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받고 각성 더!-214화 (214/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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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장. 심안#3-

준혁의 눈에 들어온 것은 다름 아닌 ‘장치’였다.

시스템 코어에서 보았던 그것.

카잔시 지하 부화장 입구를 막고 있던 그것.

던전 시스템이나 배면계 시스템, 그리고 준혁이 소유한 새 시스템의 모든 작동을 일으켜 주는 그 ‘장치’가 보였다.

방금 전 그것이 눈에 들어온 순간 준혁은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준혁은 원래 ‘탐색’으로 장치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눈앞의 신수와 싸우기 시작했을 때부터 ‘탐색’을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장치는 보지 못했었다.

그런데 지금 갑자기 장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처음 장치가 보인 순간, 준혁은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시스템이 난입한 것으로 착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놀람은 잠깐이었다.

준혁은 지금 시스템을 얻어 재각성을 한 후, 장치를 이해할 수 있었다.

당연히 신수의 몸속에서 작동하고 있는 장치도 이해할 수 있었다.

‘시스템이 관여했던 거군.’

다섯 마리 신수가 하나의 몸이 된 것은 시스템이 만든 장치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뻔하게 짐작할 수 있던 내용이었지만, 눈으로 보니 새삼스레 실감이 났다.

‘심안과 탐색의 시너지인가?’

보이지 않던 장치가 이제야 보이는 이유는 그것 외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하지만 명쾌한 결론은 아니었다.

그랬다면 심안을 사용했을 때부터 저 장치가 보였어야 하는데, 이제야 보이기 시작한 것이 설명되지 않았다.

‘뭐 어때?’

사소한 의문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지금 눈에 보이는 장치를 준혁이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장치는 던전 시스템이 만들어 낸 것이다.

그리고 준혁이 소유하고 있는 시스템은 던전 시스템을 죽이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였다.

‘와해’를 사용하면 저 장치는 그대로 부서진다.

하지만 아주 큰 문제가 하나 있었다.

절대적인 피지컬의 열세였다.

‘심안’으로 놈의 움직임을 예측하고도 가까스로 피하는 정도가 한계였다.

닿는 것조차 힘든데 때리는 게 가능할 것인가.

게다가 신수는 지금 무언가 엄청난 권능을 사용하려 하고 있었다.

-더 보여 줄 게 있는 모양이군.

용의 형태를 한 신수의 얼굴, 그 길쭉한 주둥이 한쪽이 말려 올라갔다.

명백한 비웃음.

그와 동시에 준혁과 신수 주변에 거대한 영력이 솟구쳐 올랐다.

“큽!”

요동치는 영력만으로도 심장이 터져 버릴 정도로 거대한 압력이 준혁을 옥죄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신수가 일으키는 권능의 여파였다.

“엇!”

준혁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준혁의 몸이 갑자기 가라앉기 시작했다.

황급히 몸을 뽑아 올리려는 순간, 수면 아래에서 거대한 격류가 요동쳤다.

‘이거 설마?’

반사적으로 위기를 느낀 준혁의 시선이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심안’이 만들어 내는 잔상이 어지럽게 펼쳐졌다.

준혁은 황급히 두 손으로 수면을 두드렸다.

강력한 반발력으로 물속에서 몸을 뽑아 올리는 순간.

거칠게 요동치는 수면을 뚫고 수십 개의 거대한 집게가 튀어 올랐다.

집게 하나의 길이가 10미터에 육박하는 거대한 크기였다.

끝이 아니다.

쏴아아아!

수면을 뚫고 거대한 바위산이 솟구쳤다.

단순히 솟아나는 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바위산 곳곳에서 나뭇가지가 자라듯 바위 기둥이 솟구치더니, 그것들이 준혁을 향해 몰아쳤다.

준혁의 기억 속에 남아 있던 이름들이 소환되었다.

“해함(海含), 하하구(下下邱)!”

해함은 거대한 가재 형태의 신수였고, 하하구는 바위산 모습의 신수였다.

자연스레 연상되는 것이 있었다.

다섯 마리가 합쳐진 신수의 사지 중 두 다리가 바위와 갑각류였다.

‘설마?’

그렇다면 나머지 셋도 있다는 뜻이다.

황급히 고개를 들어 올리는 순간, 거대한 용 한 마리가 아래로 득달같이 날아들었다.

“흡!”

‘천천’으로 허공을 박차고 올라간다.

발 아래로 하늘을 가득 메운 거대한 용의 몸뚱이가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이 보였다.

배면계의 신수는 다양한 모습을 갖고 있다.

모두가 각자의 태생에 맞는 모습들이다.

그런데 그중에서 용의 형상을 한 놈들이 가장 많았다.

그리고 신수의 강함을 기준으로 줄을 세우면 용의 형태를 가진 놈들이 대부분 상위권에 자리 잡고 있었다.

지금 이놈도 마찬가지.

준혁은 십여 마리의 용 형태 신수 중 지금 보이는 놈의 이름을 정확하게 떠올렸다.

“과호루(過浩縷)!”

당연히 머리를 담당했던 놈일 터였다.

그렇다면 남은 두 마리도 등장할 거라는 뜻.

아니나 다를까, 과호루의 기다란 몸뚱이를 밟으며 수직으로 달려 올라오는 한 마리 흑표가 보였다.

그리고 준혁의 ‘심안’에는 흑표의 등판에 올라타 있는 작은 도마뱀도 한 마리 보였다.

풀쩍 뛰어오른 흑표가 준혁을 향해 앞발을 휘두르고, 동시에 등판에 앉아 있던 도마뱀이 몸뚱이를 뱀처럼 길게 늘어트리며 준혁을 휘감았다.

‘심안’은 그런 공격 또한 잔상의 형태로 보여 주었다.

모든 것을 피한 준혁이 허공에 몸을 띄운 채 피곤한 표정을 지었다.

“다섯 놈이 합치더니 이제는 또 분리했…….”

하지만 준혁은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아니네?”

저 멀리 합쳐진 신수의 모습이 보였다.

“이건 또 무슨…….”

분리가 아니었다.

합쳐진 신수는 그대로 있는데, 그와 똑같은 놈들이 또 등장했다.

-불러냈지.

“불러? 뭘?”

-과거의 우리다.

준혁이 와락 인상을 구기며 물었다.

“단순히 과거의 너희가 아닌 것 같은데?”

-눈썰미가 꽤 좋군.

“과거의 너희가 이렇게까지 강하지는 않았거든.”

단순히 과거의 신수였다면, 지금 준혁의 힘으로 충분히 없앨 수 있었다.

하지만 방금 전 주고받은 한 수 한 수를 보면 절대 과거의 그 상태가 아니었다.

오히려 한 마리 한 마리가 각각 저기 보이는 합쳐진 신수에 육박하는 힘을 갖고 있었다.

-그냥 불러내면 재미가 없지 않겠는가?

“망할!”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섯 마리 신수의 공격이 날아들었다.

대책 없이 덩치를 불린 하하구가 거대한 산으로 변하며 아예 바위산으로 준혁을 에워쌌다.

꽈앙!

에테르로 만든 무기로 산을 뚫으려는 찰나, 산꼭대기에 거대한 분화구가 만들어지더니 이내 물이 한가득 차올랐다.

물속에서 튀어나온 해함의 집게가 다시 솟구치고, 강력한 물줄기가 준혁을 압박했다.

하늘에서는 과호루가 수천 가닥의 실뱀으로 변해 날아들었다.

흑표 모습의 신수인 야천(夜踐)이 소리 없이 다가들고, 도마뱀 신수 만재(萬在)가 그림자처럼 준혁을 따라붙었다.

준혁은 미친 듯이 몸을 움직였다.

‘심안’은 다섯 신수의 모든 움직임을 보여 주었다.

그 덕에 정타로 맞는 공격 하나 없이 모든 공격을 피하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그 정도가 한계였다.

“큽!”

준혁의 얼굴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너무나 바쁜 움직임에 제대로 숨조차 쉬지 못한 탓이었다.

이대로 한 호흡이라도 했다가는 그 순간 생기는 빈틈에 그대로 죽음을 맞이하리라.

그리고 생각지도 못했던 ‘심안’의 부작용도 있었다.

준혁과 다섯 신수는 실제로는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심안’을 펼치고 있는 준혁의 세상은 느리기 짝이 없었다.

그 느리기 짝이 없는 세상 속에서, 준혁은 모든 움직임을 하나하나 확인하고 어떤 결과가 나올지 계산한 후에 움직일 방향을 결정하는 과정을 끝없이 반복하고 있었다.

이는 거꾸로 생각하면 준혁의 감각과 뇌가 어마어마한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었다.

간단하게 말하면 실제 성능의 10배쯤 속도로 오버클럭한 CPU와 같은 상태였다.

기계도, 사람도 과도하게 움직이면 과부하가 걸릴 수밖에 없다.

온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 열기에 금방이라도 온몸이 녹아내릴 것 같은 고통이 밀려왔다.

“크윽!”

하지만 이대로 죽을 수는 없지 않은가.

‘안 되겠군!’

놈을 없앨 방법은 있지만, 당장 실행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지금은 차라리 달아나는 게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아까 열어 놓았던 게이트는 환경이 바뀌면서 사라진 상태.

준혁은 밀려드는 신수들의 공격을 피하며 게이트를 열 타이밍을 재기 시작했다.

당연히 두 눈은 한층 바쁘게 움직였다.

다섯 신수의 공격을 모두 피하는 동시에 게이트를 열어야 하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바쁘게 움직이는 준혁의 시야에 갑자기 잡히는 무언가가 있었다.

신수였다.

다섯 마리가 합쳐져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신수.

정확하게는 아까부터 보고 있었지만, 지금 새삼스러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뭐지?’

있어야 할 것이 없었다.

잔상이 없었다.

‘심안’을 펼치고 있는 지금 놈이 어떻게 움직일지가 잔상으로 시각화되어야 하는데, 그것이 없었다.

움직일 마음이 없어서?

아니다.

움직이지 않아도 잔상은 희미하게라도 존재하는 것이 맞는다.

차렷 자세를 생각하면 답이 쉽게 나온다.

차렷 자세는 흔히 부동자세라고 하지만, 사람은 아무런 미동도 없이 동상처럼 서 있을 수 없다.

미세하게라도 몸은 끊임없이 움직인다.

그것은 무의식중에 만들어지는 움직임이다.

하지만 ‘심안’은 그런 움직임조차 보여 주는 스킬이었다.

즉, 저 신수의 주변으로 겹쳐진 잔상이 보이는 게 정상이었다.

그런데 저 신수의 주변으로는 그러한 미세한 잔상조차 보이지 않았다.

‘마음이 없어?’

준혁은 빠르게 직전의 기억을 되새겼다.

한 장면에서 또 하나의 위화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저놈과 대화를 나누었던 그 순간이었다.

과거의 자신을 불러왔다는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 그때는 지금 자신을 공격하는 다섯 마리 신수에게서 잔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추론은 빠르게 결론으로 향했다.

‘마음은 둘일 수 없다!’

즉, 저놈은 지금 몸뚱이만 존재하는 상태라는 뜻이었다.

해함, 하하구, 과호루, 야천, 만재로 움직이는 순간에 저 합쳐진 몸은 속이 빈껍데기다.

그리고 저 합쳐진 신수가 움직일 때는 다섯 마리 신수가 빈껍데기가 된다.

준혁의 눈에 섬뜩한 살기가 번져 나갔다.

위기 속에 기회가 있다.

다섯 마리 신수의 공격은 매우 위험하지만, 저 합쳐진 몸뚱이를 죽일 수 있는 최고의 기회이기도 했다.

그리고 확실한 기회라면 조금의 손해 정도는 감수할 수 있었다.

“훕!”

준혁은 빠르게 숨을 골랐다.

꽈아앙-!

그 순간 생겨난 빈틈을 비집고 야천의 거대한 앞발이 준혁의 등판을 후려쳤다.

하지만 이 역시 준혁이 잔상을 보며 의도한 상황이었다.

척추가 이대로 으스러질 것 같은 고통이 온몸의 신경을 긁어 댔다.

하지만 준혁은 야천의 앞발이 등판을 두드린 운동에너지를 그대로 끌어안은 채 몸을 날렸다.

‘전뢰보!’

파지지직!

시퍼런 뇌전을 궤적으로 남기며 준혁의 신형이 한 방향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손에 들고 있던 에테르 덩어리는 어느새 장창의 형태로 변해 있었다.

-설마!

다섯 마리 신수가 동시에 당혹성을 내질렀다.

준혁의 시야 속에서 다섯 마리 신수의 몸 주변에 일렁이던 잔상들이 빠르게 사라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허공에 떠 있던 합쳐진 신수의 몸뚱이에 잔상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준혁의 에테르 장창이 이미 놈의 명치에 박히고 있었다.

쿠우웅-!

갑자기 하늘이 요동쳤다.

-끄아아아악!

신수의 입에서 요란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쾅!

거칠게 휘두른 손에 준혁이 그대로 바닥을 향해 내동댕이쳐졌다.

하지만 이미 놈이 권능으로 만들어 낸 세상이 무너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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