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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장. 심안#1-
준혁의 고개가 세차게 돌아갔다.
‘미친!’
무지막지한 일격이었다. 정신이 아득해질 수준.
끝이 아니다.
복부 깊숙이 파고든 주먹에 새우처럼 몸이 ㄱ 자로 접혔다.
연이어 턱을 쳐올린 또 한 번의 타격에 결국 힘을 이기지 못한 준혁의 몸뚱이가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
그림자처럼 따라붙은 신수의 주먹이 여유를 주지 않고 날아들었다.
10여 번의 난타, 그 마무리는 크게 회전하며 날아드는 발차기였다.
빠악!
“큭!”
숨 쉴 틈조차 없이 날아든 주먹에 난타당한 준혁이 겨우 한 모금의 신음을 뱉었다.
길고 긴 포물선을 그린 준혁의 신형이 숲을 지나 초원을 넘어 황무지를 향해 곤두박질쳤다.
준혁은 급격하게 눈앞으로 다가드는 지면을 두 손으로 두드렸다.
땅을 두드린 반발력으로 몸을 뽑아 올린 그때였다.
콰앙-!
준혁이 패대기쳐지려던 그 자리의 땅이 흉포하게 터져 나갔다.
신수의 주먹에 운석이라도 떨어진 듯 거대한 크레이터가 파이고, 땅이 뒤흔들렸다.
“하!”
허탈한 한숨이 새어 나왔다.
크레이터 모서리에 선 준혁이 그 맞은편에 선 신수를 본다.
숨결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평온한 모습에 기가 찰 지경이었다.
-음, 괜찮군.
신수는 제 손을 살피며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 돌겠네.”
신경질적으로 던진 외침에 신수의 시선이 준혁에게로 향했다.
-돌겠다? 무엇이?
신수는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뉘앙스로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태도가 준혁에게는 또 한 번 돌아 버릴 모습이었다.
“니들 마음대로 붙어먹더니 말도 안 되는 몸뚱이가 됐으니 내 입장에서 돌겠냐, 안 돌겠냐?”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는군.
“뭘 이해 못해?”
-우리는 오히려 손해를 본 편인데, 너는 그걸 억울해하고 있지 않은가?
“손해?”
무슨 말인지 쉬이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신수의 입에서 설명이 흘러나왔다.
-우리 다섯이 한 몸이 되었다.
“그런데?”
-다섯이 한 몸이 되었다면, 최소한 다섯의 힘이 나야 한다.
“음?”
-그런데 우리는 지금 둘하고도 반 정도의 힘만 내고 있다. 어찌 손해가 아닐 수 있을까?
“허!”
다섯이 합쳤으니 다섯의 힘을 내야 하는데, 오히려 2.5만큼의 힘만 낼 수 있으니 손해라는 말이다.
그 말 자체는 딱히 틀렸다고 말할 수 없었다.
시너지는 내지 못할망정 오히려 효율이 절반으로 줄어든 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수의 입장이 아닌 준혁의 입장에서는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의 이야기였다.
지금껏 상대했던 신수보다 2.5배 강한 놈을 상대해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냥 죽을 맛이었다.
“개 같은 짐승 새끼! 욕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네!”
말도 안 되는 피지컬이었다.
지금 준혁은 ‘몰아일체’로 모든 장비의 힘을 받아들인 것은 물론 적사의 ‘전이’까지 사용해 풀 도핑 상태였다.
그런데도 지금 압도적인 열세에 빠진 것이다.
싸울 만한 다른 방법이 없다.
게다가 지금 보인 것은 권능을 배제한 순수한 육체적인 능력만이었다. 여기에 권능마저 더해진다면?
‘망할!’
상상조차 하기 싫다.
‘이대로 튀어?’
현재 방법은 그것뿐이다.
그리고 준혁은 불리하면 도망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배면계라는 험악한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당연히 자기 목숨을 가장 귀하게 여겨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 두어야 한다.
지금 도망치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어차피 달아나도 놈이 지구로 오면 당장은 아무런 방법이 없었다.
가족들을 환계로 이주시켜 놓았기에 그나마 다행스럽기는 하지만, 지구가 끝장나는 건 어쨌든 최대한 막아야 했다.
영원히 환계에 머물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생각해 볼 만한 게, 재각성한 사람들을 모아 팀플레이를 하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위해서는 합도 맞춰 보고, 지금 눈앞에 있는 신수의 권능이나 스타일을 알아야 했다.
그러니 지금은 얻어터져도 여기서 버텨야 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유가 있었다.
‘뭐든 해야 하는데.’
아까 보았던 그 ‘숲’이었다.
그 숲은 던전 시스템의 코어였다.
이를 거꾸로 생각하면, 시스템은 자신의 코어조차 이전하지 않았는데도 그 정도 힘과 권능을 낼 수 있다는 의미였다.
그렇다면 숲에 담긴 코어를 완전히 이전한다면?
진짜 신이라고 불러도 손색없을 정도의 힘을 가질 것이다.
그러니 지금 여기에 왔을 때, 아직 기회가 있을 때, 저 숲을 조금이라도 더 망가트려야 했다.
그래야만 시스템에게 타격을 주고, 강해지는 것을 미리 막을 수 있었다.
그러니 지금은 해 보는 수밖에.
“뇌호강전!”
외침과 동시에 번쩍 떠오른 다섯 개의 술식이 깨져 나가며 시퍼런 뇌전으로 번뜩이는 거대한 호랑이가 솟구쳤다.
콰지지지직!
다섯 마리의 뇌호가 떨구는 다섯 개의 뇌전이 신수를 내리찍었다.
준혁은 그 한 번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화룡연무’, ‘추뢰망’, ‘잠리탄주’ 등 갖고 있는 모든 술(術) 영역의 스킬을 쏟아붓는다.
휘황찬란한 빛과 함께 온갖 술식들이 번뜩이며 신수를 몰아쳤다.
그리고 술식으로 끝이 아니다.
에테르를 실타래처럼 뽑아내 뭉치고 뭉쳐 주로 사용하는 육모방망이 형태로 빚어냈다.
“천단참!”
순수하게 에테르로 성형한 무기가 빛을 머금은 채 신수에게 떨어져 내렸다.
‘태산인’, ‘폭류격’ 등 근접 격투에 사용하는 스킬 또한 있는 대로 쏟아부었다.
단순히 두드리는 것도 아니다.
‘탐색’을 펼쳐 놈의 영력이 어떻게 흐르는지, 무엇을 하려 하는지 미리 파악하며 움직인다.
쩡, 쩌저정!
빛과 함께 사방으로 무시무시한 압력의 파편이 휘몰아쳤다.
휘몰아친 폭음이 한 번 터질 때마다 주변의 지형이 시시각각 돌변했다.
수십 개의 구덩이가 파이는가 하면, 갑자기 밀려 나간 흙더미가 거대한 산으로 변했다.
한바탕 폭풍이 휘몰아치고, 서로 맞닿아 있던 두 개의 신형이 갑자기 급격하게 거리를 벌렸다.
아니, 준혁이 다급하게 땅을 박차며 몸을 물린 것이다.
“씨발!”
깊은 빡침이 욕으로 승화되어 허공에 흩어졌다.
소용이 없었다.
모든 공격을 퍼부었지만 놈에게는 긁힌 상처 하나 만들지 못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겨우’ 2.5배의 힘인데 그것이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장벽이 된 느낌이었다.
더 황당한 것은 놈이 그 자리에 선 채 준혁의 공격을 고스란히 맞아 주었다는 점이었다.
즉, 준혁의 모든 공격이 적중했는데도 조금도 데미지를 주지 못했다는 뜻이다.
이 정도 격차라면 이대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달아나는 게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준혁은 포기하지 않았다.
아직 쓰지 않은 수가 하나 남아 있었다.
“천신강림!”
외침과 동시에 준혁의 몸이 에테르에 휘감기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몸집이 거대하게 변했다.
천심강림은 단순히 몸집만 거대해지는 게 아니다.
거대해지는 만큼 피지컬과 영력, 현재의 준혁에게는 에테르의 위력이 증가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로 인한 에테르 효율은 지극히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 준혁이 할 수 있는 최강의 공격 방법이기도 했다.
부우우웅-!
거대해진 주먹이 신수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그제야 신수가 움직였다.
‘천신강림’으로 거인이 된 준혁은 거대한 몸집 탓에 매우 둔해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속도 또한 엄청나게 빨라진다.
그리고 신수는 그런 주먹을 너무 가뿐하게 피했다.
고무공처럼 가볍게 튕겨 올라간 신수의 신형이 순식간에 준혁의 얼굴 앞에 도착했다.
틈도 없이 날아드는 주먹.
빠아악!
신수의 주먹과 준혁의 손바닥이 맞부딪쳤다.
‘그나마!’
‘천신강림’을 동원하니 이제야 겨우 신수의 주먹을 막는 것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그래서 더 막막해진 기분이었다.
‘이런 괴물 새끼가 또 나올 수도 있다는 소리잖아.’
준혁이 기억하는 신수의 숫자는 100여 마리였다.
환계에서 죽은 놈들을 빼더라도 아직 70여 마리의 환수가 남아 있다는 뜻이다.
그놈들이 서로 섞여 새로운 혼종으로 등장한다면?
그걸 넘어 다섯 마리가 아닌 열 마리쯤의 신수가 서로 뒤섞인다면?
그때는 정말 답이 없었다.
“흐아아앗!”
잘 내지 않던 기합까지 내지르며 손을 뻗는다.
거대한 몸집, 그에 걸맞은 힘, 그리고 무시무시한 속도까지 더해지게 되면 더 이상 기술적인 면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크기와 힘, 속도가 이미 극한의 기술이기 때문이다.
으드드득!
준혁의 손이 허공에 멈춘 채 부르르 떨렸다.
신수가 팔을 들어 준혁의 주먹을 막고 있었다.
‘백중세.’
조금 전 신수의 공격을 막았던 상황, 그리고 지금 자신의 공격이 막힌 상황을 따져 보면 준혁과 신수의 현재 피지컬은 거의 동등한 수준이었다.
“흡!”
빠르게 호흡을 정돈하며 준혁의 손발이 움직였다.
과격한 손발의 움직임이 허공에 떠 있는 신수를 쫓았다.
폭우 같은 공격에 맞춰 신수 또한 쉴 새 없이 손발을 놀렸다.
격투의 기술은 사용하지 않았지만 갖고 있는 스킬은 모두 동원해 공격을 날렸다.
그 결과 싸움은 한층 과격하게 변했다.
준혁의 공격이 쏟아지면 신수가 막는다.
잠깐의 틈이 보인 순간 신수의 반격이 날아들고, 이번에는 준혁이 그것을 막는다.
쉴 새 없이 주고받는 공수가 순식간에 300여 합이 흘렀다.
그리고 준혁의 얼굴에는 쓰린 표정이 스쳤다.
‘이 정도로는 부족…….’
신수는 지금까지 오직 육체적인 능력으로만 준혁을 상대했다.
즉, 권능은 단 하나도 사용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만약 놈이 권능까지 사용한다면?
그때 마침 준혁과 거리를 벌린 신수가 물었다.
-여기까지인가?
“뭐가?”
-네가 낼 수 있는 힘이 여기까지인가 말이다.
“글쎄?”
-몸을 합친 결과가 아주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천하의 도살자를 이렇게 상대할 수 있다는 건 꽤 만족스럽군.
“하, 그것참 영광이라고 말씀드려야 하냐?”
입만큼은 절대 밀리지 않는 준혁이었다.
-무려 다섯의 신수가 하나가 되었다. 이 정도라면 충분히 자랑스러워해도 될 것이다.
“아무튼 이 짐승 새끼들의 자뻑은 참 답이 없다.”
-하지만 이만 끝내도록 하지.
준혁의 두 눈에 짙은 긴장이 떠올랐다.
준혁은 여전히 ‘탐색’으로 신수 몸속의 영력 흐름을 살피고 있었다.
‘엇!’
그리고 준혁의 불길한 예감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신수의 몸속에서 다섯 줄기의 영력이 한데 뭉쳐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권능의 조짐이었다.
이전이었다면 그 흐름을 끊는 공격으로 권능을 차단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조차 힘들다.
준혁이 황급히 신수와 거리를 벌리는 순간이었다.
우우우우웅!
신수의 몸에서 거대한 영력이 솟구치는가 싶더니, 준혁 주위로 수백 개의 그림자가 솟구쳤다.
시커먼 어둠으로 빚어낸 것 같은 그림자는 다섯 마리의 신수가 합쳐진 놈과 똑같은 실루엣을 갖고 있었다.
마치 수백 개의 분신이 떠오른 것 같은 착각.
그리고 소나기가 쏟아졌다.
수백 개의 그림자가 한꺼번에 달려드는 그림자의 소나기.
“크아아악!”
준혁의 입에서 고통에 찬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러는 중에도 준혁 역시 손발을 움직였다.
날아드는 그림자들을 주먹으로 두드리고, 손으로 쥐고, 발로 밟는다.
하지만 그조차도 공격이었다.
닿는 즉시 강렬한 폭발을 일으키며 준혁의 에테르를 뒤흔들었다.
거인이 된 준혁의 온몸에 피가 터져 나왔다.
“크윽!”
아득해지려는 정신을 애써 붙잡은 준혁은 황급히 ‘천신강림’을 풀었다.
탐색도 살아 있어야 가능한 일. 이 정도 상황이면 이제는 포기하고 돌아가는 게 옳은 선택이었다.
“천천!”
단숨에 하늘 높이 솟구친 준혁이 게이트를 열기 위해 손을 들어 올리려던 찰나였다.
‘아!’
갑자기 한 가지 생각이 준혁의 머릿속을 스쳤다.
‘심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