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받고 각성 더!-206화 (206/240)

-206-

-68장. 환수#2-

-무슨?

준혁의 말에 백안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준혁에게 굳이 대답해야 할 의무 따위는 없다.

‘일단 테스트부터!’

마음을 먹자마자 다시 앞으로 달려들었다.

정신없이 날아드는 준혁의 공격 속도가 한층 배가 되었다.

갑자기 기어를 올려놓은 듯 휘몰아치는 구타에 백안은 제대로 상황을 인식할 수조차 없었다.

저항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사지를 놀리고, 권능을 일으키고, 날카로운 이빨을 들이밀었다.

하지만 모든 공격이 무위로 돌아갔다.

지금 준혁은 대율을 상대할 때보다 한층 강해져 있었다.

에테르를 다룬다는 사실만으로 능력이 올랐고, 시스템 관리자가 되면서 스탯이 또 한 번 상승했다.

거기에 지금 ‘탐색’을 펼친 채였다.

백안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준혁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겨우 인간 따위에게!

한 서린 백안의 외침에 준혁이 비웃듯 대답했다.

“이 망할 짐승 새끼들은 왜 이렇게 인간을 무시하는지 모르겠네?”

그러면서도 준혁의 구타는 끊어지지 않았다.

환계에서 신수의 육체는 배면계에서의 그것과 동일하다.

죽여도 죽는 것이 아닌 봉인 상태로 돌아간다.

조금 전 백안의 잘려 나간 앞발이 재생되는 것만 보아도 확실했다.

물론 배면계가 사라진 지금 봉인된 신수가 어떤 식으로 육체를 재구성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부분은 딱히 준혁이 고민할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은 놈을 어떻게 해야 처리할 수 있을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백안은 덩치가 크지 않은 덕에 준혁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을 확인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적당했다.

서거걱!

섬전처럼 휘두른 칼질에 백안의 네 발이 몽땅 잘려 나갔다.

준혁은 툭 차올려 떠오른 백안의 목줄기를 왼손으로 움켜쥐었다.

그리고 비어 있는 오른손을 망설임 없이 백안의 심장으로 찔러 넣었다.

푸욱!

백안의 가죽을 찢고 들어간 오른손을 빠르게 오므렸다.

“쳇!”

하지만 손에 걸리는 것이 없다.

심장, 정확하게는 백안의 영력의 근원이 손에 쥐어지지 않았다.

혹시나 싶어 손에 에테르를 휘감는다.

그럼에도 백안의 심장은 손에 쥐어지지 않았다.

이곳에 심장이 있고, 영력의 근원이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지금도 ‘탐색’으로 펼쳐진 시야에는 놈의 근원이 펄떡이고 있었다.

그런데도 마치 빛을 쏘아 만든 홀로그램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다.

이는 시스템을 손에 넣었어도, 에테르를 사용해도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다.

신수라는 존재들이 가지는 태생적인 특성이었다.

지금 놈을 완전한 죽음으로, 필멸로 이끌기 위해서는 지구로 넘어가야 한다는 뜻이었다.

-무얼 하는 건가, 도살자!

다급히 묻는 백안의 목소리에 미지에 대한 공포가 짙게 배어 있었다.

준혁의 입가에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미소가 떠올랐다.

신수들은 태생이 오만하기 짝이 없는 놈들이었다.

그런 신수의 겁에 질린 목소리에 저도 모르게 피식 웃게 된 것이다.

‘어떻게 한다?’

-크아아아-!

백안이 묵직한 영력을 내쏘며 준혁의 손아귀를 빠져나갔다.

물론 그 직후 다시 붙잡혔다.

-놔라!

“그러게 뒤에서 명령이나 내리지, 왜 나서서 잡히냐?”

애초에 지휘관의 위치는 후방이어야 한다.

그래야 전체를 보고 통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백안은 원하는 곳 어디서든 볼 수 있는 눈이 있었고, 준혁을 과거의 상태로만 기억했기에 실수를 저질렀다.

앞으로 나서서 준혁을 도발하면서 이미 첫 단추를 잘못 꾄 셈.

그리고 준혁은 또 다른 시험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츠컥!

거북한 마찰음이 울려 퍼지는 동시에 백안의 목이 떨어졌다.

툭 떨어지는 백안의 머리를 잡으며 흑호를 불렀다.

목이 잘려 나간 백안의 사체에서는 이미 빛의 입자가 부스스 떨어지기 시작했다.

배면계에서 무수히 보았던, 봉인되기 직전의 모습이었다.

크허어엉-!

흑호가 준혁을 덮치듯 달려들며 그대로 ‘도약’을 펼쳤다.

“됐다!”

흑호의 ‘도약’으로 혼원 길드의 자기 사무실에 내려선 준혁의 입에서 쾌재가 터져 나왔다.

사체가 바스러지는 것이 멈췄다.

‘탐색’의 영역에서는 빠르게 에테르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신수의 근원에서 에테르를 흡수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준혁은 잠시 멈칫했지만 이내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시스템을 얻으면서 더 이상 신수를 죽이는 방식으로 발전하는 것은 불가능해진 모양이었다.

별다른 아쉬움은 없었다.

“이렇단 말이지?”

준혁은 오히려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근원에 담겨 있던 영력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보니, 그것이 에테르로 치환되어 신수의 사체를 에테르화시키는 속도가 매우 빨랐다.

즉, 만상만투의 사체처럼 긴 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이제 마지막 확인이 남았다.

-흑호야, 가자.

또 한 번 흑호의 ‘도약’으로 환계로 넘어갈 때, 준혁은 여전히 백안의 사체를 손에 쥐고 있었다.

“훌륭하네.”

환계로 넘어온 준혁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한 번 완전한 죽음을 맞이한 신수는 다시 환계로 넘어와도 여전히 죽은 채였다.

이는 곧, 준혁이 신수들의 사체를 수집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뜻이었다.

사무실에 그대로 놓아두는 방법도 있지만, 그것은 위험했다.

준혁이 자리를 비운 틈에 시스템이 사체를 가로챌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사체를 지키고 있다가는, 환수들과의 전투 중에 죽은 신수가 그대로 봉인 상태가 될 테니 그 역시 안 될 일이었다.

조금 번거롭지만, 지금처럼 계속 오가는 수밖에.

털썩!

준혁은 아예 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 신수와 환수의 전투를 감상했다.

지금 끼어들어 신수들을 정리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이번 전투는 환수들의 고집을 따라 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자신들의 세계를 유린당한 환수들에게는 그에 대한 복수를 해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잘 싸우네?

전투는 생각보다 일방적이었다.

환수들이 삼삼오오 형성한 여러 개의 무리로 나뉘어 각각 신수 하나를 상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각 무리 속에서의 연계가 기가 막혔다.

곰이 힘을 앞세워 신수를 막으면 날렵한 고양잇과, 갯과의 환수들이 후방을 공격하고, 하늘의 환수가 신수의 시야를 교란하는 식이었다.

오랜 시간 합을 맞춘 것 같은 합동 공격이었다.

마치 던전 속 헌터들이 이룬 파티 사냥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준혁의 감탄에 대한 대답은 백효가 했다.

-환계는 오랜 세월 동안 끊임없이 영역 싸움을 벌여 온 곳입니다.

-음?

-다른 일족의 영역을 갉아먹고, 뺏고, 뺏기며 수시로 영역이 바뀌는 곳이지요.

무슨 말을 하는지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너무 부대끼다 보니 서로의 특징을 너무 잘 안다는 말이냐?

-맞습니다. 영역이 수시로 바뀌니, 경계를 마주 보는 일족이 수시로 바뀝니다. 그러다 보니 서로 맞붙어 보지 않은 일족이 없습니다.

영역을 두고 하는 싸움은 말 그대로 총력전이다.

가진 모든 것을 걸고 싸우니 역설적으로 서로를 너무 잘 안다.

그 토대 위에서 서로 힘을 합쳐 싸울 상황이 되니 엄청난 시너지를 발휘하게 된 것이다.

환수 하나의 힘은 신수보다 약했다. 일족의 힘을 완전히 품었다 해도, 신의 격을 지닌 신수에 비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합공을 통해 피해를 최소화하며 신수에게 야금야금 데미지를 쌓았다.

준혁의 입장에서 보면 답답할 정도로 진도가 느렸다.

평소 마구 들이대던 성격대로 당장 끼어들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준혁은 최대한 인내하며 싸움을 지켜보았다.

그렇게 사흘 밤낮이 흘렀다.

전투는 서서히 결말을 향해 치닫기 시작했다.

까아악-!

황금 까마귀가 긴 울음소리와 함께 날카로운 각도로 솟구쳤다.

휘리리링!

거대한 채찍 같은 무언가가 황금 까마귀의 뒤를 쫓았다.

황금 까마귀가 상대하는 신수는, 대부분의 신수가 그렇듯 괴이한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머리는 하나인데 그 뒤로 삼십여 개의 몸통이 달려 있었다.

준혁이 문어뱀이라고 불렀던 신수였는데, ‘비유일(非唯一)’이라는 이름이었다.

땅에서 비유일을 상대하던 두 마리 환수가 재빨리 달려든다.

하지만 지금까지와 달리 십여 개의 꼬리가 흉포하게 난동을 부리며 그들을 막았다.

그리고 남은 20여 개의 꼬리는 황금 까마귀를 쫓았다.

세차게 날갯짓을 하며 하늘을 나는 황금 까마귀는 잔영이 남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수시로 예리하게 각도를 꺾으며 추적을 피한다.

날갯짓으로 만들어 낸 날카로운 황금색 폭풍이 쫓아오는 꼬리를 휘감는다.

그럼에도 비유일의 추적은 집요했다.

꼬리들끼리 꽈배기처럼 꼬여 날아드는 폭풍을 와해시키거나, 여러 방향으로 흩어지더니 황금 까마귀의 퇴로를 막아 포위한다.

꼬리 끝에서 쉴 새 없이 쏘아져 나간 비침에 황금색 깃털이 흩날렸다.

구식 전투기들의 도그파이팅을 방불케 하는 공중전.

때마침 그 광경을 지켜보던 준혁이 저도 모르게 움찔하며 외쳤다.

“야, 조심!”

그리고 그 말이 신호라도 된 듯, 황금 까마귀를 쫓던 꼬리 중 다섯 개가 갑자기 쭉 늘어났다.

단순한 추적이 아닌 몸통이 길어진 탓에 황금 까마귀가 운신할 폭이 좁아졌다.

그 순간.

-이런!

황금 까마귀의 경악에 찬 외침이 울려 퍼졌다.

길어진 다섯 개의 꼬리가 갑자기 뱀 대가리로 변했다.

아가리를 쩍 벌린 다섯 개의 머리가 황금 까마귀를 집어삼킬 기세로 달려들었다.

신수의 목적은 뻔했다.

백안은 방법을 찾으려 한다고 말했지만, 사실 그 방법이라는 건 너무나 뻔했다.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를 삼키고, 그 영력을 흡수하는 것.

신수들의 목적은 오로지 그것이었다.

지금도 오로지 그 목적에 충실한 움직임.

따다닥!

차례대로 닫힌 다섯 개의 아가리가 섬뜩한 소음을 울린다.

하지만 제대로 황금 까마귀를 삼킨 머리는 없었다.

방금 전까지 황금 까마귀가 있던 자리에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탓이었다.

흑호의 개입이었다.

그리고 그 위로 날카로운 기운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아니, 비가 쏟아졌다. 준혁이 날린 에테르 화살비였다.

푸푸푹!

맹렬하게 쏟아진 화살비가 머리로 변한 비유일의 꼬리를 쉴 새 없이 관통했다.

-크하아악! 도살자!

준혁의 개입을 알아챈 비유일이 버럭 소리를 내질렀지만, 그것이 마지막 단말마였다.

꽈아앙-!

지상에서 비유일을 상대하던 붉은 코끼리가 몸집을 거대하게 부풀려 비유일을 들이받았다.

끝이 아니다.

새하얀 물소의 날카로운 뿔이 놈의 몸통에 구멍을 뚫었고, 황금 까마귀의 깃털이 몸속으로 파고들어 폭발을 일으켰다.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환계에서의 신수는 죽지 않는다.

하지만 싸우는 것도 여의치 않았다.

한 번 밀리기 시작한 비유일은 끝없이 육체를 재생시키면서도 제대로 반격하지 못했다.

결국 마무리는 준혁이었다.

땅을 박차고 뛰어든 준혁의 거대한 철퇴가 묵직한 압력을 끌어안은 채 떨어져 내렸다.

꽈아앙-!

머리의 절반이 터져 나갔다.

하지만 백안과 달리 거대한 몸집의 비유일은 아직 봉인될 때가 되지 않았다.

이 정도 거대한 놈을 그런 상태로 만들기에는 환계보다는 인간계가 낫다.

“어차피 이놈 죽이려면 여기서는 안 돼. 내가 가져가서 죽여 와도 되겠지?”

환수들도 신수의 특징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준혁에게 맡기는 것이 깔끔한 마무리일 터.

황금 까마귀와 붉은 코끼리, 하얀 물소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잠시.”

-무엇을 하려는 것이냐, 도살자.

“어. 죽여 줄게.”

-그만둬라!

비유일이 격렬한 외침과 함께 삼십여 개의 꼬리를 과격하게 휘둘렀다.

하지만 준혁에게는 소용이 없었다.

-가자!

명령과 함께 흑호가 달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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