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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장. 시스템 속의 위원회#1-
시스템의 코어는 준혁이 본 것처럼 기운의 흐름을 통해 각각의 기능이 발현한다.
그런 코어의 내부는 당연히 아주 강력한 기운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 장소에 영력이 스며든다면?
영력은 곧장 영력으로서의 성질을 잃고 원래의 형태인 ‘기운’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가 않았다.
영력은 분명 영력인 상태로 그 거대한 기운의 소용돌이 속에 존재감을 빛내고 있었다.
“로건 베런즈가 뭔 짓을 했다는 소린데…….”
“근데 그건 불가능하다며?”
“그래서 더 이상하다는 거지.”
“도대체가…….”
“뭘까?”
“음…….”
대화가 뚝 끊어졌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너무 많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시스템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너무 많은 탓이다.
시스템 아바타인 린디웨라면 알고 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이는 조금 다른 개념의 이야기였다.
컴퓨터를 예로 들면, 린디웨는 아주 뛰어난 사용자였다.
각종 소프트웨어를 전문가 수준으로 다루고, 부품을 모아 조립하고, 고장 난 부품을 직접 고쳐서 사용할 수 있는 뛰어난 사용자라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뛰어난 사용자도 부품의 회로도를 이해하지는 못한다.
배면계 시스템에서 린디웨의 위치는 딱 그 정도였다.
미지(未知)는 추측이 쌓일 수밖에 없고, 추측이 많으면 모호함이 덩치를 불린다.
두 사람의 대화가 일관되면서도 뜬구름 잡는 느낌으로 가는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각자 허공만 쳐다보며 한참 동안 공허한 고민만 하던 중, 준혁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르는 건 일단 묻어.”
준혁은 단서가 있고 그것을 기초로 논리적인 추론을 계속할 수 있다면 끝을 볼 때까지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길게 고민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난 일단 지금 해 볼 수 있는 걸 하련다.”
“지금 할 수 있는 거?”
“로건 베런즈, 그 자식 잡아야지.”
일을 벌인 놈을 잡아다가 묻는다.
이해의 과정 없이 일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일 수도 있었다.
“알았어. 나는 계속 고민해 보고 있을게.”
“그런데 혼자 괜찮겠냐?”
“응?”
“상태도 안 좋은데 혼자 있어도 괜찮겠냐고.”
“허!”
황당한 표정으로 자신을 보는 린디웨의 모습에 준혁이 멀뚱멀뚱한 표정을 지었다.
“왜?”
“언제부터 그렇게 섬세하셨다고?”
툭 튀어나오는 실없는 소리에 준혁은 대꾸할 필요도 없다는 듯 게이트를 열며 말했다.
“너 그냥 우리 형네 집에 가 있어라. 내가 전화해 놓을 테니.”
어차피 김준석은 지금 배면계에 가 있었고, 집에는 이세연과 지유만 있었다.
김준석이 한동안 혼원 길드 사옥에서 내준 집에서 지냈기에 적당히 친분도 있는 편이었다.
가서 지내는 것은 불편하지 않으리라.
또한 그 곁에는 청랑이 있으니 위급한 일이 생기면 언제든 연락을 받을 수도 있었다.
“으음.”
린디웨가 턱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알았어.”
“그래, 그럼.”
준혁은 곧장 이세연에게 전화를 걸어 의향을 물어보았다.
이세연은 흔쾌히 수락했다. 아예 린디웨를 바꿔 달라더니, 오히려 함께 지내 주면 든든해서 안심이 될 것 같다고 감사 인사까지 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정리한 준혁은 게이트를 열고 릴리안 우드를 만나러 갔다.
***
“그 전에 하나 물어볼 게 있어요.”
릴리안 우드는 의구심 가득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네. 말씀하시죠.”
“그 사실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거죠?”
준혁은 릴리안 우드에게 시스템 메시지의 ‘링크’와 관련한 이야기들을 설명해 주었다.
당연히 린디웨와 관련 있는 부분은 뺀 채 이야기했다.
무언가 이야기 중간에 빈 곳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릴리안 우드는 말을 끊지 않고 끝까지 들었고, 지금 이야기가 끝난 후에 질문을 던진 것이다.
“음, 던전 시스템 내부에 침입할 수 있는 능력자가 있습니다. 지금 말씀드릴 수 있는 건 딱 거기까지입니다.”
준혁의 말에 릴리안 우드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어느 정도 신뢰가 쌓였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부족한 모양이군요?”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미안한 말이지만, 지금은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말해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심정적으로는 릴리안 우드는 믿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 얼마 전까지만 해도 릴리안 우드를 믿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되지 않는다.
원래는 불가능해야 할 시스템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존재 때문이었다.
정황상으로는 로건 베런즈가 그런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전혀 의외의 인물이 진짜 원흉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뭐, 괜찮아요. 어쨌든 시스템 내부에 침입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니, 놀랍군요. 그럼 지금 할 일은 로건 베런즈를 잡는 일인가요?”
“네. 현재로서는 놈을 잡는 게 이 일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의해요. 하지만 그의 위치는 여전히 알 수가 없죠.”
“손발을 끊어 놓는 수밖에 없습니다.”
“손발이라면?”
던전 관리자들은 모두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했다.
게이트 능력을 이용해 헌터들을 포섭했다. 가성비가 뛰어난 게이트를 선점하는 방식으로 뛰어난 기량을 가진 헌터를 모으는 건 쉬운 일이었다.
많은 헌터를 거느리고, 게이트의 정보를 알고 있으면 돈을 긁어모으는 것은 여반장이다.
그리고 그 돈으로 사회 전반에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했다.
야마모토 테츠야가 그렇게 했었고, 다른 관리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릴리안 우드의 경우에는 BR코퍼레이션이라는 괴물 같은 기업을 통해 벌어들이는 돈까지 있어 그 영향력이 훨씬 컸다.
하지만 로건 베런즈는 달랐다.
그는 배면계 귀환자들을 모았다.
준혁이 직접 만난 적 있는 무명회 소속의 술사, 볼런트 라일을 미행했던 남자, 일본에서 준혁의 호텔방을 살피던 팀.
그 모두가 배면계 귀환자들이었다.
그래서 그를 잡는 것은 더욱 힘들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숨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다르다.
지금 그들은 드러나 있었다.
아즈키스탄과 러시아 사이에 있는 분쟁 지역에 그들이 있다.
그리고 지금 준혁에게는 ‘탐색’이라는 스킬이 있었다.
배면계 귀환자들이 아무리 영력을 죽이고 있어도 준혁은 보는 것만으로 그들을 찾을 수 있었다.
“정보망 돌려서 계속 놈들을 찾아 주십시오. 저는 제 방식으로 놈의 수하들을 잡겠습니다.”
하지만 릴리안 우드는 고개를 저었다.
“혼자 할 때가 아닌 것 같아요.”
“네?”
“아, 그 전에. 김준혁 씨의 방식이라는 게 어떤 거죠?”
“저는 배면계 귀환자들이 숨어 있어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좋아요. 같이하죠.”
“같이?”
“던전 관리자는 모두 다섯 명이죠. 로건 베런즈를 빼도 네 명이에요. 네 명의 관리자가 힘을 합치면 충분히 큰 힘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준혁을 제외한 세 명의 관리자. 그들이 가진 힘은 확실히 만만치 않다.
헌터들로 이루어진 실질적인 무력과 각 사회에 끼칠 수 있는 막대한 영향력이 있었다.
그걸 이용하면 좀 더 수월하게 로건 베런즈를 압박할 수 있었다.
“하지만 관리자 소집을 하면 로건 그 자식도 들어올 수 있습니다만?”
“상관없죠. 알면 아는 대로 놈에게 압박이 될 수 있으니까요.”
“음, 그건 또 그렇긴 하군요.”
로건 베런즈는 강한 힘을 갖고 있지만 준혁에게는 이기지 못한다.
무명회에 속해 있는 배면계 귀환자들도 강하다.
하지만 관리자들이 자신의 무력을 대거 이끌고 움직이면 상대하지 못할 수준은 아니다.
더군다나 ‘게이트 오픈’ 스킬을 응용하면 훨씬 유리한 상황에서 싸울 수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로건 베런즈도 알고 있다.
로건 베런즈에게는 충분한 압박이 될 수 있었다.
로건 베런즈는 원래도 더할 수 없을 정도로 신중하게 움직이는 놈이었다.
사실을 안다고 해서 그 정도가 심해질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압박을 넣고 손발을 끊는 게 나았다.
덤으로 강력한 압박으로 인해 놈이 실수를 저지를 수도 있다는 기대를 해 볼 수도 있었다.
“지금 소집하시죠.”
준혁의 말에 릴리안 우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 후 두 사람의 의식은 곧장 어디론가 끌려갔다.
5인 위원회의 회의에는 로건 베런즈를 제외한 4명만이 참석했다.
“로건 베런즈는 안 왔군.”
준혁의 말에 적색의 게이트가 크게 요동쳤다.
「그게 무슨 말이오? 안 왔다고? 그럼 녹색이 로건 베런즈라는 자였단 말이오?」
“거 코스프레는 좀 적당……. 아, 됐고. 그 이야기는 좀 이따 하기로 하고. 청색, 당신은 이제 정신 좀 차렸나 보네?”
준혁의 강력한 힘을 직접 확인하고 정신적으로 무너져 버렸던 청색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소집에 응한 걸 보면 어느 정도는 정신을 차린 모양이다.
준혁의 예상대로 청색이 정돈된 문장을 꺼내 놓았다.
「정신, 차렸지. 그래도 너무 그렇게 빈정거리는 건 기분 나쁜데?」
“쪽팔리긴 한 모양이야?”
「아니라고는 못하겠네. 아무튼 조만간 당신한테 찾아가지. 자세한 이야기는 그때 하고…….」
청색의 말을 적색이 끊고 들어왔다.
「무슨 말이오? 찾아간다니? 그럼 둘이 만났었다는 말인가?」
청색이 혀를 차며 대답했다.
「쯧쯧! 분위기 파악 좀 해. 대세는 기울었고, 수틀리면 죽을 판인데 언제까지 그렇게 꽁꽁 숨어 있을 생각이야? 숨어 있어도 당신 조직 박살 나는 건 시간문젠데.」
「아무리 그래도…….」
「그것도 당신이 알아서 해. 자, 이제 이렇게 불러 모은 이유나 말해 봐.」
그때였다.
불이 꺼져 있던 나머지 하나의 게이트에서 녹색 빛이 번졌다.
로건 베런즈의 등장이었다.
「흠, 나도 부른 게 맞겠지요?」
로건 베런즈는 더 이상 이전에 사용했던 노파의 목소리를 쓰지 않았다.
자신의 본래 목소리, 본래의 말투로 말했다.
이제 더 숨길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어, 왔냐?”
「네, 왔습니다. 제가 오더라도 작당은 했을 테니, 저는 듣고만 있겠습니다.」
확실히 로건 베런즈도 보통은 아니었다.
준혁과 릴리안 우드의 의도를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다.
준혁도 개의치 않고 말했다.
“내가 이제 널 칠 거거든.”
「저를요? 제가 어디 있는지 알고 치겠다는 건가요?」
“너는 안 쳐도, 네 밑에 있는 놈들은 칠 수 있지.”
「걱정 마십시오. 알아서들 잘 숨어 있으니. 아무리 당신이라도 찾아낼 수 없습니다.」
“뭐, 그것도 내가 고민할 문제니까 너도 걱정하지 말고.”
준혁은 한마디도 지지 않았다. 영력을 품은 놈이라면, 그것을 아무리 깊이 숨겨도 준혁의 ‘탐색’에서 숨을 방법은 없었다.
“그래서 오늘 이렇게 부른 이유는, 이제 다 같이 모여서 저 자식을 쳐야 하지 않겠느냐는 거야.”
「하지만 무슨 수로 저자를 친단 말이오?」
“그건 여기서 말 못하지.”
「그럼?」
“나를 찾아와. 만나서 이야기하는 게 좋잖아?”
「당신이 우리를 공격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잖소?」
“그건 저기 청색한테 물어봐. 내가 마음만 먹었으면 이미 살아 있지 못했거든.”
그리고 청색이 곧바로 그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로건 베런즈, 저자에게 공격당했고, 그때 구해 준 사람이 김준혁이야. 뭐, 당장 죽이지 않을 거라는 정도까지는 믿어도 될 거야.」
「그대는 김준혁을 찾아가겠단 말이오?」
「지금 다른 방법이 없잖아? 저 녹색이 언제 나를 죽이려고 들지 알 수 없는 상황인데.」
「그, 그건…….」
적색과 청색의 대화를 듣는 사이, 준혁은 문득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여기서 탐색을 쓸 수 있나?’
‘감응’은 사용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탐색’을 사용한 적은 없다.
‘탐색’을 통해 이 공간을 본다면, 혹시 지금까지 보지 못한 무언가를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면 바로 실행해야 하는 법이었다.
‘탐색.’
스킬을 펼치는 동시에 준혁의 시야 속 풍경이 돌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