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받고 각성 더!-220화 (220/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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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장. 폭풍전야#4-

준혁은 ‘시스템 운영’을 중지하고 빠르게 현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차분하게 시스템 메시지를 기다렸다.

하지만 뒤이어 올라오는 메시지는 없었다.

지금까지의 패턴으로 본다면, 스킬이 개방된다거나 어떤 방향으로 승급했는지 알려 줘야 한다.

하지만 그런 것이 없다.

‘음, 시스템이 전혀 달라서 그런가?’

이전까지 준혁에게 닿아 있던 시스템은 배면계 시스템과 던전 시스템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다른 시스템이다. 배면계 시스템에 의해 탄생한 제3의 시스템.

그러니 패턴이 다를 수도 있다.

‘상태창.’

일단 상태창을 열었다.

[상태창]

김준혁

직업:원리를 읽는 관리자

스킬:[시스템 운영]

‘음?’

딱 하나 변화가 있었다.

직업이 ‘시스템 관리자’에서 ‘원리를 읽는 관리자’로 바뀌어 있었다.

어찌 된 일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준혁이 ‘시스템 운영’을 통해 내부의 장치들을 읽고, 장치와 장치 사이의 원리를 파악하고 있었기에 직업이 바뀐 것이다.

‘이게 승급이라고?’

‘승급’이라고 했는데 딱히 바뀐 것을 느낄 수 없었다.

‘뭐 어쩌라는 거야?’

던전 시스템을 통해 더블 각성한 후부터, 이런 승급과 비슷한 일이 생길 때마다 준혁의 능력은 한층 상향됐었다.

그렇기에 내심 기대를 했는데 별다를 게 없어 그만큼 실망도 크다.

“쯧!”

준혁은 혀를 차며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하지만 이내 표정을 풀고 다시 ‘시스템 운영’을 펼쳤다.

준혁은 될 것 같은 일에는 집요하게 매달리지만, 아니다 싶을 때는 빠르게 마음을 접는 성격이었다.

‘헉!’

하지만 변화가 없는 것이 아니었다.

승급 후 ‘시스템 운영’을 멈췄다가 다시 펼친 순간 그 변화가 명확하게 드러났다.

‘이거 뭐냐?’

준혁은 두 눈을 휘둥그레 뜬 채 바쁘게 고개를 움직였다.

분명 직전까지 보았던 시스템의 내부였다.

각종 장치들이 겹겹이 쌓여 거대한 하나의 ‘시스템’을 구성하는 그 내부가 분명했다.

그런데 이전과는 다른 것이 보였다.

장치와 장치를 잇고 있는 희미한 선이 보였다.

준혁은 그 선에 집중해 안력을 돋웠다.

선은 연기가 흐르는 것처럼 끊임없이 움직이는 희미한 빛의 입자들이었다.

각각의 장치가 서로 어떻게 연결되고, 어떤 작용을 하는지 그 선이 명확하게 보여 주고 있었다.

‘원리를 읽는…….’

바뀐 직업명의 의미가 분명해졌다.

원리를 읽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물론 그렇게 승급할 수 있었던 원인은 준혁이 장치와 장치 간의 연계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 덕분이었다.

거기까지 확인한 준혁이 저도 모르게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 이러면 처음부터 다시 봐야 하는 건가?’

선의 흐름을 따라 다시 확안해 보니, 이미 준혁이 이해했다고 생각했던 것들 중에 틀린 것들이 꽤 있었다.

즉, 장치 사이의 연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다시 공부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가능한 일이라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할 가치가 있는 법이었다.

“후!”

짧게 숨을 고른 준혁은 차분하게 시스템 관찰을 시작했다.

***

“생각보다 많네요?”

준혁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손에 든 보고서를 흔들었다.

던전 시스템이 무너진 지 보름이 지났다.

세계 각지로 헤드헌팅을 떠났던 길드원들이 모두 복귀했고, 그 결과가 준혁의 손에 들려 있었다.

그런데 준혁이 말한 것처럼 참가하겠다고 나선 사람이 생각보다 꽤 많았다.

대답한 사람은 유민섭이었다.

“다들 세상을 지키겠다는 생각에 나서 준 거 아니겠습니까?”

준혁이 묘한 표정으로 유민섭을 보았다.

그 표정이 이해가 안 간다는 듯 유민섭이 물었다.

“왜 그래요?”

“우리 길드장님은 착하기는 해도 둔하지는 않은데…….”

“무슨 말을 하려고요?”

“가끔 이렇게 순진한 척하실 때가 있다니까?”

놀리는 듯한 준혁의 말에 유민섭이 미간에 잔뜩 주름을 잡았다.

“무슨 말이에요?”

“이 사람들 모두가 진짜 세상을 구하겠다는 정의로운 마음으로 왔을까요?”

“아니면요?”

“잃었던 능력을 되찾아 준다니까 따라왔을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유민섭이 뜨악한 표정으로 준혁을 보았다.

“그럴 리가? 세상 사람 다 죽게 생겼는데 겨우 그런 이유로?”

“아니라고 생각합니까?”

“사람이라는 게 분명 그런 면이 있죠. 이타적인 사람보다 이기적인 사람이 더 많은 것도 분명하고. 그래도 지금 사안은 거의 인류 멸망급 재앙이잖아요.”

진지한 유민섭의 말에 준혁은 잠시 홀로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갑자기 뭔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는 듯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이 사람들 중 절반 이상이 그런 이유로 왔다는 데 내 에테르 장비를 걸죠. 유 길드장은 뭘 거시렵니까?”

“헐!”

유민섭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준혁을 보았다.

뜬금없이 무슨 내기를 건단 말인가?

하지만 또 이럴 때 물러나는 건 유민섭이 아니다.

“원하는 거 있습니까?”

솔직히 준혁이 가진 에테르 장비가 욕심이 났다. 거기에 일전에 팔았던 땅값에 대한 원한도 있었다.

“차.”

“차요?”

“그 뭡니까? 저번에 보여 준 그 한정판이라는 거.”

그 말에 유민섭의 눈동자가 잘게 흔들렸다.

“그, 그 차가 세상에 딱 다섯 대 있다는 건 알고 하는 말입니까?”

“아니까 하는 말이죠.”

“그, 그렇긴 하겠지만…….”

유민섭이 말꼬리를 흐렸다.

그 모습에 준혁이 피식 웃으며 유민섭을 도발했다.

“이럴 때 하는 말, 뭔지 알죠?”

“네?”

“쫄리면…….”

“콜!”

준혁의 다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유민섭이 ‘콜’을 외쳤다.

“한 입으로 두말하기 없습니다.”

“내가 언제 두말하는 거 봤습니까?”

“한 입으로 두말하면 일주일간 물구나무 서서 다니게 만들 겁니다.”

“그러시든지!”

내기가 성사되자 준혁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고, 유민섭이 그 뒤를 따랐다.

준혁과 유민섭이 도착한 곳은 길드 사옥의 한 층을 통째로 터서 만들어 놓은 강당이었다.

길드원들은 모두 ‘게이트 오픈’ 스킬을 갖고 있었고, 돌아올 때 당연히 모집 인원들을 데리고 왔다.

강당에 그 400여 명이 모두 모여 있었다.

그 많은 사람들이 모여 저마다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기에 강당 내부는 웅성거리는 소리로 꽤 소란스러웠다.

하지만 준혁이 등장하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일시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저벅, 저벅.

강당 안에 준혁과 유민섭의 발소리만이 울리고, 모여 있던 모든 사람의 시선이 준혁을 따라 천천히 움직였다.

강당의 단상에 오른 준혁이 사람들을 향해 인사도 없이 선포하듯 말했다.

“시스템과의 싸움이 끝난 후 각성을 해제할 겁니다.”

준혁의 말에 모인 사람들이 하나같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준혁이 ‘영화’를 이용해 말했기에 말을 못 알아들은 게 아니었다.

당황한 것이다.

그때 한 사람이 큰 소리로 외쳤다.

“그런 얘기는 못 들었어!”

누군가의 용기 있는 외침에 연쇄적으로 고함이 터져 나왔다.

“재각성으로 꼬여 놓고, 끝나면 다시 능력을 뺏는다고?”

“사기잖아!”

“이건 이용하고 버리겠다는 거잖아!”

그 반응에 유민섭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이거 분위기가 어째…….’

처음 준혁이 이러한 부분에 관해 이야기했을 때, 어느 정도 인정하기는 했었다.

모든 사람이 정의로울 수 없다.

그러니 화를 내는 사람이 ‘일부’ 있을 거라는 생각은 했었다.

그런데 지금 이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이, 정도의 차이는 있더라도 속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심지어 목숨 걸고 도쿄 시민들을 대피시켰던 하시모토 타츠야까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유민섭으로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응이었다.

여기저기에서 불만이 터져 나오는 중에 한 남자가 갑자기 대열에서 이탈했다.

“나는 빠지겠어!”

성큼성큼 강당 문을 향해 걸어 나간다.

그 모습에 강당에 모여 있던 다른 지원자들이 빠르게 고개를 움직여 준혁과 나가는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준혁이 나가는 사람을 향해 외쳤다.

“거기 잠깐 멈춰 봐요.”

하지만 남자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준혁이 말을 덧붙였다.

“여기서 나가면 어떻게 집에 돌아갈 생각입니까?”

“어?”

그제야 남자가 발을 멈췄다.

여기 모인 모든 지원자는 혼원 길드의 길드원이 만든 게이트를 통해 이곳으로 넘어왔기 때문이었다.

준혁과 남자가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사이, 다른 지원자들은 바쁘게 눈동자를 움직여 준혁과 남자를 번갈아 보았다.

이대로 남아 있을 것인가, 저 남자처럼 포기하고 돌아갈 것인가의 기로였다.

그런 이들에게 준혁이 선택을 쉽게 만들어 주었다.

“빠질 사람은 지금이라도 빠지는 게 좋을 겁니다.”

준혁의 허락 아닌 허락에 눈치 보던 사람들이 반사적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자, 각자 자기 데리고 온 사람 앞에 서세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사람들이 질서정연하게 각각의 줄을 섰다.

유민섭부터 리처드 개런, 강태웅, 린디웨 등 사람들을 데리고 온 길드원들이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준혁의 시선을 피했다.

생각해 보면 이는 자신들의 잘못이었다.

모든 일이 끝난 후를 생각하지 못하고, 사람들을 모아야 한다는 사실에 몰입하다 보니 이런 실수가 나온 것이었다.

그 길드원들을 향해 준혁이 ‘감응’을 이용해 말을 건넸다.

-번거롭겠지만, 데려다주고 오세요. 이런 사람들은 있어 봐야 큰 도움이 안 됩니다. 대신 기억 지우는 거 잊으면 안 됩니다.

그 말을 들은 길드원들이 준혁과 눈을 맞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강당 여기저기에서 게이트가 열리고, 하나둘 사람들이 게이트로 발을 밀어 넣었다.

유민섭 역시 마찬가지.

우선 일본으로 가는 게이트를 열고 막 발을 들이려 할 때였다.

“유 길드장님!”

갑자기 준혁이 그를 불렀다.

“네?”

“잊지 마세요.”

“잊지 말라니, 뭘요?”

두 눈을 끔뻑이는 유민섭을 향해, 준혁이 과장스럽게 차 핸들을 돌리는 동작을 취했다.

“아!”

그제야 내기가 떠오른 유민섭이 강당 중앙으로 고개를 돌렸다.

처음 400여 명이 모여 있던 지원자는 겨우 100여 명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것을 확인한 유민섭의 안색이 시커멓게 변했다.

‘내가 무슨 호사를 누리겠다고 그딴 내기를…….’

하지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진짜 늦은 법이었다.

‘아, 그거 진짜 어떻게 구한 건데…….’

세상에 다섯 대밖에 없는 스페셜 에디션이 허무하게 날아간 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유민섭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게이트를 넘어갔다.

그리고 강당에는 준혁과 지원자 100여 명만이 남았다.

남은 100여 명의 얼굴에도 여전히 불만은 남아 있었다.

사람인 이상 욕심은 있을 수밖에 없고, 거대한 적과 싸운다면 그에 걸맞은 보상도 기대하기 마련이다.

이들이 기대한 보상이 바로 재각성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준혁은 모든 일이 끝나면 시스템을 버릴 생각이었다.

딱히 그것을 유지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준혁이 남은 지원자들을 향해 말했다.

“일단 재각성부터 합시다.”

말을 마친 준혁이 손을 들어 올렸다. 뒤이어 손에서 퍼져 나간 빛줄기가 강당의 지원자들을 향해 한 줄기씩 뻗어 나갔다.

빠르게 재각성 과정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준혁에게도 또다시 한 가지 변화가 찾아왔다.

‘이건 또 뭐냐?’

준혁의 표정이 당혹스럽게 변했다.

‘이상한데?’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에테르가 왜?’

에테르 소모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적었다.

준혁은 이미 다른 이들을 재각성시킨 적이 있었다.

그런데 처음 10명의 길드원을 재각성시킬 때보다, 지금 100여 명의 지원자를 재각성시키는 데 소모되는 에테르의 양이 훨씬 적었다.

‘어떻게 된…….’

골똘히 생각에 잠겼던 준혁이 갑자기 두 눈을 크게 떴다.

“아!”

그와 함께 준혁의 머릿속에서 거대한 사고(思考)의 연쇄 작용이 폭발적으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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