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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받고 각성 더!-213화 (213/240)

-213-

-70장. 심안#2-

준혁을 포함해 재각성한 사람들은 상태창에 스킬이 표시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상태창의 ‘항목’으로 표시되지 않을 뿐이다.

머릿속에는 여전히 스킬이 존재하고, 언제든 스킬의 형태로 그것을 구현할 수 있다.

준혁에게도 당연히 원래 가지고 있던 스킬들이 남아 있다.

조금 전 신수와 싸울 때 가지고 있는 모든 스킬을 사용하기도 했다.

다만, 그 스킬을 구현한 방식은 여느 각성자들과 다르다.

이는 준혁과 현재의 혼원 길드 헌터들 모두에게 적용되는 이야기였다.

각성자는 비각성자의 관점에서 볼 때 초인이다.

하지만 그런 각성자가 자신을 진짜 초인이라고 느끼는 때는 바로 스킬을 사용하는 순간이다.

신체적인 능력이 인간의 수준을 넘어서는 정도가 아니라 상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마법 같은 일을 해내는 것.

자신을 진정한 초인으로 느끼게 해 주는, 현실을 확실하게 뛰어넘은 존재라는 사실을 자각시켜 주는 능력.

그것이 각성자들이 생각하는 스킬의 의의였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스킬을 단순히 스킬로 사용하는 각성자들의 이야기였다.

준혁처럼 에테르나 영력, 마나를 스스로 운용할 수 있는 각성자들은 다르다.

일반적인 각성자에게 스킬이 ‘초현실’이라면, 기운을 운용할 수 있는 각성자에게는 ‘극사실’이었다.

명백하게 논리적으로 펼쳐지는 기운 운용의 결과물이다.

이는 총의 방아쇠에 비유할 수 있다.

보통의 각성자가 스킬을 사용하는 것은 방아쇠를 당기는 것과 같다.

원하는 목표를 정하고 방아쇠를 당기면 총알이 발사되어 목표물을 맞힌다.

하지만 총 내부에서는 여러 가지 과정을 거쳐 총알이 발사된다.

노리쇠가 작동해 약실에 탄환을 넣고 공이가 탄피의 뒤를 쳐 신관을 작동시키면, 그 폭발로 탄두가 탄피를 벗어나 총열의 강선을 따라 회전 관성을 얻으며 총구를 벗어나 목표물을 향해 날아가고, 그사이 노리쇠가 약실에 남은 탄피를 배출하는 동시에 새로운 탄약을 약실에 밀어 넣는다.

이러한 매커니즘을 굳이 몰라도 총을 쏠 수 있는 것처럼, 각성자도 스킬을 사용할 때 내부적으로 마나가 어떤 작용을 거치는지 알 필요가 없다.

하지만 기운을 운용할 수 있는 각성자는 총 내부에서 총알이 발사되는 매커니즘을 모두 이해하고 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렇기에 마나 운용을 할 수 있는 각성자가 스킬을 사용할 때는 그 효율이 매우 높다.

마나의 소모가 적고, 스킬을 발현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짧을뿐더러 위력 또한 더 높다.

그리고 스킬은 한계가 없다.

총에 비유하기는 했지만, 기계 장치의 조합인 총과 달리 스킬은 에너지 그 자체인 마나의 운용이다.

필요에 따라 자유로운 응용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준혁이나 유민섭 등이 마나 운용을 익히고도 변용하지 않는 이유는 스킬로 구현되었다는 것 자체가 가장 효율적인 사용법이기 때문에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뿐이었다.

준혁은 하나를 제외하고 자신이 가진 모든 스킬의 작동 원리를 알고 있었다.

그 하나가 바로 ‘심안’이었다.

단 한 번도 제대로 사용한 적이 없는 스킬이기에 그 원리를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준혁은 처음 심안이라는 스킬이 생겼을 때 사용했다가 그대로 기절할 뻔했었다.

어마어마한 기운이 소모되었는데, 그러고도 제대로 펼쳐지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 후로 한 번씩 확인해 보았지만 늘 같은 결과였기에, 언젠가부터 없는 셈치고 있었다.

그런 ‘심안’이 굳이 지금 떠오른 이유는 준혁도 알 수가 없었다.

‘이거 하나 남아서?’

모든 스킬을 사용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으니 이것도 사용해 보자는 생각을 무의식중에 한 것일까?

‘아니면…….’

신격에 가까워지면서 얻게 된 일종의 예지와 같은 감각일 수도 있었다.

어쨌든 지금 준혁은 그 ‘심안’을 꼭 써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다 기절하면?’

그때는 사실상 사망이라고 봐야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심안’을 써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지더니 어느 순간 거대한 욕망으로 변해 버렸다.

“제길!”

거대한 도박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방법밖에 없기도 했다.

달아난다고 해도 결국 지구로 가야 했다.

이 신수가 그곳으로 온다면 결과는 똑같다.

그렇다면 차라리 지금 이곳에서 확인하는 게 낫다.

까득!

준혁은 이를 악문 채 게이트를 열었다.

-도망칠 셈인가, 도살자?

신수가 비웃듯 물었지만 준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게이트를 열어 놓은 것은 보험이었다.

‘심안’을 쓰고 또 탈진하게 된다면 달아나기 위한 탈출구.

“흡!”

그리고 크게 심호흡을 했다.

그 모습에 신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뭔가 아직 보여 줄 게 남아 있는 건가?

준혁의 모습에서 무언가를 읽어 낸 모양이다.

물론 준혁은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다.

‘심안!’

마음속으로 조용히 스킬을 되뇌었다.

‘됐다!’

다행히 탈진은 없었다.

몸속의 에테르가 맹렬하게 휘몰아치더니 두 눈에 싸늘한 느낌이 스쳐 지나갔다.

‘흡!’

그리고 시야에 담기는 광경이 이상하게 변했다.

사물에 잔상이 겹쳐 있었다.

신수 주위로 신수의 잔상 수십 개가 어지러이 일렁였다.

신수만이 아니다.

신수가 만들어 낸, 아직 남아 있던 신수의 그림자에도 잔상이 겹쳐져 있었다.

‘뭐, 뭐지?’

‘심안’이라는 스킬이 사용된 것은 다행이지만, 이게 도대체 어떤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왜 그러지, 도살자?

‘엇?’

이상한 것이 하나 더 있었다.

신수의 말이 매우, 뭐라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느리게 들렸다.

늘어진 카세트테이프를 듣는 듯한 느낌.

아니, 그보다 더 심하다.

음원을 0.01배의 속도로 재생하고 있는 것처럼 한없이 늘어졌다.

말만 느려진 게 아니다.

신수의 행동도 느려졌다.

준혁을 향해 달려드는 신수의 행동이 매우 느렸다.

영화의 슬로 모션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번뜩 준혁의 시선이 멈춘 곳이 있었다.

달려드는 신수 앞에 짙은 잔상이 떠올랐다.

그렇게 떠오른 잔상이 수십 개로 늘어나더니 준혁을 향해 주먹을 뻗는다.

그 대신, 멈춰 서 있을 때 신수의 주위에 일렁이던 다른 잔상들은 사라진 채였다.

‘이거였나?’

신수의 움직임이, 앞쪽에 늘어난 잔상과 하나하나 겹치며 다가오고 있었다.

[심안]

심안이 뜻하는 것이 이것이었다.

눈앞의 대상이 생각하는 움직임을 잔상으로 시각화하는 것이다.

신수가 달려들기 전, 수십 개의 잔상이 있었던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신수가 어떻게 할지 결정하지 못하고 여러 개의 움직임을 떠올렸기에 많은 잔상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행동을 결정한 순간 다른 잔상이 사라지고, 준혁을 향해 주먹을 날리는 잔상이 잔뜩 늘어났던 것이다.

이는 거의 순간적인 ‘예지’ 수준의 능력이었다.

게다가 감각의 인지 능력이 극한으로 빨라지기에 상대의 움직임을 천천히 살펴볼 수 있었다.

순식간에 상황을 파악한 준혁이 황급히 상체를 뒤로 젖혔다.

‘이, 이런!’

하지만 부작용이 있었다.

‘심안’은 그저 보여 줄 뿐이었다.

상대가 느려진 만큼 준혁도 느려졌다.

‘심안’은 인지 영역을 극대화한 것이지, 자신의 움직임을 빠르게 만들어 주는 게 아니었다.

신수가 느리게 보인다.

그렇다면 원래 신수보다 피지컬이 떨어지는 준혁은 신수보다 더욱 느리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미, 미친!’

자신의 움직임조차 느려지니 갑갑함이 몰려왔다.

하지만 갑갑하다고 ‘심안’을 푸는 건 자살행위였다.

신수보다 느리다고는 해도, 놈의 움직임을 미리 읽을 수 있다면 최소한 비슷한 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다.

상대의 공격을 보고 피하는 것과, 미리 알고 그 위치를 벗어나는 것은 전혀 다른 결과이기 때문이다.

‘아, 그런 거였군!’

그리고 뒤늦게 ‘심안’이라는 스킬의 이름을 이해했다.

흔히 생각하는 ‘마음의 눈’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마음을 보는 눈’이라는 의미였다.

준혁이 가까스로 상체를 젖혔다. 그와 동시에 신수 앞에 펼쳐져 있던 잔상도 곧장 위치와 동작을 바꾸었다.

준혁이 피하는 것을 보고 신수가 반응한 것을 실시간으로 표현하는 것이었다.

한껏 상체를 젖혀 고개를 뒤로 당기고, 그 코앞의 허공을 신수의 주먹이 훑고 지나갔다.

‘탐색’도 함께 펼치고 있는 탓에 놈의 주먹 주위로 영력이 과격하게 일렁이는 것이 눈에 담겼다.

과아아아아앙-!

스쳐 지나가는 주먹 주위로 일어나는 바람 소리조차 매우 느리게 들렸다.

‘이거다!’

중요한 것은 지금 눈앞의 신수와 싸울 수 있는 무기가 생겼다는 점이었다.

허무하게 허공을 훑은 신수가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뭔가 이상함을 느낀 표정이었다.

그와 동시에 아직 남아 있던 신수의 그림자들이 준혁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림자는 신수와 같은 피지컬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

준혁이 더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다.

다만 숫자가 너무 많아 감당이 안 됐던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 그림자마저도 잔상이 보였다.

어떻게 움직일지, 어떤 놈이 먼저 달려들지 눈에 훤히 보였다.

그리고 느려진 세상 속에서 준혁은 놈들보다 빨리 움직일 수 있었다.

전후좌우, 그리고 위에서까지 달려드는 그림자들.

하지만 이것들의 움직임은 페이크였다.

진짜는 오히려 땅을 파고 아래에서 위로 솟구치고 있었다.

당연히 준혁의 눈에는 그 잔상들이 모두 보였다.

에테르로 빚은 몽둥이를 갈고리 형태로 바꿨다.

다섯 개의 그림자가 달려드는 와중에 생기는 안전한 공간으로 미리 한 발 빠져 움직인다.

그리고 허공을 향해 갈고리를 들어 올렸다.

위로 뛰어올라 아래로 곤두박질치는 놈이 준혁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그 순간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타이밍을 노린 갈고리질이었다.

갈고리에 묵직한 무게감이 걸리자마자 그대로 잡아당겨 땅바닥으로 패대기쳤다.

콰앙-!

준혁의 갈고리에 끌려온 놈과 땅을 파고 아래에서 솟구치던 놈이 부딪치며 맹렬하게 폭발했다.

쾅, 콰콰쾅!

준혁은 쉴 새 없이 갈고리를 움직였고, 갈고리가 한 번 움직일 때마다 그림자들이 서로 부딪쳐 터져 나갔다.

그리고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남아 있던 모든 그림자가 폭발해 사라졌다.

-그건 무슨 권능이지?

조금 멀찍이 떨어져 준혁을 살피던 신수가 물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을 보니 ‘심안’에 대해서 파악이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대율이 준혁의 ‘탐색’을 눈치챈 것과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런 신수의 의아함에는 두려움이 깃들어 있었다.

준혁은 그런 신수의 모습에 한 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격의 문제인가?’

반사적으로 떠올린 것이지만 그런 느낌이었다.

‘심안’이라는 스킬의 격이 너무 높다 보니 신수조차 그것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는 느낌이었다.

-뭔지 모르지만…….

말을 꺼내는 신수의 몸속에서 영력이 맹렬하게 솟구쳤다.

-지금 죽이지 않으면 매우 위험해지겠군.

다섯 마리의 신수가 합쳐진 탓에 다섯 줄기의 강력한 영력이 휘몰아치며 주변의 공간을 휘감았다.

그 모습을 보던 준혁의 두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저, 저건!’

준혁의 눈에 또 하나의 변화가 잡혔다.

그리고 준혁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리고 선언하듯 외쳤다.

“이 끔찍한 혼종 새끼, 내가 꼭 죽여 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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