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받고 각성 더!-223화 (223/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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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장. 변수들#1-

“와, 내가 백악관을 다 와 보네?”

강이찬이 입을 헤벌린 채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찬,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두리번거리는 강이찬을 향해 말을 거는 사람은 다름 아닌 리처드 개런이었다.

“그렇게 안 봤다니?”

“뭘 그렇게 두리번거려? 촌스럽게.”

“허! 내가 텍사스 촌놈에게 촌스럽다는 소리를 듣다니! 이건 굴욕, 아니 능욕이야!”

“텍사스 촌놈? 왓더퍽! 빌어먹을 미디어!”

리처드 개런의 격렬한 반응에도 강이찬은 기가 죽지 않았다.

“뭐야, 왜?”

“잘 들어. 텍사스는 알래스카 제외하면 가장 크다고. 인구도 미국 주 중에서 무려 2위야! 그런 곳이 시골이라고?”

경제 규모, 인구, 문화 수준 등을 따져도 텍사스는 절대 ‘시골’이라는 말을 들을 지역이 아니었다.

“근데 카우보이, 사막, 선인장, 컨트리 음악 말고 딱히 떠오르는 게 없는데?”

“음……. 나도 대한민국 부산이 항구도시라는 것 외에 아는 게 없는데?”

“그런가?”

“그렇지. 무식한 찬.”

“와아! 그래도 세계적인 대도시 서울에 사는 나를 촌놈 취급하는 건 참을 수가 없는데?”

“하지만 넌 서울에 있는 청와대도 안 가 봤지.”

“그 얘기가 왜 거기로 가?”

“여기는 백악관이니까.”

“허!”

강이찬이 말도 안 된다는 듯 리처드 개런을 보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반박할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뭐지?’

도통 이해가 안 가고, 이상하게 억울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때였다.

“쉿!”

앞서 걷던 양복 차림의 백인 남자가 두 사람을 향해 조용히 하라는 주의를 준다.

그제야 자신들이 지금 백악관 내부를 걷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두 사람이 급히 손을 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앞선 남자의 안내를 받아 복도를 걷던 중이었다.

“어라?”

강이찬이 저도 모르게 소리를 내질렀다.

안내하던 남자가 신경질적인 표정으로 다시 뒤를 돌아본다.

움찔한 강이찬이 미안하다는 듯 손을 들어 보인 후, 리처드 개런에게 말을 건넸다.

-릭.

정확하게는 말이 아닌 텔레파시였다.

이는 준혁이 만들어 심어 준 스킬이었다. 쌍방이 같은 기술을 가지고 있으면 소리 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왜?

-이상한 거 못 느꼈어?

-이상한 거라니?

-영력.

“뭐?”

이번에는 리처드 개런이 큰 소리로 외쳤고, 안내하던 남자는 또 한 번 인내심의 한계를 확인해야 했다.

강이찬과 똑같은 자세로 움찔한 리처드 개런이 손을 들어 미안함을 표시한다.

그리고 은밀한 대화가 이어졌다.

-영력이라고?

-어. 건물 들어서면서부터 이상하다 싶었는데……. 지금은 확실하게 느껴지는데?

-잠시만.

말을 멈춘 리처드 개런이 가만히 감각을 끌어 올렸다.

-왓더…….

-망할 놈의 WTF는 그만 좀 찾고. 느껴져?

-응, 느꼈어. 확실히 영력인데?

지금 두 사람이 백악관에 온 이유는 앤서니 바일레어 대통령의 요청 때문이었다.

며칠 전 리처드 개런은 과거 팀 히어로에 속해 있던 팀원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미국 대통령인 앤서니 바일레어가 리처드 개런을 찾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세상에 던전이 사라지고, 각성자들의 각성이 풀린 때가 2개월 전이었다.

그때부터 긴밀했던 각국 정부와 헌터들의 관계는 깨끗하게 끊어졌었다.

그런데 갑자기 미국의 대통령이 과거에 잘나가던 헌터를 찾고 있으니 이상할 수밖에.

게다가 리처드 개런처럼 각성자로서 풍부한 경험을 가진 사람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까지 했다.

이유 정도는 확인해 볼 필요가 있었기에 리처드 개런은 오랜만에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입출국 기록이 없는 상태에서 갑자기 미국 땅에 나타나면 이상한 의심을 받을 수도 있는 탓이었다.

그리고 강이찬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서 동행한 상황이었다.

과거 팀 히어로 소속 헌터들 중에는 새롭게 혼원 길드에 합류한 사람도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 만족할 정도로 수련이 되지 않았기에, 조력자로 강이찬을 택한 것이었다.

활발한 성격에 붙임성도 좋은 강이찬과 가장 친하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리처드의 애칭인 ‘릭’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사람도 혼원 길드 내에서는 강이찬이 유일했다.

물론 과거 팀 히어로의 팀원들은 제외한 이야기다.

어쨌든 강이찬을 택한 것은 꽤 훌륭한 결정이었다.

마나, 영력, 그리고 에테르에 대해서도 가장 감각이 좋은 강이찬이었기에 백악관 내에 가득한 영력을 단번에 눈치챈 것이었다.

-이거 설마 신수 놈들이 계략을 꾸며서 우리를 불러낸 건가?

-글쎄?

강이찬은 즉답을 피했다. 하지만 리처드 개런은 꽤 동요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꼭 짚어 나를 부르는 게 이상하잖아.

-애매해서 그래.

-애매하다니?

-영력이 강하기는 한데, 신수 수준은 절대 아니잖아.

강이찬의 말에 리처드 개런이 그제야 놀란 마음을 진정시켰다.

실제로 확인도 해 본다.

-확실히 그 정도는 아니군. 대충 영수 정도?

-어, 딱 그 정도. 그러니 일단은 따라가 봐. 무슨 일인지 확인은 해야지.

강이찬의 말에 리처드 개런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앞선 남자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곳은 백악관 내 대통령 집무실인 ‘오벌 오피스(Oval Office)’였다.

두 사람은 오벌 오피스로 들어서기 전에 또 한 번 몸수색을 받았다.

-확실히 우리에 대해 아는 건 아니야.

강이찬의 확신에 찬 목소리에 리처드 개런이 급히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뭘 알고 있으면 이딴 몸수색이 소용이 없다는 걸 모를까?

-아!

-외부에서 입장할 때도 수색했었잖아.

두 사람은 여전히 인벤토리를 사용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의 상태에 대해 안다면 이런 소용없는 짓을 할 리가 없다.

거기까지 생각한 리처드 개런은 그제야 조금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어서 와요, 미스터 개런.”

“오랜만입니다, 미스터 프레지던트. 잘 지냈나요?”

“하하! 정신없습니다.”

웃으며 말을 하지만 얼굴에는 진심으로 질린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는 단순히 바일레어 대통령만이 아닌, 전 세계 국가 지도자들의 공통된 고민 때문이었다.

거대한 세계 산업의 한 축을 맡고 있던 던전 산업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현대의 산업은 고도로 분업화된 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는 단순히 한 국가 내에서의 일이 아닌, 전 세계 단위에도 적용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중 아주 중요한 한 축이 무너졌으니, 그로 인한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과거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해 촉발된 세계 금융 위기는 차라리 애교에 가까웠다.

실물경제의 한 축이 무너지면서 일어난 연쇄적인 산업의 붕괴로 인해, 전 세계는 산업의 기초부터 다시 쌓아야 하는 사태에 직면하게 된 상황이었다.

그나마 선진국에 속하는 국가들은 상황이 괜찮았다.

과거 제조업부터 성장해 온 경험을 가지고 있기에, 기초부터 다시 쌓는다는 생각으로 모든 재화를 쏟아부으며 새로운 프레임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개발도상국 수준에 머물러 있던 국가들은 말 그대로 앞날이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제대로 된 경험도, 국가의 기초 체력도 부족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과거였다면 선진국들의 투자와 도움으로 어떻게든 방법을 만들었겠으나, 지금은 그 선진국들이 조금도 여유가 없었다.

그 탓에 개발도상국들은 국가 발전 상태가 순식간에 10여 년씩 후퇴하는 상황까지 직면했다.

미국 역시 국가 산업 구조를 기초부터 쌓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 모든 일에 연방정부가 깊이 관여하다 보니, 바일레어 대통령은 거의 잠도 못 자고 업무에 매달려야 했다.

그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눈에 보이는 것은 전혀 다른 부분이었다.

어마어마한 강행군을 하고 있다는 사람의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조금도 없었다.

과도한 업무로 정신적인 피로도는 매우 높지만, 육체적으로는 조금도 피곤해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온몸으로 짙은 영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이 사람 맞지?

강이찬의 물음에 리처드 개런이 애써 표정을 관리하며 대답했다.

-맙소사! 미합중국의 대통령이 영력을 품고 있다니.

이는 꽤 심각한 문제였다.

바일레어 대통령은 과거에는 각성자가 아니었다.

아니, 각성자였다고 해도 말이 안 된다.

과거의 각성자들은 ‘마나’를 사용하지 ‘영력’을 사용하지는 않았다.

영력을 사용한 자들은 모두 배면계 귀환자들이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바일레어 대통령은 배면계 귀환자도 아니다.

그런 사람이 영력이라면 생각해 볼 수 있는 원인은 하나밖에 없었다.

-신수!

바일레어 대통령이 신수는 아니겠지만, 신수의 영향을 받은 것만큼은 분명했다.

과거에도 로건 베런즈를 통해 신수의 힘이 인간에게 깃든 적이 있었으니 근거 없는 추측도 아니었다.

리처드 개런이 급히 물었다.

-어떡하지? 일단 제압하고 봐?

강이찬과 리처드 개런을 포함한, 배면계를 경험하고 온 10명의 각성자는 꾸준히 수련을 해 왔다.

준혁이 만들어 낸 스킬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통해 수련의 강도를 높이며 지난 두 달 동안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혼원급의 바로 아래인 천강급에 거의 근접한 수준이었다.

눈앞에 있는 바일레어 대통령이 영수 수준의 영력을 가지고 있어도 충분히 제압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강이찬의 생각은 달랐다.

-아니, 계속 지켜보자.

-왜?

-뭔가 이상하잖아.

-뭐가?

-우리를 부른 게 말이 안 돼. 일단은 이야기를 더 들어 보자고.

강이찬의 말도 일리가 있었기에 리처드 개런은 계속 대화를 이어 갔다.

“이쪽은 강이찬이라고 합니다. 대통령님께서 말한 각성자로서의 경험도 많은 사람이죠.”

“반갑습니다. 미스터…….”

“강.”

“미스터 강. 혹시 미스터 김과 같은 한국 국적인가요?”

“그렇습니다.”

“하하! 사실은 미스터 김도 다시 한 번 만나고 싶군요.”

그렇게 영양가 없는 대화가 어느 정도 이어진 후, 바일레어 대통령이 뒤에 있는 수행원을 향해 말했다.

“잠시 자리 좀 비켜 주게.”

수행원이 두말없이 집무실을 나가고, 오벌 오피스에는 바일레어 대통령과 리처드 개런, 강이찬 세 사람만 남았다.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를 길게 하기에는 나에게 주어진 여유가 그리 길지가 않군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네, 대통령님.”

“일단 이것부터 보세요.”

말을 마친 바일레어 대통령이 허공을 향해 손을 뿌렸다.

그 순간 허공에 반투명한 커다란 방패가 떠올랐다.

“저, 저거!”

강이찬이 기겁한 목소리로 외쳤다.

반투명한 방패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손바닥만 한 쇠판.

그것은 강이찬에게도, 리처드 개런에게도 아주 익숙한 물건이었다.

리쉬옌이 주로 쓰던, 아니 지금 이곳에 같이 있는 리처드 개런도 사용했던 물건이었다.

배면계의 방어 계열 투사에게 가장 중요한 무기, 방어 계열 투사의 고위급 스킬을 사용하게 해 주는 매개체인 영패(靈牌)였다.

그 영패가 잿빛의 영력에 휩싸인 채 반투명한 방패를 허공에 만들어 낸 것이었다.

짙은 회색을 띤 영력.

두 사람이 아는 한, 저런 잿빛의 영력을 사용하는 부류는 하나밖에 없었다.

배면계의 신수였다.

지금 앤서니 바일레어 대통령은 신수의 영력을 가지고 배면계 각성자의 스킬을 사용한 것이었다.

리처드 개런의 머릿속에 강이찬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건 또 무슨 끔찍한 혼종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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