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받고 각성 더!-183화 (183/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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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장. 카잔#5-

“그런데 지금 저거…….”

김준석의 모습을 유심히 살피던 강이찬이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확답은 리쉬옌의 입에서 나왔다.

“맞아요.”

“어? 맞죠?”

“네. 달려오네요.”

김준석은 수면을 박차고 달려오고 있었다.

이건 꽤 놀라운 부분이었다.

“허! 이거 무슨 무협 영화도 아니고…….”

유민섭이 허탈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지금 이곳에 있는 이들 중 수면 위를 달릴 수 있는 사람도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냥 하지는 못한다.

술사 계열의 사람들은 술법을 이용해야 했다.

투사 계열도 맨몸으로는 수면을 달릴 수 없었다. 발바닥에 나무판자 하나씩 묶어서 최소한의 부력을 확보해야 가능했다.

초인적인 능력이 있다고는 해도, 마나의 도움 없이 자연의 법칙을 깰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김준석은 그냥 맨발로 수면을 박차며 달리고 있었다.

“괜히 엽사를 추켜세우는 게 아니었네.”

리처드 개런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말했다.

그러는 사이 거대한 물보라를 일으키며 달려온 김준석이 마침내 물가에 내려섰다.

“잘들 지냈어요?”

그렇게 인사를 건네는 김준석은 6개월 전 헤어질 당시보다 훨씬 더 단단한 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일행의 리더인 리쉬옌을 시작으로 재회의 인사를 건넸다.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에요.”

“와! 이거 뿜어내는 영력이 무시무시한데요?”

“어우, 포스가 그냥…….”

“반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이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는데?”

일행들은 섬 안쪽에 만들어 놓은 야영지로 자리를 옮겨 오랜만에 회포를 풀었다.

불을 지피고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음식은 어차피 1차원적이었다.

따 놓은 과일이나 고기, 혹은 생선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거기에 유민섭이 비장의 무기를 꺼내 놓았다.

술이었다.

“크하하하! 드디어 완성했습니다. 이게 간단해 보이겠지만, 이 술 만드는 데 무려 여섯 개의 술법을 사용한 겁니다.”

자랑스레 내놓은 술은 포도주와 비슷한 맛과 향을 갖고 있었다.

배면계의 과일이나 고기는 모두 맛이 좋다. 하지만 지구에서 흔히 먹던 조리한 음식으로 만들어 먹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렇기에 대부분 굽거나 끓이는 게 요리의 전부였다.

그런 의미에서 과일주는 매우 사치스러운 음식이었다.

술이 곁들여지며 흥이 오른 분위기에 사람들은 길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눌 이야기라고 해 봐야 떨어져 지낸 동안 겪었던 일들이었다.

어떤 영수를 사냥했는지, 무슨 해프닝이 있었는지, 위기를 어떻게 극복했는지의 이야기들이다.

그중 백미는 김준석의 매구 사냥이었다.

여우가 천 년을 묵으면 변한다고 알려진 매구는 영수 중에서도 최상급에 속하는 놈이었다.

“희귀한 놈이라 찾는 것부터가 죽을 맛이에요.”

매구는 리쉬옌도 사냥해 본 적이 없는 영수였다.

“고생고생해서 놈의 영역을 발견하기는 했는데……. 이놈 잡는 데 제일 까다로운 게 뭐냐면 변신 능력이거든요? 변신이라고 하니까 다른 영수로 변하거나 그런 걸로 착각하기 쉬운데, 이놈은 아예 지형지물로 변신해 버려요. 나는 그냥 땅 위에 서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 땅이 그 자식이 변신한 거였더라고요. 그래서 몇 번이나 죽을 뻔했죠.”

다들 이야기에 빠져든다.

“어쨌든 어디 있는지만 알면 확실히 잡을 수 있겠는데, 어디 있는지 알 길이 없으니…….”

“오오, 그래서 결국 어떻게 했어요?”

“오줌을 갈겨 줬지.”

뜬금없는 이야기에 다들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다.

“그놈의 새끼가 영역에 엄청 집착하거든요. 그런데 자기 영역에 내가 영역 표시를 하니까 그걸 못 참더라고.”

“그러니까 형님도 짐승의…….”

불쑥 말을 꺼냈던 강이찬이 저도 모르게 흠칫 놀라 말끝을 흐렸다.

“험험! 뭐 그랬다고.”

이들은 몰랐지만, 과거 준혁이 배면계에 있을 당시에도 지금 김준석과 똑같은 방법으로 매구를 도발해 사냥했었다.

역시 형제는 형제였다.

밤이 깊은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떨어져 지낸 동안의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이상하게도 바로 어제까지 같이 지낸 듯 낯선 느낌이 없었다.

떨어져 지내기 전 지낸 4년 가까운 세월이 있었기 때문이다.

긴 이야기를 나눈 후에는 각자 자리를 잡고 깊은 잠에 빠졌다.

늘어질 대로 잠을 잔 후 눈을 떴을 때는 이미 해가 중천이었다.

가벼운 식사 후 리쉬옌은 곧장 일정을 발표했다.

“호수를 건너면 그때부터는…….”

말끝을 길게 늘이며 일행들과 일일이 눈을 맞춘 리쉬옌이 선언하듯 말을 마무리했다.

“신수를 사냥합니다.”

배면계 일정의 막바지를 향한 시작이었다.

***

“이거 무슨 팔자에도 없는…….”

준혁은 혀를 내두르며 넌더리를 냈다.

카잔 크렘린 내부의 성당을 조사한 지도 벌써 보름째였다.

이 성당 지하에 무언가가 있다는 린디웨의 말에 시작된 조사는 보름이 지났는데도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리아 클레르가 가지고 있던 자료를 꺼내 놓은 것은 물론, 은밀하게 가져온 각종 첨단 장비로 성당 지하를 샅샅이 조사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최소한 단서라도 있든가.”

하루에도 수없이 밀려드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며 조사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특히 장비를 동원하는 일은 장비의 부피 때문에 한밤중에 몰래 진행해야만 했다.

문제는 그러고도 나오는 게 없다는 점이었다.

“헛다리 짚은 거 아냐?”

준혁은 성당 벽에 등을 기대앉으며 혹시나 하는 의문을 입으로 뱉었다.

물론 그 말을 들을 대상인 린디웨는 현재 한국에서 몸을 쉬고 있었다.

일단 준혁이 성당 지하로 들어가는 길을 찾을 때까지 요양을 하는 게 낫다는 판단이었다.

준혁의 구시렁거림은 단순한 투정이 아니었다.

동원된 장비들 중에는 시중에서 구할 수 없는 물건들도 많았다.

거기에 준혁이 있었다.

최상급의 영력 운용 능력을 이용해 내부를 살피는 것은 물론, ‘탐색’으로 에너지의 흐름까지 살필 수 있었다.

그런데도 나오는 것이 없었다.

결국 이제 해 볼 수 있는 것은 1차원적인 접근 방법밖에 없었다.

더듬거나 밀고 당기는 등 손으로 모든 것을 만져서 확인하는 것이다.

영화에서 주로 등장하는 비밀 장치 찾기였다.

그 역시도 나오는 것이 없었다.

“흐음…….”

슬쩍 시간을 확인하니 자정이 막 넘어가고 있었다.

그래도 일단 조사는 계속해야지 싶은 생각에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리아 클레르가 불쑥 말을 꺼냈다.

“지하라고 했잖아.”

준혁과 마찬가지로 지쳐 있던 리아 클레르가 문득 말을 던졌다.

“어, 지하.”

“그냥 저 성당 지하를 열면 안 되는 거야?”

“내가 삽질하려고 했을 때 린디웨가 안 된다고 말했잖아.”

“아니, 그거 말고.”

“응?”

“일단 성당 안에 지하로 내려가는 길은 있었잖아?”

“그랬지.”

“그 지하실 바닥의 벽돌을 들어내 보자고.”

말도 안 된다고 고개를 저으려던 준혁이 갑자기 멈칫했다.

“음?”

생각해 보니 이상하게 그럴싸한 느낌이 들었다.

준혁이 삽질로 땅을 파고 들어가는 것은 당연히 무언가를 잘못 건드리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었다.

하지만 벽돌을 들어내는 건 관점에 따라 파괴적인 게 아닐 수도 있었다.

이미 맞춰져 있는 것을 뽑아낼 뿐이기 때문이다.

잠시 고민하던 준혁이 재빨리 전화를 걸었다.

카잔과 서울의 시차는 6시간, 현재 이곳에서 자정을 넘겼으니 한국은 오전 6시였다.

전화를 해도 별다른 무리는 없다. 물론 무리가 있는 시간이라도 준혁은 전화를 걸었겠지만.

(무슨 일?)

마침 깨어 있었는지 린디웨가 바로 전화를 받았다.

“뭐 하나 물어보자.”

(어, 뭔데?)

“여기 성당 지하실로 내려가서 바닥 벽돌을…….”

준혁의 설명을 들은 린디웨가 별다른 고민 없이 대답했다.

(상관없을 것 같아.)

“그래?”

(땅을 파는 건, 지하에 뭔가가 있을 때 그걸 건드릴 수도 있기 때문에 안 된다고 한 거였거든. 그런데 벽돌을 들어내는 건 혹시나 그런 걸 건드릴 위험은 없으니까.)

“그래? 야, 그런데 말이지.”

(왜?)

“뭔가 있는 건 확실하냐?”

(있어, 확실히.)

“별의별 장비를 다 동원해도 나오는 게 없는데?”

(그런 과학적인 접근 방법을 쓰면 안 되지. 그건 시스템이 관여해 있는 거야. 생각해 봐라. 게이트가 과학적인 측정 장비로 나오냐?)

게이트를 발견할 수 있는 물건은 릴리안 우드가 BR코퍼레이션을 통해 유통한 계측기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물건은 절대 ‘과학적’인 장비가 아니었다.

굳이 따지면 ‘마법적’인 장비다.

“하긴……. 아무튼 알았다.”

전화를 끊은 준혁이 릴리안 우드와 리아 클레르를 향해 말했다.

“갑시다.”

“솔직히 좀 죄를 짓는 기분이 들기는 하네요.”

작은 목소리로 말한 사람은 릴리안 우드였다.

카잔 크렘린의 성당은 오래된 건축물이다. 카잔 크렘린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곳이기도 했다.

그런 곳을 훼손하는 일을 하자니 괜히 찜찜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원상 복구만 해 놓으면 되지.”

반면 리아 클레르는 조금도 거리낌이 없다.

물론 시작하기 전에 릴리안 우드가 단단히 주의를 주었기에 벽돌을 뽑아내는 손의 움직임은 섬세했다.

물론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굳이 나까지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반대편 쪽에서 준혁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손을 놀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준혁의 초인적인 피지컬은 이런 작업에서도 빛을 발했다.

보통 사람은 육안으로 구분도 못할 정도로 빠른 손놀림이었다.

그러면서도 단 하나의 벽돌도 훼손하지 않는 섬세함까지.

그런데도 이미 들어낸 벽돌의 양이, 릴리안 우드와 리아 클레르가 뽑아낸 벽돌의 네 배였다.

그나마도 준혁이 매우 조심스레 움직이고 있기에 그 정도 차이였다.

양쪽 벽 끝에서 가운데를 향해 벽돌을 뽑아낸 영역이 넓어졌다.

“이것도 허탕인 것 같은데?”

빠르게 작업을 하면서도 준혁의 얼굴에는 희망이 없었다.

딱히 나오는 것이 없는 탓이었다.

결국 지하실 바닥의 모든 벽돌을 들어냈다.

“흠…….”

역시나 나오는 것이 없었다. 벽돌을 들어내니 기초 공사를 한 흔적만 나올 뿐이었다.

그래도 혹시나 싶어 세 사람은 직접 손으로 땅바닥을 더듬으며 샅샅이 살폈다.

당연히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멍하니 서서 고민하던 준혁이 갑자기 고개를 홱 돌렸다.

“리아.”

“네?”

화들짝 놀란 리아 클레르가 준혁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준혁의 입에서 절망적인 이야기가 나왔다.

“니가 다시 다 깔아라.”

리아 클레르는 구련환을 끼고 있었다. 그 말은 준혁의 입에서 저 말이 나온 순간 무조건 그 일을 하게 된다는 뜻이다.

“젠장!”

입에서 거친 소리가 튀어나왔지만, 리아 클레르의 손은 이미 쌓아 놓은 벽돌을 쥐고 있었다.

아무리 이성이 거부를 해도 몸이 알아서 움직이니 방법이 없다.

그때였다.

“잠깐만요!”

벽을 더듬던 릴리안 우드의 목소리가 들렸고, 준혁이 곧바로 반응했다.

“잠깐, 멈춰 봐.”

그제야 리아 클레르의 손길이 멎었다.

준혁의 지시가 없으면 무슨 말을 들어도 벽돌 깔기는 계속되기 때문이었다.

“왜 그래요?”

준혁의 물음에 릴리안 우드가 자신이 살피고 있던 지점을 가리켰다.

“여기 너머가 비었는데요?”

“음?”

릴리안 우드가 가리킨 곳은 바닥과 벽이 만나는 모서리였다.

득달같이 달려간 준혁이 빠르게 손을 움직였다.

벽의 벽돌이 순식간에 뽑혀 나가고, 마침내 숨겨져 있던 벽 너머의 광경이 드러났다.

“이거 뭐야?”

준혁의 목소리가 허탈하게 울려 퍼졌다.

각종 장비를 동원한 것은 물론, 손으로 성당의 모든 벽을 두드려 보았었다.

지금 이 벽도 당연히 조사했었다.

그렇게 모든 방법을 동원해도 찾을 수 없던 비밀 공간이 단순히 벽돌을 뽑아내자 드러났다.

허탈함을 넘어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었다.

곧장 발을 들이려던 준혁이 멈칫하며 살짝 뒷걸음질을 쳤다.

이 정도 미지의 공간이라면 몸으로 부딪치기 전에 살펴보는 것이 우선이었다.

-흑호, 린디웨 데리고 여기로 좀 넘어와라.

흑호에게 명령을 내리는 즉시 준혁은 탐색을 펼쳤다.

“아!”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광경이 준혁의 눈앞에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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