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받고 각성 더!-188화 (188/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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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장. 인사#5-

린디웨가 만든 장치에서 강력한 파동이 뻗어 나가며 알을 감싼 장치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과는, 잔뜩 긴장했던 사실이 무색하게도 알들이 터져 나가고 있었다.

‘이러면 완전히 막을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던 준혁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준혁은 두 눈을 좁히며 그 무언가를 살펴보았다.

알을 둘러싼 장치와 알이 동시에 터져 나가는 순간, 알에서 아주 옅은 기운이 새어 나왔다.

그렇게 물에 흩어진 기운이 하나의 덩어리로 뭉치더니, 어느 순간 물밑의 한 점으로 빨려 들어갔다.

설명을 듣지 않아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시간을 벌 수 있다는 게 저 이야기였나?’

지금 흘러 나간 저 기운이 아마도 신수의 육신을 구축하는 코어일 것이다.

저 코어가 어디로 가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곳에서 다시 육신을 구축할 것이 뻔했다.

하지만 지금은 린디웨의 장치가 뿜어내는 압력에 밀린 터라 준혁이 그것을 막을 길도 없었다.

린디웨는 이것까지 상정하고 시간을 번다고 이야기했을 터.

‘차차 방법을 생각하는 수밖에……. 어?’

‘탐색’으로 인해 빛의 향연으로 변한 준혁의 시야에 이상한 것이 들어왔다.

몸속을 휘돌다 정수리에서 빠르게 소멸하는 영력.

린디웨의 영력이었다.

‘설마?’

생각해 보니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린디웨는 소멸을 앞두고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저 정도 장치를 만들 정도의 힘을 쓸 수 있을까?

장치에 사용되는 에너지는 외부에서 끌어왔다지만, 그것을 만들어 내고 운용하는 것 또한 많은 힘을 소모하기 때문이다.

준혁은 좀 더 깊이 린디웨의 기운을 살폈다.

‘역시!’

아주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것은 영력이 아닌 새하얗게 표현되는 ‘기운’이었다.

그 기운 덩어리에서 피어오른 에너지가 단전으로 들어가 영력이 되고, 그것을 바탕으로 장치를 움직이고 있었다.

그 기운은 다름 아닌 린디웨의 생명력, 생명의 근원 그 자체였다.

지금 린디웨는 자신의 생명력을 깎아 저 장치를 운용하고 있다는 뜻이다.

즉, 린디웨의 상황은 죽음을 향해 전력질주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기겁한 준혁이 ‘탐색’을 풀고, ‘감응’으로 린디웨를 불렀다.

-뭐 하는 짓이야?

-이 방법밖에 없었어.

담담한 느낌으로 전하는 그 말에 준혁의 머릿속에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지하실 벽 너머의 장치를 조사한 직후 지었던 린디웨의 묘한 미소.

아무런 방비도 없이 계단과 통로를 걷던 모습.

마치 준비하고 있었다는 듯 바로 만들어 낸 장치.

린디웨를 없애기 위해 준비한 함정이었다.

그리고 린디웨는 그것을 이미 알고 스스로 이곳으로 걸어 들어온 것이었다.

스스로 희생할 생각으로 이곳에 들어온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 상황은 성립할 수가 없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급히 물었다.

-알고 있었냐?

-그랬지.

-미친! 무슨 짓이야? 의논이라도 하든가?

-하하! 도살자 김준혁이 이렇게 섬세한 면도 있었냐?

-지금 농담이 나오냐?

되묻는 준혁의 얼굴에 매우 복잡한 표정이 떠올랐다.

린디웨의 표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자신의 무딘 감성에 대한 회한, 이 상황을 해결하지 못한 무력감, 그리고 곧 찾아올 이별에 대한 먹먹함이 한데 엉켜 있었다.

하지만 린디웨의 표정은 담담하기만 했다.

-어차피 다가올 소멸이었어. 필요한 일을 하고 맞이하면 좀 더 보람차잖아?

-하아!

-그리고 소멸하는 마당에 약간의 월권 정도는 괜찮겠지.

-뭐?

이해할 수 없는 말에 준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끄아아아악!”

준혁의 입에서 고통에 찬 비명이 터져 나왔다.

무시무시한 통증이었다.

머리를 쪼개고, 엄청난 압력으로 무언가를 억지로 밀어 넣는 것 같은 고통.

어지간한 고통은 신음 한번 흘리지 않고 견딜 수 있는 준혁이었지만, 이것만큼은 도저히 참을 길이 없었다.

그런데 그것은 단순한 통증이 아니었다.

정보였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양의 정보가 준혁의 머릿속으로 파고들었다.

아니, 강제로 머릿속에 정보를 새기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생기는 통증이었고, 그 고통의 정도는 준혁이 아예 눈을 까뒤집은 채 비명만 내지르게 만들 수준이었다.

“왜 그래요?”

“괘, 괜찮냐?”

릴리안 우드와 리아 클레르가 깜짝 놀라 묻는다.

하지만 준혁은 그저 고통에 몸부림치기만 할 뿐이었다.

그렇다고 릴리안 우드나 리아 클레르가 무언가를 해 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세 사람 모두 린디웨의 장치가 만들어 낸 압력에 밀려 벽에 처박힌 상태였다.

제대로 몸을 가누는 것도 힘든 상태니 다른 걸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퍽, 퍼퍽!

그러는 동안에도 린디웨의 장치는 차례차례 신수를 부화할 알들을 하나하나 깨어 나갔다.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그 힘에 돔 바닥의 물이 격랑처럼 휘몰아친다.

그렇게 속절없이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마지막 알마저 깨어졌다.

“큭, 크헉!”

동시에 준혁을 괴롭히던 지독한 통증도 가라앉기 시작했다.

가까스로 숨을 다듬은 준혁이 린디웨를 향해 물었다.

“뭘 한 거야?”

“내가 없어도 뭔가는 할 수 있어야지. 네 머리로 그걸 얼마나 활용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지금 그걸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너밖에 없거든.”

그렇잖아도 감당할 수 없는 양의 정보가 머릿속에서 뒤죽박죽 섞이고 있었다.

마치 백과사전 전질을 하나하나 낱장으로 뜯어서 뒤섞어 놓은 것과 같은 상태였다.

정리되지 않은 대량의 정보는 오히려 혼란만 초래할 뿐이었다.

“후우, 후!”

준혁은 크게 호흡을 고르며 애써 정신을 붙잡았다.

혼란스러운 머릿속 상태로 인해 제대로 된 대화가 힘들었다.

그렇다고 린디웨가 언제 소멸할지 모르는데 마냥 멍하니 있을 수는 없었다.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헝클어진 머릿속의 정보를 아예 차단해 버렸다.

준혁은 릴리안 우드와 리아 클레르를 의식해 다시 ‘감응’으로 말을 걸었다.

-이런 짓을 하면 너는 어떻게 되는 거냐?

-아까 말했잖아.

소멸한다는 뜻이다. 준혁이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린디웨가 곧바로 말을 붙였다.

-원래는 하면 안 되는 일이야. 하지만 어차피 나는 소멸하게 될 것이고, 배면계의 시스템 또한 던전 시스템과 섞이면서 사라질 수밖에 없어. 그러면 이 정도 정보의 처분은 내 마음대로 해도 되는 거 아니겠어?

이야기를 듣던 준혁이 두 눈을 크게 떴다.

린디웨의 모습이 서서히 옅어지고 있었다.

몸이 조금씩이지만 투명하게 변하면서, 그 너머의 광경이 희미하게 비치기 시작했다.

소멸의 시작이었다.

준혁은 그저 얼굴을 굳히며 그 광경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탓이었다.

린디웨의 말이 이어졌다.

-벽 너머, 통로 입구를 막고 있던 장치에 나를 향한 메시지가 심겨 있더라.

-메시지?

-이 부화장을 부술 수 있는 방법이 상세하게 적혀 있었지.

린디웨가 순식간에 장치를 만들어 낸 비밀이 그것이었던 모양이다.

-도대체 왜?

-그 방법을 쓰면 내가 소멸할 것을 알았으니까.

-아니, 도대체 어떻게?

-나는 이미 던전 시스템의 내부에 몇 번이나 침입했어. 내가 던전 시스템을 엿봤듯이, 놈도 나를 지켜본 거지. 그리고 나를 없애야겠다고 판단한 거야. 어쨌든 그 때문에 나한테는 선택권이 주어졌지. 부화장을 부수고 시간을 버는 대신 내가 죽을 것이냐, 아니면 이대로 신수들이 한꺼번에 부화하는 것을 지켜볼 것이냐.

-거래인가?

-그래. 그렇게 명시한 것은 아니지만 일종의 거래였지. 그리고 나는 선택한 거고. 어차피 소멸될 거라면, 이 정도 시간이라도 벌어 놓는 게 낫다고 판단한 거야.

이야기를 듣던 준혁이 갑자기 무언가를 깨닫고 물었다.

-야, 그런데 지금 이 상황은……. 시스템이 너를 제거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린 그 상황은…….

-그래.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던전 시스템은 자신의 ‘의지’를 갖게 된 거야.

-미친!

이는 절대 바뀔 수 없는 원칙이 비틀렸다는 뜻이다.

-원인은 나도 몰라. 이제부터는 네가 알아내는 수밖에.

-무슨 수로?

-너한테 전해 준 정보, 그걸 잘 활용해.

말을 건네는 린디웨의 얼굴에 담담한 미소가 걸렸다.

그런데 그때였다.

난장판으로 변해 버린 돔 한가운데 갑자기 게이트가 떠오르더니 누군가가 불쑥 튀어나왔다.

“하! 결국 이렇게 저질렀군요.”

로건 베런즈였다.

자신이 직접 움직여 만들어 낸 장소인데 이렇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했다.

준혁이 황급히 린디웨의 앞을 막아서며 로건 베런즈를 노려보았다.

그런 준혁을 노려보던 로건 베런즈가 묘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흐음, 정상인 상태는 아닌 걸로 보입니다만?”

사실이었다.

준혁은 갑작스러운 정보의 홍수로 엉망이 된 머릿속을 아직 정리하지 못했다.

린디웨와의 대화도 가까스로 이어 가던 중이었다.

아니라고 부정해 봐야 이빨도 안 들어갈 거짓말이었다.

“그렇지. 정상은 아니지. 그렇다고 너 하나 어떻게 못할 정도는 아니거든.”

“아, 오해하지 마십시오. 저는 딱히 당신과 싸울 생각이 없습니다. 물론 죽이고 싶은 마음은 간절합니다.”

“네 주제에?”

“제가 할 리가 없지요. 그리고 정상이 아닌 당신의 상황이라면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로건 베런즈가 손을 들어 올렸다.

동시에 준혁은 등골이 오싹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기억에 있는 감각이었다. 딱 한 번 느껴 본 적 있는 이 섬뜩한 감각은 다름 아닌 도쿄에서 경험해 보았었다.

만상만투, 로건 베런즈가 그놈을 소환했을 때의 그 느낌이었다.

“씨발!”

저절로 욕이 튀어나왔다.

파앙!

준혁이 튕기듯 땅을 박차며 로건 베런즈를 향해 몸을 날렸다.

슈욱!

핏기가 완전히 사라진 로건 베런즈의 얼굴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회피’가 발동한 것이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로건 베런즈는 아무런 미련도 없다는 듯, 곧장 게이트를 열어 그 속에 몸을 밀어 넣어 버렸다.

신수를 소환하면서 모든 기력이 빠져 버린 상태로 준혁과 싸우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와락 인상을 구긴 준혁이 황급히 릴리안 우드와 리아 클레르를 향해 말했다.

“도망쳐! 최대한 먼 곳으로! 게이트를 열어서라도 당장!”

가급적 게이트는 사용하지 않는 게 좋다. 하지만 목숨이 걸린 상황이었다. 그런 걸 가릴 때가 아니었다.

릴리안 우드와 리아 클레르가 재빨리 게이트를 열어 몸을 움직였다.

“흑호!”

준혁의 외침에 모습을 드러낸 흑호가 급히 준혁과 린디웨를 등에 얹고 ‘도약’을 펼쳤다.

‘도약’을 통해 옮겨 간 장소는 다름 아닌 카잔 크렘린 내부의 성당 옆이었다.

여기를 두고 나갔다가는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니 일단은 상황을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없앨 수 있다면 없애는 쪽이 나았다.

그 와중에도 준혁은 빠르게 최선의 방법을 찾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것은 혼란스러운 머릿속이었다.

“머릿속에 이거 지금 어떻게 못하냐?”

린디웨가 힘겨운 표정으로 손을 움직였다. 동시에 복잡하던 머릿속이 갑자기 말끔하게 정리되었다.

“일시적으로 멈춰 놨다. 최소한 하루 이틀은 잠잠할 거야. 그래도 나중에 꼭 정리 한번 해라.”

당연히 할 수밖에 없었다. 계속 머릿속이 혼란한 상태로는 일상생활도 힘들 것이다.

쿠구구구궁!

거대한 진동과 함께 바닥의 땅이 폭삭 무너져 내렸다.

그와 동시에 땅에서 갑자기 불쑥 솟아오른 건 하나의 거대한 산이었다.

“이, 이건 또 뭐야?”

백효를 타고 날아오른 준혁이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자문하듯 외쳤다.

배면계에서 날아온 놈은 다름 아닌 대율이었다. 당연히 준혁의 기억에도 있는 신수다.

하지만 준혁의 당혹스러움의 원인은 다른 데 있었다.

“형?”

새하얀 장창을 산봉우리에 박아 넣고 있는 김준석의 모습이었다.

아니, 김준석만이 아니다.

리쉬옌, 유민섭, 최유나, 강태웅, 백호진, 리처드 개런, 양태군, 강이찬, 장민호까지 있었다.

배면계로 떠났던 준혁의 지인들이 지금 이 상황에 뜬금없이 등장한 것이었다.

그것도 대율과 싸우는 상태로.

준혁의 입장에서는 황당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었지만, 사실은 매우 당연한 일이었다.

거의 모든 신수가 지구에서의 부화를 위해 배면계를 떠났다.

유일하게 남아 있는 신수가 대율이었으니, 로건 베런즈가 소환한다면 대율이 넘어오는 게 당연했다.

그리고 때마침 대율은 배면계로 넘어갔던 헌터들과 싸우고 있었다.

그 대율을 불러들인 탓에, 대율과 함께 있던 헌터들도 자연스럽게 딸려 온 것이다.

준혁이 사태를 파악하기 위해 ‘관찰’을 사용하려는 찰나였다.

“리, 린디웨!”

리쉬옌이 기겁한 목소리로 외치며 단숨에 린디웨를 향해 날아갔다.

린디웨의 모습은 거의 투명에 가까울 정도로 희미해진 상황이었다.

소멸 직전에 리쉬옌을 만난 것이다.

린디웨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리쉬옌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마지막으로 인사는 하고 갈 수 있겠네?”

그리고 짧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

“아, 아…….”

말문이 막힌 리쉬옌이 왈칵 눈물을 쏟아 내는 순간, 린디웨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다.

“린디-!”

그제야 말문이 트인 리쉬옌의 절규가 크게 메아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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