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받고 각성 더!-146화 (146/240)

-146-

-54장. 격전#2-

-오랜만이다, 도살자!

-크하하하! 반갑구나.

-난 저놈이 싫다!

-죽인다, 도살자!

-반가워, 반가워, 반가워. 죽이고 싶을 정도로 반가워!

-사랑한다, 김준혁!

-먹을 테다!

-내 입에 넣을 거야! 혀 위에 굴리면서 발버둥 치는 식감!

소란스러운 소리가 도쿄 국제공항 전체를 뒤흔들었다.

“미친 짐승 새끼! 대가리 정리나 해라, 이 뱀 새끼야!”

아무렇지도 않게 대거리하는 준혁이었지만, 얼굴에는 저릿할 정도의 긴장감이 퍼지고 있었다.

‘이건 진짜인데?’

단순한 빙의가 아니었다. 아예 신수의 본체가 이쪽으로 넘어왔다.

지금까지는 그저 거대한 몬스터의 몸에 영력과 함께 빙의하여 힘을 쓰는 정도였다.

그렇기에 준혁도 조금은 여유롭게 싸울 수 있었다.

하지만 본신이 넘어온 이상 준혁도 모든 전력을 쏟아야 했다.

다만, 궁금한 한 가지.

‘어떻게 한 거지?’

이쪽으로 배면계의 괴물이 넘어온 경우는 단 한 번 있었다.

잠실에서 사면오공과 함께 등장했던 영수급 괴물들.

그런데 지금은 신수가 직접 넘어왔다.

-흑호, 백효 데리고 와라.

-네, 주인님!

흑호의 존재감이 잠깐 동안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동시에 백효의 목소리가 머릿속으로 넘어왔다.

-백효, 도착했습니다.

-넌 지금부터 저 밑에 있는 로건 베런즈 감시해라. 한순간도 눈 떼지 말 것.

-넵!

보이지 않게 하늘을 날아 로건 베런즈를 시야에 담은 백효가 곧장 상황을 전달했다.

준혁의 시야에 백효의 시야가 겹쳐지며 상황이 그대로 중계되었다.

온몸으로 땀을 뻘뻘 흘리며 두 손으로 무릎을 짚은 채 거칠게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그 발치에는 시뻘건 핏물이 잔뜩 떨어져 퍼져 있었다.

그러다 결국 버티지 못하고 무릎으로 땅을 찍으며 주저앉는다.

어마어마하게 무리했다는 뜻이었다.

그때 근처에 있던 야마모토 테츠야가 흔들리는 동공으로 허공을 보며 중얼거렸다.

“저, 저건……. 저것은…….”

그 말에 로건 베런즈가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핏기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물론이고, 아예 볼이 움푹 파일 정도로 얼굴이 핼쑥하게 변해 있었다.

그러고 보니 목이나 팔다리는 물론 온몸의 근육이 죄다 빠져 앙상하게 말라 있었다.

이미 죽어 버린 고목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게다가 아직까지도 간헐적으로 피를 게워 내고 있었다.

거의 죽을 정도로 무리를 했다는 뜻이었다.

로건 베런즈는 그 와중에도 미소를 지었다.

입술 양쪽 끝을 올리는 단순한 일마저도 힘에 부치는 듯했지만, 기어이 입을 열어 말했다.

“크헉! 헉! 일본이라……. 분위기를, 헉헉! 맞춰 봤… 습니다.”

야마모토 테츠야가 풀어진 동공을 수습하지 못한 채 멍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야마타노오로치…….”

지금 도쿄 공항의 주기장은 물론 활주로까지 침범한 거대한 괴물은 여덟 개의 머리와 여덟 개의 꼬리를 가진 거대하기 짝이 없는 뱀이었다.

일본인이라면, 일본 신화에 등장하는 팔두팔미의 거대한 뱀 야마타노오로치를 연상할 수밖에 없는 모습이었다.

배면계 소환 이전에 CIA의 에이전트로서 일본에서 활동한 경험이 있는 로건 베런즈가 일부러 골라서 불러낸 모양이었다.

준혁이 다시 신수를 내려다보며 얼굴을 찡그렸다.

지금 여덟 개의 머리가 서로 마구 엉킨 채 투닥거리고 있는 저 괴물은 당연히 야마타노오로치가 아니었다.

저 신수의 이름은 만상만투(萬想萬鬪).

저 여덟 개의 머리가 쉴 새 없이 각자의 생각을 떠들고, 제놈들끼리 꼬리를 동원해 끊임없이 싸우는 놈들이다.

물론 적을 상대할 때는 다르다.

-내가 이겼다!

중앙에 자리한 두 개의 머리 중 오른쪽에 있는 유독 커다란 머리가 큰 소리로 외쳤다.

저렇게 리더가 정해지면 놈들은 하나의 일사불란한 군대가 된다.

“후웁!”

준혁은 허공에 뜬 채 바짝 긴장한 얼굴로 호흡을 골랐다.

[무극]

생각과 동시에 준혁의 위치가 단숨에 바뀌었다.

만상만투의 가장 왼쪽 머리의 정수리 위였다.

저놈들 스스로 부르는 호칭은 ‘팔두’였다. 참고로 가장 오른쪽은 ‘일두’였다.

콰지지지직!

순식간에 시커먼 뇌전이 휘몰아치며 준혁을 휘감는다.

무상곤이 팔두의 정수리를 거세게 내리찍었다.

쾅!

굉음이 울려 퍼지고 팔두의 머리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동시에 무상곤에서 피어오른 영력이 준혁의 온몸을 감싸 시커먼 뇌전을 막아 냈다.

공격한 만상만투도, 받아 낸 준혁도 아무런 감흥이 없는 공방.

진짜는 그다음에 이어졌다.

준혁이 서 있는 자세 그대로 아래로 낙하했다.

단단하게 발을 디디고 있던 팔두의 정수리가 갑자기 사라진 탓이었다.

정확하게는 사라진 게 아니라 머리 전체가 뇌전 덩어리로 변했다.

낙하 직후의 준혁은 뇌전 덩어리로 변한 팔두의 머리 안에 갇혀 버린 상황이다.

그리고 진짜 공격이 시작되었다.

콰르르릉!

창창하게 맑은 하늘에서 징조도 없이 우렛소리가 울리고, 거대한 낙뢰가 팔두의 정수리로 떨어졌다.

콰자자작!

번개 튀기는 소리가 공항 활주로 전체에 퍼질 정도로 거대한 굉음으로 휘몰아친다.

뿜어져 나온 무시무시한 광량의 빛이 하네다 공항의 전체를 새하얗게 물들였다.

“크윽!”

그리고 팔두의 머릿속에 갇혀 있던 준혁이 땅으로 추락하며 짙은 신음을 뱉었다.

‘뭐지?’

이상했다.

준혁은 배면계에서 이미 만상만투를 상대로 싸워 보았다.

결과는 당연히 준혁의 승리였다.

어쨌든 그 경험이 있기에 만상만투의 힘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힘이 강해졌다.

과거에도 겪어 본 이 공격은 묵린갑에 영력을 주입하면 충분히 막아 낼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묵린갑의 방어력을 뚫고 준혁의 몸에 직접적인 데미지를 준 것이다.

‘강해졌다.’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준혁이 알고 있는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신수는 영수급의 괴물이 끊임없는 성장을 거듭해 그 격이 신격에 가깝게 올라간 놈들이다.

하지만 그렇게 신수가 되고 나면 더 이상 성장의 여지가 없다.

신수가 된 그 자체로 완성형이라는 뜻이다.

그런 놈들이 강해졌다.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이야기다.

이런 놈들이 죄다 이쪽 세계로 넘어온다면?

세계의 멸망은 당연하고, 어쩌면 지구라는 행성 자체가 물리적인 궤멸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추락하던 중에 인벤토리에서 포션을 꺼내 단숨에 삼켰다.

데미지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몸의 상태도 멀쩡하게 돌아왔다.

“후웁!”

살기로 번뜩이는 준혁의 눈동자가 한곳을 노려보았다.

로건 베런즈와 야마모토 테츠야가 앉아 있는 곳이었다.

두 놈의 형태가 흐릿해 보이는 것이, 게이트를 이용해 이쪽과 저쪽 사이에 겹쳐진 상태로 상황을 지켜보는 듯했다.

‘저 새끼부터!’

게이트를 이용하고 있지만 어려울 것은 없었다.

릴리안 우드로부터 받은 물건이 있기에 게이트를 이용한 장난질은 충분히 파훼할 수 있었다.

콰콰콰콰!

‘전뢰보’를 펼쳐 로건 베런즈를 향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부우웅!

크게 휘두르는 무상곤이 거대한 언월도로 변하며 공간마저 잘라 낼 기세로 날카로운 궤적을 그렸다.

하지만 그 순간 언월도의 진행을 막는 무수한 군집이 솟구쳤다.

소리도 없이 무더기로 떨어져 내린 것은 수천수만 마리의 뱀이었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욕지기가 나올 정도로 저들 멋대로 뒤엉켜 있는 뱀들. 그리고 그 뱀의 숫자는 끊임없이 불어나고 있었다.

거대한 힘으로 휘두른 언월도였지만, 쌓여 있는 모든 뱀을 잘라 내고 로건 베런즈까지 치는 것은 무리였다.

‘이두!’

만상만투의 여덟 개 머리는 여덟 개 꼬리와 각각 한 쌍을 이룬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여덟 마리 뱀의 몸통만 하나로 합쳐 놓은 것으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각각의 머리는 각각의 권능을 갖고 있었다.

그중 두 번째 머리인 이두의 권능은 뱀을 부리는 것.

엉켜 있는 수만의 뱀들이 갑자기 저들끼리 쉴 새 없이 물어 대기 시작하더니, 그중 몇 마리가 쉴 새 없이 다른 뱀들을 집어삼키며 제 몸을 거대하게 부풀렸다.

마치 적사가 괴물을 잡아먹고 성장하는 것과 비슷한 모양새다.

-적사!

-배고파아아!

늘 똑같은 외침과 함께 적사가 준혁의 소매에서 튀어 나갔다.

순식간에 소형화를 풀고 거대해진 적사가 눈앞의 뱀들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그러다 급기야 거대해진 몇 마리 뱀과 뒤엉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준혁은 그 틈을 타고 또 한 번 몸을 날렸다.

로건 베런즈, 놈부터 죽여야 했다. 그래야만 다른 신수 놈들이 이곳으로 넘어오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탁, 타타탁!

바닥을 몇 차례 박차는 것으로 뱀 군집이 막고 있는 공간을 지나친 준혁이 다시 무상곤을 들었다.

하지만 만상만투의 공격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아무것도 없는 바닥과 허공에서 갑자기 불쑥 수백 자루의 장검이 튀어나와 준혁을 공격한다.

차차차차창!

준혁이 바쁘게 휘두르는 양손에 장검들이 튕겨 나간다.

검을 다루는 권능은 오두의 것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만상만투의 목소리.

-그놈은 건드리면 안 되거든.

리더를 정한 후부터 다른 머리들은 입을 딱 다물고, 리더인 사두만이 말을 한다.

힐끔 로건 베런즈를 살핀 준혁이 시선을 들어 만상만투를 보았다.

“하, 너희 짐승 새끼들이 그렇게 벌레처럼 보던 인간이랑 손이라도 잡았나 보지?”

-합리적인 선택을 한 것이지.

숨길 이유가 없다는 듯 만상만투가 말한다.

“그래서 얻는 게 뭐냐?”

-글쎄? 각자의 목적이 있겠지.

신수들마다 목적은 다르지만, 이쪽 세계로 넘어오겠다는 생각만큼은 통일되었다는 뜻이다.

“그럼 네 목적은 뭐냐? 여기 뭐 주워 먹을 게 있다고 넘어오는데?”

-크흐흐! 파괴할 것이 있지.

“지랄 똥을 싸고 앉았네, 이 짐승 새끼가.”

-물론 그중 가장 탐스러운 파괴의 대상은 너다, 도살자.

“그러시든가!”

버럭 소리를 내지른 준혁이 흑호를 불렀다.

당장 로건 베런즈를 제거하는 것이 우선이었지만, 만상만투의 방해가 있는 한은 그럴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이 괴물부터 최대한 빨리 죽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리를 해야 했다.

-적사, 돌아와!

준혁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적사가 화살처럼 날아와 준혁의 소매 속으로 들어온다.

준혁이 또 한 번 전뢰보를 펼쳤다.

주변에 기다란 뇌전의 흔적을 남기며 늘어진 자국이 순식간에 만상만투를 향해 쇄도했다.

-어림없다!

쿵, 쿠웅!

만상만투의 여덟 개의 거대한 꼬리가 난동을 부린다.

일부는 땅을 두드리고, 일부는 빗자루질을 하듯 지면을 쓸어 댄다.

하지만 이 정도 공격에 당할 준혁이 아니었다.

뛰어넘고, 구르고, 내달리며 모든 꼬리 공격을 피했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땅을 쓸어 주변에 있던 격납고와 비행기들을 모조리 날려 버린 꼬리 하나에 올라탔다.

준혁의 머리 위에는 어느새 50자루의 묵룡비가 거대한 무리 비행을 하며 뒤따랐다.

꼬리를 타고 달리던 준혁이 마침내 하나로 묶인 거대한 평원 같은 몸뚱이 위에 도착했다.

동시에 비어 있던 준혁의 왼손을 타고 안개와 같은 영력이 풀썩 뿜어져 나와 허공으로 솟구쳤다.

정확하게는 영력과 마나가 뒤엉킨 기운이 실체화된 것이었다.

이 정도 괴물을 상대하는데 힘을 숨기면서 싸우는 건 말이 안 되는 일.

마나를 품고 있다는, 던전 시스템의 각성까지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준혁이 쏘아 낸 기운이 50자루 묵룡비에 맺혔다.

그리고 묵룡비가 사방으로 흩어지며 비행을 시작했다.

거대한 언월도로 변한 무상곤에도 마나와 영력이 동시에 맺힌다.

만상만투도 가만히 맞고만 있지 않았다.

사방 곳곳에서 수없이 많은 뱀과 장검이 쏟아져 묵룡비와 싸웠다.

퍼퍼펑!

카카카캉!

폭음과 쇳소리가 허공에서 쉴 새 없이 울려 퍼졌다.

그때 준혁의 손등에는 적사가 이빨을 박고 있었다.

“후우웁!”

손을 타고 올라오는 거대한 기운에 준혁이 크게 심호흡을 했다.

뒤이어 준혁의 온몸에서 묵색과 적색, 녹색이 뒤엉켜 피어올랐다.

세 가지 색깔이 뒤엉킨 영력 사이사이에서 빛을 뿜는 것은 푸른색의 마나였다.

‘천신강림.’

준혁의 몸뚱이가 순식간에 거대하게 부풀어 올랐다.

거인이 되어 버린 준혁이 만상만투의 몸뚱이 위에 그대로 올라탄 채 여덟 개의 머리 중 하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얼른 끝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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