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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받고 각성 더!-194화 (194/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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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장. 개벽#2-

“흠…….”

마치 싱크홀처럼 뚫린 거대한 수직 통로의 바닥, 그곳에 내려선 준혁이 복잡한 표정으로 거대한 구조물을 쳐다보았다.

구조물이 아니라 대율의 사체, 신수의 사체였다.

배면계에서 수없이 죽음의 문턱을 넘으며 봉인했던 신수가, 이렇게 폐허처럼 쓰러져 있는 모습에 묘한 감흥이 밀려들었다.

또 한편으로는 너무 손쉽게 신수를 죽인 사실에 새삼스레 놀라기도 했다.

만상만투를 잡을 때만 해도 이러지 않았다.

그때는 정말 힘겹게 싸웠다.

배면계에 있을 당시와 달리 뒷일을 걱정하지 않고 싸웠기에 위험은 좀 덜했지만, 그게 힘들지 않았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하지만 대율은 너무 간단하게 죽였다.

그렇다면 대율이 만상만투보다 약한가 하면 그도 아니다.

오히려 대율이 만상만투보다 우위에 있었다.

그럼에도 훨씬 손쉽게 죽였다.

모두 ‘탐색’이라는 스킬 덕분이었다. 적이 어떻게 기운을 쓰는지 읽는다는 것은 의외로 강력한 위력을 보였다.

순수한 힘 자체로 보자면 분명 약한 쪽은 준혁이었음에도,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것만으로 어려운 상대를 손쉽게 죽인 것이다.

문득 대율이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신의 권능이라…….’

사실일까?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준혁은 그저 각성자다.

처음에는 아주 뛰어난 각성자일 뿐이었고, 그 후에는 뛰어난 데 더해 독특한 각성자였다.

다른 각성자는 갖지 못한 스킬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영역이지 신의 영역이 아니었다.

어쩌면 대율이 너무 놀라 착각한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준혁이 그 말을 거듭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무급.’

린디웨가 했던 이야기.

배면계 짐승들이 영수에서 신수로 올라서며 거치는 과도기를 부르는 이름.

준혁이 지금 그 무급이었다.

이 과정을 지나면 신의 격을 얻는다고 했었다.

그러니 신경이 쓰일 수밖에.

한편으로는 의문도 뒤따른다.

‘신격이 아닌 신.’

대율은 준혁의 ‘탐색’을 보고 ‘신’의 권능이라고 했었다.

‘신격’이 아닌 ‘신’이다.

신격과 신. 간절히 신의 반열에 오르고 싶어 하는 신수가 그 두 단어를 섞어서 사용할 리가 없다.

분명한 구분을 두고 한 말일 터였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다는 건지…….’

베일에 싸인 것이 너무 많다.

‘진리를 엿본 관찰자…….’

준혁의 클래스였다.

아마 이 말에 어떤 단서가 있으리라. 저기서 말하는 ‘진리’가 무엇인지, 그로 인해 찾아올 변화는 무엇인지.

어쨌든 아직은 알아보아야 할 것이 훨씬 더 많은 힘이었다.

그때 준혁을 뒤따라온 유민섭이 훌쩍 대율의 머리 위로 뛰어올랐다.

유민섭은 인벤토리에서 날카로운 칼 한 자루를 꺼내 대율의 딱딱한 껍질을 두드렸다.

땅, 따앙-!

아주 공들여 만든 종을 친 듯 맑고 청아한 쇳소리가 수직 통로 안에 메아리쳤다.

“이거 아무리 용을 써도 뚫리지도, 잘리지도 않습니다.”

유민섭의 설명을 들으며 준혁도 대율의 머리 위에 올라섰다.

땅, 따앙-!

준혁이 무상곤으로 두드려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어라?’

준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율의 껍질은 매우 단단했었다. 싸울 당시에도 준혁이 한참이나 두들긴 후에야 껍질을 부수고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보다 더 단단했다.

‘어떻게 된 거지?’

고개를 갸웃거리던 준혁은 이번에도 ‘탐색’을 펼쳤다.

“어?”

반사적으로 내뱉은 당혹성.

“왜요?”

유민섭이 덩달아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어? 이건 무슨?”

대율의 껍질이 푸른빛을 머금고 있었다. ‘탐색’의 영역에서 푸른빛으로 보이는 것은 다름 아닌 순수한 자연의 기운이다.

이는 싸우던, 대율이 살아 있던 때와는 전혀 다른 양상이었다.

‘으음…….’

잠시 고민하던 준혁이 그대로 발돋움을 해 수직 통로의 입구, 지면으로 올라섰다.

그리고 넓어진 시야로 주변 일대와 수직 통로 내부를 ‘탐색’으로 살폈다.

“어?”

확실히 뭔가 달랐다.

보통 ‘탐색’으로 세상을 보면 공기처럼 푸른빛의 입자가 퍼져 있다.

준혁이 몇 번이나 본 장면이다.

그런데 지금 이곳 카잔시 일대는 그 기운의 농도가 매우 옅었다.

저 멀리 바깥쪽에서는 끊임없이 기운이 밀려 들어와 낮아진 농도를 정상으로 되돌리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기운의 농도가 평균의 수준으로 올라오지 않고 있었다.

채워진 기운이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는 탓이다.

수직 통로 속, 대율의 사체였다.

대율의 사체는 지금도 쉬지 않고 자연의 기운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이걸 언제까지 하는 거지? 계속 이런 식이면 분명 문제가……. 아!’

번뜩 떠오르는 한 가지가 있었다.

만상만투.

놈의 시체가 아직 도쿄만 앞바다에 잠겨 있었다.

그 거대한 크기와 무게 때문에 일본 정부는 아직 그 사체를 처리하지 못한 상태였다.

‘일단은 확인부터.’

생각을 정리한 준혁이 아래를 향해 외쳤다.

“유 길드장님!”

“네?”

유민섭은 아예 술법을 사용해 준혁 옆에 순간 이동으로 나타났다.

“당분간 저거 저대로 놔두세요.”

“놔두라고요?”

“네.”

“뭐 문제라도 있는 겁니까?”

준혁의 심각한 얼굴에 유민섭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준혁이 고개를 저었다.

“저도 정확하게 모릅니다만,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닐 겁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하지만 준혁도 현재로서는 정확한 답을 하기 힘들었다.

대율의 사체가 기운을 흡수하는 현상이 ‘신수’의 사체에 일어나는 공통적인 현상이라고 가정한다면 별다른 문제는 아니었다.

그랬다면 만상만투의 사체가 있는 일본에 분명 문제가 일어났을 테니까.

하지만 저 현상이 혹시나 대율에게만 일어나는 일일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우선은 확인부터 해야 했다.

“일단은 그대로 두고 다른 작업부터 진행하세요.”

유민섭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러죠, 뭐.”

어차피 준혁이 나서지 않는다면 유민섭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힘으로 사체를 분해할 수도 없고, 저 큰 덩어리를 옮길 방법도 없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한 가지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저대로 파묻는 정도.

하지만 저것은 ‘신수’의 사체였다. 어쩌면 한 번도 등장한 적 없는 최고의 재료일지도 모르는데 매장해 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제가 좀 더 알아보고 다시 오겠습니다.”

말을 마친 준혁은 곧장 흑호를 불러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

“어우, 배 터지겠어요.”

준혁이 불룩해진 배를 툭툭 두드리며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김준석은 여전히 수저를 바쁘게 놀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준혁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어 보였다.

저 마음 안다.

배면계의 먹거리는 훌륭하다.

과일도, 짐승의 고기도 영력까지 잔뜩 품고 있기에 맛도 좋고, 영양도 풍부하다.

하지만 그런 것이 ‘집밥’을 대신해 주지는 않는다.

김준석이 배면계에서 지낸 시간은 무려 5년이었다.

그 5년 동안 아내가 만들어 주는 ‘집밥’이 미치게 그리웠으리라.

실제로 준혁 또한 배면계에서 돌아온 후 가장 먹고 싶었던 게 김준석이 끓여 주는 김치찌개였다.

궁핍했던 시절, 제대로 담근 것도 아닌 김치에 고기도 찔끔 넣고 끓인 그 김치찌개가 얼마나 먹고 싶었는지 모른다.

쉴 새 없이 숟가락으로 뜨고, 젓가락으로 집을 때마다 이세연이 밥과 반찬을 더 꺼내 온다.

그리고 나오는 족족 김준석의 위장 안으로 순간 이동했다.

입을 헤 벌린 지유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아빠……. 돼지…….”

하지만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다.

김준석은 그렇게 혼자서 무려 5인분은 될 법한 양을 해치운 후에야 수저를 내려놓았다.

“꺼억! 이제 좀 살겠다.”

트림까지 호쾌하게 뱉어 낸다.

평소라면 구박했을 이세연이 오늘만큼은 아무 말 없이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슬쩍 분위기를 살핀 준혁이 이세연에게 물었다.

“형수님.”

“응?”

“저녁에는 형 좀 빌려 갈게요.”

이세연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자 준혁은 냉큼 일어나 김준석을 잡아끌었다.

“갑시다.”

“어딜?”

“가 보면 알아. 야옹아!”

집에서만큼은 소형화를 유지해야 하는 흑호가 다다다 달려온다.

“지유야, 삼촌이랑 아빠 어디 좀 갔다 올게.”

“응, 삼촌!”

지유는 어느새 파랑이의 등에 올라타 놀고 있었다.

“다녀와.”

이세연의 인사까지 받은 후, 준혁은 흑호와 함께 장소를 옮겼다.

“어? 여기는?”

갑작스러운 풍경 변화에 김준석이 기겁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흑호의 등에 올라탄 채 발아래를 보니, 심각한 악취가 풍기는 바다가 출렁이고 있었다.

도쿄만의 해수면이었다.

원래 도쿄만은 산업 폐기물과 생활하수의 무분별한 방류로 심각하게 오염된 곳이었다.

꽤 긴 시간 개선 작업을 하고는 있다지만, 워낙 심각한 오염 탓에 아직도 나아지지 않은 상태였다.

준혁이 아래를 내려다보며 와락 인상을 구겼다.

급박하게 싸울 당시에는 몰랐는데, 저 지저분한 물에 몸을 담갔다는 사실을 떠올리니 저도 모르게 진저리가 쳐졌다.

“웩!”

갑작스러운 욕지기에 헛구역질을 한 준혁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만상만투의 사체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놈의 사체는 죽은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일본은 현재 해일에 휩쓸린 도쿄의 재정비도 끝내지 못한 상태였다. 만상만투의 사체를 정리할 여유 따위 있을 리가 없었다.

“여긴 왜 온 거냐?”

“쓸 만할 것 같아서.”

“응?”

“잠시만 기다려.”

준혁은 ‘탐색’으로 만상만투의 사체도 살펴보았다.

“허!”

그리고 탄성을 내질렀다.

‘탐색’의 시야 속에서 만상만투의 사체는 광원 그 자체였다.

대율의 사체가 푸른빛의 입자가 알알이 박혀 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면, 만상만투의 사체는 전체가 푸른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시선을 넓은 쪽으로 움직여 보니 기운이 빨려 들어가는 현상도 없었다.

샘플이 두 개뿐이지만 이 정도면 어느 정도 확신이 가능했다.

신수의 사체는 자연의 기운을 흡수하고, 그 농도가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더 이상 흡수하지 않는다.

그리고 도쿄만의 오염된 물에도 영향을 받지 않은 것 같았다.

“일단 저걸 옮겨야겠는데?”

준혁의 말에 김준석이 깜짝 놀라 외쳤다.

“뭐? 저, 저걸 옮겨?”

만상만투의 몸뚱이는, 아니 신수의 몸뚱이는 단순히 크다는 말로 형용할 수 없었다.

킬로미터 단위의 거대함이다.

그걸 옮기겠다고 말하는 동생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하지만 준혁은 아랑곳하지 않고 흑호를 만상만투의 사체 쪽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바다 위로 솟아 있는 만상만투의 사체 위에 내려섰다.

“지유한테 원망 좀 듣겠네.”

“응? 지유는 또 왜…….”

김준석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준혁이 흑호를 향해 말했다.

“청랑이랑 백효 데리고 와라.”

흑호가 곧장 사라졌다가 다른 두 마리 환수를 데리고 나타났다.

그리고 준혁은 인벤토리에서 묵룡삭을 꺼내 던졌다.

빠르게 허공으로 뻗어 나간 묵룡삭이 만상만투의 사체를 휘감은 후, 한쪽 끝을 여러 번 번갈아 얽어 다섯 개의 매듭을 만들었다.

준혁은 세 마리 환수에게 각각 하나씩 매듭을 걸고 하나는 자신이 쥐었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매듭을 김준석에게 건넸다.

김준석이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걸 끌고 가자고?”

강력한 힘을 가진 환수, 천원급의 엽사, 그리고 혼원급을 뛰어넘어 무급이 된 엽사까지 있다.

그렇다 해도 만상만투의 사체는 너무 거대했다.

하지만 준혁에게는 한 가지 방법이 더 있었다.

=물.에.떠.올.라.라.

묵룡삭을 통해 펼친 용언에 만상만투의 사체가 부글거리며 수면에 둥둥 떠올랐다.

하늘에 띄우면 훨씬 편하겠지만, 용언이 발휘할 수 있는 물리력과 지속 시간은 한계가 있었다.

이 정도 거대한 사체라면, 한국으로 끌고 갈 동안 부력을 유지하는 정도가 한계치였다.

“가자!”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준혁이 수면을 박차고 달리기 시작했다.

흑호와 청랑이 뒤따르고, 백효가 하늘을 난다.

“어우!”

그리고 김준석이 질린 표정으로 준혁의 뒤를 따라 수면을 박차고 달리기 시작했다.

콰아아아-!

만상만투의 사체가 거대하게 수면을 가르며 항해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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