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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장. 대재앙#2-
[조건을 충족하여 클래스가 심안의 관찰자로 승급하였습니다.]
‘이게 뭔…….’
물의 벽은 당연히 물로 쌓아 올린 벽이다.
그것도 신의 격을 가진 괴물이 권능을 이용해 물을 쌓았다.
‘천신강림’까지 전개해 후려쳐 봤지만 당연히 소용이 없었다.
뭔가 좋은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차에, 그제야 시스템 메시지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그중 유독 눈에 들어와 박힌 것이 저 메시지였다.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메시지의 문장이 무슨 뜻인지 이해 못했다는 건 당연히 아니다.
‘승급?’
심안의 관찰자라는 게 무엇인지는 차치하더라도, 클래스에 승급이라는 게 있다는 이야기는 금시초문이다.
클래스는 변하지 않는다.
상식처럼 자리 잡은 이야기다.
전사는 계속 전사, 마법사는 계속 마법사다.
배면계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술사는 술사, 엽사는 끝까지 엽사였다.
이 이상한 메시지를 보고 있는 준혁이 그 증거였다.
배면계 최고 등급인 ‘혼원급’까지 성장했지만, 그의 상태창에 나타나는 직업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엽사였다.
그런데 지금 그게 변했다.
게다가 승급이란다.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거야?’
현상만 겪고 있으니 이해가 있을 수 없다.
준혁은 서둘러 고개를 털어 냈다.
‘나중에 깊이 생각해 봐야겠다.’
두 번째 각성한 후 쉼 없이 움직였다.
야마모토 테츠야를 잡기 위해서.
핵을 맞은 후에는 장비를 제작하고, 릴리안 우드를 상대하느라.
여유를 갖고 자신의 클래스, 던전 각성자들 중에서도 존재하지 않는 ‘관찰자’라는 클래스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 정도면 정말 깊이 고민해 봐야 했다.
‘일단은 이 망할 해일부터.’
머릿속에 연이어 떠오른 의문을 애써 지웠다.
서둘러 다른 시스템 메시지를 훑어보았다.
[심안의 관찰자로 승급하여 ‘탐색’이 개방되었습니다.]
[심안의 관찰자로 승급하여 ‘심안’이 개방되었습니다.]
‘탐색? 심안?’
승급하면서 미개방 상태에 있던 스킬의 잠금이 풀렸다.
상태창을 열어 문제의 두 스킬을 확인해 보았다.
[탐색]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를 가시화할 수 있다.
숙련도가 올라갈수록 자세한 탐색이 가능하다.
숙련도:[10/100]
[심안]
심안이 열린다.
숙련도:[1/100]
‘뭐야, 이건?’
‘심안’이라는 스킬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름도 꽤 그럴싸하다. 심안의 관찰자라는 클래스와 심안(心眼)이라는 단어를 연결해 생각해 보면 무언가 있어 보이는 이름이다.
그런데 설명이 없다.
게다가 숙련도도 겨우 1이었다.
‘써 볼까?’
궁금증에 그런 생각도 문득 들었지만, 지금은 스킬이나 테스트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일단 준혁은 또 하나의 스킬 ‘탐색’으로 관심을 돌렸다.
에너지의 가시화.
‘이거 어쩌면?’
준혁의 시선이 곧장 물의 벽으로 향했다.
이건 절대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다.
만상만투의 권능이 작용하여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그렇다면 이 물의 벽에도 어떤 힘이 작용하고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 힘을 확인할 수 있다면 막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탐색.’
재빨리 스킬을 펼쳤다.
‘음!’
준혁의 두 눈에서 은은한 청광이 흘러나왔다.
시야에 들어온 광경도 바뀌었다.
‘이거다!’
그리고 준혁의 얼굴에 확신이 떠올랐다.
보였다.
해수면 아래에서 난잡하게 흐르고 있는 기운이 푸른 입자의 모습으로 준혁의 눈에 들어왔다.
어지럽게 휘도는 푸른 입자들, 물밑에서 흩날리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물의 벽을 타고 아래에서 위로 빠르게 솟구쳤다.
푸른 입자는 물의 벽 위쪽으로 갈수록 밀도가 높았고, 아래로 갈수록 듬성듬성했다.
하지만 꾸준히 입자가 밀려 올라가며 위에서부터 아래로 차곡차곡 밀도를 올리고 있었다.
직감적으로 상황을 이해했다.
저 푸른 입자가 바닥까지 완전히 쌓이면, 그때 저 물의 벽이 해일로 변해 도쿄를 덮치리라.
‘저걸 막으면 될까?’
지금 당장 떠오르는 방법은 그거 하나였다.
‘천신강림’을 풀었다. 순식간에 날아온 백효가 발밑을 받친다.
준혁은 손에 든 무상곤을 재빨리 활의 형태로 만들었다.
끼이이익!
재빨리 당긴 시위에 수십 대의 실처럼 가느다란 화살이 걸려 있었다.
[추종시]
스킬을 펼치며 시위를 놓는다.
시위를 떠난 수십 개의 화살이 날카로운 비행을 하며 물의 벽 아래쪽으로 파고들었다.
펑, 퍼퍼퍼퍼펑!
물속에서 강렬한 폭음과 함께 사방으로 물이 튀었다.
“됐다!”
효과가 있었다.
준혁이 쏜 ‘추종시’는 푸른 입자를 목표로 날아가 명중했다.
폭발의 여파가 에너지의 흐름, 푸른 입자의 흐름을 뒤흔들며 순간적으로 빨려 올라가는 푸른 입자의 속도가 느려졌다.
하지만 여전히 어려움은 남는다.
물의 벽은 높이도 높이지만, 폭도 어마어마하게 넓었다.
분명 효과는 있지만, 준혁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었다.
비유하자면 토치로 빙산에 불을 쏘는 격이다.
토치로 지진 부위는 당연히 얼음이 녹지만, 빙산 전체를 녹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포기하는 건 말이 안 된다.
어쨌든 할 수 있는 일은 한다.
아주 조금이라도 시간을 번다는 의미는 있었다.
“후웁!”
다시 당긴 시위에 수십 대의 영력 화살이 걸렸다.
그나마 아직 적사에게서 보충받을 수 있는 영력은 여유가 있었다.
만상만투의 심장 안에서 단전이 넓어지고, 새로운 영력과 마나가 보충된 것도 큰 도움이 되었다.
퍼퍼퍼퍼펑!
끊임없이 날아간 화살이 물의 벽 하단에 쉴 새 없이 폭음을 울렸다.
1분, 아니 1초라도 시간을 벌기 위해 준혁은 한순간도 손을 멈추지 않았다.
단 한 사람의 손으로 날린 화살들이 폭우처럼 쏟아지는 광경은 장관 아닌 장관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준혁도 사람이었다. 아무리 초월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해도 체력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게 얼마 만이냐?’
시위를 당기는 손끝에는 어느새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만큼 쉴 새 없이 화살을 쐈다.
“헉, 허억!”
준혁이 가쁘게 숨을 고르며 적사를 통해 영력을 보충할 때였다.
갑자기 푸른 빛 덩어리 하나가 두둥실 떠올라 준혁의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이거 뭐?’
이런 상황은 언젠가 한 번 겪어 본 적이 있었다.
준혁은 지금 ‘탐색’을 유지하고 있는 중이었다.
푸른 빛 덩어리에서 풀려 나온 가느다란 푸른 선이 하늘거리며 준혁의 뒤쪽으로 뻗어 있었다.
재빨리 고개를 돌려 보니 그곳에 의외의 인물이 있었다.
“빨리 받아요!”
그곳에 흑호의 등에 올라탄 유민섭이 보였다.
그리고 유민섭 뒤에는 장민호가 앉아 있었다.
유민섭의 ‘지휘권’ 스킬이었다.
지금처럼 인내심과 체력마저 요구하는 상황이라면 이것 역시 도움이 되리라.
준혁은 급히 눈앞의 푸른빛을 손에 쥐었다.
[지휘권을 받아들여 근력, 순발력, 지구력, 감각이 각각 5퍼센트씩 상승합니다.]
준혁의 스탯을 생각하면 저 5퍼센트는 절대 적은 수치가 아니다.
그리고 거기서 끝이 아니다. 유민섭은 서포터였고, 그에게는 다른 버프도 있었다.
‘근력 강화’, ‘순발력 강화’, ‘지구력 강화’, ‘감각 강화’의 네 가지 버프가 적용되며, 각각의 스탯은 ‘지휘권’의 효과까지 포함해 15퍼센트씩 상승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영력과 마나 소모량이 각각 20퍼센트 줄어듭니다.]
준혁이 멈칫하며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이건 뭡니까?”
처음 보는 스킬의 효과였다.
“말 안 했습니까? 나도 등급 올라갔는데.”
“말 안 했습니다.”
“준혁 씨도 더블 각성 말 안 하고 나중에 알려 줬으니 비긴 셈 치죠.”
“이 와중에 농담이 나옵니까?”
“너무 날카로운 것 같아서 농담했습니다. 잠깐만 숨 좀 돌려요.”
유민섭의 말에 준혁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영력과 마나의 소모량 20퍼센트 절감.
이건 꽤 크다.
지금 필요한 것은 피지컬 유지와 영력과 마나의 관리였다.
지금 유민섭이 개입하면서 그 부분에서 꽤 여유가 생긴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의아한 것은, 유민섭은 던전 각성자인데 방금 쓴 스킬로 영력까지 소모량이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처음 그거 때문에 그런가?’
준혁과 배면계 각성자들이 아니면 버프를 줄 수 없는 몸이 되어 버린 유민섭이었다.
처음에 혼원 길드를 만든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저 해일이 덮치는 시간을 뒤로 미루는 게 우선이었다.
그때 유민섭 뒤에 타고 있던 장민호가 손에 두꺼운 책을 들며 외쳤다.
“마그누스 리커버리!”
은은한 빛이 준혁을 감싸고, 그 순간 또 하나의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체력이 회복됩니다. 마나가 회복됩니다.]
영력은 아니지만 마나가 회복되었다. ‘탐색’은 마나를 소모하는 스킬이었다. 꾸준히 그 스킬을 유지해야 하는 준혁에게는 이 역시 큰 도움이 된다.
게다가 체력까지 단숨에 회복.
“헉헉! 힘내십쇼, 형님!”
응원까지 하는 장민호를 보고 준혁이 피식 웃으며 다시 방향을 돌렸다.
체력은 충만해졌고, 마나의 영력 또한 차고 넘친다.
거기에 유민섭과 장민호의 서포트도 있다.
이 정도면 조금 더 무리를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손에 들린 활이 한층 커졌다.
끼이이이익!
시위도 길어졌고, 거기에 건 영력의 화살도 훨씬 많아졌다.
쏴아아아아-!
폭우처럼 화살이 쏟아져 내렸다. 뒤이어 둔중한 물의 폭발이 울려 퍼졌지만 준혁은 그저 담담하게 시위를 거듭 당길 뿐이었다.
“제길! 당장 뛰어! 당신들도 살아야 하잖아! 도로, 차도로 가라고! 거기 가야 살 수 있단 말이다!”
하시모토 타츠야의 입에서 터져 나온 것은 노기에 찬 일갈이었다.
도쿄에는 아직도 사람이 많았다.
“망할 정치인 놈들!”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어 참을 수가 없었다.
대피령이 늦어진 이유는 다름 아닌 정치권의 문제였다.
오오타 료 내각총리대신, 그놈이 헛소리를 떠들었다.
괴물이 등장한 직후, 거인의 모습으로 나타난 준혁을 보고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였다고 한다.
‘스사노오의 화신이 나타났다. 스사노오가 야마타노오로치를 무찌르고 일본을 구할 것이다. 하늘은 일본을 버리지 않았다!’
미친 개소리를 지껄였다고 한다. 그 탓에 도쿄도 도지사의 결정에 제동이 걸렸고, 대피령 발령이 늦춰진 것이었다.
물론 오오타 료가 진심 그렇게 믿고 한 말이 아니라는 것은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시간을 버는 동시에 오오타 료가 한 일은 ‘자위대 치안 출동’을 선포했다.
그리고 자위대에 내린 첫 번째 명령은 다름 아닌 국회 점거였다.
수가 뻔히 보이는 짓거리였다.
갑작스러운 영상으로 인해 터져 버린 스캔들을 단번에 마무리하겠다는 계략인 것이다.
‘나중에 반드시 내 손으로 죽여 버릴 것이다!’
하시모토 타츠야가 속으로 그런 다짐을 할 때였다.
저 멀리 사람들이 커다란 원을 그리며 아우성대는 소리가 들렸다.
한 발이라도 먼저 움직여야 하는 상황에 저게 무슨 짓인가.
하시모토 타츠야는 다급하게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달렸다.
“거기, 당신들! 뭐 하는 거야? 당장 대피하지…….”
하지만 하시모토 타츠야는 말을 잇지 못했다.
운집해 있는 사람들의 한가운데.
100여 명의 시민에게 포위당한 한 남자의 모습 때문이었다.
“오오타 료!”
그러고 보니 이곳은 국회의사당, 그리고 수상관저가 있는 나가타초였다.
국회의사당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것도 그곳에 있던 한 직원을 통해서였다.
하시모토 타츠야는 훌쩍 사람들을 뛰어넘어 오오타 료 바로 옆에 내려섰다.
“하시모토 타츠야?”
오오타 료가 그를 알아보고 외쳤다. 하시모토 타츠야는 일본에서도 이름 높은 헌터이니 알아보는 것이 당연한 일.
오오타 료가 황급히 말했다.
“당장 나를 구하라! 이 폭도들이 일본의 내각총리대신을 테러…….”
하지만 오오타 료는 말을 잇지 못했다.
어느새 날아온 하시모토 타츠야의 손에 맞아 기절한 것이다.
“이놈은 내가 처리한다고 약속하겠다. 당신들은 당장 차도로 달려! 가급적 큰 차도, 게이트가 보이면 들어가! 거기로 들어가야 안전한 곳으로 이동이 가능하니까!”
사람들이 빠르게 방향을 틀어 차도를 향해 내달렸다.
그리고 하시모토 타츠야도 오오타 료를 들쳐 메고 내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