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받고 각성 더!-205화 (205/240)

-205-

-68장. 환수#1-

-도살자!

준혁의 등장에 신수들이 곧장 반응을 보였다.

“어이구, 다들 오랜만이네?”

-오랜만이구나!

-드디어 네놈을 직접 죽일 수 있게 되었다!

-잘근잘근 씹어 주마!

모든 신수가 하던 일을 멈추고 준혁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한두 마리도 아닌 무려 30마리에 가까운 신수들이었다.

그런 무시무시한 놈들이 인간 하나를 상대로 기세를 뿜어내고 있다.

보통 사람, 아니 아무리 강력한 각성자라도 오금이 저릴 일이다.

하지만 준혁의 표정은 평온하기만 했다.

꽤 먼 거리를 질주한 준혁이 우뚝 발을 멈췄다.

준혁의 맞은편에는 30마리의 신수를 대표하기라도 하는 듯, 한 마리 신수가 홀로 나서 준혁과 마주 보고 있었다.

놈은 지금껏 보아 왔던 신수와는 확연히 다른 외형을 갖고 있었다.

거대한 용, 팔두의 용, 산맥을 얹고 다닐 정도로 거대한 전갈.

하나같이 비범한 외형을 가진 놈들이었다.

그에 반해 지금 준혁 앞에 있는 놈은 매우 평범했다.

한 마리 사자.

크지도 않았다. 동물원에 가면 볼 수 있는 그 정도 크기의 사자였다.

생김새도 딱 사자의 모습이다.

머리가 둘이라거나, 날개가 달렸다거나, 꼬리가 뱀이라거나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런 외형과 달리 놈은 분명 신수였다.

“겨우 너희 수준으로?”

도발적인 준혁의 말에도 놈은 딱히 감정의 기복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놈을 잡기 위해 우리가 힘을 합치기로 했으니까.

“아하! 그래서 제일 찌질했던 놈이 대장 행세를?”

-도발해 봐야 소용없다.

“뭐, 그래.”

준혁과 대거리를 하고 있는 사자 모습을 한 신수의 이름은 ‘백안(百眼)’이었다.

준혁이 손에 쥔 무상곤을 가볍게 휘두르며 말을 이었다.

“되게 궁금한 게 있는데 말이지…….”

-뭐냐?

“너희는 왜 나만 보면 못 잡아먹어서 난리냐?”

배면계 각성자는 준혁 이전에도, 이후에도 있었다.

당연히 배면계에서의 일을 마치고 귀환한 사람들도 있다.

얼마 전까지 로건 베런즈의 무명회에 속해 있던 각성자들이 모두 그런 사람들이었다.

물론 그들의 경우는 준혁과는 조금 다르기는 했다.

준혁은 막강한 개인의 힘으로 혼자 그 일을 수행했고, 그들은 준혁보다 등급은 낮지만 무리를 이루어 전략적으로 신수들을 상대했다.

하지만 신수들을 봉인했다는 결과만큼은 똑같다.

그런데 신수들은 이상하게 준혁만 보면 눈을 까뒤집고 덤벼드는 것이다.

-모욕감.

“모욕?”

-배면계에서 신수와 인간 사이의 싸움은 아주 역사가 길지. 그리고 매번 인간들은 우리를 봉인했다.

“그랬겠지.”

그러니 배면계 소환의 역사가 끊임없이 이어졌으리라.

-하지만 단신으로 우리를 봉인했던 인간은 네가 최초다.

그 말에 준혁이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뭐냐? 날 이렇게 대한 건 네가 처음이다. 뭐 그런 거냐?”

-그건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가 어렵군.

준혁의 썰렁한 농담에 백안이 진지하게 반응했다.

“뭐, 어쨌든 그게 자존심이 상했다 그거잖아?”

-그렇다.

“별 시답잖은 이유로군.”

-인간은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다.

“그래, 알았다. 이 스토커 같은 짐승 놈들아!”

준혁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무상곤이 날카롭게 허공을 갈랐다.

쩌억, 쾅!

섬뜩한 타격음과 함께 백안의 몸뚱이가 땅속으로 그대로 파묻혔다.

-끄악!

파묻힌 구덩이 속에서 백안의 비명이 솟구쳐 올랐다.

백안이 재빨리 구덩이에서 튀어나왔지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준혁의 올가미 같은 손아귀였다.

-이놈!

당황한 백안이 황급히 고개를 내저어 보지만, 백안의 갈기를 그러쥔 준혁의 손은 풀리지 않았다.

당황한 백안이 재빨리 영력을 끌어 올렸다.

그 순간 준혁의 무상곤이 백안의 두개골을 후려쳤다.

빠악!

-이, 이건!

백안이 흔들리는 눈으로 준혁을 보았다.

-멈춰라, 도살자!

-죽어라!

백안 뒤에 모여 있던 거대한 신수들이 준혁을 향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가장 선두에서 몸을 날린 것은 온몸이 불꽃의 깃털로 싸여 있는 거대한 한 마리 새였다.

거센 불길을 휘감은 채 입을 벌릴 때마다 혀 대신 불길이 날름거린다.

뱀의 머리에 세 쌍의 날개를 가진, 새라기보다는 공룡 도감의 익룡 같은 느낌의 거대한 날짐승이 그 뒤를 따랐다.

지상에서 달려드는 놈들도 당연히 있었다.

쿠쿠쿠쿵!

거의 10미터는 될 법한 키에 온몸에 팔이 돋아 있는 거인 같은 고릴라를 필두로 괴이하게 생긴 신수들이 달려들었다.

역시나 가장 먼저 달려든 놈은 하늘을 날아온 불의 새.

쩍 벌린 부리에서 무시무시한 화염이 쏟아졌다.

뻐어어억!

하지만 둔탁한 파륙음과 함께 불길이 허공에서 끊어졌다.

불의 새는 무언가에 얻어맞은 듯 저 멀리 날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불의 새가 머물던 그 자리에는 전혀 다른 새 한 마리가 떠 있었다.

황금색 깃털을 지닌 거대하기 짝이 없는 한 마리 까마귀였다.

-우리의 땅을 유린한 놈은 우리가 응징한다.

준혁은 한 손으로는 여전히 백안의 갈기를 틀어쥔 채 하늘을 쳐다보며 눈을 끔뻑거렸다.

분명 준혁과 이야기를 나눴던 황금 까마귀가 맞다.

그런데 아까 보았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영력을 내뿜고 있었다.

끼아아아-!

통렬한 외침과 함께 날렵한 비행을 시작한 황금 까마귀가 불의 새와 허공에서 얽혔다.

허공에서 거대한 폭음과 불꽃이 쉴 새 없이 터져 나갔다.

그뿐만이 아니다.

붉은 곰이 지상에서 달려들던 고릴라의 진로를 막았다.

검은 호랑이가 돌진해 오는 신수들의 대열 틈으로 날렵하게 파고들었고, 푸른 늑대가 무시무시한 폭풍을 앞세우며 돌격했다.

-뭐냐, 이거?

준혁이 조금 당황한 표정으로 신수와 환수의 싸움을 지켜보았다.

분명 아까 보았던 환수와 지금 싸우는 환수는 같은 놈이었다.

하지만 달랐다.

가진 힘이, 내뿜는 영력이 차원을 달리했다.

대답은 청랑에게서 나왔다.

-환계의 환수가 가진 고유의 힘입니다.

-어떤?

-왕은 제 일족을 품을 수 있습니다. 왕은 일족을 품으면서 강력한 힘을 얻게 됩니다.

그 말에 준혁이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어?”

수없이 많았던 환수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준혁의 머릿속에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떠올랐다.

-설마 흡수하는 거냐? 잡아먹는다거나?

-하하하, 주인님의 상상력이 대단하군요. 아닙니다. 품에 안은 일족은 싸움이 끝나면 다시 내보낼 수 있습니다.

-신기하네.

환수의 이름에 괜히 환상을 뜻하는 ‘환(幻)’ 자가 쓰인 건 아닌 모양이었다.

‘이 정도면…….’

준혁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이 정도면 시스템을 상대할 때도 충분히 도움이 되리라.

“음!”

그때 준혁 앞에서 거대한 영력이 퍼져 나갔다.

황급히 시선을 돌리니 백안에게서 영력이 풀썩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하늘과 땅에 있던 신수들의 움직임이 돌변했다.

신수들이 일제히 뒤로 물러나더니 빠르게 대열을 만들었다.

전투의 양상도 순식간에 변했다.

처음에는 신수 하나가 서넛의 환수를 각각 상대했다.

하지만 지금은 대열을 이루고 그런 싸움을 하지 않는다.

횡으로 대오를 이뤄 전체적으로 밀어내고, 측면으로 우회한 신수가 빠르게 치고 빠지기를 반복한다.

횡의 대열 한가운데가 일제히 물러나 환수들을 끌어들이고, 양쪽 끝이 밀고 들어온 환수들을 감싸 포위한다.

하늘을 나는 신수들이 지상의 환수를 습격하고, 지상의 신수가 하늘에 있는 환수의 뒤를 잡는다.

겨우 30마리에 불과하지만 그 막강한 힘과 일사불란한 전술에 상황이 순식간에 역전되었다.

이는 신수들을 다루는 지휘관이 존재한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준혁이 말했다.

“가만히 있어라!”

빠아악!

준혁의 주먹이 백안의 뇌를 뒤흔들었다.

백안은 이름 그대로 수없이 많은 눈을 가진 신수였다.

생김새와 전혀 연관이 없는 특성을 가진 신수였는데, 이 ‘눈’은 실체가 있는 눈이 아니었다.

놈이 원하는 장소, 원하는 각도에서 모든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자신의 생각을 다른 존재에게 전달하는 것이 가능했다.

쉽게 말해 유민섭이 가진 ‘지휘권’과 유사한 권능이었다.

신수들의 움직임이 돌변한 것도 백안의 지휘로 인한 것이었다.

이런 때에는 지휘관만 무너트리면 문제가 사라진다.

바닥을 나뒹군 백안과 준혁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준혁의 무상곤이 허공을 뒤덮고, 묵직한 타격이 백안의 몸뚱이로 쏟아졌다.

-네, 네놈이 어떻게?

백안이 기겁한 표정으로 준혁과 거리를 벌렸다.

처음 그냥 잡혀 준 것은 어디까지나 준혁을 속이기 위해서였다.

아무리 강하다 해도 겨우 인간이었다. 원한다면 언제든 준혁의 손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것이 오판이었다.

어디로 움직여도 이미 그 방향에 준혁이 자리 잡고 있었다.

권능을 쓰려고 할 때마다 날아든 준혁의 타격이 절묘하게 영력의 흐름을 끊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준혁이 사용하는 힘이었다.

-근원이라니!

백안의 눈동자가 충격으로 뒤흔들렸다.

자신들도 얻지 못한 근원을 일개 인간이 사용한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준혁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떠올랐다.

“시스템이 안 가르쳐 주든?”

-시스템? 법칙을 말하는 것인가?

“그렇지.”

-그 말은……. 놈은 네가 근원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뜻인가?

“그러니까 하는 말.”

-감히 우리를 기만하다니!

백안의 두 눈에 짙은 분노가 떠올랐다.

백안은 빠르게 영력을 끌어 올렸다. 얼른 이 사실을 다른 신수들에게 알려야 했다.

빠아아악!

하지만 곧장 날아든 준혁의 공격이 백안의 영력 흐름을 끊어 놓았다.

“그건 안 되지.”

-네놈!

크하아아!

신수와 환수의 전장에서 거대한 포효가 몰아쳤다.

백안의 지휘가 사라지자마자 신수들의 대열은 순식간에 와해되었다.

백안의 지휘에 따라 움직였던 경험을 살려 보려 했지만, 애초에 협동이라는 말 자체를 모르는 놈들이었다.

제대로 된 지휘관이 없이는 결코 그런 일을 할 수가 없다.

싸움은 순식간에 다시 원래의 양상으로 되돌아갔다.

준혁과 백안은 여전히 대치 상태로 서로를 노려보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준혁은 ‘탐색’을 통해 백안을 살피고 있었다.

이제 에테르를 다루고 있지만 스킬은 여전히 사용할 수 있기에 문제가 없다.

그 상태로 준혁이 물었다.

“그런데 여기는 무슨 일이냐?”

-우리의 목적은 언제나 하나지.

그것에 대해서는 준혁도 알고 있었다.

신이 되는 것.

격을 얻어 유사한 상태가 되는 것이 아닌, 진짜 신이 되는 것이다.

“환계에 오면 그게 가능한가?”

-방법을 찾는 것이다. 나는, 우리는 이곳 환계에 그 해답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랬군.”

준혁이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백안이 땅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묵직하게 휘두른 앞발이 준혁의 가슴팍을 두드렸다.

물론 준혁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팡, 파팡!

거듭 공격을 이어 가 보지만 번번이 준혁의 손길에 막혔다.

그 대신 준혁의 무상곤은 야무지게 백안의 몸뚱이를 두드렸다.

“아, 확인할 게 있는데 말이지…….”

-확인?

“어. 이런 거.”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준혁의 무상곤이 날카로운 한 자루 칼로 형태를 바꿨다.

슈욱!

섬뜩한 바람 소리와 함께 허공을 가르는 묵색의 칼.

스걱!

가벼운 마찰음과 함께 허공으로 떠오른 것은 백안의 오른쪽 앞발이었다.

콰콰콱!

황급히 물러난 백안이 남은 세 개의 발로 땅을 받쳤다.

그 상태로 준혁이 물었다.

“여기 환계에서도 죽냐?”

백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잘려 나간 부위에 새로운 발이 돋아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 모습을 본 준혁이 슬쩍 인상을 찡그렸다.

“쯧! 사람 번거롭게 만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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