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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장. 인사#3-
“먼저 갑니다!”
버럭 소리를 지른 사람은 강이찬이었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허공으로 솟구친 술석이 빛을 뿜으며 강이찬을 휘감았다.
“저희도!”
유민섭과 장민호도 곧바로 강이찬의 뒤를 따른다.
각각의 빛에 휩싸인 세 사람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하지만 그것에 신경 쓰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리쉬옌과 최유나를 비롯한 다른 이들은 이미 사력을 다해 달리고 있었다.
저 멀리 보이는 거대한 암벽을 향해서였다.
“어떤 놈?”
선두의 최유나가 물었고, 나란히 달리던 리쉬옌이 대답했다.
“몰라요. 저런 짓은 모든 신수가 할 수 있어요.”
김준석이 정찰을 위해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저 암벽이 솟아 올랐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김준석이 신수와 맞닥뜨렸고, 그대로 싸움을 시작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궁금증이 일었다.
“어떻게?”
먼저 달려 나간 사람이 준혁이었다면 저런 상황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신수를 보자마자 달려들었을 테니까.
하지만 김준석은 준혁보다 신중한 성격이었다.
형제라 그런지 가끔씩 과격하고 무모한 모습을 보일 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침착한 편이었다.
그런 김준석이 조심성 없이 신수에게 덤벼들었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들켰다는 결론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김준석은 천원급 엽사였다. 기척을 죽이고 움직였다면 들켰을 리가 없다.
하지만 중요한 건 아니다. 그 정도 의문은 도착하면 알게 될 터.
지금은 저 암벽 너머 싸우고 있을 김준석을 돕는 게 먼저였다.
“빨리!”
최유나가 버럭 소리를 치며 다시 앞서 나갔다.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 분홍색 빛무리가 솟구치더니 갑자기 하나의 신형이 나타났다.
“역시!”
영력은 사람마다 다른 색을 띤다. 그렇다고 아주 많은 종류가 있는 것은 아니다.
보통은 붉은색, 푸른색, 노란색, 검정색이고, 그 색이 섞인 보라색이나 초록색 등이 있었다.
그런데 기본적인 영력의 색이 옅게 나오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강이찬이 그 경우였다.
매우 화사한 분홍색 영력을 갖고 있었다.
“남자는 핑크!”
그리고 강이찬은 그것을 매우 마음에 들어 했다.
강이찬에 이어 유민섭과 장민호가 ‘축지’를 통해 나타났다.
세 사람이 발을 디딘 곳은 원통형의 암벽 내부였다.
“어디야?”
재빨리 시선을 움직이며 김준석의 위치를 찾는다.
그때였다.
“뇌호강전!”
귓전을 때리는 커다란 외침. 세 사람의 고개가 동시에 산꼭대기로 향했다.
크허어어엉!
허공에서 뚝 떨어진 새파란 빛으로 빚은 거대한 호랑이의 포효. 동시에 사방으로 새파란 뇌전이 격렬하게 뻗쳐 나갔다.
콰콰쾅!
산봉우리 일대가 순식간에 크고 작은 폭발에 휩싸였다.
“달려!”
유민섭이 외침과 동시에 몸을 날렸고, 강이찬과 장민호가 그 뒤를 따랐다.
“엇! 염망(炎網)!”
강이찬이 황급히 술석을 날리며 외쳤다.
날아간 다섯 개의 술석이 분홍빛으로 빛나며 순식간에 거대한 화염을 일으켰다.
거대한 돔 형태로 김준석을 감싼 화염 그물이 자리를 잡는다.
수십 개의 폭발이 화염 그물 주변에서 터졌다.
‘뇌호강전’의 범위 밖에 있던 대형 맹수들의 육탄 돌격이었다.
“후욱, 훅!”
김준석은 화염 그물 안에서 빠르게 숨을 골랐다.
그러는 동안 그물 바깥에서는 쉴 새 없이 동물들이 터져 나갔다.
강이찬이 술법으로 짐승들의 육탄 돌격을 막는 중이었다.
“약한 걸로 넓게!”
김준석의 외침에 강이찬이 재빨리 손을 거두어들였다.
뒤이어 두 개의 술석을 바닥으로 내던지며 외쳤다.
“화전(火田)!”
강이찬을 중심으로 땅에 불길이 피어오르며 부채꼴로 넓게 퍼져 나갔다.
산봉우리를 중심으로 넓게 퍼져 나간 불길에 남아 있던 짐승들이 한꺼번에 폭발했다.
-훼방꾼이 있구나.
대율의 목소리.
“피해!”
경각심을 느낀 김준석이 다급히 외쳤고, 세 사람이 동시에 몸을 날렸다.
거의 동시에 세 사람이 서 있던 자리에 거대한 바위 형태의 입이 솟구치며 공간 전체를 씹어 삼킨다.
“이런 미친!”
콰아앙-!
저 멀리서 굉음이 울려 퍼졌다.
암벽 한 곳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며, 그 속에서 최유나를 필두로 일행들이 밀려 들어왔다.
“모여요!”
양태군이 외쳤고, 산봉우리에 있던 네 사람이 빠르게 자리를 옮겼다.
“지휘권!”
배면계 각성을 하면서 스킬 사용의 제약이 사라진 유민섭이 빠르게 스킬을 펼쳤다.
그의 ‘지휘권’은 서포트 계열에서는 사기급 스킬이었다.
뒤이어 각종 버프가 따랐다.
던전 계열의 스킬은 물론 배면계 스킬까지 총동원했다.
배면계 직업마저도 서포트 계열의 술사인 유민섭은 버프 종류만 열 가지였다.
“어떤 신수죠?”
“이 산 전체! 이름은 대율입니다!”
김준석의 대답에 리쉬옌이 와락 인상부터 구겼다.
“제길!”
“왜요?”
“이 산이 아니에요!”
“네?”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모두 떠난 이곳 배면계에 이렇게나 많은 인간들이 있었나?
대율이 불쑥 끼어든 탓이었다.
사람들의 얼굴이 일시에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이해 못할 말을 들은 탓이었다.
“떠나? 어디로?”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리쉬옌의 질문에 대율이 친절하게도 대답을 해 주었다.
-인간의 세상.
“뭐?”
-배면계에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으니.
리쉬옌의 머릿속을 스치는 이야기가 있었다.
‘신이 되고 싶다더군.’
만상만투와 싸운 직후, 준혁이 전해 준 이야기였다.
배면계의 신수들이 지구로 넘어온 이유가 그것이라 했다.
그리고 지금 대율이 한 이야기는 그 맥락과 들어맞는다.
놈들은 헤아릴 수 없는 세월을 배면계에 있었지만 신의 격을 얻었을 뿐 신이 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어떻게?’
그러다 연이어 떠오르는 한 가지.
“설마 배면계의 영력이 옅어진 이유가?”
-그것까지 알고 있었나?
“그 정도야 뭐…….”
대답하는 리쉬옌의 얼굴에는 짙은 의혹이 떠올랐다.
‘도대체 어떻게?’
신수라는 타이틀을 단 놈들의 덩치는 하나같이 거대하다.
품고 있는 영력 또한 신격이라는 격에 맞게 무시무시한 수준.
그런 놈들이 차원을 뛰어넘어 간다면 각각의 개체가 소모해야 할 에너지가 엄청나다.
배면계에 있던 모든 신수가 넘어갔다면, 그 과정에서 엄청난 힘의 파동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리쉬옌은 그것을 느끼지 못했다.
그 부분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대율, 당신은 왜 안 넘어갔지?”
-후후, 부질없는 짓이지.
“당신만이 다른 선택을 한 것인가?”
모두 떠났다고 한 대율의 말이 떠올라 물은 것이었다.
-그렇지.
“음!”
리쉬옌의 표정이 복잡하게 변했다.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대율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제 사냥할 수 있는 신수는 단 하나 남았다는 뜻이었다.
대율만 잡으면 이곳에서의 볼일은 모두 끝난 셈이니 생각보다 빠르게 귀환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대율은 배면계 신수 중에서도 한 손에 꼽히는 강자라는 게 문제였다.
과연 지금의 멤버로 사냥이 가능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나쁜 소식은 신수를 사냥하면서 성장할 기회가 한 번밖에 없다는 것도 아쉬운 부분이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뒤로 물릴 방법은 없었다.
“모두 잘 들어요.”
말을 꺼내는 리쉬옌의 표정이 더할 나위 없이 무거웠다.
팀원들이 얼굴도 자연스럽게 굳어졌다.
“대율은 이 산이 아니에요.”
“그러면?”
“이 일대의 산맥 전체. 아니, 정확하게는 이 일대의 땅 전체!”
단숨에 이해가 가지 않았다.
땅 전체라니.
“즉, 호수를 건너 우리가 발을 디딘 그곳부터 이미 대율의 몸뚱이 위였어요. 대율은 물이 아닌 땅 위에 떠다니는 섬과 같은 존재예요.”
무슨 말인지는 알겠다. 하지만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럼 우리가 발견한 영력의 흔적은 뭡니까? 아니, 그 전에 더 중요한 거. 호수를 건넜을 때는 왜 놈의 영력을 느끼지 못한 겁니까?”
“외곽으로 갈수록 영력이 옅고, 중심으로 들어갈수록 영력이 짙어져요. 그리고 우리가 느낀 영력의 흔적은 놈의 코어가 움직인 경로쯤 되는 거죠.”
외곽에는 천원급에 오른 준석조차도 감지할 수 없을 정도로 옅은 영력이 퍼져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아주 서서히 짙어지기에 실제로 그 속을 움직이는 사람은 영력의 농도 차이를 알아채지 못하는 것이다.
꽤 비약이 있기는 하지만, 냄비에서 천천히 끓는 물 속에 담긴 개구리에 비유할 수 있었다.
그러다 코어의 흔적을 발견하고 갑자기 영력을 감지한 것으로 착각한 것이다.
하지만 김준석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그런데 놈은 내가 가까이 와서야 내 존재를 인식했는데요?”
“저놈에게는 인간도 산속의 동물과 다르지 않아요. 그러다 코어에 가까워지니 그제야 준석 씨의 존재를……. 그런데 어떻게 들킨 거죠?”
“준혁이 때문에요.”
“네?”
“준혁이와 비슷한 느낌을 감지했다고 날뛰더군요.”
“아아…….”
대강 이해가 갔다.
린디웨의 말에 따르면 준혁은 배면계 역사상 최강의 엽사였다.
그 정도 강자와의 싸움이라면 신수로서도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었을 터.
“아무튼 그럼 이놈은 어떻게 잡습니까?”
“별다른 방법이 없어요.”
“네?”
“이 정도로 센 놈들은 그냥 차근차근 때리는 수밖에 없어요.”
“때려요? 어디를? 땅을?”
질문이 연달아 튀어나왔다.
“네. 바깥에서부터 차근차근.”
그때였다.
-내 몸 위에서 나를 죽일 방법을 이야기하는 건가? 너무 예의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급격하게 영력이 솟구쳤다.
-피해요!
어차피 유민섭의 ‘지휘권’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리쉬옌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일행들이 동시에 몸을 날렸다.
굉음과 함께 거대한 압력이 사방으로 휘몰아쳤다.
-흩어져요. 끝에서부터 차근차근 놈의 부피를 줄여야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감이 잡히지 않는 이야기였다.
강이찬이 급히 물었다.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에요?
-일단 가요! 가서 직접 땅을 공격해 보면 알아요!
-아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일단은 시키는 대로 해 보는 수밖에.
급히 흩어지는 일행들의 머릿속으로 리쉬옌의 당부가 이어졌다.
-바깥쪽부터 공격하다가 땅이 일어나면 그때 다시 모여요. 모일 지점은 민섭 씨가 정해요.
여전히 알아듣기 힘든 이야기였다. 하지만 지금은 일단 시키는 대로 해 보는 수밖에.
“여, 여긴가?”
거세게 내달렸던 김준석이 급히 발을 멈췄다.
감각을 최고조로 높인 덕분에 사방에 깔려 있는 영력을 인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서 있는 지점은 갑자기 영력이 뚝 끊어진 곳이었다.
아마도 이곳이 대율과 진짜 땅의 경계선인 듯했다.
고민할 겨를이 없다.
김준석은 생각을 마치기가 무섭게 땅을 향해 무상곤을 찔러 넣었다.
준혁의 무상곤이 육모방망이가 기본 형태였다면, 김준석은 기본 형태를 장창으로 잡았다.
새하얀 영력을 머금은 새하얀 장창이 땅속 깊이 파고들었다.
꽝!
묵직한 폭음과 함께 지면이 뒤흔들렸다.
“허!”
그 직후 김준석의 입에서 헛바람이 튀어나왔다.
터져 나간 지면에서 시뻘건 핏물이 튀어 오르더니, 흙으로 뒤덮여 있던 지면이 어느새 잿빛으로 바뀌어 있었다.
‘단순히 땅이 아니라 어떤 생물인 건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리쉬옌이 했던 말을 대강 이해할 수 있었다.
중심을 향해 뻗어 가던 변색이 어느 지점을 경계로 멈췄다.
바깥에서부터 깎아야 한다는 게 저것을 의미하는 모양이었다.
재빨리 위치를 옮긴 김준석이 다시 한 번 경계선을 향해 장창을 찔러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