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받고 각성 더!-157화 (157/240)

-157-

-57장. 위원회#1-

백효는 수리부엉이다.

환수(幻獸)이기는 하지만 그 모태는 수리부엉이였다.

현실의 자연환경에서 수리부엉이는 밤의 제왕이라 불리는 야행성 맹금류다.

이 수리부엉이가 가장 무서운 점은 무소음비행이다.

그리고 준혁을 태운 백효 역시 이 특징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하늘을 나는데도 날갯짓 소리조차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린디웨가 만든 화살표를 따라 날아간 방향은 도쿄를 기준으로 서쪽 방향이었다.

왼쪽으로 후지산이 보이는 경로를 따라 무려 150킬로미터가량을 비행한 후 도착한 곳은 고봉이 줄지어 있는 산맥이었다.

미나미알프스라는 명칭으로 묶여 있는 세 개의 산맥 중 하나인 아카이시 산맥의 능선이었다.

백효는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조금의 소음도 내지 않았고, 그런 이유로 야마모토 테츠야는 준혁이 왔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에도가…….”

사실은 이미 정신이 반쯤 빠져나간 상태였기에 인지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초점을 잃은 야마모토 테츠야의 시선은 반투명하게 열린 게이트 너머 도쿄의 풍경에 고정되어 있었다.

도쿄를 삼킨 거대한 물이 썰물처럼 빠르게 빠져나가고 있었다.

자연적으로 발생한 해일이 아니었기에 또 다른 자연재해는 더 이상 없었다.

물이 빠져나가는 속도 또한 아주 빠른 편이었다.

하지만 그 단 한 번의 해일은 무서웠다.

물이 빠져나가며 드러나는 도쿄의 풍경은 폐허 그 자체였다.

곳곳에 무너진 빌딩과 장난감처럼 쓸려 나간 주택들.

과거와 현재 도쿄의 상징과도 같은 도쿄타워와 스카이트리 역시 허리가 꺾인 채 흉물스러운 몰골로 쓰러져 있었다.

일본 최후의 막부였던 에도 막부의 근거지이며, 근대화 이후로도 쭉 일본의 수도였던 도쿄의 현재였다.

그리고 빠져나가는 물을 따라 도시로 달려드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마지막까지 사람들을 구조하려 애썼던 이들이었다.

하시모토 타츠야를 필두로 한 일본의 헌터들이었다. 아주 빠른 속도로 물이 빠지고 있기에 어쩌면 생각보다 생존자가 많을 수도 있다는 희망을 품은 채.

그 와중에도 야마모토 테츠야는 멍한 얼굴로 ‘에도’만을 끊임없이 되뇔 뿐이었다.

뒤에 서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준혁이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손을 뻗었다.

하지만 예의 그 스킬이 발동하며 야마모토 테츠야의 위치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그러나 준혁은 이 스킬을 파훼할 방법을 알고 있었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세 번째로 놈이 사라진 순간, 준혁이 빠르게 땅을 박차며 위치를 옮겼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을 향해 내지르는 손바닥.

정확한 타이밍에 손바닥의 궤적에 야마모토 테츠야의 뺨이 나타났다.

짜악!

시원하게 올려붙인 싸대기에 야마모토 테츠야의 몸뚱이가 볼썽사납게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야마모토 테츠야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안면이 사라졌다고 느낄 정도로 무지막지한 통증에 기겁을 하며 고개를 든다.

그리고 준혁을 확인했다.

“김준혁-!”

악귀와 같은 눈으로 준혁을 노려보며 절규한다.

“네놈, 네놈 때문에 에도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외치며 무작정 준혁에게 달려들었다.

스킬을 쓸 생각도, 게이트를 열어 괴물을 불러낼 생각도 하지 못한다.

아무런 의미도 없는 드잡이질로 덤벼드는 야마모토 테츠야의 모습에 준혁은 절로 맥이 빠지는 기분이었다.

도쿄를 저렇게 만든 건 만상만투였고, 그 만상만투를 불러낸 것은 로건 베런즈였다.

하지만 준혁은 대꾸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했다.

가볍게 내려간 준혁의 손바닥이 야마모토 테츠야의 정수리를 눌렀다.

쿵!

가벼운 손짓과 달리 묵직하게 터져 나온 소음.

그리고 야마모토 테츠야의 몸뚱이가 위아래로 격렬하게 진동하더니, 이내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단말마의 비명조차 남기지 못하고 그대로 절명한 것이었다.

하지만 죽은 야마모토 테츠야를 보는 준혁의 눈에는 아무런 감정도 떠올라 있지 않았다.

저런 놈 때문에 심력을 소모하는 것조차 한심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그 직후 찾아온 변화에는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야마모토 테츠야의 몸에서 연기처럼 빛이 피어오르더니, 이내 하나로 뭉쳐 허공에 둥둥 떠올랐다.

‘관리 권한?’

던전 관리자가 죽으면, 그 관리자가 가지고 있던 권한을 차지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이게 아마 그 관리 권한과 관계된 무언가일 터.

‘탐색.’

준혁은 ‘탐색’을 펼쳐 해당 관리 권한을 살펴보았다.

“음!”

육안으로 보았을 때는 단순한 발광체에 불과했던 것이, ‘탐색’을 통하니 아주 색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그 속에서 무수히 많은 다양한 입자들이 아주 복잡한 문양을 그리고 있었다.

시스템에 직접 작용하는 힘이 있는 만큼 복잡한 무언가가 있을 게 당연했다.

잠시 뭔가 궁리하던 준혁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른 스킬을 펼쳤다.

‘심안.’

아무런 설명도 없이, 이름만 뭔가 있을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기는 스킬 ‘심안’을 펼쳤다.

동시에 준혁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윽!”

입에서는 신음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비틀거리더니 이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급하게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커헉, 헉헉!”

몸속의 힘이 단숨에 쑥 빠져나가 버린 탈력감에 중심을 잃고 쓰러진 것이었다.

“뭐야, 이거?”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저 몸속 마나만 고갈되었을 뿐이었다. 아니, 마나에 더해 영력까지 몽땅 빠져나갔다.

그대로 드러누워 적사로부터 영력을 보충받은 다음에야 겨우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거듭된 영력 보충 때문인지 적사는 이제 완전히 말라비틀어진 모양새가 되어 있었다.

-배고… 파…….

진짜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쥐어짠 것 같은 상태.

-나중에 보충해 줄 테니 일단 좀 자라.

-배…….

말조차 제대로 끝맺지 못하고 적사는 준혁의 손목에 감긴 채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쓰러져 있던 상태에서 상체만 일으켜 세운 준혁은 상태창부터 확인했다.

[심안]

심안이 열린다.

숙련도:[1/100]

‘이게 도대체 뭐지?’

여전히 별다른 설명이 없다.

심안이 열린다고 하는데, 심안이 뭔지 알 수가 없다.

심안(心眼),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마음의 눈이다.

하지만 이 스킬에서도 그런 의미인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그런 의미라 해도 어떤 효과가 있는지도 모른다.

‘심안’을 펼치는 순간 눈알이 터져 나갈 정도의 압력을 느꼈고, 이내 극심한 두통이 뒤따라와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리고 몸속의 기운이 몽땅 빠져나가 버렸다.

‘이건 차차 알아보는 수밖에.’

대강 생각을 정리한 준혁은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그리고 야마모토 테츠야의 시체 위에 떠 있는 빛 덩어리를 손으로 쥐었다.

“크윽!”

빛을 쥔 손바닥에서부터 저릿한 감각이 신경을 타고 빠르게 온몸으로 번졌다.

이를 악물고 버티는 사이, 저릿한 감각은 온몸을 한 번 훑고는 이내 머릿속으로 올라가 자리 잡았다.

뒤이어 눈앞에 떠오르는 메시지.

[던전의 관리 권한을 획득하였습니다.]

‘별다를 건 없네?’

뭔가 대단하고 복잡한 과정이 있나 싶었는데, 허탈할 만큼 간단하게 끝이 났다.

준혁은 일단 상태창을 확인했다.

[상태창]

김준혁

직업:엽사(獵師)

등급:무급(無級)

클래스:심안의 관찰자, 관리자

근력:[2,012] [142]

순발력:[2,009] [194]

지구력:[2,048] [215]

감각:[2,132] [351]

영력:[2,423]

마나:[1,324]

기(技)

[전뢰보(電雷步)], [천라시(天羅矢)], [추종시(追從矢)], [천천(穿天)], [무극(無隙)], [천단참(天斷斬)], [태산인(泰山刃)], [이화접목(移花接木)], [폭류격(瀑流擊)], [연환(連環)]

술(術)

[화룡연무(火龍燃舞)], [금륜천전(金輪千轉)], [추뢰망(墜雷網)], [뇌호강전(雷虎降電)], [빙경낙월(氷鏡落月)], [쌍생상사(雙生相死)], [잠리탄주(潛鯉呑珠)], [낙일홍(落日虹)]

외(外)

[엽맥(獵脈)], [천기술(千器術)], [천신강림(天神降臨)], [영박(影縛)], [물아일체(物我一體)], [연환(聯幻)], [영화(靈話)], [융합], [제작]

스킬

[관찰], [스틸], [감응], [예지], [탐색], [심안], [미개방], [미개방]

관리자 스킬

[접속], [게이트 개방], [회피]

준혁이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상태창을 보았다.

관리자와 관련한 부분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준혁이 진짜 놀란 부분은 다른 데 있었다.

다름 아닌 배면계 쪽의 스탯 수치였다.

1,999에서 조금도 변동이 없던 스탯이 모두 2,000이 넘어가 있었다.

등급 또한 혼원급에서 ‘무급(無級)’으로 바뀌었다.

‘급이 존재하지 않는다?’

마지막에 존재하는 ‘혼원급’을 뛰어넘는 바람에 그렇게 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거……. 허!’

상한선이라 생각했던 1,999라는 수치를 넘어섰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원인은 말할 필요도 없이 만상만투의 심장 속 근원에서 얻은 그 기운일 것이다.

‘으음, 이 벽을 넘는 게 가능하다고? 허!’

다시 생각해도 신기했다.

‘일단 이건 린디웨한테 다시 물어보기로 하고……. 관리자 스킬.’

준혁의 시선이 딱 세 개 있는 관리자 스킬로 향했다.

‘접속’, ‘게이트 개방’, ‘회피’의 세 가지 스킬.

‘이것도 릴리안이랑 이야기를 해 보면 될 것이고…….’

좀 더 자세히 알아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고단한 하루였다.

만상만투와의 싸움을 생각하니 진저리가 쳐질 정도.

‘일단은 돌아가자.’

지금은 그저 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체력과 영력, 마나까지도 보충이 되기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외부적인 피로였다.

지금 준혁은 그런 외적인 피로가 아닌 정신적인 피로가 훨씬 더 무겁게 다가왔다.

이대로 쓰러져 몇 날 며칠 잠만 자고 싶은 기분.

도쿄에서는 아직 구조 작업이 한창이지만, 거기에 가서 준혁이 따로 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일단은 쉬자.’

결정을 내린 준혁은 바로 흑호를 불러 ‘도약’을 펼쳤다.

목적지는 집.

왕왕!

가족들을 지키던 청랑이 준혁의 등장을 눈치채고 반갑게 달려왔다.

“삼촌~”

뒤이어 지유가 총총거리며 달려와 준혁의 품에 와락 안겼다.

김준석과 이세연도 급히 준혁을 향해 달려왔다.

“야, 괜찮냐?”

“어디 다친 데는?”

거실의 TV에서는 도쿄의 상황이 속보로 나오고 있었다.

준혁이 싸우는 모습도 TV를 통해 보았을 터. 직접 가 보지도 못하고 TV 화면만 뚫어져라 보며 노심초사했을 것을 생각하니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멀쩡해. 피곤하기는 한데 다친 데는 없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후우, 그래.”

김준석이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사이 준혁이 지유를 안아 바닥에 내려놓았다.

“지유야, 삼촌 피곤해서 그러니까 좀 잘게.”

“응, 삼촌! 내가 이불 깔아 줄까?”

“하하! 그래. 삼촌 씻는 동안 지유가 이불 깔아 줘.”

그래 봐야 침대 위에 개어 놓은 이불을 펼치는 일이 전부다.

“응, 알았어.”

당차게 대답한 지유가 준혁의 방을 향해 돌진하고, 청랑이 재빨리 그 뒤를 쫓았다.

-흑호, 너는 가서 하던 거 도와주고 다들 데리고 복귀해.

-넵, 주인님!

흑호도 ‘도약’으로 다시 도쿄로 날아갔다.

그리고 씻고 나온 준혁은 죽은 듯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유민섭이 한국으로 귀국한 것은 도쿄 대참사로부터 무려 열흘이 지난 후였다.

한국은 물론 세계 각지에서 인명 구조를 위해 많은 헌터들이 일본으로 향했다.

그 덕분에 사후 처리는 생각보다 아주 빠르게 진행되었다.

첨단 장비로도 찾지 못하는 생명의 징후를 고위급 헌터들은 찾을 수 있는 덕분이었다.

특히나 활약한 사람들은 혼원 길드, 무훈 길드, 백호 길드, 팀 히어로 소속 헌터들이었다.

모두들 혼원 길드에서의 훈련을 통해 마나를 컨트롤하는 방법을 깨우쳤기에, 같은 등급의 다른 헌터들보다 훨씬 더 날카로운 감각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다.

힐러들도 대거 몰려갔기에 부상자들의 치유도 아주 빨랐다.

그렇게 사람들을 구조하고 난 후의 일은 더 이상 헌터들의 일이 아니었다.

무너진 도시를 재건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일본 정부의 몫이었다.

길드원들이 복귀하자마자 준혁은 가장 먼저 린디웨를 만났다.

“고생했다.”

“고생은 뭐……. 푹 쉰 모양이지?”

“아주 푹 쉬었지.”

“잘했다.”

“그런데 하나 물어보자.”

“뭘?”

“배면계에 혼원급 다음 등급도 있냐?”

던전 관리자나 이런 쪽보다 준혁이 가장 알고 싶은 것이 그 부분이었다.

갑자기 ‘무급’으로 바뀌어 버린 등급 문제.

그런데 린디웨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없는데?”

“없다고?”

“왜?”

“나 등급이 올라……. 아니, 바뀌었는데?”

“뭔 소리야? 나 좀 보여 줘 봐.”

준혁이 상태창을 열자 린디웨가 시스템 아바타로서의 힘을 발휘해 준혁의 상태창을 확인했다.

“어? 무급?”

“너도 모르는 거냐?”

하지만 린디웨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뭔가 한참을 골똘히 생각하는 것 같더니 자신 없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거 아무래도 그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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