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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장. 하나의 마무리#3-
대율의 변화는 순식간이었다.
카잔시 중심에 불쑥 솟았던 산은 어느새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각 부위가 산의 일부 형태를 여전히 간직하고는 있었지만, 전체적인 형태는 더 이상 산 혹은 산맥이라 부를 수 없었다.
드러난 대율의 모습은 준혁이 ‘벌레’라고 외쳤던 딱 그 모습이었다.
대율의 모습은 전갈과 비슷했다.
그렇다고 흔히 생각하는 전갈의 모습은 아니었다.
앞쪽의 집게발이 세 쌍이었고, 거대한 꼬리가 다섯 개, 머리를 포함한 몸의 마디마다 인간의 상체 형태를 띤 석상이 튀어나와 있었다.
그런 모습에 더해서, 납작 엎드린 전갈의 몸뚱이 위에 산을 짊어지고 있는 모습이었다.
등에 얹힌 산과 솟아 있는 거대한 석상이 겹치니, 석상이 마치 산 중간중간에 박혀 있는 수호신 같은 느낌을 자아냈다.
하지만 무엇보다 단순한 전갈이나 벌레라고 말하기 어려운 부분은 너무 거대하다는 점이었다.
준혁이 대율을 올려다보며 감상을 늘어놓는다.
“오랜만에 보는데도 참……. 흉측하게도 생겼다.”
-신의 격을 지닌 존재에게 하등한 미적 기준을 들이대는 것이냐?
“그래도 내 말이 신경은 쓰이는 모양이네?”
-말장난이 길구나.
“어. 그러니 이제 끝내자!”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준혁은 몸을 날리고 있었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속도로 짓쳐 든 준혁의 무상곤이 커다란 궤적을 그렸다.
둔중한 충격과 함께 대율의 등판에 얹힌 산이 크게 흔들리며 거대한 흙더미가 쏟아져 내렸다.
꽝, 꽈앙-!
연달아 휘두르는 무상곤의 모양은 거대한 철퇴의 형태였다.
콰르르르!
흙더미가 쏟아지다 못해 아예 산사태가 일어났다.
물론 딱 거기까지다.
대율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움직였다.
세찬 바람 소리와 함께 쏟아진 것은 대율의 등판에 솟아 있던 석상들이었다.
촉수라도 된 듯, 허리가 길게 늘어난 거대한 석상이 준혁을 향해 돌격했다.
석상들은 분명 바위를 깎아 만든 것이 분명한 모습인데 마치 뱀처럼 늘어난 허리를 매우 유연하게 움직였다.
그 모습이 기괴하다 못해 징그럽기까지 하다.
꽝, 꽈광!
짓쳐 든 석상들이 거대한 바위 주먹을 휘두른다.
하지만 두드린 것은 아무것도 없는 땅바닥.
준혁은 어느새 몸을 빼, 뒤로 한참 물러난 상태였다.
‘대충 변한 건 없는 것 같고…….’
혹시나 싶어서 해 본 테스트였다.
다른 신수와 달리 대율은 시스템과 규칙을 이해하고 거기에 순응하는 길을 택했다고 했다.
신의 격을 지닌 존재가 무언가 새로운 것을 깨닫게 되면 새로운 변화를 맞이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것을 확인하기 위한 짧은 공격이었다.
과거와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을 보니, 새로운 무언가를 걱정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조금 애잔한 느낌도 들었다.
‘영원히 쳇바퀴를 도는 셈이네.’
신수는 오랜 수양 끝에 신의 격을 얻고, 거기에서 더 나아가 신이 되기를 갈망하며 끝이 보이지 않는 수양을 해 가는 존재였다.
하지만 결국은 배면계 시스템의 작동으로 봉인당하고, 긴 세월 육체를 재구성하기를 반복한다.
그것만이 존재의 의의라면 확실히 어느 정도 동정이 가는 측면도 있기는 했다.
그렇다고 이제 원한을 잊고 사이좋게 지내자고 할 수 있는 상대는 아니다.
어쨌든 둘 중 하나는 죽을 수밖에 없었다.
‘탐색!’
대율의 공략법은 크게 특별한 것이 없다.
외곽부터 공격해 몸뚱이를 깎고, 본체가 드러나면 차근차근 데미지를 쌓아 두꺼운 외피부터 차근차근 부수는 것이 공략법의 전부다.
지금까지 배면계를 거쳐 간 모든 각성자들이 그 방법으로 대율을 공략했다.
그러니 배면계 시스템에 남아 있는 대율 공략법도 그와 똑같다.
리쉬옌이 린디웨에게 받은 것도 마찬가지.
하지만 준혁은 새로운 방법을 시도해 볼 생각이었다.
관찰자가 되고, 성장하면서 얻게 된 스킬인 ‘탐색’이 그 시작이었다.
늘 그렇듯 시야에 색다른 광경이 펼쳐졌다.
“허!”
그리고 감탄이 터져 나왔다.
‘신격은 신격이라는 건가?’
만상만투처럼 대율도 몸속 깊은 곳에 근원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근원에서 용솟음치는 영력이 마치 지하 수맥처럼 대율의 몸속 곳곳으로 뻗어 있었다.
‘탐색’을 사용할 경우 영력은 붉은색으로 보인다.
근원에서 솟구쳐 퍼지는 대율의 영력은 단순한 붉은빛을 넘어 마치 들끓는 용암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용암의 흐름이 특정한 방향을 향해 격렬하게 흘러갔다.
대율의 오른쪽 첫 번째 집게발을 향해 쏟아지듯 모이는 영력.
“후웁!”
준혁은 크게 호흡을 고르며 그 움직임에 신경을 모았다.
아니나 다를까.
격렬하게 허공을 쓸어낸 집게발이 무시무시한 기운을 토해 냈다.
꽈과과광!
땅이 그대로 터져 나가며 흙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물론 준혁은 이미 그 자리를 피한 후였다.
두 눈은 여전히 ‘탐색’으로 대율의 영력을 살폈다.
집게발이 쉴 새 없이 공간을 잘라 대고, 다섯 개의 꼬리가 기이한 방향으로 날아들었다.
쾅, 콰콰쾅!
지진이라도 난 듯 카잔시 전체가 쉴 새 없이 뒤흔들렸다.
자비 없는 진동에 땅이 갈라지고, 건물이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자욱하게 피어오른 먼지가 마치 안개처럼 카잔시를 뒤덮는다.
“야, 인마!”
김준석이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벌써 열 번째였다. 싸움에 끼어들겠다고 뛰쳐나갔다가 흑호에게 끌려온 것이.
김준석만이 아니다.
최유나가 7번, 리쉬옌도 5번, 다른 팀원들도 몇 번이나 시도했다.
하지만 이미 ‘표식’이 달려 있는 상태라, 흑호의 마수를 벗어날 길이 없었다.
그렇다고 흑호와 싸울 수도 없다.
준혁의 환수라는 점도 있었지만, 여차하면 ‘은신’과 ‘도약’으로 피해 버리니 싸움 자체가 성립이 안 되었다.
모두의 얼굴에 근심과 초조함이 한가득이었다.
그들 역시 대율과 싸워 보았다.
대율의 외곽을 깎아 내고, 마침내 본체를 공격했었다.
그리고 그때 알았다.
신수라는 존재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존재인지를.
그나마 한 사람도 다치지 않고 멀쩡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양태군의 뛰어난 전술 덕분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그저 버티는 것이 고작인 싸움이었다.
그런 신수를 상대로 준혁이 혈혈단신으로 싸우고 있으니 걱정할 수밖에.
물론 준혁이 자신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강자라는 건 알고 있었다.
실제로 도쿄에서 만상만투라는 신수를 죽인 적도 있었다.
절반 정도는 준혁을 믿고 기다리자는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렇지가 못한 법이다.
나머지 절반은 일이 잘못되는 게 아닌가 걱정되어 미칠 지경이었다.
대율이 가진 힘을 보았기에 더욱더 불안했다.
하지만 흑호의 방해로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그저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유일하게 김준석만이 계속 시도를 하는 이유는 그가 준혁의 친형이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어려서부터 부모도 없이 서로 의지하며 자라 온 피붙이.
그런 동생이 저런 무지막지한 괴물과 싸우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누가 이놈 좀 잡고 있어요!”
김준석이 악에 받쳐 소리쳤지만 시도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미 수차례 시도했다가 실패했기 때문이었다.
파앙-!
땅을 박찬 김준석이 또다시 난입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흑호에게 잡혀 되돌아올 뿐이었다.
“미치겠네!”
김준석이 버럭 소리를 지를 때였다.
“엇! 뭐야!”
“헉!”
사람들이 거의 동시에 당혹성을 뱉으며 싸움터로 시선을 돌렸다.
갑자기 짓쳐 날아온 거대한 영력에 놀란 것이다.
피부가 따끔거릴 정도로 무시무시한 영력이었다.
콰르릉!
우렛소리와 같은 굉음이 카잔시 전체를 휩쓸었다.
동시에 대율과 준혁 주위에 짙은 안개처럼 피어올랐던 먼지가 갑자기 바닥을 향해 빨려 들어갔다.
“엇!”
김준석의 입에서 또 한 번 기겁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자욱한 먼지가 바닥으로 빨려 들어간 그 자리가 텅텅 비어 있었다.
준혁은 고사하고, 대율의 그 거대한 몸뚱이조차 보이지가 않았다.
“뭐, 뭐야!”
다급해진 김준석이 또 한 번 뛰쳐나갔다.
하지만 이번에도 여지없이 흑호에게 끌려올 뿐이었다.
“넌 니 주인이 걱정도 안 되냐!”
답답한 마음에 소리를 질렀지만, 흑호의 얼굴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아, 진짜 뭐가 어떻게 된…….”
그때 최유나가 큰 소리로 외쳤다.
“저기!”
김준석의 시선이 반사적으로 최유나의 손짓을 좇는다.
“아!”
준혁과 대율이 사라진 자리의 먼지가 빠르게 가라앉고, 그 일대의 광경이 완전하게 눈에 들어왔다.
그 땅바닥에는 아주 거대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대율의 거대한 몸뚱이마저 넉넉하게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크기였다.
“아, 뭐가 어떻게 되는 거야!”
김준석의 답답한 외침이 또 한 번 울려 퍼졌다.
지하, 저 깊은 바닥을 향해 추락하는 중에도 준혁과 대율의 싸움은 멈추지 않았다.
석상들이 득달같이 달려들고, 다섯 개의 꼬리가 쉴 새 없이 독침을 쏘아 댔다.
하지만 준혁은 끊임없이 피하기만 할 뿐, 조금도 공격하지 않았다.
-그새 성격이라도 변한 것인가, 도살자?
대율이 의혹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대율이 아는 준혁은 물러섬이 없는 인간이었다.
일단 싸움이 시작되면 죽을 정도로 위험하지 않는 한 끊임없이 공격을 퍼붓는 스타일이었다.
그런 준혁이 공격은 조금도 하지 않고 내내 피하고만 있으니 의아할 수밖에.
“하, 글쎄?”
준혁은 그저 의미심장한 웃음을 한 번 터트릴 뿐이었다.
그때였다.
구우웅!
묵직한 소음과 함께 강렬한 수직의 진동이 준혁의 몸을 뒤흔들었다.
대율이 권능으로 만들어 낸 수직 통로의 바닥에 닿은 것이다.
공간은 대율의 몸뚱이가 간신히 들어앉을 정도의 크기.
준혁이 운신할 공간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대율의 몸뚱이 위에 올라선 채 싸워야 했다.
그리고 이러한 공간이 대율에게는 가장 유리한 장소였다.
-시작하지!
퍼퍼퍼퍽!
급히 뻗은 여섯 개의 집게발이 수직 통로의 벽면에 틀어박혔다.
동시에 통로 벽면 너머에서 갑자기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린다.
펑, 퍼퍼퍼펑!
벽면 곳곳에 갑자기 구멍이 뚫리고, 그 구멍에서 수없이 많은 짐승이 튀어나왔다.
콰드드득!
흙과 바위 벽이 뒤틀리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거대한 나무들이 벽면에 빼곡하게 자랐다.
뻗어 나온 수천, 아니 수만 개의 가지가 준혁을 향해 휘몰아쳤다.
튀어나온 짐승들이 한꺼번에 준혁을 향해 달려든다.
대율의 권능이었다.
땅속, 그리고 땅 위의 자연을 자신의 뜻대로 생장시키는 것이 그 권능의 기본.
대율(大律)이라는 이름은 땅이 가진 자연의 법칙 그 자체를 뜻하는 이름이었다.
흘러내린 수만 개의 가지가 준혁의 몸을 옭아매고, 달려들던 짐승들의 몸뚱이가 무기가 되어 달려들었다.
그제야 준혁도 본격적인 싸움을 준비했다.
“천신강림!”
급격하게 솟구친 영력과 함께 준혁의 몸이 거대하게 부풀어 오른다.
-후후, 이제야 도살자답군.
준혁을 옭아매던 수만의 나뭇가지가 가닥가닥 끊어져 흩어졌다.
돌격한 짐승들이 준혁에게 부딪치며 쉴 새 없이 폭발했지만, 그 충격은 거대해진 준혁의 묵린갑조차 뚫지 못했다.
휘리리릭!
다섯 개의 꼬리가 채찍처럼 날아들었다.
기묘한 소음으로 청각을 가리고, 사각에서 파고드는 꼬리의 위력이 제법 매섭다.
휘이잉-!
하지만 다섯 개의 꼬리가 후려친 것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이었다.
-뭐지?
대율의 목소리에 당혹감이 묻어 있었다.
이 공격은 과거 준혁이 가장 애를 먹었던 패턴이었다.
그런데 그 공격이 아무런 성과도 없으니 놀랄 수밖에.
준혁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더 놀라게 해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