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받고 각성 더!-200화 (200/240)

-200-

-66장. 새 판 짜기#3-

또 한 번 폭음이 휘몰아쳤다.

하지만 두 번째 싸움, 준혁이 대율의 사체를 무기로 변형시킨 후 붙은 싸움은 생각보다 빠르게 소강상태를 맞이했다.

“큿!”

시스템이 푸스스 흩어지는 다리를 잘라 냈다.

이번에도 잘린 자리에서 다시 새로운 다리가 돋았다.

그 모습을 지켜본 준혁이 묘한 미소를 머금은 채 물었다.

“야,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맥락 없는 이야기에 시스템이 도끼눈을 뜨고 준혁을 노려보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감정 표출 방법이 진화하는 것 같다.

금속으로 빚어 낸 것 같은 얼굴에 저 정도로 인간적인 감정이 표현된다는 게 꽤 보면 볼수록 신기하다.

시스템이 노려보거나 말거나 준혁은 자신의 말을 이어 갔다.

“모가지가 잘리면 몸에서 머리가 돋아나냐, 머리에서 몸이 돋아나냐?”

“뭐?”

시스템의 목소리가 한층 더 날카로워졌다.

하지만 준혁이 그런 걸 아랑곳할 성격이 아니다.

“아, 몸에서 머리가 돋아나면 머리는 장식이라는 말이잖아? 아무리 그래도 네 머리가 장식은 아닐 테니, 머리에서 몸이 돋아나겠네.”

혼자 질문을 던지고, 혼자 답을 하면서 있는 대로 약을 올린다.

“네놈이 감히 나를…….”

시스템이 으르렁거리며 위협적으로 말했지만, 그마저도 준혁이 끊어 버렸다.

“뭐, 다 상관없지. 이참에 전부 조지면 되잖아!”

부우웅!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준혁의 신형이 시스템을 향해 쇄도했다.

하지만 육모방망이에 걸려드는 것은 없었다.

준혁이 달려들기 전에 시스템이 이미 거리를 벌린 탓이었다.

“이야, 겁도 먹고 그러나 보다?”

시스템은 더 이상 준혁의 말에 대거리를 하지 않았다.

특별히 토론을 하는 것도 아닌 도발성 발언에 대답할 이유를 느끼지 못했다.

시스템의 온 신경은 준혁의 손에 들린 육모방망이에 집중되어 있었다.

‘성가시군.’

단순히 성가신 정도가 아니다.

준혁은 무슨 짓을 했는지 갑자기 능력이 대폭 향상돼 자신과 막상막하의 능력을 갖게 됐다.

거기에 저 무기까지 더해지니 지금으로서는 뾰족한 수가 없었다.

준혁의 손에 들린 육모방망이, 저게 도대체 뭔지 모르겠다.

‘그런 장치가 숨겨져 있을 줄이야…….’

배면계 시스템을 흡수했고, 그 과정에서 배면계 시스템이 무언가를 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지금 눈앞에 있는 준혁이었다.

‘타이밍이 좋지 않았어.’

확실히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뭔가 어긋난 것이 너무 많았다.

첫 번째는 당연히 배면계 시스템의 잠복 장치였다.

잠복이라는 표현대로, 그것이 시스템 내부를 샅샅이 훑는 동안 던전 시스템은 그것을 인지하지 못했었다.

두 번째 어긋남은 준혁의 추가 각성이었다.

던전 시스템은 준혁의 추가 각성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단순히 보지 못하는 곳에서 이루어진 일이라 몰랐던 게 아니다.

로건 베런즈나 야마모토 테츠야와 접촉했을 때도 알지 못했다.

이 역시 배면계 시스템의 잠복 장치와 연관이 있었다.

던전 시스템이 준혁의 추가 각성을 눈치챈 것은, 좀 더 시간이 지나 미구엘 페레스를 죽이려 할 때였다.

그리고 이때도, 준혁의 추가 각성은 눈치챘지만 정보를 볼 수는 없었다.

‘그때 죽였어야 하는데…….’

후회되는 일이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당시에는 던전 시스템이 직접 관여하여 준혁을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배면계 시스템을 완전히 흡수하기 위해 링크를 열어 놓은 때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는 동안 준혁은 성장을 거듭했다.

그리고 던전 시스템이 준혁이라는 존재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게 된 계기는 다름 아닌 대율의 말이었다.

대율이 언급한 ‘신의 권능’이라는 말 때문에 위기감을 느꼈다.

만상만투의 사체가 에테르를 머금고, 에테르 덩어리로 변했다는 것 또한 던전 시스템은 몰랐다.

그것이 세 번째 어긋남이었다.

그렇게 어긋남이 중첩되면서 여기까지 왔고, 준혁은 위협적인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시스템은 지금도 준혁의 손에 들린 육모방망이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했다.

배면계 시스템의 잠복 장치가 무슨 짓을 한 것인지, 저 육모방망이의 구조를 들여다보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준혁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뭘 그리 멍 때리고 있냐? 마저 해야지?”

준혁은 이번에도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덤벼들었다.

시스템은 재빨리 몸을 움직이며 준혁의 공격을 피하는 데 모든 신경을 쏟아부었다.

‘조정만 완벽하게 끝난다면…….’

그때가 되면 또 어찌 될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피하는 게 최선.

전혀 다른 양상의 싸움이 이어졌다. 그러는 동안 시스템은 냉정하게 결정을 내렸다.

‘때가 아니다.’

조정만 완벽하게 끝난다면 충분히 준혁을 죽일 수 있었다.

투쾅!

강렬하게 쏘아 낸 빛 덩어리가 준혁과 시스템 사이를 갈랐다.

“야, 그거 소용없다니까?”

가뿐하게 공격을 피한 준혁이 다시 덤비려는 찰나.

“다음번에는 꼭 죽여 주마!”

시스템이 그 말을 끝으로 빠르게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참 식상하기도 하네.”

준혁은 시스템이 사라진 자리를 보며 마지막 말에 대한 감상을 늘어놓았다.

그때 릴리안 우드와 리아 클레르가 다급하게 준혁을 향해 달려왔다.

“괜찮습니까?”

걱정스러운 릴리안 우드의 표정과 복잡한 표정의 리아 클레르를 보며 준혁은 어깨를 한 번 으쓱거렸다.

그리고 오른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준비해요.”

“네? 뭘 준비…….”

하지만 준혁은 이번에도 두 사람의 의사를 확인하지 않았다.

그리고 두 사람의 재각성이 진행되었다.

과정은 배면계에서 귀환한 10명과 똑같았다.

다만 이번에는 영력이 없기에 마나만 에테르로 치환되었다는 점이 달랐다.

그렇게 별다른 일 없이 재각성이 마무리되었다.

“이, 이건 뭐죠?”

“야, 무슨 짓을 한 거야?”

한 사람은 질문을 하고, 한 사람은 따지듯 화를 냈다.

릴리안 우드와 리아 클레르의 말이었다.

다른 말이었지만 내용도, 그 속에 깃든 감정도 똑같았다.

갑작스러운 재각성에 당황했고, 비어 버린 상태창에 놀랐다.

준혁이 잔뜩 힘을 주고 있던 어깨를 축 늘어트리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후우, 이제 좀 살겠네.”

사실 준혁의 상태는 거의 한계치에 달해 있었다.

하지만 그런 기색을 비쳤다가는 시스템에게 죽게 될 거라는 걸 알기에 억지로 버티고 있었다.

그리고 시스템이 도망친 후에도 안심할 수 없었다.

릴리안 우드와 리아 클레르 두 사람의 존재 때문이었다.

시스템은, 시스템 융합 때문에 기존의 던전 각성자들과의 연결은 끊어진 상태였다.

하지만 눈앞의 두 사람은 달랐다.

던전 관리자, 던전 시스템과는 에테르 장치로 직접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곧장 주저앉지도 못했다.

시스템이 이 두 사람을 통해 자신의 상태를 살펴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재각성을 마치고, 던전 시스템과의 연결을 끊어야만 놈의 눈을 완전히 가릴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이 그 시점이었다.

“어, 어어!”

릴리안 우드가 당혹성을 뱉으며 황급히 앞으로 나섰다.

쿵!

준혁이 기절하듯 그대로 쓰러져 버린 탓이었다.

“뭐, 뭐야?”

“정신 차려요!”

하지만 준혁은 한참이나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준혁이 눈을 뜬 것은 무려 다섯 시간이 지난 후였다.

“밥! 먹을 거!”

그리고 눈을 뜨자마자 요구한 것은 음식이었다.

강렬한 허기가 뇌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종이 한 장 들 수 없을 정도로 지독한 탈력감과 무력감에 일단은 칼로리부터 요구했다.

릴리안 우드가 급하게 음식을 찾아다 날랐고, 준혁은 거의 10인분에 달하는 음식을 먹어 치운 후에야 겨우 안정감을 찾을 수 있었다.

‘엉뚱한 부작용이 있네?’

새로운 시스템을 얻기 전 준혁이 갖고 있던 ‘몰아일체’의 부작용은 폭주였다.

날뛰는 기운을 안정시켜야 하기에 주변 사람들을 위험하게 만들 수 있다는 부작용이 있었다.

그런 ‘몰아일체’의 부작용이 새로운 시스템을 적용시키면서 사라졌다. 하지만 ‘몰아일체’는 가지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강한 힘을 낼 수 있게 해 주는 스킬이었다.

그 반작용이 아예 없을 수 없었다.

그 부작용이 ‘허기’라는 형태로 나타난 것이었다.

겨우 숨을 돌린 준혁이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정신을 잃기 전에 손에 쥐고 있던 육모방망이가 사라져 있었다.

준혁의 생각을 읽은 릴리안 우드가 말했다.

“손에 쥐고 있던 방망이는 갑자기 입자가 되더니 흩어졌어요.”

“아, 알겠습니다.”

사실 예상했던 일이기는 했다.

‘몰아일체’를 사용한 준혁의 몸이 버티기 힘들었던 것과는 별개로, 육모방망이도 한계 상태였다.

대율의 사체는 에테르화(化)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 상태에서 억지로 무기로 만들었기에 사용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아니, 에테르화가 완전히 마무리된 만상만투의 사체로 만들었어도 한계는 분명히 존재했다.

정확하게는 사용 횟수에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준혁의 표현대로 숙성이 끝나지 않은 대율의 사체로 만든 무기인지라 사용 가능 횟수가 현저하게 적었다.

그래도 꽤 만족스러운 일이었다.

‘괜찮네.’

시스템을 상대할 수 있는 아주 좋은 무기를 얻었다.

무기라기보다는 스킬에 속했다.

재료가 가지고 있는 에테르를 이용해 스킬을 펼치는 방식이었다.

스킬의 이름은 ‘와해(瓦解)’.

‘와해’는 시스템 내부에 에테르를 밀어 넣어, 놈의 육체를 구성하고 있는 구조를 무너트리는 스킬이었다.

배면계 시스템의 잠복 장치가 만들어 낸, 던전 시스템에 대항할 가장 치명적인 무기인 셈이었다.

일단 한숨 돌린 준혁이 릴리안 우드와 리아 클레르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길고 긴 설명을 들은 두 사람의 첫 번째 감정은 안도감이었다.

각성자에게 각성으로 얻은 스탯과 스킬은 목숨만큼 소중한 것이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설명을 모두 들은 릴리안 우드가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갑자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

“왜 그래요?”

“아직 유효한데요?”

“유효?”

준혁이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릴리안 우드가 손을 뻗었다.

그와 동시에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 갑자기 게이트가 떠올랐다.

던전 관리자들의 고유 스킬인 ‘게이트 오픈’이었다.

“어?”

준혁이 기겁한 얼굴로 게이트를 보았다.

‘게이트 오픈’을 사용할 수 있다는 건, 아직 던전 시스템의 영향력이 유효하다는 의미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준혁 씨도 던전 관리자잖아요. 확인 안 해 봤나요?”

“아니, 그건…….”

그리 크지는 않지만, 재각성의 단점은 이것이었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스킬이 상태창에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직접 그것을 찾아봐야 했다.

준혁은 흑호의 ‘도약’도 있는 데다 ‘게이트 오픈’은 사용하면 안 된다는 인식이 있어 해 볼 생각도 하지 않았었다.

릴리안 우드의 경우는 매우 중요하고 자주 사용했던 스킬이니 그것부터 확인했던 것이다.

준혁은 재빨리 ‘시스템 운영’ 스킬을 이용해 ‘게이트 오픈’에 대해 살폈다.

자신도 그것을 사용할 수 있는지, 그리고 사용했을 경우 던전 시스템과 연결될 우려는 없는지.

한참을 그렇게 들여다본 후, 준혁이 밝은 얼굴로 말했다.

“하, 이거 상황이 재미있게 흘러가는데?”

“네?”

준혁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릴리안 우드가 되묻는다.

그리고 준혁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말을 꺼냈다.

“이거 잘 이용하면 완전히 새로운 판을 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리아 클레르도 답답한 표정으로 묻는다.

하지만 준혁은 대답 대신 몸을 일으키며 흑호를 불렀다.

“일단 우리 편끼리 모여서 이야기하기로 하죠.”

지금은 ‘게이트 오픈’보다는 흑호의 ‘도약’이 편리했다.

준혁과 릴리안 우드, 리아 클레르는 곧장 서울에 있는 혼원 길드의 회의실로 이동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