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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장. 인사#4-
던전 계열의 마법사, 혹은 배면계의 술사들은 다양한 마법이나 술법을 쓴다.
그런데 그중에서 어느 한 가지 계열이 위력이 잘 나오는 현상이 있었다.
강이찬의 경우 그것이 ‘불’이었다.
유독 불과 관련한 마법이나 술법의 위력이 아주 강력했다.
실제로 마나 운용을 깨달은 후, 가장 먼저 마나의 작동 원리를 깨달은 스킬도 ‘파이어볼’이었다.
그래서 강이찬은 주로 불 계열의 마법과 술법을 자주 쓴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콰쾅!
지면을 뚫고 들어간 술석이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폭발과 동시에 지면이 회색으로 물들었다.
“어우, 난 세상에서 단순 반복이 제일 싫어!”
듣는 사람도 없는데 누구 들으라는 듯 구시렁거린다.
개인 방송 할 때의 버릇이었다.
그렇게 몇 번을 더 반복했을 때였다.
쿠드드득!
낯선 소음이 강이찬의 고막을 자극했다.
황급히 고개를 돌린 강이찬의 눈에 지면이 꿈틀거리는 광경이 들어왔다.
황급히 거리를 벌리며 문제의 그것을 자세히 살핀다.
무언가가 지표면 아래의 땅을 뚫으며 빠르게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뭔지는 모르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위험!’
생각을 떠올리기가 무섭게 허공을 향해 술석을 던져 올렸다.
“염인(炎刃)!”
분홍빛으로 물든 영력이 피어오르는 동시에 두 개의 술석이 허공에 거대한 불꽃을 수놓았다.
정확하게는 불꽃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한 자루 칼.
콰콰콱!
화염의 칼, ‘염인’이 지체 없이 땅을 갈랐다.
사나운 폭발과 동시에 지표면 아래에서 달려들던 무언가가 산산조각이 나고, 그 잔해가 허공으로 솟구쳤다.
허공으로 솟구친 것은 거대한 나무뿌리의 잔해였다.
하지만 그 잔해가 마치 동물의 살점 같은 느낌이었다.
“미친!”
아니, 느낌이 아니라 실제였다. 언뜻 보면 나무의 잔해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동물의 살점이었다.
잔해와 함께 사방으로 흩뿌려졌다가 강렬한 열기에 그대로 증발하는 것은 분명 피였다.
“산이 신수가 된 게 아니고, 신수가 산인 척한 건가?”
외곽에서 안쪽으로 지면을 공격하면서 어렴풋이 그런 느낌을 받았었다.
공격한 땅은 흙이 아니라 어떤 동물의 살점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어쨌든 ‘신수’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었다.
그렇다면 산이 신수가 되었다 해도 일종의 유기물의 특성을 가질 수도 있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그 반대라면?
강이찬은 황급히 사방으로 흩어진 나무뿌리의 잔해를 살폈다.
대부분은 갈가리 찢겨 있었지만, 일부 모양이 온전히 유지되고 있는 것들이 있었다.
“으!”
와락 인상부터 찡그렸다.
그것은 나무뿌리처럼 보였지만, 나무뿌리가 아닌 속이 텅 빈 관처럼 생긴 무언가였다.
강이찬의 머릿속에 반사적으로 하나의 단어가 떠올랐다.
“혈관?”
이게 도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짐승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건 산이 신수가 된 게 아니다.
산인 ‘척’하는 어떤 신수였다.
그리고 또 하나.
‘직접 공격이 왔다는 건?’
외부에서 시작해 안으로 밀고 들어온 공격에 놈이 반응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즉, 놈에게 실질적인 데미지를 먹일 정도의 깊이까지 깎아 들어왔다는 뜻이었다.
‘빨리!’
***
벽에 난 통로로 들어서자마자 나온 것은 아래로 향하는 나선형의 계단이었다.
그리고 계단은 아주 깊었다.
-이 계단은 아무리 봐도 옛날에 지은 게 아닌데?
중세의 집이나 성단 건축물에 지하는 존재했다.
하지만 지금 계단을 따라 내려온 깊이는 일반 건물의 지하 9층, 10층 깊이에 달했다.
이 성당을 지을 당시에 그 정도의 건축 기술은 없었을 테니, 절대 과거에 만들었다고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린디웨는 별다른 대답 없이 묵묵히 층계를 밟기만 할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내려갔을까.
준혁이 갑자기 발을 멈췄다.
-야, 지금 이거?
지금까지 내려온 대로 계속 층계를 밟았을 뿐이었다.
그런데 온몸의 피부를 자극하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느낌이 있었다.
준혁이 뒤를 돌아보며 릴리안 우드와 리아 클레르를 보았다.
두 사람 역시 같은 것을 느낀 듯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게이트?
-맞아요.
역시 그 느낌이 틀리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리고 다시 앞을 보았을 때, 준혁은 저도 모르게 미간에 깊은 주름을 잡았다.
린디웨의 온몸에서 푸른색 영력이 짙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누가 봐도 전투태세다.
준혁도 반사적으로 영력을 끌어 올렸다.
-뭐냐?
-지금부터가 진짜야.
-진짜라니?
-카잔에서 이것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이제 알 수 있다고.
고개를 끄덕인 준혁이 뒤에 있는 릴리안 우드와 리아 클레르에게도 주의를 주었다.
그렇게 다시 건물 한 층 정도의 깊이를 더 내려갔을 때, 마침내 계단이 끝나고 돌로 만들어진 긴 복도가 드러났다.
네 사람은 별다른 말 없이 서로를 향해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복도를 따라 걸었다.
‘이상한데?’
준혁은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 이곳이 놈들에게 중요한 장소라면 이렇게까지 무방비인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완전히 무방비는 아니었다.
지하실 벽에 준혁의 ‘탐색’에 걸리지 않는 ‘장치’가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것 하나만 믿고 있을 로건 베런즈가 아니었다.
‘뭐지?’
괜한 불길함이 엄습해 왔다. 그렇다고 발을 멈추기도 애매했다.
앞서 걷는 린디웨가 멈추지 않고 거침없이 나아가고 있는 탓이었다.
복도마저 끝이 났을 때, 네 사람을 맞이한 것은 하나의 문이었다.
린디웨는 이번에도 거침없이 손을 내밀었다.
-잠깐!
더 이상 참지 못한 준혁이 린디웨의 손을 막았다.
-왜?
-여기 좀 이상하지 않냐?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해도 이 상황은 ‘함정’이 있다고 광고하고 있었다.
-괜찮아.
린디웨의 대답은, 역시 그녀도 이상하다는 걸 눈치채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럼에도 괜찮다고 말하는 이유는 또 뭐란 말인가.
-일단 대비를 하는 게.
-괜찮다고.
단호하게 준혁의 말을 끊은 린디웨가 그대로 문을 열었다.
그리고 드러난 광경.
“이, 이건 뭐!”
“미친!”
릴리안 우드와 리아 클레르가 저도 모르게 소리를 내 말했다.
문 너머는 거대한 돔 형태의 광장이었다.
돔 야구장 대여섯 배는 됨 직한 거대한 공간, 그 공간의 바닥에는 물이 고여 있었다.
성인 남자 무릎 정도 깊이의 물웅덩이.
그리고 돔 천장에서는 은색으로 빛나는 수천 다발의 거미줄 같은 것이 내려와 천장과 물웅덩이를 잇고 있었다.
돔 천장에 알알이 새하얀 빛 입자가 맺히고, 그 입자들이 은색 선을 타고 내려와 물웅덩이에 고였다.
그렇게 고인 빛 입자가 최종적으로 향하는 곳은 물에 반쯤 잠겨 있는 타원형의 무언가.
그것은 ‘알’이었다. 성인 남자 허리춤까지 오는 거대한 알.
문제는 그 ‘알’의 정체.
“아, 아이들이!”
카잔시에서 보이지 않던 아이들이 반투명한 알 껍질 속에 마치 태아처럼 몸을 말고 잠들어 있었다.
“저, 저기!”
고개를 잔뜩 빼 들고 알들을 살피던 릴리안 우드가 그중 하나를 가리켰다.
준혁의 시선이 정확하게 릴리안 우드의 손가락을 따라갔다.
“엇!”
릴리안 우드가 가리킨 알 속의 아이에게서 짙은 회색빛 안개 같은 것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머릿속을 스치는 충격적인 예감.
준혁은 반사적으로 ‘탐색’을 펼쳤다.
“이런 미친!”
영력이었다.
준혁의 ‘탐색’ 속에서 붉은색으로 가시화되는 영력이, 천장에서 시작해 은색 줄을 타고 내려와 잠겨 있는 알에 채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각각의 알은 기운으로 빚어 낸 ‘장치’들이 감싸고 있었다.
수많은 알 중에 회색 안개에 휩싸인 아이가 가장 강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준혁의 신경을 사로잡은 것은 다른 것이었다.
영력을 받아들이는 아이의 몸속에서 새하얗게 빛나는 무언가.
딱 한 번 본 적 있는 그것.
충격을 받은 준혁의 시선이 서서히 린디웨에게로 향했다.
-이거 설마……. 신수?
알 속 아이의 몸에 있는 새하얀 빛 덩어리는 만상만투의 몸속에서 보았던 ‘근원’과 유사했다.
그리고 린디웨는 짙은 그늘이 드리워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망할! 카잔시에서 ‘일꾼’ 이용해서 모은 기운을 이딴 짓에 쓰는 거였어?
-링크가 이곳인 이유도 저것 때문이겠지.
-저 아이들은?
준혁의 물음에 린디웨가 힘겹게 고개를 내저었다.
-늦었어.
린디웨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준혁의 온몸에서 짙은 묵색의 영력이 피어올랐다.
꽈앙-!
“큭!”
준혁의 입에서 답답한 신음이 터져 나왔다.
무상곤으로 가장 가까이 있는 알을 후려쳤는데, 오히려 준혁의 무상곤이 튕겨 나온 것이었다.
“뭐야, 이거?”
손목이 시큰할 정도의 반탄력이었다.
준혁의 수준을 생각하면 말이 안 되는 결과.
이유는 린디웨의 입에서 나왔다.
“하나하나가 다 ‘장치’가 입혀져 있어. 이 상태로는 못 깨.”
준혁이 와락 인상을 구겼다.
조금 전 ‘탐색’으로 알을 감싸고 있는 장치들을 보았었다. 그것이 알을 보호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면 그 짐승 새끼들이 넘어오는 걸 막을 방법이 없다고?”
“없어.”
단호한 린디웨의 말에 준혁이 와락 인상을 구겼다.
처음 시스템 이상에 대해 알았을 때 걱정했던 일이 현실로 펼쳐진 것이다.
린디웨가 뒤이어 다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시간은 벌 수 있어.”
“어떻게?”
“내가 하면 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린디웨의 온몸에서 푸른 영력이 뻗어 나왔다.
구우웅!
돔 전체가 묵직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돔 천장에 맺히던 빛의 입자가 크게 흔들리더니 후두둑 바닥을 향해 그대로 떨어져 내렸다.
“읍!”
준혁과 릴리안 우드, 리아 클레르가 동시에 뒷걸음질 쳤다.
린디웨에게서 뻗어 나오는 드센 압력이 세 사람을 벽 쪽으로 밀어붙인 탓이었다.
‘이거 뭐야?’
준혁이 이해할 수 없는 표정으로 린디웨를 보았다.
린디웨가 시스템 아바타라고는 해도, 갖고 있는 힘 자체는 아주 강하지 않았다.
그녀가 가진 힘만으로는 이렇게 준혁이 밀려날 정도의 위력을 낼 수 없다.
그때 문득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 가지.
준혁은 재빨리 ‘탐색’으로 린디웨를 살폈다.
‘아!’
린디웨의 몸에서 솟아오르는 것은 ‘탐색’의 시야에서 붉은색으로 표현되는 영력이 아닌, 자연에 퍼져 있는 그 ‘기운’이었다.
몸속에서는 영력이 다시 기운으로 재변화 되고 있었다. 그뿐 아니다. 사방에 퍼져 있는 모든 기운이 린디웨의 몸으로 밀려들었고, 그것이 다시 기운으로 변환되었다.
그리고 린디웨의 몸에서 피어오른 기운은 명확한 모양을 잡아 가고 있었다.
빛으로 그어진 선, 그리고 삼각형과 사각형, 원으로 표현되는 그것, 장치였다.
린디웨는 지금 모든 기운을 모아 하나의 장치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자신이 만들어 낸 장치로, 지금 이 알들을 보호하는 장치를 깨려는 모양이었다.
린디웨가 뿜어낸 기운이 장치를 빚는 것을 멈췄다.
즉, 린디웨가 자신만의 장치를 완성했다는 의미였다.
돔은 물론 바닥에 깔린 물이 통째로 뒤흔들렸다.
가장 먼저 일어난 변화는 천장과 바닥의 물을 잇고 있던 은색 줄이 끊어진 것이었다.
쿵, 쿠쿵!
묵직한 굉음이 사방에서 휘몰아치고, 그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싸움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