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받고 각성 더!-168화 (168/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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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장. 링크#3-

“이, 이거면 된 건가?”

머리가 하얗게 센 양복 차림의 60대 남자가 책상 앞에 선 채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리고 책상을 사이에 두고 웅장한 의자에 앉아 있는 또 한 명의 남자가 있었다.

5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군복 차림의 남자였다.

편안하게 몸을 감싸 주는 의자 등받이에 깊숙이 몸을 묻고 있는 군인과 공손하게 두 손을 모은 채 떨고 있는 양복 입은 남자.

두 사람의 관계는 누가 보아도 군인 쪽이 상관으로 보였다.

그리고 서 있는 양복 차림의 남자는 지금도 이 상황을 믿을 수가 없었다.

양복 입은 남자의 이름은 타미르란 아흐메도프.

아즈키스탄의 대통령으로 17년간 장기 집권 중인 독재자였다.

타미르란 대통령은 여전히 지금의 상황을 쉬이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의자에 앉아 있는 남자.

아즈키스탄 육군 참모총장 미를란 카디베코프였다.

미를란 참모총장은 불과 반년 전까지만 해도 타미르란 대통령의 충성스러운 부하였다.

그가 이끄는 아즈키스탄 육군은 타미르란 대통령이 긴 시간 독재를 지속하는 데 가장 강력한 힘이 되어 준 세력이었다.

그랬던 부하가 지금 자신의 상관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아즈키스탄은 독립한 당시부터 친러시아 성향이었고, 타미르란 대통령이 집권한 시기에는 더욱더 깊은 관계였다.

그런 관계를 깨고 러시아를 침공한 것도 미를란 참모총장의 소행이었다.

‘언제부터였을까?’

타미르란 대통령은 진심으로 궁금했다.

눈앞의 이 남자는 언제부터 자신을 배신하기로 마음먹었을까?

그리고 그보다 더 궁금한 부분은, 미를란 참모총장의 목적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다.

정권이 목적인 것 같지도 않았다.

미를란 참모총장이 원한 것은 오직 하나, 러시아 침공뿐이었다. 물론 타미르란 대통령의 명의로.

그래서 타미르란 대통령은 대통령궁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언제 어느 곳에서 러시아 해외정보국(SVR)이 자신의 목을 노릴지 알 수가 없는 탓이었다.

미를란 참모총장이 타미르란 대통령을 향해 나지막이 말했다.

“당분간 지하 벙커에서 나오지 마십시오.”

“뭐?”

“SVR 요원들이 국경을 넘어온 정황이 포착되었습니다. 모두 암살 계열 각성자인 것으로 파악됩니다.”

SVR은 구소련 KGB 제1총국의 후신이다. 미국으로 치면 CIA의 위치 정도였다.

그리고 이들은 과거 KGB의 악명을 그대로 이은 조직이었다.

“아, 알겠네!”

타미르란 대통령이 급히 대답하며 방향을 틀었다.

“제 수하 두 명이 24시간 지켜 드릴 테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고, 고맙네.”

명목은 경호지만, 실제 목적은 감시이리라.

이미 이 나라에서 타미르란 대통령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타미르란 대통령의 좌우로 군복을 입은 두 명의 남자가 따라붙었다.

두 사람의 군복에는 계급장조차 달려 있지 않았다.

그때 타미르란 대통령과 교차하듯 안으로 들어서는 남자가 있었다.

몸에 딱 맞는 슈트 차림의 로건 베런즈였다.

물론 타미르란 대통령은 로건 베런즈의 얼굴조차 보지 못했다.

그리고 로건 베런즈를 맞이한 미를란 참모총장이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자신의 얼굴로 손을 뻗었다.

이내 얼굴의 피부가 뜯어지듯 무언가 벗겨지고, 미를란 참모총장의 얼굴은 다른 사람의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로건 베런즈의 오른팔인 스미스였다.

타미르란 대통령은 모르는 사이, 그의 충신이 스미스로 뒤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오셨습니까, 치프?”

스미스가 제 얼굴에 쓰고 있던 메구탈을 로건 베런즈에게 내민다.

“준비는 어떻습니까?”

“대부분 마쳤습니다. 하지만 아직 정확한 위치를 선정하지 못했습니다.”

“위치라…….”

“일단 며칠만 시간을 더 주시면 적당한 곳을 물색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니요. 괜한 일로 시간을 끄는 건 좋지 않습니다. 지금 결정하도록 하죠.”

“지금이요?”

“카잔.”

“네?”

스미스가 흠칫 놀란 표정으로 로건 베런즈를 보았다.

“카잔으로 결정합니다.”

“하, 하지만 거기는!”

당황한 스미스가 황급히 말을 이어 붙였다.

“문제라도 있습니까?”

“아직 민간인 대피도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자칫하면 세계적으로.”

로건 베런즈가 더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스미스의 말을 잘랐다.

“우리가 언제부터 그렇게 민간인의 피해를 걱정했죠?”

“아, 아니, 그건…….”

“미스터 스미스.”

“네!”

“우리 목표를 잊은 겁니까?”

“아닙니다.”

곧장 되돌아오는 대답에 로건 베런즈는 굳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믿겠습니다.”

“예, 치프!”

“카잔 현지 시각 자정에 실행합니다. 그 전에 준비를 마치세요.”

말을 마친 로건 베런즈는 스미스가 대답하기도 전에 게이트를 통해 사라졌다.

그리고 홀로 남은 스미스는 어두운 표정으로 로건 베런즈가 사라진 공간을 바라볼 뿐이었다.

***

“흐음…….”

준혁은 팔짱을 낀 채 와락 인상을 구기고 있었다.

그리고 부지불식간에 입에서 욕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개새끼…….”

물론 그 욕의 대상은 지금 이 자리에 없다.

지금 앉아 있는 공간에는 앤서니 바일레어 대통령과 존 넬슨 국장, 그 외에 각 정보부처의 수장과 미 행정부 장관들이 모여 있었다.

그중에 준혁이 말한 ‘개새끼’에 부합하는 사람은 없었다.

“미친 또라이 새끼…….”

또 한 번 튀어나온 욕에 결국 회의실에 있던 이들의 시선이 준혁에게 집중되었다.

물론 그들도 준혁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았다.

회의는 로건 베런즈의 신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준혁은 이메일을 받은 적이 있지만,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이들 중에는 그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훨씬 더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준혁 또한 사실은 로건 베런즈의 신상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ISA에서 받은 이메일 내용을 린디웨에게 검토하라고 말한 이후, 워낙 많은 일이 터진 탓이었다.

종로 사태가 시작이었고, 야마모토 테츠야와 부딪치고 핵을 맞고, 다시 싸우는 일이 쭉 이어졌다.

그래서 사실은 준혁 또한 오늘 처음 로건 베런즈의 기본적인 신상 정보를 알 수 있었다.

그는 CIA의 촉망받는 요원이었다.

현장 요원으로서 화려한 경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몇 년 안에 관리직으로 오를 거라 예상되었던 요원이었다.

그랬던 그가 갑자기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했었다.

당연히 CIA는 비상이 걸렸다.

화려한 현장 요원으로서의 경력으로 꽤 많은 국가에서 작전을 실행했던 사람의 갑작스러운 실종이었다.

다른 나라의 정보 부서에 납치되었거나, 혹은 변절했다면 CIA의 해외 인프라와 인적 구성, 작전 등이 물거품이 될 위험이 있었다.

CIA는 총력을 기울여 로건 베런즈의 행적을 쫓았다.

하지만 2개월이 지나도록 그의 실종 사건은 아무런 단서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퇴근길에 들른 쇼핑몰에서 갑자기 사라졌다.

그렇게 4개월이 흘렀다.

CIA는 로건 베런즈 실종 직후 시작한 물갈이를 거의 끝낸 상황이었다.

아주 거대한 자금이 소모되었지만 인적 피해는 없었고, 수행하던 작전들도 연속성을 가질 수 있었다.

그렇기에 CIA는 로건 베런즈에 대해 수배령을 내리고 경계를 풀었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로건 베런즈가 나타났다.

실종된 날로부터 대략 3년 정도가 흐른 시점이었다.

CIA는 또 한 번 발칵 뒤집혔다.

하지만 돌아온 로건 베런즈는 그 시간 동안의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어느 날 정신을 잃었는데, 눈을 떠 보니 3년이 훌쩍 지나 있었다고 말했다.

랭글리 본부는 그 말을 믿지 않았고, 긴 시간 추적과 신문이 이어졌다.

하지만 혐의점은 없었다.

그가 갑자기 나타난 장소로부터 행적을 역추적해 보았다.

로건 베런즈의 업무와 관련 있는 국가를 중심으로 또 한 번 첩보를 모으고 정보를 검증했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그의 흔적은 나오지 않았다.

변절했다는 증거도 없지만, 변절하지 않았다는 증거도 없는 상황이었다.

통상적인 사법 절차라면 무죄가 맞는다. 하지만 정보 계통은 그렇지가 않다.

1개월에 걸친 고강도 신문과 조사 끝에 로건 베런즈는 풀려났다.

조건부 석방이었다.

미국을 벗어나지 않고 24시간 행적을 감시받겠다는 조건이었다.

그 후, 로건 베런즈는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관리 요원으로 지냈다.

사전에 CIA의 허가가 있었음은 당연하다.

그렇게 별다를 것 없는 일상을 보내는 로건 베런즈와 현 CIA 국장인 윌리엄 카인셀이 다시 만난 건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의 일이었다.

당시는 세계 곳곳에 하나둘 게이트가 발견되던 시절이었다.

윌리엄 카인셀은 CIA의 작전으로 인해 옐로스톤 국립공원으로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고, 과거 친분이 있던 로건 베런즈를 가이드로 임시 채용하게 되었다.

독립 요원에게 의뢰하는 형식을 빌렸지만, 실제로는 특수 요원 신분까지 보장해 주는 임시 채용이었다.

그리고 그 작전 중 갑작스러운 게이트 다운이 발생했고, 로건 베런즈는 사망했다.

그것이 로건 베런즈에 대해 미국 정보기관이 가지고 있는 서류상의 모든 정보였다.

문제는 로건 베런즈가 실종되었던 3년의 세월 동안 발생한 사건이었다.

로건 베런즈의 아내와 딸이 맞이한 불행한 사건들이었다.

그의 아내는 갑작스럽게 실종된 남편을 찾느라 일상을 포기해야 했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말았다.

그리고 홀로 남은 딸은 위탁 가정을 전전하다 거리의 콜걸로 전락했고, 마약 중독으로 사망하고 말았다.

윌리엄 카인셀에게 듣기로, 그는 가족에 대한 애착이 유독 특별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준혁은 로건 베런즈의 목표를 직감적으로 알아챌 수 있었다.

‘복수’였다.

아내와 딸을 죽게 만든 세상에 대한 복수였다.

‘복수 스케일 한번 거대하네.’

어디까지나 준혁의 막연한 추측에 불과했다.

하지만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면 답이 나왔다.

배면계로 끌려가는 사람들은 그곳에서 아주 오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다.

현실의 시간으로 2개월 만에 돌아온 준혁이 매우 드문 케이스였다.

보통은 현실의 시간으로 3년에서 5년이 흐른 후에야 모든 일을 마칠 수가 있다.

그렇게 죽을 고비를 넘긴 사람들이었다.

거부할 방법이 없기에 행한 일이지만, 어쨌든 세상을 구한다는 사명감도 가지고 긴 세월을 버틴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세상을 구하고 왔더니 정작 자신의 가족이 불행해져 있다면?

그 분노는 이루 상상할 수도 없는 수준일 것이다.

로건 베런즈가 배면게 귀환자들을 손쉽게 모을 수 있었던 데는 그런 공감대가 있었으리라.

준혁은 자신의 생각을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말했고, 대부분은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힘이 없으면 모르되, 힘을 되찾은 후에는 누구라도 복수를 꿈꿀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거기에 로건 베런즈 정도의 강한 자가 나타나 제안을 한다면 더욱더 목표 의식이 뚜렷해지리라.

“현재 가장 중요한 건 당장 놈들이 러시아를 공격한 이유를 알아내는 것입니다.”

준혁이 그렇게 말을 꺼냈지만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곳에 배면계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은 준혁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긴 침묵이 이어질 때였다.

돌연 준혁의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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