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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장. 변수들#2-
짧은 정적이 흘렀다.
두 사람은 바짝 긴장하며 에테르를 끌어 올렸다.
마나에서 시작해 영력을 거쳐 에테르를 다루고 있는 두 사람의 컨트롤 능력은 더 발전할 경지가 없을 수준이었다.
그런 두 사람이 에테르를 끌어 올리고 있기에, 초보 각성자인 바일레어 대통령은 두 사람의 기운을 조금도 인지하지 못했다.
아니, 애초에 기운을 컨트롤하지 못하는 사람은 외부의 기운도 제대로 감지하지 못한다.
리처드 개런이 최대한 침착하게 말했다.
-일단은 기다려 보자.
중요한 것은 바일레어 대통령이 리처드 개런을 부른 이유였다.
굳이 각성 사실을 자랑하려고 부른 것은 아닐 터.
바일레어 대통령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제 추측으로는 이건 과거와는 다른 방식의 각성인 것 같은데, 미스터 개런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네. 확실히 다른 방식입니다.”
“그래요?”
“네.”
리처드 개런의 대답에 바일레어 대통령이 눈을 빛냈다.
“사실 하나 더 확인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네, 말씀하십시오.”
“제가 모은 정보에 따르면 저의 각성 방식은 흑태자, 미스터 김의 그것과 비슷한 것 같던데 그것도 맞습니까? 사실 그 이유 때문에 미스터 강의 동행을 수락한 겁니다.”
바일레어 대통령의 시선이 강이찬에게로 향했다.
강이찬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슬쩍 입을 가린 채 말했다.
‘영화’를 통해 자동으로 통역이 되면 입 모양과 소리가 달라 위화감을 주기 때문이다.
“맞습니다. 김준혁 씨와 같은 방식의 각성입니다.”
“그레이트!”
바일레어 대통령이 두 눈을 크게 뜨며 환호했다.
여러 가지를 추측할 수 있게 해 주는 모습이었다.
먼저 생각을 말한 것은 리처드 개런이었다.
-헤이, 이찬. 어떻게 생각해? 내가 보기에 미스터 프레지던트는 상황 파악이 전혀 안 된 것 같은데?
-내가 봐도 그래. 자기 각성이 신수와 관련이 있다는 건 꿈에도 생각을 못하는 것 같네.
-흐음, 신수 놈들은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거야?
-내가 알겠냐?
그사이 바일레어 대통령이 흥분을 다독이며 말했다.
“그럼 미스터 개런을 부른 이유를 지금부터 말씀드리죠.”
“네, 대통령님.”
“나의 트레이너가 되어 주십시오.”
“네?”
“미스터 개런은 과거 한국에서 미스터 김의 트레이닝을 받은 적이 있지요?”
“그렇습니다.”
“그 방법으로 나를 훈련시켜 주면 좋겠습니다.”
바일레어 대통령의 시선이 강이찬에게로도 향했다.
“미스터 강도 함께 훈련한 것으로 압니다. 그래서 두 사람 모두 나의 트레이너로 고용하고 싶습니다.”
강이찬이 다급하게 리처드 개런을 향해 생각을 날렸다.
-와, 이건 뭐 향상심을 칭찬해야 하는 건지…….
-나도 갈피가 안 잡히네요.
그런 두 사람의 생각도 모른 채 바일레어 대통령은 들뜬 표정으로 말을 늘어놓았다.
“나에게 이런 힘이 생겼다는 사실을 처음에는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도 많이 했죠. 하지만 지금은 이 힘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오히려 하루하루가 즐거워요. 몸에 변화도 생겼죠. 예순의 나이에 갑자기 젊은 몸을 되찾은 기분, 두 사람은 절대 모를 겁니다.”
-아니, 각성했다가 힘을 잃은 사람 앞에 두고 저렇게 자랑하는 건 경우가 아니잖아?
강이찬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그렇게 구시렁거린다.
두 사람은 실제로 힘을 잃지 않았지만, 외부에는 각성이 풀린 상태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니 확실히 바일레어 대통령의 지금 행동은 놀리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바일레어 대통령은 그걸 모르는지 더할 나위 없이 환해진 얼굴로 너스레를 떨었다.
“요즘 젊어졌다는 말도 아주 많이 듣습니다. 실제로 얼굴에 주름도 많이 사라졌죠. 나라가 어려운데 대통령이 피부 시술을 받느냐며, 에스테틱 게이트라는 농담도 퍼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한참 자랑을 늘어놓는다.
-이거 뭐 사람이 진중함도 없고 말이야. 애도 아니고…….
계속 이어지는 강이찬의 구시렁거림에 리처드 개런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에 겪었던 바일레어 대통령과는 확연히 다른 성격으로 보였다.
자랑을 모두 늘어놓았는지 바일레어 대통령이 다시 본론을 꺼냈다.
“어떻습니까? 제 제안이?”
-더 들을 것도 없네. 이만 돌아갑시다.
강이찬이 그렇게 말했지만 리처드 개런의 생각은 달랐다.
“알겠습니다.”
“오, 기쁜 대답이군요!”
-릭!
냉큼 튀어나온 허락에 강이찬이 다급히 외쳤다.
-차라리 잘된 건지도 몰라. 모르는 사이에 이런 일이 늘어나면 뜬금없이 당했을지도 모르잖아. 이럴 때는 옆에 있으면서 관찰하는 게 낫지 않겠어?
듣고 보니 틀린 말이 아니었다.
-흐음, 그건 또 그러네.
-이 이야기 동료들에게 잘 전해 줘. 어쩌면 우리가 이거 찾아다녀야 할지도 몰라.
-알았어.
두 사람이 ‘텔레파시’로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 바일레어 대통령은 강이찬에게도 제안을 했다.
“미스터 강은 어떻습니까? 절차가 좀 있기는 하지만 백악관에 머무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
강이찬의 국적이 한국이기 때문에 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강이찬은 고개를 저었다.
“제안은 감사한데 저는 안 될 것 같습니다. 릭은 훌륭한 트레이너이기도 하니, 릭만 있어도 충분할 겁니다.”
“그런가요?”
“하하, 제가 한식이 아니면 잘 못 먹어서.”
바일레어 대통령은 아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더 붙들지는 않았다.
간단하게 이야기를 마무리한 후, 강이찬과 리처드 개런은 일단 백악관을 빠져나왔다.
***
“배면계 각성이라고?”
준혁이 기겁한 표정으로 강이찬을 보았다.
“네, 확실해요. 릭이 거기 남은 것도 바로 옆에서 관찰하려고 그런 것이고.”
“음!”
준혁은 곧장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급히 흑호를 불렀다.
“어? 왜요?”
“내 눈으로 확인 좀 해 보려고.”
흑호는 백악관에 가 본 적이 있기에 ‘도약’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은신’을 펼친 흑호의 등에 올라타면 모습을 숨긴 채 확인해 볼 수 있다.
흑호를 타고 사라진 준혁이 30분 만에 혼원 길드의 회의실로 돌아왔다.
“음, 이거 좀…….”
준혁의 모습에 강이찬이 벌떡 일어나 외쳤다.
“내 말 맞죠?”
“언제는 틀렸다고 했냐?”
그제야 다른 사람들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진짭니까?”
그 모습에 강이찬이 울컥한 표정으로 동료들을 쏘아보았다.
“아니, 이 사람들이 내가 양치기로 보여요? 내가 방송할 때도 구라는 안 쳤던 사람이라고!”
하지만 모두의 관심은 준혁에게만 쏠려 있었다.
준혁이 간단하게 설명했다.
“이찬이 말이 맞습니다. 바일레어 대통령은 각성을 했더군요. 신수의 영력을 사용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스탯을 확인할 수가 없었습니다.”
모두의 얼굴에 짙은 불신의 빛이 번졌다.
준혁은 ‘관찰’이라는 스킬도 있고, 그걸 넘어서 시스템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런 준혁조차 스탯을 볼 수 없다는 건 꽤 충격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준혁의 걱정은 다른 데 있었다.
“바일레어 대통령이 저렇다면, 지금 전 세계에 그런 사람이 또 있을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어? 그, 그렇군요.”
신수와 연결되어 각성했다는 사실에 너무 놀라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그러니 우리는 지금부터 그 부분을 확인해야 하는데…….”
준혁이 저도 모르게 말꼬리를 흐렸다.
세계는 너무 넓었다. 인구 또한 80억 명에 가깝다.
그에 반해 지금 혼원 길드에서 가용할 수 있는 인원은 아무리 긁어모아도 100명이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았지만 다들 동시에 그 사실을 떠올리며 막막한 표정을 지었다.
혼원 길드 소속의 각성자가 100명이라 치면, 단순 계산으로 한 사람이 8천만 명을 확인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아무리 초인적인 능력을 가졌다지만 이건 물리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회의실에 정적이 내려앉고, 다들 고민에 잠긴다.
하지만 정적은 길지 않았다.
“저기.”
손을 든 사람은 과거 던전 관리자였던 릴리안 우드였다.
“말씀하세요.”
“레이더를 만들죠.”
“네?”
“각성 검사를 했던 것처럼, 영력을 감지할 수 있는 레이더를 만들고 세계에 뿌려 놓으면 될 것 같은데요? 감지될 때마다 컨트롤 타워에 신호를 보내 주는 방식으로.”
릴리안 우드의 말에 준혁은 물론 회의실에 있던 사람들이 눈을 끔뻑거리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준혁이 큰 소리로 외쳤다.
“아! BR코퍼레이션!”
어쩌다 보니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릴리안 우드는 BR코퍼레이션의 모든 제품을 만들어 낸 사람이었다.
“아!”
“맞다!”
다른 이들도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닫고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준혁이 물었다.
“만들 수 있겠습니까?”
“과거에는 못했겠지만, 지금은 가능해요. 그동안 준혁 씨에게 많이 배웠잖아요?”
릴리안 우드는 준혁을 통해 재각성한 후에도 수련보다는 에테르와 장치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었다.
물론 모든 걸 이해하지는 못했다.
세상이 움직이는 법칙을 그대로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준혁은 그것을 직접 보고 몸에 새겼기에 이해하고는 있었지만, 사람의 언어로 그 원리를 설명할 방법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때에 이미 마나를 측정하는 도구를 만들었던 릴리안 우드였다.
준혁을 통해 겉핥기라도 알고 있는 지금은 더욱 쉽게 만들 수 있다.
“기계 생산이 가능할까요?”
“BR코퍼레이션의 공장은 아직 그대로 있답니다, 대주주님.”
릴리안 우드의 말에 준혁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니 예전에 릴리안 우드와 거래하면서 BR코퍼레이션의 주식을 받았었던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부탁을…….”
“그런데 혼자 힘으로는 힘듭니다. 준혁 씨가 도와줘야 합니다.”
“제가요?”
“네. 준혁 씨는 에테르를 이용해서 영력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제 예상이 틀렸나요?”
“아, 아닙니다. 만들 수 있죠. 아아, 생각해 보니.”
“네, 그렇죠. 저는 마나와 에테르에 대해서는 알지만, 영력은 다뤄 본 적이 없답니다.”
지금 이곳에서 영력을 다뤄 본 사람은 미국에 있는 리처드 개런을 제외하고 딱 10명이었다.
하지만 시스템을 소유하고 있는 준혁만이 에테르를 가공해 영력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다른 이들은 준혁을 통해 재각성만 했을 뿐, 에테르를 그렇게 깊은 단계로 가공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릴리안 우드의 연구가 시작되었다.
***
“이제 메인 컨트롤 시스템을 가동시키겠습니다.”
릴리안 우드가 빙긋 웃으며 손을 움직였다.
그리고 그런 릴리안 우드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혼원 길드 동료들의 눈에는 경이의 감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보름, 릴리안 우드가 영력 레이더를 개발하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정확하게는 설계에 사흘이 걸렸고, 시제품을 만드는 데 다시 사흘이 걸렸다.
나머지 9일은 공장의 생산 공정을 바꾸고 본격적으로 제품을 찍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물론 과거 각성 검사기나 계측기 등의 설계를 토대로 했기 때문에 시간이 단축된 측면도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놀랄 수밖에 없는 괴물 같은 능력이었다.
준혁이 시스템을 소유하고 있다 해도 절대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게다가 이번에 만든 영력 레이더는, 사회 시설망이 없는 오지에서도 작동하기 위해 다양한 기술이 들어가 있었다.
영력 레이더에는 태양광을 이용한 자체 발전기가 달려 있었고, 즉각적으로 신호를 보낼 수 있도록 위성 인터넷망에도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는 사이 10초가량의 부팅 시간을 거쳐 컨트롤 시스템이 가동되었다.
커다란 화면에 세계 지도가 펼쳐지고, 화면 오른쪽 구석에는 붉은 점이 깜빡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이, 이런 미친!”
강이찬의 입에서 비명 같은 외침이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