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받고 각성 더!-190화 (190/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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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장. 하나의 마무리#2-

“어? 릴리안?”

다시 돌아온 카잔시의 상황은 엉망이었다.

수많은 헌터와 군인이 카잔시에 있던 시민들을 옮기고 있었다.

“지원하러 왔어요. 클레르도 조직을 동원했고, 러시아 정부에서도 군인과 헌터를 파견했어요.”

이지가 사라진 채 인형처럼 일상을 보내던 사람들은 다른 의지가 없었다.

갑작스레 산이 솟아오른 이변 속에서도 아무것도 보지 못한 듯 하던 일을 이어 가던 사람들이었다.

대피하라고 말을 한다고 대피할 리가 없었고, 결국 헌터들이 직접 사람들을 옮겨야 했다.

하지만 카잔시에 남아 있는 헌터는 불과 10명.

양태군을 제외하면 최소 A급에 더해서 외천급의 스탯까지 갖고 있는 그들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높은 스탯을 가져도 100만이 넘는 사람들을 대피시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때 릴리안 우드와 리아 클레르, 그리고 러시아 정부가 나서서 인원을 파견했다.

가장 먼저 돌아온 사람은 릴리안 우드였다.

그리고 카잔시에 남아 있던 10명 중 릴리안 우드와 안면이 있는 사람이 있었다.

일본에서 함께 움직였던 유민섭이었다.

릴리안 우드는 유민섭을 통해 상황을 전해 듣고, 자신의 조직을 불러들이고 리아 클레르에게 연락을 하는 것은 물론 러시아 정부에도 상황을 전했다.

그때부터 자원이 투입되어 대규모 대피 작전이 시작된 것이었다.

카잔 시민들이 별다른 저항이 없다는 점이 다행이라면 다행.

대강의 상황을 전해 들은 준혁이 대율을 돌아보았다.

거대한 몸뚱이가 변하던 중에 멈춘 탓에 상당히 기괴한 산세를 지닌 이상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이것도 되나?’

문득 떠오른 생각에 준혁은 대율을 향해 ‘감응’을 사용했다.

-혹시 들리냐?

-음? 이건 뭔가, 도살자?

‘허, 되네?’

생각해 보면 안 될 이유가 없다.

신수는 적이기는 해도, 자아가 있는 독립적인 개체였다.

환수에게도 적용되는 ‘감응’이 신수에게 적용 안 되는 게 오히려 더 이상했다.

대율이 이어서 말했다.

-못 본 사이에 잡다한 권능을 얻은 모양이구나.

실제는 스킬이지만, 신수의 입장에서는 권능이라는 표현이 맞을 수도 있었다.

-시간이 좀 더 필요한 듯한데, 잠시 더 기다려 주지?

-어려울 것 없지.

순순히 받아들이는 대율의 모습에 준혁이 꽤 놀란 표정을 지었다.

-못 본 사이에 ‘여유’라는 권능이 생긴 모양이네?

-비꼬는 것인가?

-신기해서.

-신의 격을 얻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은가? 그에 비하면 이 정도 기다림은 찰나에 불과하지.

-그런가?

-그렇지.

준혁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속으로는 실소를 흘렸다.

‘어처구니없는 소리.’

신수들은 하나같이 폭급한 성격들이다.

차이는 있으나, 어디까지나 개개의 성향에서 오는 것으로 그조차도 미약한 수준이었다.

준혁의 느낌으로는, 신의 격을 얻으려고 너무 오래 참는 바람에 성격 파탄 된 놈들이었다.

물론 지금 그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았다.

괜한 자극으로 벌어 놓은 시간을 망칠 필요는 없었다.

-그나저나 왜 너만 배면계에 남아 있었던 거냐?

준혁은 배면계에서 모든 신수를 봉인했었다.

신수가 몇인지, 어떤 놈이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지 상세하게 알고 있었다.

또한 부화장에서 알이 몇 개인지도 세었다.

준혁이 알고 있는 신수의 숫자에서 2가 부족했다. 그 2 중 하나는 준혁의 손에 죽은 만상만투일 터. 그렇게 계산해도 한 놈이 부족했다.

그 한 놈이 지금 눈앞에 있는 대율이었다.

-믿을 수 없었다.

-응? 뭘 믿어?

-우리를 봉인했던 인간을 어떻게 믿겠는가?

-아아, 그놈? 내가 방금…….

정황상 로건 베런즈를 이르는 말이었다.

놈이 방금 전 자신의 손에 죽었다는 말을 하려는데, 대율이 그런 준혁의 말을 끊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이었다.

-그런 인간을 앞세운 ‘법칙’을 또 어찌 믿겠는가? 우리 배면계의 ‘법칙’조차 우리와 대립각을 세우려는 상황이 아닌가.

흠칫 놀란 준혁이 다시 대율을 쳐다보았다.

‘법칙? 시스템을 말하는 건가?’

맥락을 보면 ‘배면계의 법칙’이라는 건 배면계 시스템을 칭하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로건 베런즈를 앞세웠다는 ‘법칙’은 던전 시스템일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이건 어쩌면 그동안 알지 못했던 던전 시스템의 계획에 대해 할 수 있을 절호의 기회일지도 몰랐다.

준혁은 차근차근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배면계 시스템이 있는데, 어떻게 인간이 배면계에 들어갈 수 있었던 거지?

-시스템? 인간들은 ‘법칙’을 그렇게 부르는 모양이군. 인간이 직접 찾아온 것은 아니었다. 시공을 넘어 대화를 나누었다.

-그래? 그래서 무슨 대화를 했는데?

-거래를 제안하더군.

-거래?

-우리의 염원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를 말해 주고, 그 염원을 이룰 수 있게 해 주겠다더군.

-염원?

대율의 말을 곱씹던 준혁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아, 신의 격이 아니라……. 신이 되겠다던 그거?

-그렇지.

-그래서?

-모두들 흥분할 수밖에 없었지. 사실 나 역시 그런 감정은 정말 오랜만에 가져 보는 것이었다.

신의 격을 얻는 데 헤아릴 수도 없는 긴 세월을 보내야 했던 신수들이었다.

그럼에도 결국 ‘신’의 반열에는 오르지 못했다.

그런데 그 길을 열어 주겠다고 했다. 감정을 초월한 신수라 해도 흥분하지 않을 수 없는 내용임은 분명했다.

-그런데 거래를 제안한 거라며? 그럼 그 시스템이 너희한테 요구한 건 뭔데?

-배면계의 시스템을 부술 것.

-그게 가능해?

-너희가 던전 시스템이라 부르는 그것이 방법을 알려 주었다. 그 시스템에서 다루는 ‘마나’라는 것을 도구로 사용하면 가능하다더군.

-아!

귀가 번뜩 틔는 말이었다.

대강의 얼개가 맞아 들어가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가장 궁금했던 부분은 저것이었다.

시스템을 쪼갠 후, 다른 시스템과 합치는 것이 가능한가?

만약 가능하다면 어떤 방법을 통해서 할 수 있는가.

그것을 풀기 위해 알아낸 과정에서 드러난 것이 무명회였다.

그리고 무명회의 수장이 로건 베런즈였다.

그럼에도 의문은 있었다.

인간의 수준으로 그런 일을 하는 것이 가능한가.

그리고 지금 그 의문이 풀렸다.

처음부터 던전 시스템이 계획했던 일이었던 것이다.

시스템이 관여하고, 신수가 움직인 것이라면 가능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보다 더 풀리지 않는, 이해할 수 없는 의문점이 생겼다는 점이었다.

‘던전 시스템은 왜?’

대율은 시스템을 ‘법칙’이라고 불렀다.

이는 다른 의미가 아니다.

정해진 규칙대로만 작동하도록 탄생한 존재였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리고 준혁이 린디웨에게 들었던 바에 의하면, 시스템의 작동은 어떤 조건이 맞춰져야 가능하다.

배면계 시스템이 그러했다.

배면계에 신수가 육체를 구성해 날뛰기 시작하면 사람들을 소환해 신수를 봉인한다.

이 말을 다르게 해석하면, 배면계에 신수들이 출현하지 않으면 배면계 시스템은 사람들을 소환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던전 시스템 또한 마찬가지일 터였다.

어떤 ‘조건’이 충족되면 특정 세계에 게이트를 발생시키고, 사람들을 각성시키는 작동을 하게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었다.

물론 던전 시스템의 ‘조건’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던전 시스템에 의해 일어나는 일이 ‘법칙’에 어긋난다는 점만은 확실해 보였다.

저 행동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법칙’이 다른 독립적인 ‘법칙’을 무너트린다는 의미이기 때문이었다.

‘젠장! 파면 팔수록 더 알 수가 없네.’

위원회 회의의 이면에서 장치를 이용해 정보를 모으고, 로건 베런즈를 이용해 다른 세계의 신수를 끌어들였으며, 미구엘 페레스의 죽음에도 관여했다.

이 정도면 던전 시스템은 단순한 ‘법칙’이 아니라 별개의 자아를 가진 존재라고 볼 수 있었다.

거기까지 생각한 준혁이 대율을 향해 물었다.

-그런데 너희는 소위 신의 격을 품었다는 놈들이 ‘법칙’이 이상한 짓을 하는데 이유도 안 물어봤냐?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그렇게 도발하지 않아도 묻는 말은 답해 줄 테니 쓸데없는 짓은 하지 마라, 도살자.

혹시나 대답을 안 해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도발적으로 물었는데, 아예 그것까지 파악하고 말한다.

준혁으로서는 조금 허탈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래, 그래서 이유가 뭐래?

-되묻더군. 이 법칙의 굴레가 지겹지 않으냐고. 아무리 노력해도 그 굴레를 깰 수 없는 것이 화나지 않느냐고.

-그러니까 던전 시스템도 그게 지겹고 화가 났다는 말인가?

-적어도 그렇게 보였다.

-그 말을 믿어?

-그것은 사실이었다.

“미친!”

저도 모르게 버럭 내지른 외침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순간적으로 준혁에게로 쏠렸다.

준혁은 황급히 손을 휘저어 사람들의 관심을 흩어내고는 대율에게 말했다.

-그게 말이 돼?

-이미 일어난 일을 두고 말이 되고, 안 되고를 따지는 것은 공허한 질문이 아닌가?

-그야 그렇긴 하지만…….

이유를 들었는데도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시스템이, 그러니까 ‘법칙’이 ‘법칙’을 부정한 셈이었다.

즉, 자신의 존재 의의를 부정한 셈이다. 납득할 수 없는 강력한 ‘모순’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은, 최초에 시스템이 자신을 부정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또한 그렇게 스스로를 부정하면서 진짜 노리는 것은 무엇인지.

혹시나 싶어 다시 물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그것까지는 알 수 없었다.

역시나 거기까지는 답을 알 수 없는 듯했다.

-그런데 너는 왜 남았는데?

-나도 의문이 들었거든.

-의문?

-나의 존재 의의에 대한 의문.

-좀 알아듣게 말해 봐.

-신이 되기를 갈망하고, 오랜 세월 수양하며 신의 격을 얻었지만 결국은 신이 되지 못하는 존재.

꽤 자조적인 그 말에 준혁은 대꾸하지 않은 채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배면계에서 나의 존재가 가지는 의의가 그런 것이라면? 그렇다면 굴레를 깨는 것은 어쩌면 그 의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닌가? 그러한 자기 부정이 과연 옳은가? 그런 의문이 들었다.

조금 전 준혁이 던전 시스템의 자기 부정을 떠올렸던 것과 같은 맥락의 이야기였다.

-그래서?

-나는 내 의의대로 내 존재의 가치를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지.

-대단하네?

-대단할 것이 있는가? 결국은 순응의 삶일 뿐이다.

-아니.

-음?

-너 혼자만 그런 결정을 했다는 건 그 많던 다른 신수 놈들은 죄다 자기를 부정하고, 그 부정을 나름 합리화했다는 뜻이잖아.

-각자의 선택일 뿐이다.

-그렇군.

그때였다.

김준석이 빠르게 준혁의 옆에 섰다.

“대피 끝났다.”

“아, 그래? 그럼 형도 좀 멀리 가 있어.”

“야, 진짜 저 신수하고 일대일로 싸우겠다고?”

“약속은 지켜야지.”

“아니, 무슨 괴물이랑 약속을…….”

하지만 준혁은 형의 말을 더 듣지 않았다.

그리고 딱히 설득할 때도 아니었다.

“절대 끼어들지 마. 알았지? 그렇다고 너무 멀리 가지도 말고. 딱 관전할 수 있는 정도까지만 가 있어.”

“야, 아무리 그래도…….”

김준석이 황급히 고개를 내젓는 순간, 준혁의 명령을 받은 흑호가 난입했다.

“으억!”

갑작스러운 등장에 김준석이 흠칫하는 순간, 흑호는 ‘도약’으로 김준석을 끌고 가 버렸다.

-누구든 끼어들면 바로 내보내.

-네.

주변 정리까지 마쳤다.

이제는 약속을 지킬 차례였다.

“시작할까?”

-그러지.

쿠구구구궁!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산세가 거칠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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