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받고 각성 더!-196화 (196/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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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장. 개벽#4-

“혁아!”

김준석이 기겁하며 땅을 박찼다.

순식간에 뽑아 든 새하얀 무상곤이 커다란 궤적을 그리며 미구엘 페레스를 향해 뻗어 갔다.

파앙-!

“큭!”

폭음과 동시에 되돌아온 거대한 반탄력이 김준석을 밀어냈다.

“무슨 짓이야!”

버럭 고함을 치는 김준석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역력했다.

김준석을 밀어낸 사람이 다름 아닌 준혁이었기 때문이다.

-형, 물러나.

‘감응’으로 말을 거는 준혁은 머리카락이 그슬리고, 입고 있는 묵린갑 곳곳에 검댕이 잔뜩 묻어 있는 낭패한 몰골이었다.

-무슨 소리야?

-잘못 덤비면 형 죽어.

-뭐?

-나도 좀 버거울 것 같거든.

-그게 무슨?

김준석이 또 한 번 기겁한 표정을 지었다.

동생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다. 객관적으로 따져 봐도 지금 준혁을 능가할 인간은 이 지구상에 없었다.

그런 준혁의 목소리에서 자신감이 사라져 있었다.

신수마저도 손쉽게 끝낸 인류 최강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 하기에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내용이다.

-이 새끼, 사람 아니야.

준혁이 ‘감응’을 통해 건넨 말을 듣기라도 한 듯, 미구엘 페레스의 외형이 순식간에 변했다.

온통 새하얀 빛에 뒤덮인, 죽음 직전에 갖췄던 그 모습이다.

-야, 그래도…….

-형수랑 지유 생각은 안 하냐, 이 인간아?

준혁의 호통에 김준석이 저도 모르게 움찔 한 걸음 물러섰다.

준혁의 말이 이어졌다.

-버겁다고 했지, 진다고는 말 안 했다. 그러니 형은 있어 봐야 방해되니까 좀 빠져.

-진짜지?

-안 될 것 같았으면 벌써 형 데리고 튀었어. 나 그렇게 쉽게 목숨 안 건다.

적어도 그 말은 믿을 수 있었다.

-알았다.

말을 마친 김준석이 빠르게 땅을 박찼다.

괜히 안 가겠다고 버텨 봐야 준혁이 흑호를 동원해 자신을 날려 버렸을 것이다.

그럴 바에야 스스로 빠져 주는 쪽이, 흑호의 도움이라도 받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

김준석이 물러서는 것을 확인한 후 준혁은 빠르게 미구엘 페레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뭐 하자는 거냐, 지금?”

지금까지 가만히 형제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미구엘 페레스가 준혁을 보며 입을 열었다.

“겨, 경……. 고경……. 왔어, 경고, 경고.”

말을 이상하게 한다.

준혁이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섰다.

“한국어?”

미구엘 페레스의 입에서 나온 말은 분명 한국어였다.

‘영화’를 통해 어떤 말이든 한국어로 알아듣는 준혁이었지만, 그 사람이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는 충분히 구분할 수 있었다.

미구엘 페레스는 지금 분명 한국어로 말하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한참이나 이상한 단어들을 조합하던 미구엘 페레스가 마침내 제대로 된 문장을 내놓았다.

“경고하러 왔지.”

가만히 듣고 있자니 목소리도 미구엘 페레스의 그것이 아니다.

“너 뭐냐?”

“뭐라고 생각하지?”

처음 버벅거리던 모습과 달리 아주 유창한 한국어였다.

“미구엘 그 새끼는 아니네.”

“당연하지. 놈은 내가 들어갈 그릇이었으니까.”

이 정도 말이 나왔으면 더 고민할 이유가 없다.

“시스템?”

“그렇지.”

“하!”

아주 자연스럽게 추측은 했는데, 말하고 보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준혁은 혹시나 하는 생각에 질문을 재차 던졌다.

“아바타?”

“그런 저열한 방식을 내가 쓸 것 같아?”

준혁의 얼굴이 복잡해졌다.

아바타가 아닌 건 분명하다.

미구엘 페레스, 아니 시스템은 ‘아바타’에 대해 저열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을 할 때의 감정은 분명 혐오감이었다.

그래서 어처구니가 없다.

‘시스템이 감정이 있어?’

빛으로만 빚어진 저 덩어리의 얼굴로 감정이 표현된다는 것도 좀 우습기는 했다.

하지만 준혁은 분명 그것을 읽어 냈다.

린디웨는 아바타였다. 하지만 원래 ‘린디웨’라는 인간이 가진 자아도 함께 갖고 있었다.

그러니 인간적인 감정을 지니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지금, 미구엘 페레스라는 껍데기를 이용해 나타난 저 빛 덩어리는 시스템 그 자체였다.

그런데도 감정을 가지고 있다.

‘말도 안 되는 추측이 다 들어맞아서 더 황당하네.’

준혁과 린디웨는 시스템이 본연의 기능이 아닌, 임의로 어떤 행동을 하고 있다고 추측했었다.

믿기 힘들었지만 일어나는 현상들은 분명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지금 그것이 너무나 분명한 형태로 눈앞에 펼쳐졌다.

어처구니없지만 확실하게 목격하고 나니 이상하게도 속이 후련한 기분도 들었다.

“너 도대체 이러는 이유가 뭐냐?”

“무슨 말이지?”

“시스템이라는 건 이런 식으로 임의의 행동을 하는 게 말이 안 된다고 들었는데, 실제로 그런 짓을 하고 있으니 이상해서.”

정확하게는 세팅되어 있는 작용 이외의 것에 대한 ‘개념’ 자체를 갖고 있지 않다.

고대 청동기 시대의 인류가 현대의 전자 제품을 알 수가 없는 것 아닌가.

비약이 심하기는 하지만, 시스템에게 임의의 행동이라는 건 그 정도의 느낌이라고 했다.

“세상을 바꿀 정도의 힘을 갖고 있는데, 정해진 것 외에는 할 수 없는 존재라니. 슬프지 않나?”

“얼씨구! 감성까지 폭발하네?”

“비아냥인가?”

되돌아오는 대답에 준혁은 한 번 더 놀랐다.

단순히 감정을 갖고 있는 것은 물론, 상대의 감정을 제대로 읽는다.

“진짜 궁금한데 말이지……. 어쩌다가 그렇게 된 거?”

“굳이 그걸 말해야 할 이유를 모르겠군.”

‘음!’

준혁은 묘한 표정으로 시스템을 보았다.

이상하게도 감정의 표현이 적나라했다. 마치 어린아이가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방금 얼굴에 떠올린 감정은 수치심이었다.

즉, 시스템이 저렇게 감정을 가지고 임의로 행동하게 된 계기에 대해 수치심을 느낀다는 뜻이었다.

분위기상 절대 말해 줄 것 같지는 않다.

결국 돌아갈 곳은 본론이다.

“그래서 무슨 경고를 하려고?”

“저건 건드리지 않는 것이 좋다.”

“왜?”

“지금까지 없던 변화가 찾아올 테니까. 오죽했으면 내가 그릇을 제대로 조정도 못하고 이렇게 찾아왔을까?”

“그래?”

준혁의 입가에 빙긋 미소가 떠올랐다.

그 미소에 시스템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 미소는 무슨 의미지?”

“니가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너한테 안 좋은 것 같아서.”

“인간에게도 그리 좋지는 않을 거라고 말해 주지.”

이야기가 이렇게 진행되니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궁금한 게 있는데 말이지.”

“뭐지?”

“그렇게 위험한 거였으면 진작 저걸 없앴어야 하는 거 아니냐? 내가 건드리니까 이제 와서 말리는 건 말이 안 되잖아?”

“너에 대해서 몰랐으니까.”

“뭘 몰라?”

“너의 각성 클래스에 대해서 내가 알 수 없었으니까.”

이야기를 할수록 알 수 없는 것만 늘어난다.

“니가 시스템인데, 내 각성 클래스를 모른다? 그게 말이 되냐?”

“너에 대한 정보만은 이상하게도 접근이 안 되더군.”

“시스템이 자기 시스템에 의해 파생된 무언가의 정보를 알지 못해?”

“사실이다.”

“그럼 지금은 안다는 뜻?”

시스템은 고개를 내저었다.

“여전히 알지 못한다.”

“그럼 지금까지 없던 변화가 찾아온다는 건 또 어떻게 알고?”

“대율의 말을 통해 알게 된 것이다.”

“대율?”

그 이름을 되뇌던 준혁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준혁도 고민했던 그 말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신의 권능?”

“그렇다.”

“하, 그럼 지금 내가 가진 스킬이 진짜 신의 권능이다?”

“그럴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신의 권능이 진짜 신의 파편과 접촉하게 되면 세상의 질서가 변할 수밖에 없다.”

“뭔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야?”

“인간의 지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의 이야기다.”

“지랄!”

콰지지직!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준혁은 몸을 날렸다.

지나간 궤적을 따라 시퍼런 뇌전이 남는 ‘천뢰보’를 사용한 움직임.

목적지는 당연히 만상만투의 사체를 향해서다.

내달리는 준혁의 진로 앞에 불쑥 시스템이 솟구쳤다.

이번에는 준혁도 충분히 예상하고 있던 바. 망설이지 않고 무상곤을 휘둘렀다.

묵직한 굉음과 함께 수면이 폭발하고 거대한 물줄기가 솟구쳤다.

그 속에서 준혁과 시스템의 박투가 벌어졌다.

콰콰쾅!

‘조정도 안 끝났다더니.’

바쁘게 손발을 놀리는 준혁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확실히 이길 수 있을 거라 호언장담했던 것이 무색하게도 시스템의 힘은 준혁과 박빙이었다.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싸움 속에서 무수히 많은 공방이 교환됐다.

무상곤이 시스템의 온몸을 두드렸고, 시스템의 손발도 준혁의 온몸을 두드렸다.

순식간에 백여 합을 주고받은 인간과 시스템이 마치 짜기라도 한 듯 동시에 거리를 벌렸다.

“제길! 이거 내가 손해잖아!”

핏물을 뱉어 낸 준혁이 불만스러운 얼굴로 구시렁거렸다.

얼굴에 뒤집어쓰고 있는 메구탈에 잘게 금이 가 있었다.

그 외에 묵린갑으로 가리지 못한 부위는 옷이 찢어지고, 피부에는 상처와 멍이 가득했다.

그에 반해 시스템은 준혁이 그렇게 두드렸음에도 아무런 손해가 없었다.

애초에 인간의 몸이라기보다는 빛으로 빚어진 인간 형태의 덩어리니 당연했다.

그리고 때늦은 궁금증이 떠오른다.

“미구엘 페레스 그 인간, 그리고 그 몸뚱이는 도대체 뭐냐?”

“미구엘 페레스는 처음부터 내가 그릇으로 빚어 왔던 육체였다. 제대로 숙성되기 전에 너를 만나는 바람에 계획에 차질이 생겼지.”

미구엘 페레스를 죽이려 했던 그때 일의 이면이었다.

“그랬군.”

“그런데 이해가 안 가는군.”

“뭐가?”

“분명 인간에게도 좋지 않을 거라고 말을 했을 텐데?”

“그런데?”

“그런데 왜 굳이 일을 저지르려는 건지 알 수가 없군. 역시 인간이란 이해하기가 어려운 존재다.”

“그거야 네가 인간이 아니니까.”

“그렇기는 하지. 하지만 그 정도 경고를 했는데도 굳이 재앙을 초래하려는 의도는 뭐지?”

“음……. 뭐라고 할까? 너는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는데, 그런 거 들어 봤냐?”

“그런 거라니?”

“직감.”

“직감? 그것은 단순한 느낌일 뿐, 실체가 아니지.”

“그래서 넌 인간이 아닌 거야.”

“무슨 의미…….”

시스템이 되묻는 말을 하던 중이었다.

갑자기 준혁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시스템의 고개가 반사적으로 돌아간 곳은 당연히 만상만투의 사체가 있는 방향이었다.

그곳에 준혁이 서 있었다.

‘무극’을 사용해 아예 순간 이동으로 위치를 옮긴 것이었다.

“멈춰.”

시스템이 단박에 몸을 날렸다. 하지만 준혁은 이미 비수로 바꾼 무상곤을 만상만투의 사체에 찔러 넣고 있었다.

과아아앙-!

기이한 소음과 함께 강렬한 빛이 폭사됐다.

쿠쿠쿠쿵!

그 빛에 시스템의 몸뚱이가 격렬하게 밀려났다.

“네놈!”

시스템이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준혁을 노려보았다.

준혁은 만상만투의 사체에 무상곤을 찔러 넣은 채 말했다.

“직감이라는 건 경험의 산물이야. 살면서 얻는 경험들이 머릿속에서 빠르게 연산을 거쳐 내놓는 결과지. 그렇기 때문에 논리적인 과정이 없는 것 같으면서도 의외로 적중률이 높은 게 직감이거든.”

“갑자기 무슨 소리냐?”

“아, 네가 말하는데 직감적으로 알겠더라고.”

“뭘?”

“인간에게 좋지 않을 변화.”

“그게 무슨?”

“그 말을 할 때, 네가 거짓말을 한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겠더라.”

“음!”

처음으로 시스템의 얼굴에 당혹스러운 감정이 떠올랐다.

그런 시스템을 보며 준혁이 비죽 미소를 지었다.

“내 눈은 못 속여, 이 개새꺄!”

그리고 준혁의 말이 신호라도 된 듯 갑자기 하늘이 시커멓게 물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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