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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장. 개벽#3-
도쿄는 일본 열도를 구성하는 4개의 주요 섬 중 가장 큰 혼슈(本州)의 동쪽에 있는 도시다.
만상만투가 있던 도쿄만은 당연히 혼슈의 동쪽 해안이다.
이를 다르게 표현하면, 바다를 통해 한국으로 돌아가려면 혼슈 동쪽 바다에서 남하해 규슈(九州)를 끼고 왼쪽으로 돌아 한국의 남해를 통해 올라와야 한다.
대강 부산까지만 잡아도 이동 거리가 무려 1,500~1,600킬로미터에 달하는 먼 거리였다.
게다가 만상만투의 몸뚱이는 무척이나 거대하다.
도쿄만에 잠겨 있던 거대한 덩어리가 바다에 떠올라, 그 먼 거리를 항해하는데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을 리 없었다.
“거, 되게 시끄럽네.”
바다 위를 달리던 준혁이 하늘을 쳐다보며 구시렁거렸다.
확실히 머리 위가 상당히 시끄러웠다.
만상만투가 해수면에 그린 긴 궤적을 쫓아온 헬기들이었다.
그중 유독 빠르게 다가와 고도를 낮추는 것은 육상자위대의 정찰 헬기였다.
헬기에서 한 사람이 훌쩍 바다로 뛰어내려 준혁에게 다가왔다.
준혁도 두어 번 본 적 있는 사람이었다.
일본 랭킹 1위 길드인 정검회의 회장, 만상만투 사태로 일본의 국민 영웅으로 떠오른 하시모토 타츠야였다.
하시모토 타츠야는 양발에 짧은 스키처럼 생긴 납작한 풍선 같은 것을 신고 있었다.
하시모토 타츠야는 S급 헌터였다. 하지만 준혁이나 김준석처럼 물 위에서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수준은 아니었다.
그래서 부력의 도움을 얻기 위해 저런 신발을 고안한 모양이었다.
“김준혁 헌터님.”
“예. 오랜만입니다.”
두어 번 인사했었기에 준혁도 알은체했다.
“오로치의 시체를 이제 가져가시는 겁니까?”
“오로치?”
“아, 저 괴물의 이름을 알지 못해서 일본에서는 그렇게 부릅니다.”
“만상만투라고 합니다.”
“그렇군요.”
“네. 가져가는데……. 혹시 문제라도?”
준혁의 물음에 하시모토 타츠야가 황급히 손사래 쳤다.
“아닙니다. 일전에 일본을 지켜 준 것에 대해 정식으로 감사 인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그렇게 말한 하시모토 타츠야가 정중하게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준혁은 만상만투를 막은 것은 물론, 해일이 덮치는 시간을 지연하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었다.
그 내용을 알고 있는 하시모토 타츠야였기에, 이렇게 직접 인사를 하러 온 것이다.
“흐음, 그게 일본의 공식 입장인가요?”
“제가 일본 전체를 대표할 정도의 직함이 있지도 않고, 그렇게 대단한 사람도 아닙니다만……. 그래도 최대한 사람들을 설득할 수는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준혁은 난감한 표정으로 에둘러 말하는 하시모토 타츠야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어쩌면 일본에서 저 만상만투 사체의 소유권을 가지고 문제 삼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다.
또한 만상만투로 인한 피해를 준혁의 탓으로 돌릴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었다.
현실적으로는 말이 안 되는 일이지만, 준혁의 머릿속에 잡힌 일본이라는 국가의 이미지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곳이었다.
“혹시 만상만투로 인한 피해에 대해서, 저한테 아무런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것도 하시모토 헌터의 영향입니까?”
“아아, 거듭 말씀드리지만 저는 그 정도의 영향력은……. 하지만 성심을 다해 김준혁 헌터가 얼마나 큰 도움을 주었는지는 충분히 설명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군요.”
“아직 일본 내에 김준혁 헌터를 원망하는 세력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큰 목소리는 아니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거라 생각합니다.”
준혁은 일본 특유의 에둘러 말하는 표현 방식에 갑갑함을 느꼈다.
하지만 하시모토 타츠야가 얼마나 열심히 움직이고 있는지에 대해서 짐작이 되었기에 답답함은 일단 참기로 했다.
좀 과할 정도로 겸손하게 말하고는 있지만, 방금 하시모토 타츠야가 타고 온 헬기는 일본 육자대 소속의 정찰 헬기였다.
그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것은 물론, 일본 정부에서도 하시모토 타츠야를 밀어주고 있다는 의미였다.
“그럼 제가 저걸 가져가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뜻이군요?”
“그렇게 생각하셔도 문제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찾아온 것은 정식으로 인사를 드리기 위한 것으로, 그 부분은 절대 문제 삼지 않을 것입니다.”
말은 대표가 아니니, 영향력이 어쩌니 하고 있지만 은연중 표출되는 행동은 충분히 일본을 대표하는 사람의 그것이었다.
“뭐, 알겠습니다.”
어쨌든 일본과 별다른 마찰 없이 마무리할 수 있다면 좋은 일이다.
물론 마찰이 생긴다고 기가 죽을 준혁은 아니었지만.
준혁이 말을 이었다.
“그럼 이왕 만난 김에 부탁 하나만 합시다.”
“말씀하십시오.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
“쫓아오는 헬기들 좀 치워 줘요.”
“알겠습니다. 앞으로 뒤따르는 헬기는 없을 겁니다.”
이번만큼은 호언장담하는 하시모토 타츠야였다.
몇 마디 가벼운 인사를 더 나눈 후, 하시모토 타츠야는 타고 왔던 정찰 헬기로 돌아갔다.
그리고 잠시 후, 뒤따르던 방송국 헬기들까지 모두 사라졌다.
“이제야 좀 쾌적하겠네. 갑시다, 형님.”
“끄응! 망할 동생 놈. 형을 이딴 식으로 부려 먹어야 속이 후련했냐?”
“그럼 신수 사체에서 나오는 재료를 공짜로 먹을 생각?”
그 말에 김준석이 진심으로 기겁하며 물었다.
“뭐? 그럼 저 거대한 걸 혼자 먹을 생각이었냐?”
“와, 이 형님 보게? 내가 잡았는데 당연히 내가 먹는 거 아닌가?”
딱히 틀린 말은 아닌지라 반박할 수가 없다.
“망할 동생 놈.”
“아니, 그런데 그거 다 떠나서 저런 거대한 걸 옮기는데 이 착한 동생 혼자 하길 바랐단 말이야?”
사람 할 말 없게 만드는 재주 하나는 아주 뛰어난 동생 놈이었다.
“쯧!”
김준석은 다시 묵룡삭을 잡고 바다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
일본에 이어 한국도 뒤집혔다.
사실 준혁이 신경을 쓰지 않아서 그렇지, 도쿄만에 있는 만상만투의 사체에 대한 이야기는 꾸준히 나왔었다.
준혁이 사냥한 괴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그 소유도 준혁이다.
그러니 한국으로 가져와야 하는 것 아니냐 하는 내용이었다.
물론 그 저변에는 다른 게 숨어 있었다.
학계와 정치권, 그리고 협회라는 이권 집단이 혹시 자신들이 가져갈 부스러기가 있을까 하여 떠들어 대는 것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준혁이 거대한 퍼포먼스를 펼치며 만상만투의 사체를 한국으로 가지고 왔다.
난리가 나지 않을 리가 없었다.
국내에 존재하는 모든 언론사가 한달음에 달려왔다.
종합언론이야 당연한 일이지만 경제, 스포츠, 연예 등 분야를 가리지 않았다.
경제지는 만상만투의 사체가 가진 경제 효과를 제멋대로 추측해 떠들었다.
스포츠지는 준혁이 과거 야구 선수였다는 점을 떠들어 대며 아무 말 대잔치를 벌였고, 연예지는 아무런 근거도 없는 연예인을 가져다 붙이며 준혁을 조명했다.
학계도 마찬가지다.
각종 타이틀을 단 연구소, 대학, 학계의 대표자들이 준혁에게 말을 붙여 보려고 목을 길게 내밀었다.
그중에서도 제일 가관인 것은 정부였다.
원하지도 않았는데 경찰을 보내 사람들을 차단하고, 아예 한쪽에 천막을 친 채 준혁이 오기를 기다렸다.
천막 안에는 통합안전보장부 장관과 각성자관리청장, 던전관리청장이 대기하고 있었다.
주위에는 황도형 사태 이후 새롭게 구성한 긴급대책반도 모여 있었다.
그 외에 일본을 망국의 위기로 내몬 괴물의 사체를 구경하려고 모인 시민들까지 인산인해였다.
이 많은 인파가 모인 곳은 과거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던, 행정구역상 인천광역시에 속해 있는 실미도였다.
실미도는 원래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였다.
일부 관광객이 있기는 하지만 민가가 없으니 저 거대한 괴물 사체를 끌고 와도 별다른 피해가 없다.
그런 이유로 선택된 곳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니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가 아주 오랜만에 소란스러웠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공무원으로 보이는 양복 차림의 남자가 다급하게 천막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장관님!”
“응? 왜 그래? 무슨 일이야?”
“큰일 났습니다.”
“그러니까 뭐가?”
“그, 그게…….”
잠시 우물거린 공무원이 황급히 자신의 휴대폰으로 실시간 TV 화면을 열었다.
화면에는 하늘 높이 헬기에서 촬영한 준혁과 만상만투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문제는 기자의 멘트였다.
『당초 실미도로 향할 거라고 알려졌던 김준혁 헌터가 방향을 틀었습니다. 현재 방향만 보자면 김준혁 헌터의 종착지는 강화도로 보이며…….』
통합안전보장부, 통안부의 장관 정무헌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서며 일갈했다.
“누구야!”
“네?”
“누가 실미도라고 했어!”
“그, 그건……. 방송에서…….”
애초에 이곳에 있는 누구도 준혁과 접촉한 적이 없었다.
그저 전문가랍시고 방송에 등장한 사람들이 실미도가 최적의 장소라고 떠들어 댔던 것뿐이었다.
“당장 이동해!”
정무헌이 씨근덕거리며 천막을 떠났고, 통안부 산하의 두 청장이 황급히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말도 안 되는 대이동이 시작되었다.
***
처음 준혁이 목표로 했던 곳은 부산이었다.
하지만 부산에서 육로를 이용해 만상만투의 사체를 운반하는 것은 너무 먼 길이었다.
사체를 해체한 후 옮길 생각이기는 해도, 너무 먼 거리에 많은 트럭을 동원하는 것은 번거로움이 많았다.
더군다나 부산은 대한민국 제2의 도시답게 인구도 많고, 해안쪽에도 항상 사람이 몰려 있다.
그러다 보니 사체를 상륙시키는 것조차 번거로움을 동반했다.
그래서 방향을 틀었다.
아예 서울과 가장 가까운 해안까지 이동한 후에 해체하기로 마음을 바꾼 것이다.
방향을 동쪽으로 틀어 경상남도와 전라남도 남쪽 해안을 스쳐 서해를 따라 그대로 북상했다.
그리고 인천이 가까워지자 백효를 보내 적당한 장소를 물색했다.
처음에는 인천공항 남쪽에 있는 어떤 무인도를 목표로 잡았다.
사람도 없고 해안도 긴 편이라 적당할 것 같았다.
그런데 그곳에 갑자기 사람이 엄청나게 많아졌다.
저런 곳에 괴물의 사체를 끌고 가는 것은 아무래도 좀 위험하다 싶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방향을 바꾼 것이다.
준혁이 원래 자리를 잡았던 장소가 다름 아닌 실미도였다.
방향을 틀어 준혁이 도착한 곳은 강화도 서쪽에 있는 석모도였다.
서쪽에 민가가 없는 해안이 있고, 강화도로 이어지는 다리가 놓여 있어 적당해 보였다.
“어우, 죽겠다!”
마침내 육지에 상륙한 후, 김준석이 해안의 바위에 걸터앉으며 앓는 소리를 냈다.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멀미를 할 뻔했다, 동생 놈아.”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천원급 각성자의 몸으로 멀미라는 건 있을 수가 없다.
“알겠습니다, 형님아. 그럼 좀 쉬고 있으시죠.”
한마디 툭 뱉은 준혁은 쉬지 않고 만상만투의 사체로 다가갔다.
바다의 깊이 때문에 가까이 끌고 오지는 못했지만, 사체가 반쯤 잠겨 있는 곳까지는 끌어왔다.
이제 해체만 하면 된다.
‘일단은 가죽부터.’
무상곤은 싸울 때 무기로도 좋지만, 작업할 때 도구로도 매우 훌륭한 역할을 한다.
가죽을 벗겨 낼 칼로 형태를 바꾼 무상곤을 만상만투의 잘려 나간 목의 단면 쪽으로 찔러 넣으려 할 때였다.
날카로운 파공성과 함께 무언가가 준혁을 향해 빠르게 날아들었다.
“저건 또 뭐?”
고개를 돌린 준혁이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날아드는 무언가를 쳐다보았다.
준혁을 향해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려드는 그것은 다름 아닌 미구엘 페레스였다.
꽈앙-!
준혁이 있던 그 자리에 거대한 불꽃이 솟구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