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
-60장. 던전 시스템#1-
‘링크?’
무슨 의미일까?
준혁이 그 의미에 대해 곱씹어 보려던 찰나였다.
“엇!”
“링크라니?”
회의실 밖에서 놀람에 찬 목소리가 들렸다.
백악관 내에 있는 경호원들의 외침이었다.
보통 VIP의 경호원들은 일반인과 각성자가 5 대 5의 비율인데, 그 각성자들의 목소리인 듯했다.
지금 준혁의 눈앞에 뜬 메시지는 세상 모든 각성자의 눈에 보인다는 뜻이다.
즉, 지금 뜬 메시지는 공지다.
‘링크……. 무슨 뜻이지?’
준혁의 고민은 또 한 번 방해를 받았다.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며 경호원들이 회의실로 우르르 밀려 들어왔다.
“미스터 프레지던트, 지금 즉시 움직이셔야 합니다.”
“무슨 일이지?”
“우선은 피하시죠.”
경호원들은 별다른 설명 없이, 조금은 강제적으로 바일레어 대통령을 이끌었다.
뒤이어 다수의 요원들이 밀고 들어와 회의실에 있는 이들에게도 자리를 뜰 것을 권했다.
회의실에 있는 이들은 대부분 미국 행정부의 장관들이었다.
이를 다르게 말하면, 모두가 대통령 승계 권한을 가진 이들이었다.
혹시 모를 비상사태에 대비해 경호를 강화하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그 분주함 속에서 준혁은 눈을 감은 채 감각을 최고조로 끌어 올리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전 세계 각성자들에게 동일한 메시지가 전달되었습니다.”
“동일한 메시지?”
“링크 시퀀스가 시작되었다는 메시지입니다.”
“링크?”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으나, 대통령님께서 관심을 가졌던 두 개 시스템의 융합과 관련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으니 일단은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바일레어 대통령과 그를 경호하는 시크릿 서비스 소속 요원 사이의 대화를 엿듣고 있었다.
‘역시 그런 의미의 링크인가? 아니, 가만!’
준혁이 화들짝 놀란 얼굴로 벌떡 몸을 일으켰다.
생각해 보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린디웨!’
린디웨는 배면계 시스템의 아바타였다. 그런데 던전 시스템과 배면계 시스템 사이에 링크라는 게 시작되었다.
린디웨에게 어떤 방식이든 영향이 갈 터.
“미스터 김, 일단 함께 이동하시죠.”
존 넬슨이 준혁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그 역시 보고를 받고 시크릿 서비스가 저렇게 분주한 이유를 알고 있었다.
“아뇨, 저는 따로 가 볼 곳이 있습니다.”
“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데…….”
존 넬슨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그가 걱정하는 것은 사실 자신들의 안위였다.
도쿄만에 등장한 괴물을 본 이후부터, 존 넬슨은 ‘시스템 융합’이라고 알려진 그 일을 가장 심각하게 바라보는 사람이었다.
그런 괴물이 어느 날 워싱턴 D.C.에 등장한다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결과였다. 미국 행정부는 그 순간 공중분해라는 결과에 이를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 괴물을 걱정할 수밖에 없는 메시지가 나타났다고 들었다.
이럴 때는 유일하게 그 괴물에게 맞설 수 있는 준혁을 가까이 두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본인이 거부하면 절대 강제로 잡아 둘 수 없는 사람이었다.
“아, 알겠습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준혁은 백악관을 벗어났다.
그러는 동안 흑호에게 명령을 하나 내렸다.
-흑호.
-네, 주인님.
-바일레어 대통령 몰래 따라가라.
-네, 주인님.
그리고 사람이 없는 곳에 도착하자마자 게이트를 열었다.
“괜찮냐?”
준혁은 게이트를 통과하자마자 안부부터 물었다.
그리고 되돌아온 것은 거센 구박이었다.
“야! 여기 함부로 불쑥불쑥 오지 말랬지!”
일전에도 한 번 이렇게 등장했다가 예의도 경우도 없다며 구박받은 적이 있는 준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기분이 아니었다.
준혁은 린디웨의 타박을 무시하고 물었다.
“링크 어쩌고 하던데, 너 괜찮은 거냐?”
“안 괜찮으면?”
“너 예전에…….”
“예전에 뭐?”
“시스템 융합되면 너도 사라질 거라고 말했잖아.”
“링크는 연결됐다는 말이지, 융합됐다는 말은 아니잖아?”
“그런가?”
“그렇지. 음?”
고개를 끄덕이던 린디웨가 갑자기 멈칫하며 준혁을 보았다.
준혁도 무슨 일인가 싶어 입을 다무는 사이, 린디웨가 과장스러운 표정으로 외쳤다.
“오올~ 지금 나 걱정해서 날아온 거냐?”
“걱정은 무슨?”
“좀 감동인데?”
“아, 됐고. 아무튼 아직은 괜찮은 거지?”
“어.”
린디웨는 담담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준혁도 그제야 한시름 놓은 표정으로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래서 이 링크라는 게 뭐냐?”
“흐음, 너 오기 전에 좀 살펴봤는데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설명하기 힘드냐?”
“아니, 그러니까……. 통로가 만들어졌다고 해야 하나?”
“통로?”
“어, 통로. 정확하게는 배면계 시스템에서 던전 시스템으로 향하는 단방향 통로.”
“그게 어떤 영향이 있는데?”
“나도 그게 의문이야. 그리고 이상한 점은…….”
“이상한 점?”
“던전 시스템을 베이스로 놓고 거기에 배면계 시스템을 더하는 형식. 그게 로건 베런즈의 목적이었잖아.”
그렇게 보는 게 논리적으로 옳았다. 복제한 배면계 시스템 조각을 게이트 너머 던전에 풀어 놓은 게 그런 이유였다.
“그렇지.”
“그렇게 영향을 줄 거면 배면계에서 던전 방향이 아니라, 던전에서 배면계 방향이어야 할 것 같단 말이야.”
하지만 준혁은 뭐라 말을 하지 못했다. 잘 아는 분야가 아니니 추측이 불가능했다.
린디웨는 팔짱을 끼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준혁이 혹시나 해서 물었다.
“신수 놈들이 그 통로로 던전 시스템을 건드린다거나?”
하지만 린디웨는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그건 불가능해. 신수들이 신의 격을 얻었다고는 해도 시스템을 직접 건드리는 건 불가능해. 뭐랄까? 그건 일종의 법칙이거든. 던전에 침입했을 때 겪었던 대원칙 기억하지? 그런 법칙이라 손을 못 대.”
“그래?”
묘한 여운이 남는 반응을 보인 준혁은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린디웨가 빠르게 설명을 부연했다.
“세상에 물리법칙이 있잖아? 인간은 그 물리법칙을 알아내고 이용할 수는 있지만, 그 물리법칙 자체를 바꾸지는 못하잖아.”
“아니, 그런 게 아니고.”
“응?”
“좀 이상한 것 같아서.”
“뭐가?”
“이게 좀 근본적인 부분에서 드는 의문점인데, 이걸 묻기 전에 확인부터 해 보자. 시스템 융합이라는 거 가능하냐?”
“음? 그건 왜?”
“법칙이라며. 그런데 어떻게 시스템과 시스템이 합쳐지는데?”
“아, 그 얘기였어?”
질문의 의도를 이해한 린디웨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대원칙, 기억하지?”
“어.”
“배면계 시스템도 던전 시스템도 ‘대원칙’이 정해 놓은 틀을 벗어나지 않아. 그렇기에 가능. 솔직히 이론적인 부분은 나도 몰라. 하지만 실제로 일어났으니 그렇게 해석할 수밖에 없지.”
“그렇군. 그런데 내가 지금 궁금한 건 신격을 가진 신수도 건드리지 못하는 시스템의 법칙, 그걸 도대체 어떤 놈이 복제해서 융합까지 시도하는 거야? 이게 말이 되나?”
“어?”
린디웨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딱딱하게 굳었다.
“그, 그러게?”
근본적인 의문점이다. 원칙적으로 따지면 이 부분에 먼저 의문을 품는 게 맞는다.
하지만 상황을 알게 되었을 때, 이미 시스템 융합은 진행되고 있었다.
그것을 막아야 한다는 데 생각이 미친 탓에 가장 근본적인 부분을 생각지 못했다.
“누가 이걸 할 수 있지?”
그때 준혁이 슬그머니 손을 들어 린디웨를 가리켰다.
“나?”
“아니, 너처럼 던전 시스템에도 혹시 아바타 같은 게 있다면?”
린디웨는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그건 불가능.”
“너무 확신하는 거 아니냐?”
“전부터 말했지만, 아바타는 시스템 자체가 아니야. 그저 시스템의 일부 기능을 빌려서 쓸 수 있고, 기억을 읽어 낼 수 있을 뿐.”
“그러면 로건 베런즈 그 망할 놈은 도대체 무슨 수로 시스템 융합을 하는 거야?”
“으음!”
답을 낼 수 있는 질문이 아니었다. 이건 현재로서는 로건 베런즈 본인만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아무래도 시스템에 한 번 더 들어가야 할 것 같은데…….”
로건 베런즈가 아니라면, 정답을 유추할 수 있는 단서는 시스템 내부에 있을 터.
“들어갈 수 있냐?”
“물론. 지난번에 말했잖아. 뒷문 만들어 놨다고.”
린디웨는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지만 그 순간 준혁의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떨림이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절대 보지 못했을 미세한 떨림이 린디웨의 눈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준혁의 눈에 그 떨림은 불안감으로 보였다.
‘뭐지?’
던전 시스템 내부에 침입해 정보를 찾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는 이야기는 이미 들었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어려운 일이라는 의미다.
저렇게 불안감을 표출할 일이 아니었다.
그러다 문득 다시 떠오르는 이야기가 하나 있었다.
‘괜찮냐?’
게이트를 열고 나오자마자 준혁이 던졌던 질문이었다.
두 시스템 사이의 링크라는 게 린디웨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걱정해서 던졌던 질문이다.
준혁은 재빨리 ‘탐색’을 펼쳤다.
‘아!’
가시화된 에너지의 흐름이 준혁에게 아주 직관적인 정보 하나를 전달하고 있었다.
린디웨의 중단전에서 일어나고 있는 영력의 흐름.
영력은 끊임없이 몸속을 휘돈다. 피가 혈관을 타고 끊임없이 순환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린디웨의 영력은 중단전에서 빠져나와 몸속을 크게 휘돈 후 다시 중단전으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린디웨의 정수리를 지날 때쯤, 일부 영력이 새어 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빠져나간 영력은 순식간에 붉은색에서 푸른색으로 변해 퍼져 나간다.
그리고 이내 공기 중에 퍼져 있는 근본적인 에너지처럼 점점이 자리를 잡았다.
영력이 자연의 기운으로 되돌아가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호흡을 통해 다시 받아들이는 기운은 없었다.
즉, 극소량이기는 하지만 린디웨의 영력이 끊임없이 고갈되고 있다는 뜻이었다.
다른 각성자는 차치하고, 지난번 린디웨의 영력을 살폈을 때는 보지 못했던 모습이다.
‘영향이 없기는 개뿔.’
시스템의 링크로 인한 영향은 확실히 있었다.
아주 극소량이기는 하지만 끊임없이 증발하는 영력. 이것은 언젠가는 완전히 사라질 터였다.
그 후의 결과는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으음.’
준혁은 속으로 묵직한 신음을 집어삼켰다.
자신이 이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을 린디웨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저렇게 불안해하면서도, 아무 영향도 없다고 말한 데는 그녀만의 이유가 있을 터였다.
그런 이야기를 괜히 끄집어내는 건 린디웨의 결정을 무시하는 행동이었다.
린디웨는 준혁에게는 가족과 같은 사람이었다.
준혁의 좁은 바운더리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 그런 만큼 준혁도 그녀의 결정을 존중하기로 마음먹었다.
“시스템 침입, 내가 도와줄 필요는 없냐?”
“네가? 풉!”
린디웨가 저도 모르게 짧은 웃음을 터트린다.
하지만 준혁은 쉬이 물러서지 않았다.
“야, 나 던전 쪽 각성했잖아. 관리자이기도 하고. 이번에 탐색 스킬도 얻었고. 혹시 아냐? 그런 거 이용하면 뭐라도 보일지?”
준혁의 말에 린디웨도 혹하는 표정으로 말을 받았다.
“어, 그럴지도 모르겠네?”
“그럼 같이 가는 걸로?”
준혁이 지금 할 수 있는 건, 내부 요인 외에 외부적으로 위험할지도 모르는 것들을 배제해 주는 정도였다.
그걸 위한 동행 제안.
“오케이! 같이 가자.”
“아, 그럼 그 전에 나 하던 일 좀 마무리하고 올게.”
“하던 일?”
“미국 대통령이랑 회의하다가 튀어 왔거든.”
갑작스러운 시스템 메시지로 대피하는 바람에 회의가 제대로 마무리되지 못했다.
로건 베런즈에게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현실적인 측면에서의 방법을 논의하는 회의였다.
이야기를 끝낼 필요가 있었다.
“그럼 갔다 올게.”
“알았다. 나도 준비 좀.”
말을 마친 준혁은 재빨리 흑호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