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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받고 각성 더!-221화 (22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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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장. 폭풍전야#5-

자동차의 연비는 1리터의 연료로 어느 정도의 거리를 움직일 수 있는가를 나타낸다.

가전제품의 에너지소비효율등급은 해당 제품이 작동하는 데 어느 정도의 에너지를 사용하는가에 따라 등급을 나눠 보여 주는 지표다.

이 둘은 기준은 달라도 같은 맥락의 지표들이다.

지금 준혁은 100여 명을 재각성시키는 데 아주 적은 양의 에테르만 사용했다.

이전에 10명을 재각성시킬 때보다도 적은 양이었다.

에테르 효율이 어마어마하게 좋아졌다는 의미였다.

그렇다면 당연히 떠올려 보아야 할 것은 ‘왜?’라는 질문이다.

답은 빠르게 나왔다.

‘원리를 읽는 관리자’다.

약 일주일 전 준혁은 ‘원리를 읽는 관리자’로 승급 후 처음부터 다시 시스템 내부를 관찰했다.

장치를 이해하고, 장치와 장치 사이를 잇는 선을 따라 그 논리를 재구성하고 이해했다.

장치에 대한 이해력이 올라가니 관찰 속도도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갔다.

바깥에서부터 안쪽으로, 다시 중심에서부터 외곽으로.

준혁은 그렇게 시스템 내부를 몇 번이나 샅샅이 훑었다.

재각성 후 처음 장치를 접했을 때도 그것은 매우 복잡한 논리와 연산의 집합이었다.

그리고 장치를 잇는 선을 통해 한층 깊이 이해한 지금 준혁이 깨달은 것은, 시스템의 내부 구조가 처음 보았을 때보다 몇 배는 더 복잡하고 오묘하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몇 번이나 내부를 살피고 공부한 준혁은 그 복잡한 시스템의 구조를 모두 머릿속에 담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준혁은 놀라운 경험을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별다른 의미가 없는 행동이었다.

갑자기 에테르 효율이 크게 좋아졌고, 그 원인을 승급과 시스템 내부에 대한 이해라고 생각했다.

자연스럽게 ‘시스템 운영’을 펼쳐 어찌 된 일인지 살펴보았다.

그것이 변화의 시작이었다.

평소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보통 스킬을 사용하는 순간은 상대와 싸우고 있을 때였다.

그렇기에 다른 스킬을 사용하면서 ‘시스템 운영’을 동시에 쓰는 일은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 그 일이 일어났다.

사람들을 재각성시키는 행동도,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스킬과 다른 것이 없었다.

시스템 내부의 장치를 연계하고 에테르를 공급해 어떠한 현상이 일어나도록 한다.

각성자가 사용하는 스킬은 에테르의 흐름을 임의로 조정하여 특정한 현상을 만들어 내는 행동이다.

여기서 각성자가 하는 에테르 흐름의 조정이 바로 ‘장치’가 어떤 현상이 일어나도록 하는 것과 똑같은 행동이었다.

그리고 스킬을 사용하는 중에 들여다본 시스템의 내부는 평소와 전혀 달랐다.

에테르가 장치 속으로 스며들고, 장치를 통해 가공된 에테르가 다른 장치로 넘어간다.

그 과정을 몇 번 반복한 끝에 외부에 드러나는 어떤 현상을 만들어 낸다.

준혁은 지금 과정을, 내부에서 에너지를 어떻게 가공하고 흐름을 만들어 현상을 만들어 내는지 직접 목격하고 있었다.

이는 과거 영력을 운용하고 그로 인해 스킬을 펼치는 것보다 한층 더 깊은 심도에서의 일이었다.

흡입, 압축, 폭발, 배기라는 4행정의 엔진 내부의 작동 원리를 아는 것과 엔진의 설계 원리를 아는 것은 전혀 다른 이해 정도다.

이전까지의 준혁이 아는 것이 엔지의 작동 원리였다면, 지금 준혁은 설계 원리를 이해하고 있는 셈이었다.

이를 시스템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이해하면 우주의 법칙, 이른바 ‘대원칙’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이해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한 번 시작된 이해의 물줄기는 멈추지 않고 지면을 따라 흘렀다.

흐르는 중간중간 바위를 만나고 깊은 구덩이를 만나도 물길은 멈추지 않았다.

끊임없이 바위를 두드려 뚫었고, 구덩이를 가득 채워 저수지를 만든 후에 다시 물길을 텄다.

‘크윽!’

그리고 그것은 준혁의 정신에 어마어마한 압력을 행사했다.

금방이라도 머리가 터져 버릴 것 같은 느낌.

하지만 준혁은 갑자기 찾아온 이 이해의 순간을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어쩌면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을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조금만 더!’

수없이 그 말을 되뇌며 끊임없이 진리를 찾아 앞으로 나아갔다.

“어? 무슨?”

데리고 왔던 사람들을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고 일일이 기억을 지운 후 강당으로 돌아온 유민섭이 저도 모르게 발을 멈췄다.

강당의 분위기가 이상했다.

끝까지 남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당황한 표정으로 주춤거리고 있었다.

그 사람들은 모두 한 지점을 바라보고 있었다. 단상 위, 준혁을 향해 있었다.

“어? 준혁 씨!”

유민섭이 기겁한 표정으로 한달음에 단상 위로 뛰어올랐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준혁은 아주 평온한 표정으로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준혁의 외형은 조금도 평온하지가 못했다.

눈과 코, 귀, 입에서 쉴 새 없이 시커먼 핏물이 꾸역꾸역 밀려 나오고 있었다.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평온한데, 오한이라도 든 듯 온몸을 과격하게 떨고 있었다.

‘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그때였다.

다른 곳으로 갔던 길드원들이 게이트를 열고 하나둘 돌아왔다.

그리고 마치 짜기라도 한 듯 기겁한 표정으로 준혁을 향해 달려들었다.

“뭐, 뭡니까? 흑태자 형님 왜 이러는 거예요?”

“준혁 씨한테 무슨 일이?”

“아, 길드장님, 왜 그러고 가만히 서 있어요? 뭐라도 해야죠!”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발을 동동 구른다.

하지만 유민섭이라고 아는 게 있을 리 없었다.

“이, 일단 깨워 봐요!”

다급하게 외치며 준혁에게 손을 뻗은 사람은 강이찬이었다.

꽈앙!

하지만 어느 순간 저만치 날아가 벽을 처박고 바닥을 구른다.

“왜, 왜 그래요?”

강이찬이 기겁한 얼굴로 방금 자신을 후려친 최유나를 보았다.

아픈 것은 아니지만 너무 갑작스러워 크게 놀랐다.

최유나는 무서운 표정으로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건드리지 마.”

그때 강당 한쪽에 게이트가 열리며 또 한 사람이 넘어왔다.

리쉬옌이었다.

“흡!”

리쉬옌의 반응은 다른 이들과 달랐다.

준혁의 모습을 확인하기도 전에 몸부터 날렸다.

퍼퍼퍽!

발이 채 바닥에 닿기도 전에 휘두른 손에, 준혁을 에워싸고 있던 길드원들이 한꺼번에 과격하게 밀려났다.

“유나 씨!”

“네!”

“호법이요!”

리쉬옌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저만치 밀려났던 최유나가 재빨리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유민섭이 어찌 반응해야 할지 몰라 어정쩡한 자세로 물었다.

“무, 무슨 일입니까?”

“모릅니다.”

“네?”

유민섭의 표정이 더욱 황당하게 변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렇게 사람을 날려 버렸단 말인가.

“뭔지는 모르지만, 지금 함부로 건드리면 안 된다는 건 분명해요.”

“음!”

그때 최유나가 불쑥 말했다.

“내가 겪은 거?”

“비슷해요. 하지만 그 수준은 전혀 다를 거라고 생각합니다.”

리쉬옌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강당 안의 사람들은 모두 굳은 채 눈동자만 굴리고 있었다.

짧게 숨을 고른 리쉬옌이 강당 안의 상황을 살핀 후, 새로운 지원자들을 향해 말했다.

“모두 재각성은 끝났죠?”

대표로 대답한 사람은 하시모토 타츠야였다.

“네. 재각성한 것 같기는 한데……. 스킬도 없고, 스탯도 안 보입니다. 각성한 게 맞습니까?”

상황을 모르는 입장에서는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상황 수습은 유민섭이 나섰다.

“자, 자, 그거 각성한 거 맞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지금부터 훈련이 필요합니다.”

“훈련?”

“여러분은 이제 마나가 아닌, 마나 이전의 순수한 기운인 에테르를 사용하게 됩니다. 이제 그 에테르 운용법부터 차근차근 배워야 합니다.”

“그게 무슨 말씀인지…….”

하시모토 타츠야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뭐, 설명을 듣다 보면 알게 됩니다. 자, 모두 지하 훈련실로 내려갑시다. 따라오세요.”

일단은 어수선한 상황을 수습하는 게 우선이라고 판단한 유민섭이 지원자들을 이끌고 빠르게 강당을 벗어났다.

넓은 강당에 이제 남은 사람은 10명 남짓.

“어…….”

강이찬이 머쓱한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나오는 행동이었다.

리쉬옌이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며 말했다.

“지금부터 배면계를 겪고 돌아온 사람들을 4명씩 두 조로 나눠요.”

배면계에 갔던 사람은 모두 10명이었다. 그중 준혁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리쉬옌과 최유나를 제외하면 8명이니, 2개 조로 나누면 딱 4명씩이다.

“네.”

“2개 조가 번갈아 가면서 여기를 지켜야 합니다. 4명 중 2명은 앞뒤 입구를 지키고, 나머지 2명은 여기 단상 위아래에 한 명씩 남아서 호위를 서 주세요.”

리쉬옌의 말에 유민섭과 김준석을 제외한 6명이 빠르게 조를 나눠 역할을 분담했다.

“그리고 다른 길드원들을 불러서 지하 훈련실의 훈련관으로 투입하세요.”

리쉬옌에게서는 과거 소심하던 모습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두 번째로 배면계를 겪을 당시, 사람들을 책임지고 이끌다 보니 소심하던 성격이 자연스럽게 외향적이고 적극적으로 변한 것이다.

리쉬옌의 말에 따라 사람들이 움직이니 강당 안에는 준혁과 리쉬옌, 최유나, 그리고 1조로 묶인 강이찬, 백호진, 리처드 개런, 양태군만 남게 되었다.

유민섭, 강태웅, 장민호, 그리고 오늘 출근하지 않은 김준석이 자연스레 2조가 되었다.

적막한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단상 밑에 자리를 잡은 강이찬이 리쉬옌을 향해 물었다.

“그런데 흑태자 형님은 그렇잖아도 이미 인간계는 초월했는데, 거기에서 또 얼마나 더 강해지는 겁니까? 이러다 진짜 신이라도 되는 거 아닌지 모르겠어요?”

리쉬옌의 얼굴이 갑자기 심각하게 변했다.

그 반응에 오히려 놀란 사람은 강이찬이었다.

“아니, 드립을 다큐로 받으면 어떡합…….”

황급히 분위기를 풀어 보겠다고 한마디 더 던지던 강이찬이 덩달아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진짜 그럴 수도 있는 거예요?”

대답은 최유나의 입에서 나왔다.

“어쩌면.”

“그, 그게 무슨…….”

하지만 강이찬의 얼굴도 어느새 심각하게 변하고 있었다.

입으로는 말을 하는 한편, 머릿속으로 현재의 상황을 되짚어 보니 장난으로 볼 일이 아니었다.

이미 시스템과 하나가 되어 버린 준혁이었다.

임의로 각성을 시켜 주고, 스킬도 만들어 심어 줄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을 가졌다.

그것만으로도 보통 사람, 아니 각성자의 관점에서 봐도 이미 초월적인 존재였다.

그런데 거기서 한 걸음 더 나간다고 한다.

실제로 그럴지 안 그럴지 몰라도 그건 어쩌면 진짜 ‘신’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수도 있었다.

“형님이 그렇게 되는 건 나는 별론데…….”

저도 모르게 속마음을 불쑥 꺼냈다. 친하고, 존경하는 사람이 더는 사람이 아닌 존재가 된다는 게 이상하게 섭섭한 느낌이다.

그렇게 강이찬이 농담으로 꺼낸 한마디에 강당 내부는 무거운 정적에 휩싸였다.

그러는 동안 준혁은 시스템 내부에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장치를 보고, 그 원리를 보고, 대원칙으로 파고든다.

그렇게 한 발 한 발 끊임없이 깊이 파고들었다.

이는 더 이상 머릿속 사고(思考)의 영역이 아니었다.

체득, 혹은 일체화였다.

대원칙에 닿고 그것이 자연스레 의식에 스며들고 깨닫지 못하는 사이 완전히 녹아들었다.

이는, 처음 시스템 코어에 닿았을 때 우주의 거대한 흐름에 녹아들어 무아(無我)가 되는 것과는 달랐다.

무아는 대원칙이라는 거대한 흐름에 휩쓸려 존재가 녹아 버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준혁은 오롯이 ‘김준혁’이라는 존재로서 대원칙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소유로 만들어 가고 있었다.

대원칙의 가장 바깥쪽 외피에서 시작해 점점 중심에 있는 핵을 향해 다가갔다.

그렇게 얼마나 더 깊이 들어갔을까.

“어?”

스스로의 존재마저도 잊고 앞으로 나아가던 준혁이 갑자기 멈칫하며 정면을 보았다.

그곳에 무언가가 있었다.

단 한 번도 겪어 본 적 없는 거대한 무언가가 준혁을 유혹하듯 서기를 내뿜고 있었다.

대원칙에서도 가장 깊은 곳에 존재하는 모든 원칙의 중심 틀, 대원칙의 핵이 그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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