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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장. 굉황-전초전#3-
-어?
-궁금하지 않아요?
준혁은 이미 핵 공격을 받은 경험이 있다.
몸이 붕괴하는 경험을 했고, 죽기 직전까지 갔었다.
아니,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면 반드시 죽었을 것이다.
쟁여 놓았던 엘릭서가 있었기에 구사일생으로 살 수가 있었다.
그렇다면 신수에게는 어떨까?
-으음……. 너무 위험합니다.
-아뇨, 저는 문제 없어요. 그런데… 좀 이상하네요? 갑자기 핵 공격이라니?
핵무기처럼 심각한 피해를 만드는 무기의 사용이 너무 빨랐다.
-전혀 안 이상합니다. 위에서는 모르시겠지만, 지금 아래는 난리 났어요.
-그래요?
눈앞의 괴물에게만 집중하고 있던 준혁으로서는 알 도리가 없었다.
-지금 바다가 뒤집혔어요. 태평양과 접해 있는 모든 해안선에 크고 작은 해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나마 태평양 상공에서 싸우니 다행이지, 땅 위에서 싸웠으면……. 어휴! 상상도 하기 싫습니다.
-그렇군요.
듣고 보니 이해가 갔다.
굉황의 거대하기 짝이 없는 몸뚱이를 못 보는 게 이상한 일이다.
그런데 태평양이라는 거대한 바다가 뒤집힐 정도면 급하게 핵을 쏜 것도 이해가 간다.
-아무튼 피해요. 여기는 제가 알아서 합니다.
준혁이 재차 대피를 지시했다.
‘뭐, 대피하지 않아도 되기는 할 테지만…….’
핵폭발은 당연히 무섭다.
하지만 준혁에게는 위협이 되지 않았다.
핵무기의 위험은 크게 4가지다.
첫째, 폭발하는 순간 방사되는 막대한 에너지.
둘째, 폭발로 생성된 플라즈마의 2억 도에 달하는 초고온.
셋째, 어마어마한 파괴력의 후폭풍.
넷째, 방사선과 방사능 낙진.
이 중 첫 번째에서 세 번째까지는 과거의 준혁도 버틴 것들이었다.
X선 형태의 막대한 에너지도, 인체를 증발시킬 초고온도, 모든 사물을 날려 버릴 정도의 후폭풍도 버텨 냈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때 당시보다 몇십 배는 강해져 있었다.
문제가 될 것이 없다.
준혁에게 가장 막대한 피해를 준 것은 다름 아닌 방사선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에테르를 다루기 때문이었다.
물론 에테르가 만능의 에너지는 아니다.
그러나 에테르는 세상의 근원인 에너지였다.
이를 거꾸로 풀어 생각하면, 세상의 어떠한 현상에도 관여할 수 있다는 뜻이다.
퍼지는 방사능을 완전히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에테르로 길을 만들어 그 방향을 비트는 것은 가능했다.
그것을 좀 더 확장하면, 방향을 완전히 바꿔 우주로 날려 버리는 것도 가능했다.
동료들이 있어도 전혀 피해를 입지 않게 막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대피를 지시한 것은 만의 하나라는 가능성마저 지우기 위함이었다.
-얼른 피해요!
유민섭에게 재차 얘기한 준혁이 다시 굉황을 향해 달려들었다.
아직은 전초전인 탓에 서로 스킬과 권능을 사용하기보다는 순수한 피지컬을 이용한 싸움으로 전개되었다.
치고받는다.
그럴 때마다 여전히 하늘이 뒤흔들렸다.
그러는 중에도 준혁은 머릿속으로 무언가를 구상했다.
장치.
핵폭발로 인한 지상의 피해를 막을 장치를 머릿속으로 구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꽤 묵직한 중량이 이쪽을 향해 날아드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이것은?
가장 먼저 그것을 눈치챈 굉황이 멈칫하며 묻는다.
“너희가 무시했던 인간의 힘.”
-음?
“일단 한번 잡숴 봐!”
준혁이 외침과 동시에 급조한 장치를 하늘 가득 흩뿌렸다.
지이잉!
굉황의 아래쪽으로 새하얀 반투명의 막이 펼쳐졌다.
찰나의 시간도 짧다는 듯 빛의 속도로 펼쳐진 막은 뒤집어 놓은 돔의 형태로, 마치 굉황의 거대한 몸뚱이를 담아내는 그릇처럼 하늘을 뒤덮었다.
동시에 새하얀 빛이 사방에서 번져 나왔다.
꾸웅-!
폭음은 그보다 조금 늦게 하늘을 흔들었다.
콰르릉!
‘바일레어 이 미친!’
20개.
굉황의 몸 곳곳에서 터진 폭발의 숫자, 다시 말해 미국에서 쏘았다는 핵미사일의 개수였다.
무려 20발의 핵미사일을 한꺼번에 쏘았다는 뜻이다.
‘도대체 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세계 멸망을 예상하지 않았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뜬금없이 떠오른 생각이 하나 있었다.
‘탁월했군.’
혼원 길드의 가족들을 환계로 대피시킨 것은 정말 잘한 일이었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얼른 고개를 내저은 준혁이 다시 굉황에게 신경을 모았다.
에테르 막을 유지한 채 굉황의 반응을 살폈다.
‘어?’
그리고 보았다.
정지.
굉황의 거대한 몸뚱이가, 그 몸뚱이에서 촉수처럼 돋아나 있는 수없이 많은 미니 굉황이 모두 얼어붙기라도 한 듯 멈춰 있었다.
준혁은 안력을 최대한으로 돋워 굉황의 몸 곳곳을 살폈다.
‘있다!’
핵무기의 공격을 받은 굉황의 몸뚱이 일부가 떨어져 나가 바스러지고 있었다.
탐색의 시야 속에서는, 굉황의 몸속에서 영력이 폭발적으로 솟구치며 공격받은 부위로 몰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영력이 반응하여 공격당한 부위의 살점을 아예 통째로 뜯어내 버렸다.
침투하는 방사능의 피해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이다.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영력이 빠르게 회전하며 떨어져 나간 살점을 재생시켰다.
핵무기는 굉황에게 일종의 ‘스턴’ 효과를 주는 셈이었다.
효과를 확인했으면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다.
준혁은 공기를 터트리며 그대로 굉황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꺼내 든 무상곤을 거대한 한 자루 칼로 바꾸고 칼날에 ‘영력 분해’를 얹는다.
휘잉-!
묵직하게 공기를 가른 칼날이 그대로 굉황의 목을 쳤다.
까앙-!
“큭!”
준혁은 반사적으로 인상을 구기며 신음을 흘렸다.
‘영력 분해’까지 담고 있는 칼날인데도 굉황의 비늘에는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영력을 떠나 단순히 몸뚱이의 단단함만으로도 괴물인 신수의 진면목을 그대로 보여 주는 광경이었다.
깡, 까가강!
손아귀를 찢어 놓을 정도의 반발력을 참으며 쉴 새 없이 칼을 휘둘렀다.
단단한 비늘을 긁듯이 쓸던 칼날이 마침내 살점을 비집는다.
‘영력 분해’가 쉼 없이 작용한 끝에 결국 단단한 비늘과 영력의 갑옷을 뚫어 낸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짧았다.
휘리리릭!
굉황의 몸에 돋아 있던 미니 굉황이 준혁을 향해 들이닥쳤다.
퍼퍼펑!
사방으로 에테르를 쏘아 낸 준혁이 황급히 몸을 물린다.
굉황이 몸을 모두 회복하면서 스턴 효과가 끝난 것이다.
준혁과 어느 정도 거리를 벌린 굉황이 말했다.
-솔직하게 칭찬하지. 영력도 없는 인간이 이런 것을 만든 것은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준혁이 꺼낸 것은 굉황의 말에 대한 대답이 아니었다.
“너희가 여기로 와서 진짜 다행이지 않냐?”
-무슨 말이지?
“너희 짐승 놈들이 여기로 오는 바람에 필멸의 존재가 되었잖아. 그 덕에 핵 공격도 먹히고 말이야.”
배면계에 핵무기가 있을 리가 만무하지만, 있었다 해도 그곳에서의 신수라면 저런 공격 정도는 아무런 피해도 받지 않았을 것이다.
중요한 건 핵 공격이 놈에게 먹힌다는 점이었다.
스턴 효과만 있어도 조금 전처럼 무차별 공격을 가할 수 있으니 도움은 된다.
때마침 유민섭의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이제 가도 됩니까?
-오세요!
그리고 신수와 인간의 육탄전이 다시 시작되었다.
인간과 인간, 혹은 비슷한 크기를 가진 두 존재가 육탄전을 벌이면 무수히 많은 기술이 나온다.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이기기 위한 효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눈에 담는 것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거대한 괴물과 육탄전을 치른다면 그 패턴은 단순해질 수밖에 없다.
그저 힘으로 치고받는 것이다.
그리고 준혁은 그 힘에서 크게 밀리지 않고 있었다.
이는 매우 신기한 일이었다.
힘을 내는 데 있어 무게는 매우 중요하다.
복싱, 태권도, 씨름 등 스포츠화된 대부분의 격투기가 몸무게를 기준으로 체급을 나누는 것도 그러한 이유다.
그런 면에서 무게의 비교 자체가 성립이 되지 않는 굉황과의 싸움에서 준혁이 밀리지 않는 것은 불가사의에 가까웠다.
이는 굉황과 준혁의 성장 방식의 차이였다.
굉황은 다른 신수들을 잡아먹으며 몸속의 영력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렇게 갑자기 늘어난 영력을 모두 몸에 담기 위해 몸집을 크게 만드는 방법을 택했다.
반면 준혁은 폭발적인 성장의 시작에 깨달음이 있었다.
에테르와 장치의 원리에 대해 더욱 깊이 파고들었고, 그 원리를 온몸에 담았다.
그 과정에서 준혁 또한 에테르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리고 이미 원리를 깨달은 준혁은 에테르를 응축해 몸에 담는 방법을 택했다.
비유를 하자면 가스를 액화하여 보관하는 것과 같은 방식이었다.
거기에는 부가 효과도 따라왔다.
효율이 증가하다 보니, 1의 에너지로 10의 힘까지 낼 수 있는 방법까지 터득했다.
즉 100의 에너지를 1로 만들고, 그 1로 1,000의 힘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는 뜻이다.
지난한 과정이었지만, 그 결실이 거대한 굉황과의 힘 싸움에서 밀리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그렇게 다시 100여 합이 흘렀다.
그리고 하늘에 무언가가 갑자기 불쑥불쑥 나타났다.
거대한 사자, 황금색 깃털의 까마귀, 새까만 털을 가진 호랑이. 모두 환계에서 넘어온 환수들이었다.
그리고 환수의 등에는 한 명의 사람이 올라타고 있었다.
-팀별로 정해진 위치 잡아!
유민섭의 ‘지휘권’을 통해 하나의 채널로 이어진 ‘텔레파시’의 통신망으로 명령이 퍼져 나갔다.
-1팀 완료!
-2팀 자리 잡았습니다.
-3팀 끝.
각 팀장의 보고가 끝나자마자 유민섭과 양태군이 번갈아 가며 명령을 내렸다.
-2팀 내려가!
-3팀 좌측 아래로 우회!
두 사람은 마치 한 몸이라도 된 듯 조금의 혼선도 없이 명령을 내렸고, 그에 따라 환수와 인간으로 이루어진 듀오들이 굉황을 향해 달려들었다.
쾅, 콰쾅!
환수의 스킬이 쏘아져 나가고, 인간의 칼날과 마법이 굉황의 전신을 두드린다.
준혁이 유민섭을 향해 급히 말했다.
-한 점만 때려요. 아무리 단단해도 일점사하면 결국 뚫습니다.
‘영력 분해’는 어쨌든 효과가 있었다. 이는 이미 준혁이 직접 확인해 본 바였다.
“가자-!”
“죽여, 죽여!”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듯 함성을 내지르며 사기를 끌어 올린다.
-시끄러운 인간들이군.
환수들이 불쑥 한마디씩 던졌지만, 말의 내용과 달리 그리 싫지는 않은 듯 함성에 호응한다.
-어디 신수의 살점은 무슨 맛인지 한번 보자!
-오늘 제대로 포식하는 날이다!
-가자!
굉황의 거대하기 짝이 없는 몸뚱이가 더욱 격렬하게 요동쳤다.
하지만 환수들은 그 어떤 공격도 날렵한 몸놀림으로 피해 냈다.
피하고 다가가는 모든 움직임은 오로지 환수가 맡고, 공격은 인간이 맡는 완벽한 분업이었다.
-이 성가신 놈들!
굉황이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그의 정면에는 준혁이 있었다.
찰나의 틈을 보고 휘두른 칼날이 굉황의 얼굴 비늘을 긁으며 지나갔다.
“나하고 붙어야지!”
-도살자!
외침과 동시에 굉황의 입에서 거대한 불길이 뿜어져 나왔다.
굉황이 마침내 실질적인 권능을 펼치기 시작했다.
지이잉-!
허공에 흩뿌려진 준혁의 에테르가 불길을 삼킨다.
아니, 삼키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것을 그대로 굉황을 향해 되쏘았다.
준혁 또한 순간적인 장치를 이용해 자신의 ‘권능’을 펼치기 시작한 것이었다.
콰르르릉!
하늘에 거대한 폭음과 불꽃이 장엄하게 휘몰아쳤다.
최강이 된 신수와 인간의 본격적인 전투가 그렇게 막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