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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장. 위원회#2-
린디웨의 묘한 반응에 준혁이 급히 물었다.
“그거?”
“음, 그러니까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린디웨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뭔가를 고민하더니 오히려 준혁에게 질문을 던졌다.
“일단 이렇게 된 과정부터 이야기를 해 봐. 나도 생각을 좀 정리해야 할 것 같으니까.”
“이거? 만상만투하고 싸울 때 그놈 심장 안에서…….”
준혁은 만상만투의 심장을 터트린 직후에서 시작해 ‘심안의 관찰자’로 승급한 것까지 자세하게 풀어놓았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린디웨는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한 후 입을 열었다.
“확실하다고는 못하겠는데, 대충 알 것 같아.”
“뭔데?”
“승격.”
“응?”
린디웨의 얼굴에는 꽤 복잡한 표정이 뒤섞여 있었다.
웃는 표정, 당황한 표정, 불신의 표정이 한 얼굴에 혼재해 있었다.
“차근차근 설명하자. 영수와 신수의 차이는 알지?”
“그야 당연히 ‘격’의 차이잖아. 영수가 영력을 일정 이상 쌓으면 신수로 격이 올라가기도 하고.”
“그렇지. 그리고 배면계에 너희를 소환하는 이유 중에는 영수가 신수의 반열에 오르는 걸 막는다는 목적도 있어. 신수가 늘어나면 곤란하니까.”
준혁은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명시적으로 들은 적은 없지만, 어렴풋이 짐작하던 내용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하나의 사실에 생각이 미쳤다.
“자, 잠깐. 승격? 격? 그 승격이라는 게 설마?”
“내 생각에는 맞는 것 같아. 영수에서 신수로 넘어가기 전에 지금 너하고 비슷한 상태가 있어.”
준혁이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린디웨를 보았다.
어지간한 일에는 눈도 깜짝하지 않는 준혁이었다. 하지만 지금 들은 내용은 귀를 의심할 만했다.
말이 없는 준혁을 보며 린디웨가 설명을 이었다.
“우선 예전 네 스탯은 전부 1,999였잖아?”
“그랬지.”
“그 1,999는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최고치야. 던전 쪽 각성을 해서 추가로 스탯이 더해지는 형태로 보인 것도 아마 그런 이유였을 것이고. 물론 배면계와 던전의 각성 시스템이 다르니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긴 한데, 그건 일단 넘어가.”
“그래. 일단 1,999가 인간의 한계치라고 치고. 그다음은?”
“아는지 모르겠지만 배면계의 괴수와 영수도 스탯을 갖고 있어. 그놈들도 당연히 가질 수 있는 스탯 수치의 한계치가 있는데, 그걸 넘어서는 순간이 올 때가 있어. 그게 바로 신수로 넘어가기 직전의 형태거든.”
확실히 지금 준혁의 상태와 비슷한 느낌이 있었다.
“그렇게 한계를 초월한 영수를 ‘무형(無形)’이라고 불러.”
“무형?”
“형태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 한계를 초월한 순간 기존에 갖고 있던 육신이 소멸하고 영력의 응집체가 되거든. 신격을 얻게 되면 그때 새로운 형상을 지니게 돼. 그래서 무형이지.”
준혁이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고, 이내 손으로 제 몸을 더듬었다.
적어도 자신은 ‘무형’의 상태는 아니었다.
“그럼 나는 조금 다른 경우 아닌가?”
“그건 알 수가 없지. 다만 등급이 무급으로 변했잖아. 가능성이 없다고는 못해.”
“그, 그래?”
“아니, 이건 거의 확실하다고 봐야 해.”
“응? 갑자기 왜?”
린디웨가 아까 했던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지금 떠오른 건데, 만상만투 심장 안에서 근원의 기운을 흡수했다고 했지?”
“어.”
“그 힘이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힘일 텐데, 실제 스탯이 아주 많이 오르지는 않았잖아?”
“그렇지.”
“단전이 커지기도 했고.”
“맞아.”
“그게……. 아마 기존의 격을 깨트리는 데 많은 기운이 소모된 탓으로 보이거든.”
결국 준혁이 가진 ‘격’에 변화가 생긴다는 건 확실하다는 뜻이었다.
“인간이 아니게 된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럴 가능성이 커.”
“신격? 허! 신격…….”
준혁은 같은 말을 연거푸 되뇌며 홀로 생각에 잠겼다.
‘이게 대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격을 뛰어넘는다는 것은 지금의 자신보다 상위의 존재가 된다는 뜻이다.
긴 시간 도를 닦아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는 이야기.
흔히 ‘우화등선’이라고 부르는 것이 어쩌면 이런 경우일 수도 있었다.
그런 측면에서는 좋은 일이라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 우화등선을 바라는 사람의 경우다.
준혁은 그런 걸 바라지 않았다.
형네 가족, 그리고 훗날 결혼해서 이루게 될 자신의 가족과 행복하게 사는 것이 준혁의 꿈이었다.
신격 따위 단 한 번도 바란 적이 없었다.
그리고 준혁의 머릿속에 각인된 ‘신격’은 곧 배면계의 신수와 동등한 의미였다.
신수를 ‘짐승’이라 부르며 증오하는 준혁이다 보니, 그 자체가 부정적으로 다가온 측면도 있었다.
하지만 긍정적인 측면도 분명히 있었다.
격이 오른다는 것은 지금보다 더 강해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는 당연히 앞으로 나올지도 모르는 신수와의 싸움에서 큰 도움이 될 부분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상념이 사실은 크게 의미가 없다는 것이 더 문제였다.
‘무급’의 상태가 된 것은 준혁이 원해서 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자연스럽게 이렇게 흘러온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준혁이 린디웨에게 말했다.
“하나 묻자.”
“뭘?”
“이거 내가 거부한다고 멈추거나 하지는 않는 거지?”
준혁의 마음을 눈치챈 린디웨가 조심스레 말했다.
“인간이 승격을 한 경우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뭐라고 확신은 못하겠는데……. 일종의 법칙과 같은 거라서 의지로 거스를 수는 없을 것 같은데?”
“음, 역시나…….”
“싫어?”
“좋겠냐?”
“글쎄?”
린디웨가 전혀 모르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확실히 그녀로서는 짐작하는 것조차 어려운 이야기였다.
준혁이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는 입을 열었다.
“일단 좀 더 알아봐라.”
“더 이상 아는 게 없는데?”
“있을 수도 있잖아. 혹시 아냐? 던전 시스템 쪽을 뒤져 보면 뭐라도 나올지?”
“아, 그건 또 그러네.”
배면계 시스템에는 없어도, 혹시 던전 시스템 쪽에서 무언가 알아낼 가능성도 있었다.
“최대한 알아볼게. 그래도 쉽지는 않을 거야. 샘플이 하나밖에 없으니 테스트도 못하고…….”
“갑자기 웬 샘플 취급이냐?”
“뭐, 그렇다는 거지. 비슷한 경우가 좀 있으면 비교해 가면서 조사해 볼 수 있을 텐데. 아쉬워서 그런다.”
“리쉬옌 있잖아.”
“어, 리쉬옌이 있……. 어? 그, 그러게?”
“나 참, 한 번도 생각 안 해 봤단 말이군.”
린디웨는 시스템 아바타라 그런 더블 각성이 힘들다.
하지만 리쉬옌은 상관이 없다.
“하, 이걸 왜 생각을 못했을까? 에휴! 배면계 각성자 불러들이는 것만 기억에 있으니 그건 생각도 못했…….”
“야, 잠깐!”
급히 린디웨의 말을 끊는 준혁의 얼굴에 갑자기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왜?”
“방금 뭐라고 했냐?”
“왜 이걸 생각 못했…….”
“그거 말고.”
“배면계 각성자 불러들이는 거?”
“그래, 그거.”
“그게 왜?”
“지금 그 얘기 듣고 떠오른 건데 말이지…….”
“응?”
“내가 배면계 각성에 던전 각성으로 더블로 각성했잖아?”
“어. 그게 왜?”
“그럼 혹시 그거…….”
준혁이 연거푸 말끝을 흐리자 린디웨가 곧장 물었다.
“너답지 않게 웬 뜸을 그렇게 들이냐?”
“그거 반대도 가능하냐?”
“뭐?”
“배면계에서 던전으로 더블의 반대. 던전 각성자를 배면계 각성자로 더블 각성 못 시키냐고.”
“어?”
순간적으로 린디웨의 동공이 확 하고 풀렸다.
이건 한 번도 생각을 못해 봤다.
그런데 안 될 이유가 없다.
아니, 배면계 각성자를 던전 쪽으로 각성시키는 것보다 오히려 더 쉬운 일이다.
린디웨 본인이 배면계 시스템 아바타이기 때문이다.
“하, 하하…….”
괜히 실없이 허탈한 웃음이 푸시시 새어 나왔다.
왜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을까?
그 웃음을 다르게 해석했는지 준혁의 얼굴에 떠올라 있던 기대감이 사그라졌다.
“안 되는 모양이지?”
린디웨가 황급히 도리질을 쳤다.
“돼!”
“응?”
“네가 말한 거 된다고.”
“어? 그래?”
“다만, 지금 배면계 시스템이 불안정해.”
“불안정? 그 시스템 복제 때문에?”
“음……. 이론적으로는 그럴 수 없어. 복사본으로 뭔가를 한다고 원본에 문제가 생기는 건 말이 안 되니까.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때부터 시스템이 불안정해진 건 맞아. 뭐, 아무튼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그 불안정한 상태 때문에 배면계 시스템으로 각성시킬 수 있는 사람이 몇 명 안 돼.”
“몇 명?”
잠시 뭔가를 계산해 본 린디웨가 두 손을 활짝 펼쳤다.
“열 명.”
준혁이 곧장 하나하나 손가락을 꼽으며 숫자를 확인했다.
“유 길드장, 최유나, 강이찬, 장민호, 양대장……. 여유 있는데?”
“혼원 길드 사람들만 보내려고?”
“굳이 뭐 다른 길드 사람까지?”
“신수 놈들 들이닥칠 걸 생각하면 좀 더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가?”
“그렇지 않을까?”
“그건……. 뭐, 유 길드장이랑 이야기해 봐야겠네. 그 사람들 죄다 배면계로 보내는 것도 가능하지?”
“뭐? 배면계로 보낸다고?”
“당연하지. 생각해 봐라. 배면계는 시간도 빨리 흐르잖아. 거기서 10년을 굴러도 여기서는 2개월밖에 안 흘러. 훈련하고 단련하는 데 그것만큼 좋은 게 어딨다고. 게다가 어차피 영력을 올리려면 배면계 가야 하잖아?”
“그건 그렇다만……. 그래도 위험하지 않을까?”
그 말에 준혁이 갑자기 가자미눈을 뜨고 린디웨를 노려보았다.
그 눈빛에 움찔한 린디웨가 조금 자신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왜?”
“열일곱 살짜리 고딩을 그 위험하다는 배면계에 던져 넣은 사이코패스 시스템이 어디의 누구더라?”
“야, 그건 시스템……. 아오, 말을 말아야지.”
그 부분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그리고 생각해 보니 지금 말한 이들은 한 사람을 제외하면 모두 A급 이상의 각성자였다. 게다가 마나 운용도 깨친 이들이었다.
준혁이나 여타 다른 배면계 각성자들보다 훨씬 안전했다.
린디웨가 급하게 화제를 돌렸다.
“아무튼 그거 괜찮은 생각이네. 그럼 그건 유 길드장하고 이야기해 볼 거지?”
“일단은 유 길드장하고 먼저 상의해 봐야지.”
고개를 끄덕이는 준혁의 모습에 린디웨가 반색을 하며 나섰다.
“지금 바로 부를까?”
열일곱 살 고등학생을 배면계에 던져 넣은 그 이야기에서 준혁의 신경을 돌리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이었다.
그런 기색을 눈치챈 준혁이었지만 별말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 사람 좀 쉽시다. 도쿄에서 온 지 얼마나 됐다고 이렇게 또 부릅니까?”
유민섭이 린디웨의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구시렁거렸다.
준혁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그런 유민섭을 맞이했다.
“할 이야기 있으니 앉아 봐요.”
준혁의 그 미소를 본 유민섭이 반사적으로 상체를 흠칫 뒤로 물렸다.
“뭡니까? 그 악당 같은 미소는? 앉기 싫어지는데요?”
“허! 사람을 어떻게 보고…….”
“에이, 알면서 묻습니까?”
“아, 됐고, 일단 앉아요.”
유민섭이 피식 웃으며 준혁 맞은편에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할 이야기라는 게 뭡니까?”
“잘 들어 봐요. 일단 내가 더블 각성 상태인 건 알죠?”
“알죠.”
“그런데 그걸…….”
이야기를 풀어내려던 찰나, 준혁이 갑자기 말꼬리를 흐렸다.
유민섭이 눈을 끔뻑이며 물었다.
“왜 그래요?”
“허, 거참…….”
“네?”
“타이밍 참 재미있네?”
“갑자기 그건 또 무슨?”
준혁이 유민섭과 린디웨에게 연달아 말했다.
“이야기는 린디웨한테 들어요. 그리고 잠시 나 경호 좀.”
“네?”
“응?”
이해를 못한 유민섭과 린디웨가 동시에 되물었다.
하지만 준혁은 그대로 잠들 듯이 소파에 등을 기댔다.
[회의가 소집되었습니다. 입장하시겠습니까?]
준혁의 눈앞에 뜬 메시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