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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받고 각성 더!-144화 (144/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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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장. 개전#2-

“누구냐?”

하네다 공항 주기장 너머 격납고에 야마모토 테츠야의 우렁찬 호통이 울려 퍼졌다.

위압감 가득한 야마모토 테츠야의 그 호통 속에는 잘게 떨리는 당혹감이 희미하게 맺혀 있었다.

야마모토 테츠야의 시야에는 한 남자가 담겨 있었다.

깔끔하게 떨어지는 하얀색 정장 차림의 백인 남자였다.

“이야기를 좀 나눴으면 합니다, 은색 씨.”

야마모토 테츠야의 두 눈이 찢어질 정도로 벌어졌다.

팽팽하게 긴장된 근육에 잔뜩 힘이 들어가고, 당장이라도 튀어 나갈 정도로 강렬한 분노가 뇌를 마비시키는 느낌.

“설마 네놈이냐?”

자신을 ‘은색’이라고 부를 사람은 이 세상에 5인 위원회 외에는 없었다. 거기에 더해 자신의 정체를 아는 자.

서천회의 하부 조직을 무너트리고, 자신의 숙원을 망친 그놈.

당장이라도 튀어 나가 놈을 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야마모토 테츠야는 급류처럼 밀려오는 감정에 침착하게 브레이크를 걸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야마모토 테츠야의 시선이 갑자기 등장한 남자에게서 옮겨 가 자신의 정면으로 향했다.

지금 야마모토 테츠야가 서 있는 곳은 활주로에서 주로 볼 수 있는 이동식 계단 위였다.

마치 단상처럼 배치된 계단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거대한 격납고 안에는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마치 군대처럼 도열한 이들이 당장이라도 튀어 나갈 기세로 불청객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들은 잘 벼린 칼처럼 날카로운 기운을 풀풀 풍기면서도 먼지 떨어지는 기척도 내지 않을 정도로 정연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야마모토 테츠야가 심혈을 기울여 일구어 낸 서천회의 최고 정예들이었다.

오른쪽 끝에는 국적이나 계급 표시도 없는 검은색 전투복에 헬멧을 착용하고 현대 화기로 무장한 군인들이 도열해 있었다.

그런데 다른 이들의 복장이 조금 이상했다.

마치 과거로 넘어온, 혹은 사극 촬영장을 보는 듯한 모습이다.

중앙에는 일본의 전통 사무라이 복장을 한 자들이 투구에 얼굴을 보호하는 멘구(面具)까지 착용하고 있었다.

그들의 뒤쪽은 일본 신사를 관리하는 신관 차림의 헌터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앞쪽은 전사 계열, 뒤쪽은 마법사 계열의 헌터였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왼쪽 끝에는 모두 닌자의 차림이었다.

그 광경을 슬쩍 훑어본 불청객이 야마모토 테츠야를 향해 말했다.

“자국의 전통을 아주 사랑하는 모양이군요?”

약간의 비웃음이 담겨 있었지만, 분노에 휩싸인 야마모토 테츠야는 거기까지는 읽지 못했다.

“죽고 싶은 게 아니라면 여기는 왜 나타난 거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이미 말씀드렸습니다만?”

“내가 이룩한 걸 모두 날려 버린 놈과 나눌 이야기 따위는 없다!”

“음? 지금 그게 무슨……. 하, 설마 당신의 조직을 공격한 것이 저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이제 와서 아니라고 발뺌할 생각이냐?”

“하하, 하하하하하!”

불청객이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듯 갑자기 크게 웃어 댔다.

“네 이놈!”

야마모토 테츠야의 호통이 묵직하게 터져 나왔다.

그리고 백인 남자는 언제 그렇게 웃었냐는 듯 갑자기 딱딱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혼자 착각 속에 살고 있군요.”

“뭐라?”

“당신의 조직을 두드린 건 제가 아닙니다.”

“그 거짓말을 어떻게 믿으라고 그딴 소리를…….”

“김준혁!”

“뭐?”

“당신의 조직을 때린 자는 김준혁이란 말입니다.”

순간 야마모토 테츠야의 얼굴에서 갑자기 표정이 사라졌다.

분노가 끝까지 치달으니 오히려 머리가 차갑게 식는 기분이었다.

“헛소리. 놈은 죽었다. 거기서, 그 폭발에서는 아무리 대단한 헌터라도 살지 못해.”

차분하게 말하는 야마모토 테츠야의 얼굴에서는 단 한 점의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건 당신의 착각입니다.”

“착각?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는군. 놈이 그 폭발에서 쓰러지는 것을 내 눈으로 직접 보았다. 출구도 없는 던전 안에서 놈이 어떻게 빠져나왔다는 거지?”

그때였다.

불청객의 얼굴에 갑자기 팽팽한 긴장감이 떠올랐다.

“나는 이만 갑니다. 지켜보고 있을 테니, 이야기가 하고 싶다면 언제든 말씀하십시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불청객이 제 뒤쪽에 게이트를 열고 급히 몸을 밀어 넣었다.

“무슨!”

콰앙!

요란한 소음과 함께 격납고 한쪽이 터져 나가며 갑자기 누군가가 등장했다.

“뭐냐!”

깜짝 놀란 야마모토 테츠야가 버럭 소리를 질렀고, 모여 있던 서천회 정예들이 황급히 위치를 옮기며 경계 자세를 취했다.

터져 나간 격납고에서 한 남자가 긴 그림자를 앞세운 채 들어서고 있었다.

“오랜만이지?”

“너, 너는!”

야마모토 테츠야의 얼굴에 다시 한 번 경악의 감정이 떠올랐다.

안으로 들어선 남자의 얼굴이 자신과 똑같았다.

야마모토 테츠야는 자신과 똑같이 생긴 남자가 ‘와 연구소’를 뒤집어 놓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다. 수련원에서 진토정교의 헌터들을 공격한 것도 마찬가지.

“네놈……. 네놈이었나?”

“어, 그렇지.”

야마모토 테츠야는 최대한 냉정함을 유지하며 주변을 살폈다.

‘아직 있군.’

야마모토 테츠야의 눈동자가 감각을 자극하는 그 무언가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격납고 천장 모서리에 깨알만큼 작은 공간의 뒤틀림이 있었다.

게이트였다.

불청객은 지켜보고 있겠다고 말했었다. 그 불청객은 5인 위원회의 위원 중 하나였다.

던전 관리자가 어딘가를 살펴보는 방법 중 하나가 게이트를 이용하는 방법이었다.

불청객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했었다. 그리고 언제든 부르라 했었다.

즉, 혹시나 모를 상황이 왔을 때 도움을 줄 수도 있다는 의사 표시였다.

보험 하나 정도 들어 두는 것은 나쁘지 않을 터.

격납고 벽을 뚫고 나타난 남자는 당연히 메구탈을 쓴 준혁이었다.

준혁은 자신을 둘러싼 서천회 정예들을 살펴보다 저도 모르게 픽 실소를 터트렸다.

“하, 뭐냐? 이 차림새는? 단체 코스프레 공연이라도 하냐? 씨발! 이 미친 새끼들 진짜 명불허전 중세 잽 랜드네.”

“죽엇!”

야마모토 테츠야가 발작적으로 외치는 동시에 손을 뻗었다.

갑자기 준혁 앞의 공간이 뒤틀리는가 싶더니, 그곳에서 새까만 손 하나가 불쑥 튀어나왔다.

파앙, 쾅!

손가락에서 한 줄기 빛이 뿜어져 나왔다.

준혁이 반사적으로 들어 올린 무상곤이 그것을 막으며 거대한 압력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서천회 정예들은 마치 대비라도 하고 있었다는 듯 이미 준혁과 거리를 벌리고 있었다.

“오, 좀 후끈한데?”

준혁이 무상곤을 휘휘 휘저으며 능청스럽게 말했다.

무상곤 역시 이번에 새롭게 제작한 물건이었다.

그사이 게이트를 뚫고 나온 온몸이 새까만 인간 형태의 괴물이 준혁 앞에 서 있었다.

칠흑처럼 새까만 피부색에 매의 얼굴을 하고, 등에 커다란 날개가 달린 놈이었다.

‘관찰.’

혹시나 해 ‘관찰’을 사용해 본다.

[탈사오르]

[프라피토]

근력:[942] 순발력:[864]

지구력:[932] 감각:[994]

마나:[956]

[룩사], [쿨트루오], [벤투아]… [모운타라오], [플루세투]

‘어? 보이네?’

생긴 건 딱 봐도 몬스터인데 ‘관찰’이 적용되었다.

‘탈사오르’는 이름으로 보이는데, 각성자라면 클래스가 보여야 할 항목에 알지 못하는 단어가 있었다.

‘저것도 직업인가?’

스탯은 어지간한 S급은 명함도 못 내밀 수준이었다.

하지만 스킬 항목이 난해했다. 어떤 스킬이 있는지는 알겠는데, 그게 어떤 효과의 스킬인지 알 수가 없었다.

각 스킬의 설명을 보고 싶지만 거기까지는 나오지 않았다.

‘숙련도를 더 올리면 볼 수 있으려나?’

어쨌든 몬스터에게도 ‘관찰’이 적용된다는 사실은 꽤 새롭다.

삐이이이!

탈사오르가 날카로운 매의 울음소리와 함께 준혁에게 곧장 날아들었다.

가볍게 움직이는 준혁의 무상곤에 경쾌한 충격이 잇달아 날아들었다.

탈사오르가 보통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도 않을 빠른 공격을 하고 있었지만, 준혁은 그 모든 공격을 가볍게 막아 냈다.

그런 공방을 이어 가던 중, 준혁의 머릿속에 떠오른 궁금증이 또 하나.

‘음, 이것도 가능하려나?’

준혁은 탈사오르를 향해 ‘감응’을 사용했다.

-야, 내 말 들리냐?

-삐이이이이이!

“아놔!”

준혁은 짜증스러운 외침을 토해 내며 서둘러 ‘감응’을 꺼 버렸다.

탈사오르가 터트리는 포효와 똑같은 새 울음이 머릿속으로 흘러 들어온 탓이었다.

환수까지는 대화가 가능했는데, 몬스터는 그것까지는 안 되는 모양이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탈사오르의 파상공세는 이어졌다.

아니, 거기서 끝이 아니다.

준혁의 사방 곳곳에서 게이트가 열리더니 탈사오르와 똑같은 매 대가리가 다섯 마리나 더 튀어나왔다.

놈들은 빛을 쏘아 내고, 날카롭게 압축한 바람의 칼날을 날리는가 하면, 거대한 날개로 빠르게 비행하며 전방위에서 준혁을 공격했다.

그리고 그사이 서천회 정예들이 빠르게 격납고에서 빠져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준혁의 표정은 여전히 여유롭다.

까가가가강!

방향을 가리지 않고 날아드는 매 대가리들의 손톱과 부리를 하나도 빠짐없이 막아 낸다.

바람의 칼날이 날아들면 무상곤으로 바람 자체를 휘저어 흩어 버렸고, 쏘아 내는 빛은 묵린갑으로 모조리 막았다.

하지만 그조차도 준혁은 전력을 다한 것이 아니었다.

그 살벌한 공방 속에서도 준혁의 신경은 야마모토 테츠야에게 쏠려 있었다.

머릿속은 언제 어떻게 해야 놈을 완전히 포획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 잠겨 있었다.

‘어?’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아주 희미하지만, 야마모토 테츠야가 입술을 달싹거리고 있었다.

마치 대화를 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통신기 같은 거라도 끼고 있나 하고 생각하는데, 야마모토 테츠야의 시선이 힐끔힐끔 한 곳으로 향하는 모습이 보였다.

천장 끝 모서리 쪽을 틈틈이 살피고 있었다.

‘뭐지?’

준혁이 ‘감응’을 이용해 흑호를 불렀다.

-야옹이.

-네, 주인님.

-저쪽 모서리에 뭐가 있는지 시야 공유해.

-네!

은신으로 몸을 숨긴 흑호가 훌쩍 바닥을 박차고 뛰어올라 대들보에 올라섰다.

잠시 후, 준혁의 시야에 흑호가 보는 광경이 겹쳐졌다.

‘게이트?’

정황상 야마모토 테츠야가 만든 것이 아니었다.

릴리안 우드도 아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5인 위원회의 나머지 셋 중 하나였다.

릴리안 우드에게 들었던 적색, 청색, 녹색 중 하나.

‘누구지?’

야마모토 테츠야는 그 게이트의 존재를 아는 것은 물론 대화까지 나누고 있었다.

‘이것들이 그새 연합한 놈들이 생겼나?’

가장 합리적인 추론이었지만 현재로서는 진실은 알 수 없었다.

‘이러면 일단은 내가 먼저.’

마음을 정한 순간 준혁의 손이 처음으로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되었다.

턱!

끼익!

준혁에게 달려들던 매 대가리 중 하나가 꽉 막힌 신음을 흘렸다. 준혁의 손이 놈의 목울대를 그대로 그러쥐고 있었다.

슈우욱!

놈이 제 상태를 채 깨닫기도 전에 준혁은 놈을 야마모토 테츠야를 향해 던졌다.

예상대로 야마모토 테츠야의 몸뚱이가 희미해지며 순식간에 위치를 바꿨다.

하지만 준혁에게도 아직 다섯 마리의 매 대가리들이 있었다.

준혁의 손에 잡힌 놈들이 거대한 날개를 펄럭이며 반항해 보지만 준혁의 힘을 버텨 낼 재간이 없다.

빠르게 움직인 준혁의 손이 매 대가리들을 야마모토 테츠야를 향해 던졌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어느새 허공에는 50자루의 묵룡비가 넓게 전개하고 있었다.

슈슈슈슛!

날카로운 비행을 시작한 49자루의 새까만 비수가 차례차례 야마모토 테츠야를 향해 쏟아진다.

나머지 한 자루는 천장 구석에 있는 게이트를 향해 날아간 상황.

“소용없다!”

야마모토 테츠야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날아드는 묵룡비를 모조리 피했다.

하지만 준혁은 지치지 않고 묵룡비를 날렸다.

그리고 자신은 오히려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준혁이 감았던 두 눈을 번쩍 뜨며 땅을 박찼다.

튀어 오른 준혁이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향해 무상곤을 휘둘렀다.

절반 정도 휘두른 그 순간, 무상곤의 궤적 앞 공간이 흔들리며 야마모토 테츠야의 모습이 튀어나왔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그것을 확인한 야마모토 테츠야의 얼굴에 짙은 공포가 떠올랐다.

그런데 또 하나의 이변이 일어났다.

준혁과 야마모토 테츠야 사이에 또다시 공간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튀어나온 것은 검붉은 색의 바스타드 소드 한 자루.

준혁의 기억에 있는 물건이었다.

까아아앙-!

요란한 소음과 함께 두 자루 무상곤이 부딪쳐 비산하는 압력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준혁은 일단 거리를 벌렸고, 그사이 게이트에서 놈이 나타났다.

새하얀 정장 차림의 백인 남자가 그곳에 서 있었다.

그런데 하얀 정장의 오른쪽 팔뚝 쪽 옷이 찢어져 있었다.

하얀 정장이 묵룡비 하나를 준혁의 발 앞에 툭 던졌다.

“이건 돌려드리죠.”

“오랜만이네?”

“그렇군요.”

“반갑다, 아무개 새끼!”

하얀 정장의 남자는 로건 베런즈였다.

무상곤을 고쳐 쥔 준혁이 나지막이 말했다.

“자, 저번 싸움까지 마무리해 볼까?”

“좋습니다.”

짧은 대화와 함께 거대한 싸움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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