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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장. 하나의 마무리#4-
준혁은 절묘한 순간에 ‘천신강림’을 풀었다.
아니, 처음 ‘천신강림’을 사용한 순간부터 해제할 타이밍만 노리고 있었다.
그리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한 순간에 ‘천신강림’을 풀었다.
테스트였다.
대율의 싸움 방식은 특별한 패턴 같은 것이 없다.
순간순간 상황에 맞는 최적의 방식으로 공격한다.
문제는 대율이 가진 무기가 너무 많고, 그가 가진 권능 또한 매우 다양한 방식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 점 때문에 준혁도 과거 대율과 싸울 당시 상당히 애를 먹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것을 지금은 볼 수 있었다.
영력의 흐름이다.
준혁은 싸움을 시작한 후부터 줄곧 ‘탐색’으로 대율의 영력 흐름을 살폈다.
영력을 지닌 존재가 육체를 움직이면 영력은 그에 반응한다.
이는 사람이 몸을 움직이면 그것을 위해 근육을 움직이고, 근육을 움직이면 칼로리가 소모되는 것처럼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신수도 육체를 갖고 있다.
당연히 신수의 움직임에도 영력이 반응한다.
그것을 기준으로 대율의 영력을 살폈다.
그냥 움직일 경우, 공격을 위해 힘을 줄 경우, 권능을 사용할 경우 등 각각의 상황에 영력이 어떤 흐름을 보이는지를 관찰했다.
처음부터 그 차이를 일일이 구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표본을 쌓고, 특징들을 분류해 내면 결국은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 그것이 끝났다.
조금 전의 테스트는 파악한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콰앙!
거센 소음과 함께 흙과 바위가 터져 나갔다.
준혁의 손에 들린 무상곤은 거대한 곡괭이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곡괭이가 바람을 한 번 머금을 때마다 굉음이 터졌다.
대율의 등판에 얹혀 있던 산이 숭덩숭덩 깎여 나갔다.
묵직한 바람 소리와 함께 준혁을 향해 달려든 것은 대율의 몸통 마디마디마다 솟아 있는 석상이었다.
쾅, 콰쾅!
하지만 준혁이 휘두르는 곡괭이는 산은 물론 달려드는 석상들까지 산산조각 냈다.
순식간에 산이 전부 깎여 나갔다.
-떨어져라!
대율의 격렬한 저항이 시작되었다.
다섯 개의 꼬리가 채찍처럼 공간을 난도질한다.
수직 통로 사방의 벽이 갑자기 흩어지며 거대한 흙더미가 쏟아져 내렸다.
하지만 준혁이 그것을 고스란히 맞아 줄 리가 없었다.
파파팍!
수직의 벽에 틀어박힌 것은 준혁의 묵룡삭이었다.
=떠.올.라.라.
묵룡삭을 통해 발휘된 언령에 쏟아지던 흙더미가 두둥실 떠올라 통로 밖으로 역류했다.
-네가 어떻게 신격의 권능을?
대율의 외침에 짙은 당혹감이 맺혀 있었다.
하지만 대율이 진짜 놀랄 일은 아직 일어나지도 않았다.
칵, 카카카칵!
어느새 띄워 올린 50자루의 묵룡비가 종횡무진 날카로운 비행을 시작했다.
-네, 네놈이 어떻게?
대율의 목소리가 심각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떨림의 근원은 다름 아닌 공포.
신의 격을 지닌 자신조차 알지 못하는 무언가, 미지(未知)에 대한 공포였다.
준혁이 날린 묵룡비는 정확하게 대율의 움직임을 원천봉쇄하고 있었다.
꼬리를 움직이려는 순간 묵룡비가 파고들어 준혁의 영력을 폭사했다.
그 결과 시도했던 꼬리 공격은 무위로 돌아갔다.
집게발을 움직여도, 석상을 날려도 마찬가지였다.
권능이라고 다를 게 없었다.
권능을 펼치려는 순간 갑자기 날아든 묵룡비가 이마를 강타했다.
그런데 단순한 묵룡비가 아니다. 자루 쪽에 묵룡삭이 매여 있는 묵룡비였다.
묵룡삭은 드래곤 하트만 무려 7개를 갈아 넣은 물건이었다.
드래곤이 신수보다는 격이 떨어지지만 1개가 아닌 7개의 드래곤 하트였다.
그 정도면 신수를 압도하지는 못해도, 그 마나로 권능의 사용을 방해하는 정도는 충분했다.
준혁의 곡괭이질은 대율의 단단한 껍질 위로 쏟아지고 있었다.
쩌저저적!
어느 순간 파열음과 함께 무수한 균열이 껍질 위를 달렸다.
대율은 그런 준혁을 막기 위해 갖고 있는 모든 수단을 사용했지만, 어떤 것도 할 수가 없었다.
매번 날아든 묵룡삭의 방해 때문이었다.
정확하게는 ‘탐색’을 통해 영력의 흐름을 훤히 꿰뚫고 있는 준혁이, 그 영력의 흐름을 미리 끊어 놓은 것이었다.
-믿을 수 없다!
대율의 절규와 같은 외침이 수직 통로 안에 메아리쳤다.
그 목소리에는 미지에 대한 공포와 더불어 짙은 불신이 담겨 있었다.
그러는 사이, 마침내 두꺼운 껍질이 완전히 벗겨졌다.
그 속에 단단한 근육처럼 보이는 살점이 드러났다.
준혁은 망설이지 않았다.
푸욱!
대도로 형태를 바꾼 무상곤이 속살을 갈랐다.
시뻘건 핏물이 거대한 분수처럼 쏟아졌다.
준혁은 여전히 기계적으로 쉴 새 없이 칼을 휘두를 뿐이었다.
근육층을 갈라 내고 뻥 뚫린 통로가 만들어졌고, 준혁은 망설임 없이 몸을 던졌다.
생물의 육체와 같은 근육층을 통과한 준혁은 동굴 같은 공간을 만났다.
동굴의 벽이 꾸물거리며 준혁을 향해 달려들었다.
물론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 어떤 공격도 시작하기도 전에 막혔다.
-인간이 어떻게…….
대율의 공허한 울림이 통로 안에서 메아리쳤다.
준혁은 내달리고, 가끔은 멈춰 서서 통로를 뚫고, 혹은 뛰어오르기를 반복했다.
그런 거침없는 진격 끝에 준혁은 마침내 거대한 심장 앞에 닿을 수 있었다.
대율의 마지막 발악이 시작되었다. 근육으로 이루어진 심장이 거대한 박동을 머금는다.
쿵, 쿠쿠쿵!
박동을 거듭할 때마다 심장의 바깥쪽 벽면에서 날카로운 파편이 튀어나와 준혁에게 쏘아졌다.
물론 단 하나도 준혁의 몸에 닿지 않았다.
촤아악!
내지른 칼질에 마침내 대율의 심장이 갈라졌다.
무시무시한 등장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허무한 끝이었다.
-정녕 믿을 수가 없구나.
내뱉은 대율의 목소리에는 짙은 허무함이 배어 있었다.
참지 못한 준혁이 고개를 들며 물었다.
“도대체 뭘?”
-인간이 어찌 신의 권능을 가졌단 말인가?
“뭐?”
-기운의 흐름을 보고 있었던 것이 아니냐?
“맞지.”
-그것이 신의 권능이라는 건 몰랐던 모양이구나.
거듭 칼질을 하려던 준혁의 손길이 우뚝 멈췄다.
“뭐?”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였다.
이 이야기는 어쩌면 ‘관찰자’라는 클래스가 가진 비밀을 알 수 있는 단서일 수도 있었다.
-후후, 나도 제대로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그것이 신의 권능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
“야, 다른 거라도 아는 거 있으면 말을 하라고!”
준혁이 다급하게 외쳤다. 하지만 대율의 대답은 준혁이 기대했던 내용이 아니었다.
-원치 않은 안식이로구나. 하지만 이런 마무리도 괜찮은 것 같구나.
그 말을 끝으로 대율은 완전한 죽음을 맞이했다.
“아!”
준혁은 와락 인상을 구겼다.
하지만 지금 그것을 고민할 때가 아니었다.
-흑호.
-네, 주인님!
-거기 사람들 다 데리고 와.
말을 마친 준혁이 몇 번의 칼질을 거듭했다.
“뭐, 뭐야?”
뒤에서 깜짝 놀란 김준석의 외침이 들린다.
김준석을 포함한 10명의 헌터들이 모두 들어와 있었다.
“전부 이쪽으로 와요.”
준혁이 이끈 곳은 대율의 근원이 있는 곳이었다.
콰앙-!
‘폭류격’의 강렬한 일격에 만상만투의 근원이 터져 나갔다.
지이이잉-!
희미하게 떨리는 소리와 함께 근원에서 퍼져 나오던 기운이 빠르게 사람들을 향해 뻗어 나갔다.
“헙!”
준혁을 제외한 10명의 헌터가 동시에 두 눈을 부릅떴다.
갑자기 날아든 강렬한 기운이 급격하게 몸속을 채우고 있었다.
단순히 채우는 게 아니다.
그렇게 몸속으로 스며든 기운은 빠르게 단전에 자리를 잡으며 영력으로 치환됐다.
순식간에 불어난 영력이 단전을 가득 채우는 것으로 모자라 강제로 단전을 넓힌다.
“크읍!”
모두의 입에서 고통에 찬 신음이 새어 나왔다.
따지고 보면 저 현상은 강제로 몸의 근육을 부풀리는 것과 같다.
고통이 동반되는 것은 당연한 일.
털썩!
빠르게 주저앉은 리쉬옌이 정좌를 하고 단전을 보호하는 데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
그리고 준혁은 또 한 번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었다.
지난번 만상만투의 근원을 부순 후 근원의 기운을 받아들였을 때, 준혁은 상중하 세 개의 단전이 확장되는 경험을 했었다.
이번에 찾아온 변화는 그것과는 방향성이 달랐다.
몸속에서 흐르는 영력과 마나의 격류에 근원의 기운이 스며들었다.
기운은 영력과 마나를 잡아채더니 두 개의 기운을 마구 뒤얽어 내기 시작했다.
‘으음!’
스스로를 관조하며 그 현상을 지켜보던 준혁의 얼굴에 고통스러운 표정이 떠올랐다.
영력과 마나는 애초에 기운이 변화해서 하나의 특성을 가지게 되는 에너지였다.
그런데 몸속으로 스며든 기운은 준혁의 영력과 마나를 한데 뒤섞어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무시무시한 흡인력에 빨려 들어간 영력과 마나가 어느 순간 고유의 특성을 잃고, 기운과 완전히 동일한 성질을 갖게 되었다.
“끄으으윽!”
준혁의 입에서 고통에 찬 신음이 터져 나왔다.
원래 갖고 있던 기운의 성질을 강제로 바꾸는 것은 어마어마한 고통을 동반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효율 또한 어마어마하게 낮았다.
비율로 따지면 100 대 1 정도.
영력과 마나를 각각 100씩 쏟아부어야만 1의 기운으로 전환되는 수준이었다.
준혁의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고, 기운은 끊임없이 그 작업을 반복했다.
끝이 없을 것 같은 고통의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털썩!
준혁이 갑자기 비틀거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커헉, 헉!”
거친 호흡을 쏟아 내는 준혁은 비라도 맞은 듯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괘, 괜찮냐?”
김준석이 다급히 달려와 묻는다.
준혁이 황급히 손을 들며 김준석의 접근을 막았다.
“잠깐만!”
김준석이 주춤거리며 발을 멈췄고, 준혁은 다시 눈을 질끈 감고 자신의 몸속을 관조했다.
‘이, 이건?’
단전에, 정확하게는 상단전에 변화가 있었다.
전에 없던 새로운 것,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상단전에 자리 잡고 있었다.
‘기운인데?’
영력이나 마나가 되기 이전의 순수한 기운, 그것이 상단전에 머물고 있었다.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각성한 인간의 몸에 들어온 기운은 영력, 혹은 마나로 치환된다.
준혁의 경우는 절반씩으로 나뉘어 영력과 마나로 변했었다.
그러니 기운은, 기운 그 자체의 특성을 지닌 채 인간의 몸에 머물 수 없다.
투명한 물이 붉거나 파란색 물을 만나면 그 색으로 변하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그런데 지금 그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보니 만상만투의 근원은 이미 그 빛을 잃고 탁하게 변해 있었다.
이 또한 지난번과 달랐다.
지난번에는 준혁이 받아들일 수 있는 최대량을 받아들인 후에도 남은 기운이 자연으로 흩어졌었다.
지금은 다른 헌터 10명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들의 수준으로 대율의 기운을 모두 소화하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내가 썼다는 소린데?’
준혁의 몸속에 기운 그 자체로 머무르는 데 근원이 가진 대부분의 기운이 소모되었다는 의미였다.
급히 상태창을 열어 보았지만 지난번과 달리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도대체 뭐지?’
문득 대율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준혁이 사용하는 스킬이 신의 권능이라는 그 말.
‘린디웨도 없으니 알려 줄 사람도 없고…….’
막막한 기분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여기에 앉아서 고민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준혁이 뒤에 있는 일행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일단 돌아갑시다.”
다들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후우!”
준혁의 입에서 짙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대율의 죽음, 린디웨의 소멸. 이것이 뜻하는 바가 갑자기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배면계가…….’
린디웨의 본신이 있던 곳, 대율을 포함한 신수가 날뛰던 그 세계. 배면계가 종말을 고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었다.
하지만 진짜 시작은 던전 시스템을 상대해야 하는 지금부터였다.
“자자, 줄 서요!”
일단은 돌아가야 할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