이 허공에 흩어지는 듯하더니, 곳곳에서 작은 덩어리로 뭉치기 시작했다.
뭉쳐진 영력이 빠르게 하나의 형태로 빚어졌다.
“이거 뭐 하는 짓이냐?”
준혁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떠올랐다.
영력들이 뭉쳐 완성된 것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굉황의 용 머리를 가진 인간의 모습이다.
시스템 내부에서 상대한 적 있는 합체된 신수와 매우 유사한 모습이었다.
“용 대가리라고 불러 줄까?”
준혁이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무상곤을 허공에 한 번 휘둘렀다.
용 대가리의 숫자는 거의 1,000에 가까웠다.
“쯧! 눈치 하나는 제법 빨라.”
현재 굉황의 가장 큰 약점은 저 거대한 덩치였다.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고는 해도, 너무 거대하다 보니 오히려 자신보다 훨씬 작은 준혁과 싸우는 데 불리했던 것이다.
인간이 자기 주변을 빠르게 날아다니는 작은 새를 잡는 것이 힘든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게다가 그 작은 새가 힘만큼은 인간과 같다면 더욱 난감하다.
그래서 방법을 바꾼 것이었다.
팡, 파파팡!
인간 사이즈의 용 대가리들이 준혁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런 용 대가리들의 손에 들린 것은 다름 아닌 육모방망이였다.
“별걸 다 따라 하네?”
가장 선두에서 날아든 용 대가리가 육모방망이를 휘두르고, 준혁의 무상곤이 그것을 막았다.
쾅!
거센 소음이 울려 퍼진다.
준혁과 무기를 맞부딪친 용 대가리는 살짝 뒤로 밀렸을 뿐, 별다른 충격이 없는 모습이었다.
최소한 육체적인 피지컬만큼은 준혁과 큰 차이가 없다는 의미.
그런 놈들을 무려 1,000마리 상대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망할!”
버럭 소리를 내지른 준혁의 무상곤에 새하얀 영력이 맺혔다.
꽈앙!
재차 휘두른 무상곤의 충격에 용 대가리의 몸뚱이가 거세게 튕겨 나갔다.
그리고 그것이 신호라도 된 듯, 1천 마리의 용 대가리가 한꺼번에 준혁을 향해 달려들었다.
기다렸다는 듯 굉황 또한 제 몸에 돋아나 있는 작은 굉황을 뻗어 준혁을 후려친다.
준혁은 바쁘게 그것들을 막아 내며 누군가를 향해 외쳤다.
-지금, 지금 가!
저 멀리서 대기하고 있던 청랑, 흑호, 백효를 향한 외침이었다.
세 마리 환수가 움직이는 것을 느낀 준혁은 소매 속의 적사도 허공으로 날려 보냈다.
1,000마리의 용 대가리.
거기에 수시로 빈틈을 노리는 굉황을 모두 상대하는 것은 꽤나 지난한 일이었다.
“후웁!”
크게 호흡을 고른 준혁이 에테르를 뭉클 피워 올렸다.
“쌍생상사!”
준혁의 스킬이 발동된다.
허공에 떠 있는 1,000마리의 용 대가리 앞에 각각 새하얀 에테르 덩어리들이 떠오르더니 순식간에 용 대가리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쌍생상사]
원래 가지고 있던 스킬이었지만, 이전과는 다른 것이었다.
준혁이 기본 단위까지 해체하고 몇 번이나 개량을 거듭한 것으로 그 효과가 과거와는 차원이 달랐다.
기존의 ‘쌍생상사’는 상대의 그림자를 본체의 모습으로 일으켜 똑같은 존재를 만들어 내는 스킬이었다.
거기에 괴물을 상대로는 사용할 수 없고, 사용 시간이 5분이라는 제약까지 있었다.
하지만 지금 준혁이 개량한 ‘쌍생상사’는 이전과 같은 제약이 없다.
굳이 꼽으라면 여전히 일정 크기 이상의 상대에게는 쓸 수 없다는 점과 그림자 대신 준혁의 에테르를 사용하기에 에테르 소모가 크다는 정도였다.
그러니 최대한 빨리 마무리해야 했다.
하늘 전체에 묵직한 굉음이 쉴 새 없이 울려 퍼졌다.
용 대가리와 준혁이 만든 용 대가리가 모두 각각의 한 쌍이 되어 서로가 서로를 공격한다.
그리고 준혁이 그 사이에 끼어들었다.
무상곤은 한 자루 장검으로 변해 있었다.
슈우욱!
에테르를 덧씌워 벼려 낸 날카로운 칼날이 용 대가리의 몸뚱이를 반으로 갈랐다.
그 순간 용 대가리는 연기가 되어 흩어졌고, 놈과 싸우던 준혁이 만든 용 대가리의 그림자도 빛과 함께 흩어졌다.
준혁은 그 광경을 확인도 하지 않은 채 곧장 다음 용 대가리를 찾아 몸을 움직였다.
-지금, 지금 가!
준혁의 명령을 듣자마자 청랑이 먼저 허공을 박차고 내달렸다.
아우우우!
길게 뱉는 하울링이 하늘 가득 울려 퍼진다.
뒤이어 새하얀 잔상이 빠르게 청랑의 곁으로 다가와 나란히 허공을 날았다.
백효였다.
-앞장서라!
백효의 말에 청랑이 내딛는 두 발에 힘을 더했다.
펑, 퍼퍼펑!
발을 내디딜 때마다 그 발밑의 허공에서 무언가 터지는 듯한 소음이 울리고, 그것을 밟은 청랑이 한층 빠르게 굉황을 향해 쇄도했다.
준혁을 향해 온 신경이 쏠려 있는 굉황의 사각으로 파고든 직후, 급격하게 방향을 꺾어 굉황의 목 어림을 향해 내달렸다.
[바람칼]
빠르게 내지른 앞발에서 날카로운 바람이 터져 나갔다.
시스템을 얻은 준혁이 성장하면서 네 마리 환수 또한 그 영향을 받아 급격한 성장을 이루었다.
기본적으로 영력이 아닌 에테르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지난 두 달 동안 준혁은 네 마리 환수의 스킬까지 손을 보았다.
그 덕에 청랑을 포함한 네 마리 환수는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존재로 거듭나 있었다.
츠카카칵!
뻗어 나간 ‘바람칼’이 거칠게 굉황의 비늘을 갈아 댔다.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청랑은 쉴 새 없이 굉황의 몸뚱이 위를 내달리며 ‘바람칼’을 날렸다.
그렇게 내달리는 청랑을 향해 촉수와 같은 작은 굉황들이 거칠게 달려든다.
하지만 작은 굉황들은 청랑의 몸에 닿기도 전에 강렬한 힘에 튕겨 날아갔다.
백효였다.
백효는 달려드는 작은 굉황의 머리가 아닌, 굉황의 몸뚱이와 닿아 있는 뿌리 부분을 두드리고 있었다.
세차게 펄럭이는 날갯짓이 뿌리를 두드릴 때마다 작은 굉황들이 휘청이며 튕겨 나갔다.
작은 굉황은, 굉황의 생각에 따라 움직이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굉황의 통제를 받지 않을 때에는 그 모든 작은 굉황이 각자의 자아를 갖고 있었다.
물론 지능이 있지는 않다.
강력한 힘을 갖고는 있지만 지능 자체는 보통 짐승의 수준이었다.
기본적으로 굉황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에 청랑을 공격했었지만, 거듭된 방해에 마침내 짐승으로서의 본능이 튀어나왔다.
크아앙!
신경질적인 외침과 함께 주변에 있던 모든 작은 굉황들이 백효를 타깃으로 바꿨다.
그리고 그것이 백효의 목적이었다.
삐이익!
긴 울음과 함께 백효의 부리가 새하얀 에테르를 머금었다.
동시에 날개를 접고 빠르게 회전하며 직선의 궤적으로 쏘아진다.
마치 총구를 벗어난 총알을 연상시키는 모습.
슈욱, 펑!
백효에 꿰뚫린 작은 굉황의 몸뚱이가 터져 나가며 순식간에 연기처럼 흩어졌다.
백효의 시선이, 방금 터져 나간 작은 굉황의 뿌리 쪽을 살폈다.
그리고 살짝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작은 굉황이 사라지면, 그것이 돋아났던 굉황의 몸뚱이 부위에 속살이 드러나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단단한 비늘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영력으로 만들어 낸 것이라 육체 자체에 변화가 있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백효가 작은 굉황들의 어그로를 끌며 무자비하게 공격을 날리는 동안 청랑도 쉬지 않고 자신의 임무를 수행했다.
굉황의 비늘이 더할 나위 없이 단단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부서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준혁이 한 점에 공격을 집중해 굉황의 비늘을 갈랐던 것처럼, 청랑 또한 단 한 점에 집요하게 ‘바람칼’을 쏘아 냈다.
쩌저저적!
그리고 마침내 굉황의 거대한 비늘 한 장이 금이 가며 깨져 나갔다.
-됐다!
청랑이 환희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그사이 백효는 주변에 있던 작은 굉황을 모두 터트리고 대기하고 있었다.
-맡겨라!
백효가 외침과 동시에 터져 나간 비늘 위 허공에 자리를 잡았다.
허공에 뜬 상태 그대로 날개를 활짝 펼치고 발톱을 날카롭게 벼렸다.
터져 나가 속살이 드러난 부위에는 새롭게 영력이 몽글몽글 피어오르고 있었다.
사라진 비늘을 재생시키기 위한 반응이다.
-서둘러라!
다급해진 청랑이 외쳤고, 그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백효가 그대로 급강하했다.
세차게 바람을 가르고 강하하는 백효의 발톱이 새하얗게 에테르로 물들어 있었다.
찌이익!
백효의 발톱이 드러난 속살을 한 움큼 뜯어내는 순간, 백효의 발톱에 맺혀 있던 에테르가 굉황의 몸뚱이 속으로 파고들었다.
끝이 아니다.
[돌개바람]
청랑이 쏘아 낸 십여 개의 회오리바람이 에테르를 머금은 채 그 속으로 또 한 번 파고들었다.
콰콰콰쾅!
동시에 터져 나간 비늘 주변의 껍질 속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이 미천한 짐승 놈들이!
굉황이 노기를 띤 목소리로 외쳤다. 청랑과 백효의 공격에 꽤 충격을 받은 탓이었다.
그리고 때마침, 준혁의 손에 들린 장검이 마지막 용 대가리의 몸뚱이를 가르고 있었다.
파앙!
허공을 박차며 방향을 바꾼 준혁이 굉황을 향해 짓쳐 들었다.
“갑갑하지?”
-겨우 이런 정도로 나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으냐?
“아니, 그건 아니지. 그런데 이걸로 끝나는 건 아니잖아?”
준혁의 장검이 급격하게 커지며 굉황의 얼굴을 향해 날아갔다.
과격한 크기의 칼이 묵직한 바람을 안고 떨어져 내린다.
그 순간 굉황의 얼굴에 또 한 번 영력이 뭉클 피어올라 준혁의 장검을 막아 냈다.
준혁의 칼을 막아 낸 영력이 굉황의 얼굴 전체를 감싸더니, 갑자기 그 형태를 바꾸었다.
순식간에 바뀐 굉황의 얼굴에 준혁이 와락 인상을 구겼다.
“야이, 미친 용 새끼야! 적당히 좀 해라!”
굉황의 머리는 기괴하게 변해 있었다.
원래 머리가 있던 부위에 더 이상 머리가 존재하지 않았다.
몸뚱이에서 머리로 넘어가는 목에서 뻗어 나온 것은 마치 수백 갈래의 용, 혹은 뱀의 몸뚱이였다.
마치 히드라를 연상시키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몸뚱이 끝에는 예의 용 대가리들이 매달려 있었다.
준혁과 싸우기 위해 자신의 몸뚱이를 변형시킨 것이다.
“후우!”
준혁은 빠르게 한 호흡 쉬며 무상곤을 고쳐 들었다.
“넌 뇌가 어디에 들어 있기에 머리를 이딴 식으로 갈라서 쓰냐?”
시답잖은 농담을 던지는 동시에, 준혁의 몸이 새하얗게 물들며 굉황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