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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장. 굉황-전초전#2-
-움직여!
준혁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대기하고 있던 흑호가 ‘도약’으로 공간을 열었다.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청랑이 먼저 뒷발로 땅을 박찬다.
청랑이 열린 공간으로 몸을 밀어 넣고, 백효 또한 빠르게 날아 들어갔다.
세 환수가 순식간에 환계로 넘어오고, 청랑이 다른 둘을 향해 말했다.
-나는 작은 주인님께 갔다 오겠다. 너희 먼저 움직여.
-먼저 간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백효가 먼저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쯧! 누가 강아지 아니랄까 봐 쪼르르 달려가냐? 이 급한 시기에?
-여기까지 와서도 시비냐?
-너무 시간 끌지 말라는 얘기다.
-뭐?
청랑이 흠칫 놀라 흑호를 보았다. 하지만 흑호는 이미 땅을 박차며 내달리고 있었다.
마치 도망치듯 달려가는 흑호의 뒷모습을 보며 청랑의 주둥이 끝이 묘하게 말려 올라갔다.
-하, 고양이 놈…….
하지만 흑호의 말대로 여유가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청랑은 재빨리 달려 환계에 마련된 피난처로 향했다.
준혁이 만들어 놓은 에테르 장막을 지나자마자 일단 ‘소형화’부터 했다.
“파랑이다!”
환계의 임시 대피소에 들어서자마자 청랑의 귓전으로 파고드는 목소리가 있었다.
고개를 돌려 보니 저 멀리서 지유가 쪼르르 달려온다.
그 모습에 오히려 놀란 건 청랑이었다.
저 먼 곳에서 어떻게 자기를 알아봤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그때 달려오던 지유가 뒤뚱거리더니 철퍼덕 넘어졌다.
-헉!
깜짝 놀란 청랑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려가 주둥이로 지유를 일으켰다.
무릎이 까져 피가 배어 나왔음에도 지유는 얼굴을 살짝 찡그릴 뿐 울지도 않았다.
오히려 해맑게 웃으며 청랑을 끌어안는다.
“파랑이 오랜만!”
오랜만에 만난 작은 주인과 놀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청랑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청랑은 지유의 상처를 핥아 준 후, 지유의 얼굴에 제 얼굴을 한 번 비볐다.
길게 인사를 나눌 시간은 없었다.
앞으로 하게 될 싸움은 말 그대로 목숨을 걸어야 했다.
그런 만큼 간단하게라도 마지막 인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찾아온 것이었다.
인간 세계에서 지낸 시간 대부분을 지유와 함께 보냈기에 정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인사를 마친 청랑이 곧장 뒤로 돌아섰다.
“응? 파랑이 어디 가는 거야?”
지유의 목소리에 청랑은 저도 모르게 발을 멈췄다.
“또 삼촌 도와주러 가?”
그 물음에 청랑이 크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응, 잘 갔다 와. 나중에 지유랑 또 놀아.”
크게 손을 흔드는 지유의 모습에 청랑은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제는 시간이 없었다.
임시 대피소를 벗어나 집결지에 도착하니 이미 많은 환수들이 모여 있었다.
기다리고 있던 흑호가 청랑을 향해 말했다.
-늦지는 않았군.
-시간이 없다는 정도는 알고 있다.
-백효는?
-아직.
고개를 끄덕인 청랑이 주변에 모인 환수들을 살펴보았다.
환수들에게는 왕이 자신의 일족을 품어 힘을 증폭하는 ‘징집’이라는 스킬이 있었다.
지금 모인 환수들은 모두 ‘징집’을 사용해 나타난 상태였다.
그리고 잠시 후, 백효가 다른 환수들을 데리고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게 모인 환수의 숫자는 모두 100여 마리.
환계에 존재하는 일족의 수와 정확하게 일치했다.
모두 ‘징집’으로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모인 것이다.
준혁과 약속한 대로 환계의 모든 환수가 싸움을 위해 이곳에 모였다는 뜻이었다.
-내가 길을 열지.
검은 호랑이 일족의 왕이 앞으로 나서 영력을 일으켰다.
‘도약’은 검은 호랑이 일족 고유의 스킬이었고, 지금 ‘징집’을 사용해 강해진 상태이기에 왕이 길을 여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이었다.
지이잉!
가벼운 울림과 함께 10여 개의 공간이 뒤틀리며 ‘도약’의 길이 열렸다.
***
청랑, 흑호, 백효를 환계로 보낸 준혁은 회의실 사람들과 함께 곧장 강당으로 이동했다.
“준비하세요!”
준혁의 말에 유민섭을 포함한 10여 명이 강당의 앞쪽에 일정 거리를 두고 섰다.
거기까지 확인한 준혁이 에테르를 일으켜 허공에 흩뿌렸다.
그와 동시에 허공에 대여섯 개의 게이트가 열리더니, 게이트에서 갑자기 사람이 튀어나왔다.
“엇!”
허공에서 바닥을 향해 열린 게이트였다.
즉, 그 게이트를 통해 나온 사람은 위에서 바닥으로 추락하게 된다.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이는 하시모토 타츠야였다.
탁!
재빨리 자세를 고친 하시모토 타츠야가 안전하게 바닥에 착지했다.
하지만 게이트에서 쏟아져 나온 사람은 하시모토 타츠야만이 아니었다.
“으아아!”
누군가의 비명이 터져 나오고, 깜짝 놀란 하시모토 타츠야가 위치를 옮겼다.
그 후로도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지만, 단 한 번도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상황에서도 모두들 제대로 몸을 가누며 위치를 잡은 덕분이었다.
그만큼 능력이 출중한 사람들이라는 의미였다.
이들은 뒤늦게 혼원 길드에 합류한 100여 명의 헌터였다.
준혁의 스킬과 본인들의 노력이 시너지를 일으키며 이제는 모두 훌륭한 전투원으로 성장한 상태였다.
헌터들 역시 강력한 영력을 느꼈었기에 질문을 던지기보다는 빠르게 강당 안의 상황을 살폈다.
그리고 앞쪽에 서 있는 10명의 헌터들을 보고는 10여 명씩 나눠 그 앞에 줄을 맞춰 섰다.
준혁은 재빨리 장치를 만들어 100여 명의 헌터에게 날렸다.
당연히 ‘영력 분해’ 스킬이 담긴 장치였다.
빠르게 스킬이 자리를 잡고, 준혁이 간단하게 말을 더했다.
“싸울 준비 하세요. 지휘는 이미 말했던 대로 유 길드장과 양태군 헌터가 합니다.”
‘영력 분해’는 어차피 패시브 스킬이었기에 굳이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강당의 단상 아래에는 유민섭과 양태군이 가운데 가장 선두에 서 있었다.
그다음 위치에 김준석, 최유나, 리쉬옌, 강이찬, 강태웅, 리처드 개런, 백호진, 장민호, 릴리안 우드, 리아 클레르가 횡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각각의 뒤쪽에 10여 명의 헌터가 줄을 서 있었다.
결전의 때를 대비해 미리 팀을 나눠 놓았던 것이다.
100여 명의 헌터가 갑자기 강당으로 끌려왔음에도 빠르게 자리를 잡은 이유도 그것이었다.
유민섭과 양태군 두 사람이 총지휘를 맡았다.
그 외에 배면계를 다녀온 8명과 릴리안 우드, 리아 클레르가 각 팀의 팀장이었다.
준혁이 입을 열었다.
“제가 먼저 가 있겠습니다. 환수들이 오면 환수 하나와 사람 한 명으로 듀오를 만드세요. 시간이 없으니 최대한 빠르게.”
“맡겨 줘요!”
유민섭이 빠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준혁은 곧장 게이트를 열었다.
“나중에 봅시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준혁은 게이트를 통과하고 있었다.
-왔는가?
게이트를 통과하자마자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준혁이 짐짓 귀찮다는 표정으로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파며 한마디 툭 뱉었다.
“시끄러, 인마.”
-크하하하! 역시 도살자. 그 패기만큼은 나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구나.
하지만 준혁의 말은 조금도 틀리지 않았다.
어마어마한 영력이 배어 있는 굉황의 목소리에 하늘이 거칠게 떨리고 있었다.
-이제 너와 나의 악연도 끝낼 때가 되었다.
굉황이 다시 말을 붙였지만 준혁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탐색’을 이용해 굉황을 살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뭘 그렇게 염탐을 하는가? 그렇게 보아도 소용없다.
그제야 준혁이 입을 열었다.
“이야, 넌 진짜 예상을 벗어나는 일이 없다?”
-예상? 무슨 말인가, 도살자여?
“내가 그런 생각을 했었거든?”
-무슨 생각을?
“너희 짐승 놈들이 배면계에서 나왔으니 너희들끼리 뭔가 일이 터질 것 같다는 생각.”
-그랬나? 하긴, 네가 직접 겪은 일도 있으니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당연하지.
백안의 군대나 과호루의 합체는 굉황 또한 알고 있었다.
“그리고 뭔가 사고를 치면 네가 할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단 말이야.”
-하하, 그것은 혜안인가? 아니면 격이 오른 자의 영감인가?
“그딴 어려운 말이 필요하겠냐?”
준혁의 말에 굉황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말이 고개를 갸웃거린 것이지, 너무 거대한 그 크기 탓에 하늘 위의 공기가 뒤흔들릴 정도였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이런 말이 있거든.”
-이런 말?
“사고 칠 놈은 치게 돼 있다. 하아, 진짜 아무리 그래도 그 많은 놈을 다 잡아먹었냐?”
-미천한 것들이 나의 일부가 되었으니 오히려 영예라고 생각해야지.
“미친 새끼!”
말이 끝나기 무섭게 준혁이 몸을 날렸다.
꽈아앙-!
묵직하게 내지른 주먹에서 굉음이 울리고, 튀어나온 강렬한 힘의 파편이 사방으로 퍼졌다.
주먹을 고스란히 맞은 굉황의 고개가 잘게 흔들렸다.
-겨우 이 정도인가?
“뭐, 인사라고 생각하면 되지.”
-인간들은 그런 것도 하기는 하더군.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준혁을 향해 거대한 바람이 휘몰아쳤다.
“흡!”
눈을 부릅뜬 준혁이 황급히 두 팔로 정면을 막는다.
콰아앙-!
가드 위를 두드리는 충격에 준혁의 몸이 한참을 뒤로 밀려났다.
-나도 인사다.
준혁을 두드린 것은 굉황의 거대한 꼬리였다.
“미친 몸뚱이네, 진짜!”
준혁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에테르를 끌어 올렸다.
준혁의 말 그대로였다.
거대해도 너무 거대했다.
몸뚱이 길이만 해도 어림잡아 50킬로미터였다.
50킬로미터면 자동차로 시속 100킬로미터의 속도로 달려도 무려 30분을 달려야 하는 거리다.
거의 70여 마리에 달하는 신수를 흡수하며 거대해진 굉황은 그 몸뚱이만으로도 무시무시한 무기인 ‘진짜’ 괴물이 된 것이었다.
그렇다고 기가 죽을 준혁이 아니었다.
“해 보자!”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몸을 날렸다.
-흡!
굉황의 거대한 눈동자가 크게 뜨이는 순간 굉황의 몸뚱이가 갑자기 허공에서 움직였다.
기나긴 몸뚱이가 거대한 원을 그리고 세차게 회전하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준혁이 굉황의 뿔을 붙잡아 돌리고 있었다.
굉황의 뿔은 그 몸뚱이만큼이나 거대하다.
당연히 사람의 손으로 그 뿔을 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준혁은 오직 손만 거대하게 만들어 굉황의 뿔을 잡고 있었다.
‘천신강림’의 응용이었다.
하늘의 대기와 구름이 그 세찬 회전에 휘말렸다.
그리고 회전 속도가 정점에 달한 순간 준혁이 그 손을 놓았다.
부우우웅-!
하늘을 뒤흔드는 바람 소리와 함께 굉황의 몸뚱이가 위로 솟구쳤고, 뒤이어 준혁이 솟아올랐다.
빠아아악!
안면에 가해지는 충격에 회전하던 굉황의 몸뚱이가 갑자기 방향을 뒤틀었다.
당연하게도 굉황도 가만히 있지는 않는다.
콰르르릉!
갑자기 일어난 시커먼 뇌전이 준혁의 온몸을 감쌌다.
“끅!”
준혁의 입에서 묵직한 신음이 새어 나왔다.
그리고 마침내 인간과 용의 거대한 육탄전이 시작되었다.
굉황은 거대한 몸뚱이에서 마치 촉수를 뽑듯 작은 굉황을 만들어 내 준혁을 공격했다.
그리고 준혁은 시시각각 ‘천신강림’을 응용해 손발의 크기를 키워 휘둘렀다.
거의 신에 다다른 두 존재의 싸움에 지구의 대기가 뒤흔들리고, 바다가 거칠게 요동쳤다.
그렇게 서로가 100여 합을 주고받았을 때였다.
-준혁 씨, 피해요!
갑자기 유민섭의 목소리가 머릿속으로 날아들었다.
-네?
-핵, 미국이 핵을 쐈습니다!
하지만 유민섭의 다급한 목소리와 달리 준혁의 얼굴은 여유로웠다.
-괜찮습니다.
-네?
-일단 여기 오지 마세요. 갑자기 확인해 보고 싶네요.
-그게 무슨?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되돌아오는 유민섭의 목소리에 준혁이 대답했다.
-핵이 신수한테도 먹힐까요, 안 먹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