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받고 각성 더!-141화 (14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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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장. 각개격파#4-

“이거 생각보다 멀미가…….”

흑호의 ‘도약’을 타고 넘어온 유민섭이 과장되게 비틀거리며 말했다.

준혁이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드립이 점점 질이 떨어지네요.”

“무슨 농담을 그렇게 진지하게 하십니까?”

“진담이라서요.”

“아, 네.”

유민섭이 머쓱하게 먼 산을 보자 준혁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한국은 어떻습니까?”

“난리 났죠.”

“그래요?”

“지금 국내 분위기가 언론들 손봐야 한다고, 당장 들고일어날 분위기. 징벌적 배상제든, 언론 관련법 개정이든 제정이든 뭐든 하라고.”

“잘됐네요.”

박상천이 내보낸 자백 기사에 한국은 거대한 충격에 휩싸였다.

지금까지 조작된 기사에 국민들이 휘둘렸다는 뜻이기에 혼란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그 직후에 터진 일본의 기사였다.

“딱 한 시간만.”

“네?”

“물론 지금도 시민 단체에서 주도적으로 들고일어날 분위기예요. 다만!”

말을 끊은 유민섭이 준혁을 직시했다.

“왜 날 봐요?”

“준혁 씨가 터트린 게 너무 커서 지금 한국 여론도 멘붕입니다. 그 탓에 제가 터트린 게 딱 한 시간 난리 났다가 일본 문제로 옮겨 갔어요.”

일본발 기사의 내용이 워낙 엄청나 한국에서도 기겁하게 된 것이었다. 그로 인해 유민섭이 터트린 기사가 처음의 파급력을 조금 잃어버렸다.

“한국에서요?”

“지금 21세기예요. 그리고 일본은, 어쨌든 경제 대국에 선진국이죠. 그런데 그런 나라에서, 개도국에서 일어날 쿠데타급 사건을 획책했으니 당연히 멘붕이죠.”

유민섭이 고개를 절레절레 털었다. 지금 생각해도 놀랍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일단 앉아요.”

“어? 그래야죠.”

어쩌다 보니 두 사람 다 바로 옆에 소파를 놔두고 선 채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자리를 잡고 앉은 유민섭이 또 한 번 한숨을 탁 뱉으며 말했다.

“후, 솔직히 반신반의했어요.”

“뭘요?”

“일본 국민들이 이 사건에 충격을 받을까?”

“이 정도면 당연히 난리가 나는 거 아닙니까?”

유민섭이 고개를 외로 꼬며 준혁을 보았다.

그 시선에 담긴 묘한 느낌에 준혁이 눈을 끔뻑이며 물었다.

“왜요?”

“일본을 잘 모르시는구나 싶어서요.”

“뭐 특별한 거라도?”

“후쿠시마 원전 사태 알죠?”

“그거야 뭐 워낙 큰 사건이었으니, 알기는 알죠.”

“거기 해결도 못했는데, 원래 살던 주민들 강제로 귀향시킨 게 일본 정부예요.”

“예? 그게 무슨 개소립니까? 방사능 오염 지역에 사람들을 밀어 넣었다고요?”

핵폭발을 몸으로 겪은 준혁이었다.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그 이야기가 나오니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그뿐인 줄 아십니까? 논밭 옆에 오염토를 쌓고 농사를 지어요. 그리고 그 농산물을 유통시킵니다.”

“그걸 먹어요?”

“듣자 하니 편의점 삼각김밥 같은 데 많이 썼다고 하더라고요.”

“전 국민이 먹었다고?”

“네.”

“그런데 반응을 안 했다고요?”

“별로 반응이 없었어요. 그거 얘기한 언론도 한 군데뿐이었고.”

준혁이 믿을 수 없는 얼굴로 유민섭을 보았다.

너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 말을 하는 유민섭을 의심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어진 이야기는 더욱 가관이었다.

“뭐, 그뿐인 줄 아십니까?”

“또 있습니까?”

“방사능 오염수 바다에 버리려다가 걸린 건 예사죠. 유치원 지하에 오염토를 쌓아 놨다니까요?”

“에? 유치원?”

“실제로 백혈병 걸린 아이도 나왔어요.”

“처음 듣는데…….”

“우리나라 같았으면 촛불이 아니라 횃불에 죽창을 들었을 겁니다. 정권이 바뀌어도 수십 번은 바뀔 사안이죠.”

“그야 당연히…….”

“그런데 일본은 여전히 그 당이 정권을 잡고 있어요. 일본이 대단한 나라기는 하지만, 적어도 그쪽 방면으로는 답 없습니다.”

유민섭이 저절로 치가 떨린다는 듯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일본인들은 정치에 관심이 없습니까?”

“관심도 적고, 이상할 정도로 순종적인 부분도 있고……. 아닌 말로, 당 하나가 수십 년 동안 정권을 잡고 있으면 그게 독재죠.”

“그래요?”

“아, 이걸 이야기해 주면 되겠네. 국회의원이 자식한테 지역구를 세습합니다.”

“그건 또 뭔 개소립니까?”

“3대를 넘어 4대 세습한 곳도 나왔을 정도예요.”

“중세 봉건제도도 아니고, 그걸 어떻게 세습을?”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그것도 21세기 현대 사회에서요.”

준혁이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짧은 감상을 내놓았다.

“거참…….”

“아무튼 그래서 이번 일로 과연 일본 사회에 충격이 있을까 걱정했어요.”

그제야 유민섭의 걱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다행히 어마어마하게 충격을 받기는 했네요.”

“그래서 보고 있으면 재밌어요.”

“어떤 면이?”

“우리도 한국처럼 촛불 집회를 열어야 한다느니, 어디서 모이라느니 말이 많은데……. 통일이 안 되고 있거든요. 제가 알기로는 일본은 전공투 이후로 진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난 적이 없으니까.”

“괜찮습니다. 제 목적은 일본 정치 개혁 같은 게 아니니까. 어떻게 되든 내 알 바 아니죠.”

그때 마침 준혁의 레지던스 창밖으로, 빌딩의 거대 전광판에 문제의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영상은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촬영한 것이었다. 다만 영상에 나오는 인물은 한 명밖에 없었다.

카메라 앵글이 그 한 남자에게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 영상의 주인공인 남자는 다름 아닌 일본의 내각 총리대신 오오타 료였다.

영상에서 오오타 료는 시종일관 존댓말을 했고, 화면에 등장하지 않는 대화 상대는 아랫사람을 대하듯 하대를 하며 대화를 나눴다.

지금 보이는 전광판에서는 그 대화 내용이 자막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준혁은 일본의 문자를 읽지 못하지만, 영상의 최초 제공자였기에 내용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역시 가장 큰 걸림돌은 야당 의원 놈들이군.”

“그렇습니다. 그 녀석들 때문에 실패한 일이 한둘이 아닙니다.”

“흐음, 만약 준비 단계에서 그놈들을 제거하면?”

“네?”

“야당 의원 놈들, 덤으로 당내에서 반항하는 놈들까지 준비 단계에서 제거한다면 어떠냐는 말이야.”

“그게 그러니까……. 테러를 일으킬 때 나가타초도 치겠다는 말씀입니까?”

나가타초(永田町)는 일본의 국회의사당이 있는 곳의 지명이었다.

한국에서 정치권이나 국회의사당을 여의도라고 통칭하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일본에서도 나가타초라고 통칭하는 것이었다.

“그렇지.”

“으음, 과연 그렇군요. 그게 성공한다면, 자위대 치안출동 명령한 후에도 국회 동의를 얻는 게 수월해질 겁니다. 보통 그런 상황에서는 급하게 선거를 치른다고 해도 우리 쪽으로 표가 몰릴 가능성도 크지요. 의회를 장악하는 것 역시 같은 맥락으로 쉬워집니다.”

“가장 중요한 건 개헌이지.”

“맞습니다. 그대로만 진행한다면 개헌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정말 탁월한 계획입니다!”

“그럼 그쪽도 준비해야겠군.”

“그런데…….”

“뭔가?”

“아직 준비하신 일의 지역과 규모를 말씀해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랬나?”

“네.”

“도쿄를 포함해 24개 현, 사망자는 대충 10만 명 수준에서 생각 중이야.”

“10만!”

“그 정도는 돼야 치안출동을 명령할 수 있지 않겠나?”

일본의 자위대 치안출동은 다른 국가의 계엄령과 비슷한 성격의 것이었다.

즉, 영상 속의 대화는 일본 전역을 아우르는 테러를 일으키고, 그것을 이유로 계엄령을 선포하겠다는 모의를 하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야당 국회의원들을 제거하고, 의회를 장악하겠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일국의 총리가 자국민 10만 명을 죽인다는 이야기에 기뻐하고 있는 모습이 전파를 타고 일본 전역에 방송된 것이었다.

난리가 날 수밖에 없었다.

총리인 오오타 료는 당연히 조작된 영상이라고 항변했다.

하지만 곳곳에서 튀어나온 영상 전문가들은 영상이 진본임을 확신했다.

또한 영상 속 인물이 오오타 료라는 사실 또한 그의 평소 버릇이나 특징들을 비교해 가며 증명하는 게시물이 인터넷을 떠돌았다.

그 영상의 대화를 다시 떠올린 준혁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유 길드장 말대로 아무리 무관심하고 순종적이라도, 그 내용에 들고일어나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그건 인정하는데, 일본의 상황이 그런 당연한 것을 반신반의할 정도라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이미 들었던 이야기를 상기한 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유민섭이 인벤토리에서 선글라스와 모자를 꺼내 쓰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저도 이제 제 역할을 좀 하러 가야겠네요.”

“그런데 가능하겠습니까?”

“뭐가요?”

“정치에 무관심하고, 순종적이라고 하니까…….”

“에이, 설마 1억 가까운 일본인 전체가 다 그렇겠어요? 안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제가 만나러 가는 사람은 믿을 만합니다.”

“난 이번 일로 일본인은 영 믿음이 안 가서 말이죠.”

준혁의 의혹 서린 이야기에 유민섭이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뭐, 어느 정도 동감은 합니다만……. 그래도 일부를 가지고 전체를 판단하면 안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래요. 뭐, 유 길드장이 어련히 알아서 잘하시겠지. 그럼 나도 내 일을 하러 가야겠습니다.”

***

서천회에는 많은 하부 조직이 있었다. 준혁이 야마모토 테츠야를 미행하며 알아낸 크고 작은 하부 조직의 숫자가 50여 개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하부 조직은 열 개였다.

하부 조직을 통괄하는 컨트롤 타워 ‘와 연구소’가 첫 번째였다.

오오타 료를 중심으로 하는 정계의 조직 애국회.

현대 병기를 가진 실질적인 무력의 자위대 내부의 비밀 조직.

자금 조달을 위해 구성된 경제계, 카지노, 경정 쪽의 세 개 조직.

헌터로 구성된 실질적인 무력 집단이 네 개. 그중 하나는 영상 속의 테러를 위해 신흥 교단으로 위장한 상태였다.

그렇게 열 개의 하부 조직 중 현재 준혁이 터트린 것은 세 개였다.

실질적으로 배를 수몰시켜 자위대 세력을 두드렸고, 자료를 빼 오는 것으로 와 연구소를 폐쇄시켰다.

세 번째는 오오타 료의 영상으로 애국회까지 함께 흔들리게 만들었다. 그들의 극우 혹은 군국주의적인 정치 신념을 일본 국민들이 반대하게 만든 것이다.

그리고 지금 준혁의 시야에 네 번째가 담겨 있었다.

오오타 료 영상으로 알려진 테러, 그 테러의 실행을 위해 조직된 신흥 교단의 본단이었다.

커다란 빌딩 입구에는 ‘진토정교(眞土正敎)’라는 간판이 걸려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간헐적으로 사람들이 빠져나와 흩어지고 있었다.

다들 평상의 모습으로 움직이고 있지만, 준혁은 관찰로 그들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하나같이 B급 이상의 각성자들이었다.

즉, 테러의 실행범이 될 예정인 놈들이었다.

그때 커다란 체구의 한 남자가 준혁의 눈에 들어왔다.

S급 스탯을 가지고 있는 각성자. 그리고 진토정교의 교주로 위장하고 있는 테러의 수장 ‘코바야시 토루(小林 徹)’였다.

‘게이트도 안 열어 줄 모양이군.’

야마모토 테츠야를 미행하는 과정에서 코바야시 토루에게도 이미 흑호의 ‘표식’을 마킹해 놓았었다.

야마모토 테츠야가 게이트를 열어 그의 이동을 도울 거라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교단 건물에 계속 머무르고 있기에 기다리고 있었는데, 직접 이동할 모양이었다.

코바야시 토루가 차를 몰고 움직이고, 준혁이 그 뒤를 따랐다.

이제 네 번째 조직을 무너트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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