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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장. 새 판 짜기#2-
그그극!
내뻗은 준혁의 팔 근육이 푸들푸들 떨리고 있었다.
“대단하긴 대단하네?”
준혁은 경직된 얼굴에 애써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확실히 무서운 놈이었다.
불과 하루 전에 맞붙었을 때만 해도 이기기 버거운 수준이었다.
비관적으로 잡아도 절대 지지는 않을 상대였다.
그런데 그 시간 동안 ‘조정’이라는 걸 한 것인지, 지금은 절대 이길 수 없는 상대가 되어 있었다.
그저 가볍게 손을 들어 뻗은 주먹의 진로를 막았을 뿐이었다.
딱히 강력한 힘에 대비해 방어한다는 느낌도 없다.
굳이 비유하자면, 갑작스러운 바람에 반사적으로 얼굴을 가린 정도의 느낌이었다.
딱 그 정도 느낌으로 가볍게 들어 올린 손바닥에, 준혁이 온 힘을 다해 내지른 주먹질이 가로막혔다.
전력을 다해 밀어 보지만, 주먹은 단 1밀리미터도 뻗지 못했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피지컬이었다.
온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을 정도였다.
금속의 표면과 같은 질감으로 이루어진 시스템의 눈동자가 준혁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무감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서둘러 죽여 놓아야겠구나.”
빠악!
준혁의 얼굴이 튕기듯 밀려나고, 그에 따라 몸이 완전히 날아가 바닥에 처박혔다.
“큭!”
준혁은 억눌린 신음을 집어삼키며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안 보였다.’
날아오는 시스템의 주먹은 준혁의 감각으로도 잡을 수 없었다.
주르륵!
코피가 터져 붉은 핏방울이 바닥으로 후드득 떨어져 내렸다.
“하!”
준혁은 저도 모르게 크게 미소를 지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흘러내리는 코피를 소매로 훔치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와, 코피 터진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네?”
애써 너스레를 떨며 웃어 보였다.
하지만 떨리는 손발을 숨기기 위한 위장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더욱 무서운 사실은 놈의 ‘조정’이라는 게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일단 지금 놈을 상대할 방법을 고민해야 했다.
여유로운 표정을 유지하며 말을 걸어 보았다.
“그 조정이라는 건 언제…….”
쉬익!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날카로운 바람이 준혁이 서 있던 공간을 갈랐다.
미리 대비를 하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단번에 몸이 두 동강이 났을지도 모른다.
“거 말하는데 치사…….”
다시 말을 걸어 보지만, 시스템은 준혁과 대화를 나눌 생각이 없어 보였다.
슉, 슈슉!
날카로운 바람이 쉴 새 없이 공간을 가르고, 찔렀다.
준혁은 미친 듯이 땅을 박차며 시스템의 공격을 피했다.
몇 번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벌써 숨이 차올랐다.
이대로 있다가는 확실하게 죽는 수밖에 없었다.
“몰아일체!”
어느새 꺼내 든 무상곤이 새하얀 빛으로 변하더니 준혁의 몸속으로 밀려 들어갔다.
무상곤만이 아니다.
입고 있던 묵린갑도, 허리에 걸고 있던 묵룡삭과 묵룡비까지 모두 빛으로 변해 준혁에게 흡수되었다.
“크읏!”
갑작스레 넘쳐 오르는 거대한 힘에 준혁이 저도 모르게 몸을 비틀거렸다.
기회를 놓칠 시스템이 아니었다.
준혁의 발이 멈춘 찰나를 놓치지 않고 손을 뻗었다.
투쾅!
손바닥에서 발출된 강렬한 빛 덩어리가 마치 화포를 쏘는 듯한 소음과 함께 쏘아져 나갔다.
콰앙-!
거대한 폭발이 터져 나왔다.
사방으로 압력이 휘몰아치고, 흙먼지가 폭발하듯 비산했다.
“준혁 씨!”
멀리서 싸움을 지켜보던 릴리안 우드가 기겁하며 외쳤다.
하지만 걱정도 잠시.
“거 좀만 늦었으면 세상 하직할 뻔했네.”
여전히 여유로운, 혹은 여유로움을 가장한 준혁의 목소리가 자욱한 먼지 속에서 새어 나왔다.
먼지 속에서 여유로운 발소리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준혁은 아주 멀쩡했다.
입고 있던 옷이 넝마처럼 변하기는 했지만, 몸에는 상처 하나 없다.
키하아악!
옷이 터져 나가는 바람에 팔뚝에 감겨 있던 적사가 모습을 드러낸 상태로 사납게 바람 소리를 냈다.
그리고 날카로운 두 개의 송곳니를 준혁의 손등에 박아 넣는다.
적사의 영력으로 준혁의 영력을 자극해 위력을 증폭시키는 기술, ‘전이’였다.
물론 지금은 영력이 아니었다.
자연이 품고 있는 근원적인 에너지, 준혁이 ‘기(氣)’ 혹은 ‘기운’이라 불렀었던 에테르였다.
새로운 시스템의 관리 권한을 얻으면서 준혁에게 찾아온 가장 큰 변화가 바로 이것이었다.
몸속의 영력과 마나가 합쳐져 에테르로 치환된 것.
이는 대율의 근원에서 에테르를 받아들일 당시의 변화, 마나와 영력을 다시 원형인 에테르로 변화시켰던 그 일과 관련이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준혁이 ‘관찰자’로 추가 각성을 했을 때부터 준비되어 있던 일이었다.
그리고 준혁의 ‘관찰자’로의 각성은 당연히 던전 시스템에 스며든 배면계 시스템의 안배였다.
무상곤과 묵린갑 등 준혁의 장비가 ‘몰아일체’로 준혁에게 흡수될 때, 원래 갖고 있던 묵색의 영력이 아닌 하얀빛으로 변한 것도 에테르의 영향이었다.
그리고 준혁과 계약 관계로 묶여 있던 네 마리 환수 역시 지금은 영력이 아닌 에테르를 품고 있었다.
“이제 좀 해 볼 만하겠다. 그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준혁이 땅을 박찼다.
꽈앙!
굉음과 함께 시스템의 몸뚱이가 과격하게 튕겨 나갔다.
한참을 튕겨 나가 바닥을 나뒹구는 시스템을 보며 준혁이 과장되게 팔을 휘두르며 말했다.
“아, 이제 좀 해 볼 만하네.”
그사이 몸을 일으킨 시스템이 다시 준혁을 향해 달려들었다.
쾅, 콰쾅!
과격한 소음과 함께 사방으로 압력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둘의 전장은 점점 그 범위를 넓혀 갔다.
카잔시는 여전히 릴리안 우드와 리아 클레르의 조직에서 통제권을 갖고 있었기에 그들은 이미 대피를 한 후였다.
남아 있는 사람이라고는 릴리안 우드와 리아 클레르 단 두 사람.
그리고 두 사람은 아직 던전 관리자의 지위를 갖고 있기에 여차하면 ‘회피’로 피할 수 있었다.
시스템은 원래 사람들의 피해를 신경 쓰지 않았으니 상관이 없었고, 준혁에게는 매우 적절한 전장.
빠박!
허공에서 교차한 두 개의 주먹이 각각 서로의 얼굴을 후려갈긴다.
슬쩍 상체를 숙이며 시스템의 품으로 파고 들어간 준혁의 팔꿈치가 시스템의 턱을 쳐올렸다.
강렬한 타격에 시스템이 백덤블링을 하듯 훌쩍 몸을 뒤집어 충격을 해소한다.
그리고 그 와중에 세차게 발을 뻗어 준혁의 턱을 차올렸다.
동시에 한 방씩, 한 방을 치면 또 한 방을 반격한다.
주고받은 한 방 한 방이 폭탄을 터트린 듯 무시무시한 위력이었다.
가끔 빗나간 손발이 지면이나 건물을 두드릴 때마다 땅에 거대한 크레이터가 생기고, 건물이 산산이 부서져 나갈 정도였다.
그런 위력의 타격을 쉴 새 없이 내뻗는 것도, 그것을 맞으며 버티는 것도 이미 인간의 영역은 벗어났다.
그렇게 백여 합을 주고받았을 때였다.
수평으로 휘두른 준혁의 정석 같은 훅이 시스템의 안면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그 순간 시스템이 한 걸음 준혁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장렬하게 허공을 가른 준혁의 주먹이 묵직한 바람 소리를 끌어안는 순간, 품으로 파고든 시스템의 주먹이 정확하게 준혁의 안면을 가격했다.
꽈앙-!
완벽에 가까운 크로스 카운터.
그대로 튕겨 나간 준혁이 총구를 떠난 총알처럼 직선으로 날아갔다.
“음?”
그런데 의혹 어린 소음을 뱉은 쪽은 오히려 시스템이었다.
주먹에 느껴지는 묘한 가벼움.
그리고 떠밀려 날아가는 준혁의 궤적에 희미하게 흩어지고 있는 푸른 스파크.
황급히 땅을 박차며 날아가는 준혁을 쫓던 시스템의 얼굴에 당혹스러운 표정이 떠올랐다.
“이놈이 감히!”
준혁의 노림수였다.
일부러 크로스 카운터를 맞아 주었다. 그러면서 두 발로 땅을 박차고, ‘천뢰보’까지 적용시켜 몸을 밀어낸 것이었다.
그 목적지는 다름 아닌 대율의 사체가 잠들어 있는 수직의 통로였다.
준혁과 시스템이 움직이는 속도는 인간의 영역을 초월했다.
그런데 지금 준혁이 움직이는 속도는 그마저도 넘어선 상태.
시스템이 이를 악물고 준혁을 쫓았지만, 준혁은 이미 대율의 사체를 향해 빠르게 낙하하고 있었다.
“훕!”
준혁은 곧장 대율의 사체에 손바닥을 대고 숨을 멈췄다.
여유 부릴 틈이 없었다.
지금 번 시간은 정말 아주 약간의 시간이었다.
“멈춰!”
수직 통로의 모서리를 박차며 바닥을 향해 내리꽂히는 시스템의 신형.
정말 시간이 없었다.
지이잉-!
손바닥을 통해 흘려 넣은 에테르에 거대한 대율의 사체가 반응하며 순식간에 쪼그라들었다.
“죽어라!”
시간이 없다고 판단한 시스템이 두 손을 쭉 내밀었다.
투콰쾅!
강렬한 빛 덩어리가 포탄처럼 준혁을 향해 쏘아졌다.
시스템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연달아 다섯 개의 빛 덩어리를 쏘아 내고, 그것으로도 부족해 통로 벽을 박차고 준혁을 향해 쏘아져 갔다.
통로 내부가 과격한 폭발에 휩싸였다.
자욱한 흙먼지가 태양빛을 완전히 차단하고, 통로 바닥을 순식간에 암흑으로 물들었다.
그 속에서도 시스템은 준혁의 위치를 정확하게 가늠했다.
세차게 뻗은 주먹질이 준혁의 뒤통수를 정확하게 노렸다.
콰앙-!
굉음이 울렸고, 둔탁한 소음이 통로 벽을 쉴 새 없이 두드렸다.
“이런!”
시스템이 와락 인상을 구겼다.
주먹을 뻗은 것은 시스템 자신이었지만, 오히려 자신이 튕겨 날아간 것이었다.
그런 준혁의 손에는 단단해 보이는 육모방망이가 하나 들려 있었다.
원래 갖고 있던 무상곤이 아니었다. 방금 전 대율의 사체를 이용해 만들어 낸 물건이었다.
“숙성이 덜 됐지만 충분히 쓸 만한데?”
싸움을 시작한 후, 처음으로 준혁의 목소리에 여유가 생겼다.
투콰콰쾅!
시스템이 연달아 빛 덩어리를 쏘아 내고, 재빨리 땅을 박차 몸을 뽑아 올렸다.
준혁 또한 날아드는 빛 덩어리를 피하며 수직 통로를 벗어났다.
10미터가량 거리를 벌리고 인간과 시스템이 다시 대치했다.
“남의 눈에 눈물 내면, 제 눈에서는 피눈물 나는 법이거든?”
준혁이 육모방망이를 가볍게 휘두르며 말했다.
“무슨 소리냐?”
“네가 배면계 시스템을 잡아먹는 바람에, 배면계 시스템이 널 죽이려고 칼을 갈았잖아.”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준혁이 시스템을 향해 달려들었다.
연거푸 휘두르는 육모방망이의 궤적에 시스템이 황급히 몸을 움직이며 그것을 피했다.
하지만 현재 둘의 육체적 능력은 백중지세, 영원히 피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부웅!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각도로 날아드는 육모방망이.
시스템이 황급히 팔뚝으로 그것을 막았다.
콰앙-!
굉음과 함께 시스템의 몸뚱이가 주르륵 밀려 나갔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시스템의 오른쪽 팔뚝이, 정확하게는 육모방망이를 막은 그 부위부터 바스러지며 흩어지고 있었다.
수웅!
시스템이 황급히 왼손을 움직여 오른팔을 뜯어냈다.
그러자 뜯어낸 자리에서 금속 느낌의 덩어리가 솟구치며 새로운 오른팔을 형성해 낸다.
“거 도마뱀 같은 놈일세?”
“네놈…….”
시스템이 와락 인상을 구겼다.
반짝이는 금속으로 이루어진 얼굴에 떠오른 표정이 이상하게도 아주 인간적인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보며 준혁은 한층 더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이제 좀 해 볼 만하다. 그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준혁은 또 한 번 놈을 향해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