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받고 각성 더!-163화 (163/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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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장. 이변#4-

청색은 길게 고민하지 않았다.

그대로 눕듯이 몸을 뒤로 누인다. 그리고 등 뒤에 열려 있던 게이트로 모습을 감췄다.

“제길! 뭐지?”

반사적으로 드는 의문.

하지만 아직은 안심할 때가 아니었다.

청색은 몇 번 더 게이트를 열어 위치를 옮겼다.

위험이 감지됐으면 일단 몸을 피하는 게 최우선이다.

상황 판단, 정황의 추측 등은 지금 고민할 문제가 아니다.

오랜 시간 몸에 밴 습관이었다.

그렇게 몇 개의 게이트를 거쳐 청색이 도착한 곳은 어느 시골의 드넓은 옥수수 밭 한가운데였다.

하지만 아직 안전은 보장할 수 없었다.

청색은 몸을 숙여 손으로 발치의 흙을 급하게 파냈다.

퍽, 퍽!

각성자의 손은 그 어떤 훌륭한 도구보다 우위였다.

순식간에 1미터 깊이로 파고 들어간 바닥에는 네모난 나무판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청색은 재빨리 나무판자 한쪽 끝에 있는 끈을 잡아당겨 그 아래 지하 통로로 몸을 밀어 넣었다.

엎드려 기어가야 할 정도로 좁은 통로였다.

하지만 청색은 아랑곳하지 않고 손발을 놀려 빠르게 통로를 지났다.

콰르르르!

그리고 청색이 통로를 빠져나오자마자 지하 통로가 무너져 내렸다.

옥수수 밭 통로 입구를 열면 일정 시간 후 무너지도록 설계가 되어 있었던 탓이다.

던전 관리자라는 것은 그리 마음 편한 위치가 아니었다.

죽으면 가지고 있던 관리 권한이 다른 이에게 이양되기 때문이다.

즉, 다른 관리자가 언제 자신의 목숨을 노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늘 존재한다.

야마모토 테츠야나 로건 베런즈처럼 크게 개의치 않고 활동하는 자도 있지만, 릴리안 우드처럼 출구도 없는 지하에 스스로 갇혀 지내는 사람도 있었다.

청색은 후자에 가까웠다.

자기 세력을 키우고 영향력을 행사하며 권력을 쥐기 위한 노력을 하기는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언제든 몸을 숨길 수 있는 대비도 해 놓았다.

옥수수 밭의 통로도, 통로의 출구에 있는 창고도 그녀가 해 놓은 준비 중 하나였다.

청색은 게이트를 통해 도망치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은 하지 않았다.

게이트를 추적할 수 있는 능력자가 있을 수도 있다는 가정하에 준비를 했었다.

과도하다고 볼 수도 있으나, 청색은 이조차도 부족하다고 느낄 정도였다.

그래서 대역까지 준비해 놓았다.

창고에 세워져 있는 낡은 자동차 안에는 청색과 비슷한 나이대의 여자가 운전석에 앉아 있었다.

청색과 비슷한 체형에 비슷한 분위기의 여자였다. 똑같은 헤어스타일에 선글라스까지 끼니, 얼핏 보면 동일인으로 볼 수준이었다.

“움직여.”

청색의 명령에 대역은 대답도 하지 않고 시동부터 걸었다.

청색은 창고 한쪽에 준비해 놓은 또 하나의 비밀 통로를 열고 그 안으로 들어섰다.

그 직후, 대역이 차를 몰고 창고를 빠져나갔다.

“후우.”

청색은 그제야 짧게 한숨을 내쉬고 통로를 따라 걸었다.

옥수수 밭의 낮고 좁은 통로와 달리, 이쪽은 여유롭게 걸을 수 있을 정도로 반듯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지하로 통하는 계단을 내려가 거의 2킬로미터 가까이 걸은 후에야 또 하나의 문이 나왔다.

이제 조금은 마음을 놓아도 되는 타이밍.

하지만 청색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분명 아무것도 없었는데?’

해변에서 있었던 일을 몇 번이나 복기해 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녹색의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손에서 무기가 떠올랐다.

인벤토리는 절대 아니었다. 그걸 사용했다면 알아보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뭐였을까?’

녹색, 로건 베런즈가 반지로 변형시킨 무상곤이었다. 하지만 ‘무상곤’에 대해 모르는 청색이 그 사실을 알 리가 없었다.

‘촬영한 것부터 확인을…….’

청색은 해변으로 나가며 많은 준비를 해 놓았었다.

그중 하나가 주변 곳곳에 설치해 놓은 카메라였다.

십여 개의 카메라를 곳곳에 설치해 놓았기에 분명 해당 장면의 동영상이 촬영되어 있으리라.

청색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문을 열고 나설 때였다.

“마스터!”

그녀의 부하 하나가 다급하게 달려왔다.

“뭐야? 또 왜?”

그렇잖아도 심기가 불편한데 호들갑을 떠는 모습에 청색이 와락 인상을 구겼다.

“급보입니다. 지사 아홉 곳이 습격당했습니다.”

“뭐?”

이건 또 무슨 일인가.

“피해 수준은?”

“건물은 모두 무너졌고, 헌터들의 부상도 심각합니다. 일단 포션으로 치료는 끝났습니다만, 하나같이 장비를 파괴당했습니다. 일반인의 피해는 없습니다.”

“아홉 곳이 전부?”

“네.”

“움직일 준비해.”

청색은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황급히 방으로 들어갔다.

급히 옷을 벗어 던지고 준비해 놓은 옷으로 갈아입었다.

게이트 너머, 던전에서 사용하는 특급 장비들이었다.

액세서리 역시 죄다 스탯을 올려 주는 장비들.

마지막으로 짧은 셉터까지 손에 쥔 후 방을 나섰다.

아까 보고를 했던 부하를 포함한 다섯 명 정도가 이런저런 장비를 들고 대기하고 있었다.

“일단 센터로 간다.”

말을 마친 청색이 게이트를 열어 몸을 밀어 넣었고, 준비하고 있던 부하들도 급히 그 뒤를 따랐다.

센터는 지휘소 같은 곳이었다.

전면에 대형 스크린이 걸려 있고, 20여 명의 사람들이 각각의 모니터를 붙들고 바쁘게 어딘가와 통신을 나누고 있었다.

영화 같은 데서 흔히 보는 지휘 센터의 모습이었다.

대형 스크린의 분할 화면에는 공격받은 지사의 피해 수준과 현 상황이 떠올라 있었다.

“어떤 놈이!”

당장 떠오르는 것은 카일루아 해변에서 자신을 공격했던 녹색이었다.

하지만 뒤이어 떠오르는 또 하나의 이름.

‘김준혁.’

5인 위원회 회의에서 그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나는 말로 안 해. 그냥 행동으로 보여 줄 테니 조금만 기다려.’

이게 그가 보여 준다는 ‘행동’이 아닐까?

청색이 막 그런 생각을 떠올리는 순간이었다.

[회의가 소집되었습니다. 입장하시겠습니까?]

청색의 망막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하필 지금?’

회의 소집은 위원회 소속이라면 누구나 가능했다.

문제는 기묘한 타이밍이다.

녹색을 만나 공격당했고, 대피했으며, 조직의 지사 아홉 곳이 공격당했다.

이런 때에 회의 소집이라는 게 너무 공교롭다.

예상되는 인물은 두 명.

‘녹색? 아니면 김준…….’

그때였다.

“흡!”

모골이 송연해질 정도로 섬뜩한 감각이 척추를 타고 솟구쳤다.

뒤편의 공기가 흔들리고, 미세한 파동이 피부를 간지럽히는 느낌.

‘게이트!’

게이트가 열릴 때의 느낌이었다.

청색이 황급히 뒤를 돌아보려는 찰나, 또 한 번 회피가 발동했다.

갑자기 바뀐 눈앞의 시야, 그리고 나타난 것은 아직 수영복을 입고 있는 녹색이었다.

‘어, 어떻게!’

그렇게나 주의를 했다.

몇 번의 절차를 거쳐 몸을 피했고, 그것도 모자라 대역까지 내보냈다.

그런데 정확하게 자신이 있는 곳으로 쫓아왔다.

이해할 수 없는 일.

하지만 지금 청색의 머릿속에는 다른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공포.

끈적한 공포감이 발밑의 늪처럼 야금야금 자신을 집어삼키는 것 같았다.

“그냥 운명을 받아들이시죠.”

녹색이 매우 정중한 말투로 말을 건넸다.

“도대체 어떻게 여기까지 쫓아온 거지?”

솔직히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게이트를 몇 번이나 뛰어넘고, 물리적인 비밀 통로를 거치고, 대역까지 쓴 건 정말 만의 하나를 대비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 ‘만의 하나’를 모두 실현시킨 놈이 나타난 것이다.

“쫓아온 방법이 아니라, 현재의 상황을 파악하는 게 우선이 아니겠습니까?”

“뭐?”

청색이 황급히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제야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피.

센터 전체가 시뻘건 피로 물들어 있었다.

센터에 있던 청색의 부하들이 흘린 피였다.

당연히 살아 있는 사람은 없었다.

하나같이 목이 뚫린 채로 시체가 되어 뒹굴고 있었다.

그리고 청색의 주위에는 붉은 구슬들이 허공에 뜬 채 위협하듯 맴돌고 있었다.

‘어, 언제?’

셉터를 쥔 손에서 절로 힘이 쑥 빠졌다.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아무리 장비를 덕지덕지 걸치고 만반의 준비를 해도 넘을 수 없는 강함이었다.

‘차라리 대역을 보냈어야…….’

카일루아 해변에 대역을 내보낼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그러면 눈치채고 나오지 않을 것 같아 위험을 무릅쓰고 직접 나갔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로건 베런즈.’

청색도 이제는 알 수 있었다.

눈앞의 녹색이 로건 베런즈였다.

애써 이를 악물었다.

어떻게든 지금 상황을 타개해야 했다.

그와 동시에 머릿속에 불쑥 떠오른 이름 하나.

‘김준혁!’

지금 자신을 도와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자는 김준혁밖에 없었다.

그가 자신을 도와줄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는 부차적인 문제.

생각이 떠오른 순간 청색은 그대로 게이트로 몸을 밀어 넣었다.

하지만 로건 베런즈는 청색의 뒤를 쫓지 않았다.

그 대신 게이트 하나를 열었다.

열린 게이트를 통해 나온 이는 스미스를 포함한 그의 부하들이었다.

“그대로 진행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대답과 동시에 스미스와 부하들이 각각의 모니터 앞에 자리를 잡았다.

로건 베런즈는 그제야 조금 전까지 청색이 있던 자리로 다가갔다. 그리고 가만히 눈을 감은 채 청색이 사용한 게이트가 있던 자리에 마나를 방사했다.

그리고 잠시 후, 자신의 게이트를 열어 몸을 밀어 넣었다.

***

“청색과 녹색은 오지 않는군. 그냥 우리끼리 이야기를 하는 게 좋겠어.”

준혁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적색이 기다렸다는 듯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이런 식으로 우리를 드러낼 생각이었소!」

적색의 목소리에는 노기가 가득했다.

하지만 준혁이 겁먹을 이유는 없었다.

“경고했잖아. 난 말로 안 한다고. 그러니 행동으로 보여 주기 전에 내가 시키는 대로 하지 그랬어?”

「이딴 협박에 내가 굴복할 거라고 생각했다면…….」

“그렇게 생각하면 별수 있나? 나도 끝까지 가는 거지.”

준혁은 매우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 여상스러움이, 그 덤덤함이 도리어 거대한 압박감을 만들어 냈다.

「끄응!」

청색이 당한 지사의 공격은 준혁이 한 일이었다.

하지만 청색의 지사만 공격한 게 아니다.

릴리안 우드가 만들어 놓은 의심 목록의 모든 세력을 공격했다.

그 속에는 당연히 적색, 청색, 녹색의 조직이 포함될 거라 생각한 것이다.

관리자가 되면서 얻은 게이트 능력과 무급까지 올라 버린 강력한 힘이 조합되니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조심해야 할 건 사망자가 나오지 않도록 하는 정도뿐이었다.

그 직후 회의를 소집했고, 지금 상황에 이른 것이다.

“보아하니 아직 말할 마음이 없는 것 같으니, 다음에 또 보자고.”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준혁은 곧장 회의에서 빠져나왔다.

협상의 여지, 혹은 대화의 여지를 주는 것은 상대에게 헛된 희망을 품게 만드는 행동이다.

모든 여지를 끊어 버려야 이야기가 편해지는 법.

‘그나저나 청색과 녹색……. 공격당한 것 때문인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준혁은 그런 생각을 하며 의식을 되돌렸다.

그리고 눈을 뜬 직후였다.

“야! 큰일 났다!”

눈을 뜨자마자 고막을 두드린 것은 린디웨의 외침이었다.

“왜?”

벌떡 몸을 일으킨 준혁의 반문에 린디웨가 급히 말을 이었다.

“로건 베런즈, 그 자식이 지금 한국에 들어왔다!”

“뭐? 어디?”

“따라와!”

린디웨가 급히 몸을 날렸고, 준혁이 그 뒤를 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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