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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장. 반격#3-
“김준혁의 죽음은 100퍼센트 사실이야. 그것도 방사능, 어쩌면 핵폭발에 당했을지도 몰라.”
“네?”
두 명의 남자가 담배를 피우며 준혁을 주제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것은 특별히 준혁의 관심을 끌 만한 일이 아니었다.
세계적인 이슈니 관심을 갖고 대화를 나누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내용이 구체적이다.
추측이라는 듯이 말하고 있기는 하지만, ‘핵폭발’을 언급한 것은 그냥 흘려들을 수 없는 내용이었다.
준혁은 슬쩍 모퉁이를 돌아 골목으로 들어선 후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죽었다고, 김준혁.”
“선배도 그렇게 생각해요?”
“자네도 관심이 있었나?”
“지구인 중 최소 70퍼센트는 궁금해하지 않을까요?”
“그렇기는 해.”
“그래서 왜 죽었다고 생각하는 건데요?”
“죽었어. 확실히.”
“그러니까 근거요.”
“음…….”
준혁의 죽음을 확신했던 남자가 잠시 뜸을 들인 후 입을 열었다.
“기자의 감?”
“푸하하하!”
“그 웃음의 저의는 뭐야?”
“크크크큭! 그렇잖아요. 불과 사흘 전에 카나 짱의 호텔 밀회를 망원렌즈로 촬영한 파파라치 선배가 ‘기자’의 감을 얘기하니까.”
놀리는, 무시하는 듯한 말에도 선배라 불린 남자는 딱히 화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본인도 따라 웃는다.
“크흐흐! 그게 또 그렇게 되나?”
“자자, 들어가요. 편집장이 또 화낼 거예요.”
“그러자고.”
대화 내용이나 서 있던 위치를 생각하면 준혁이 찾아온 ‘세계 주간’이라는 잡지의 기자인 듯했다.
이름은 ‘세계’지만, 주로 일본 연예계 추문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잡지였다.
그런 잡지가 꼬박꼬박 준혁의 기사를 두세 개씩 내면서 유민섭의 레이더에 걸린 것이었다.
그리고 방금 전의 대화는 아무리 곱씹어 보아도 무언가 있었다.
‘핵폭발이라…….’
방사능을 이용한 ‘음독’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사안인데 굳이 ‘핵폭발’을 들먹였다.
사실을 안다고 생각할 여지가 충분했다.
‘어쩌면…….’
준혁이 찾던 서천회의 꼬리일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
관찰로 살펴본 결과 각성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감시할 가치가 충분히 있었다.
-야옹이.
-네, 주인님.
흑호는 아직도 ‘야옹이’였다.
-들어가서 살펴봐.
-네.
***
다중매체 시대였다.
각종 SNS와 다양한 비디오 플랫폼이 넘쳐 난다.
그들 하나하나가 가지는 미디어로서의 역할은 강력했다.
언론이 하지 않는 일을 개인이 해내면서 자유도는 올라가고, 다양한 방향성의 1인 미디어가 우후죽순 탄생했다.
그럼에도 기성 언론의 힘은 막강했다.
아무리 강력한 개인이 모여도 거대한 언론사의 힘과 그들의 카르텔을 부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그 언론사의 견고한 성벽이 흔들리고 있었다.
<스트리머 강이찬이 공개한 정보는 모두 ‘거짓’이다.>
<진정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1인 미디어.>
모두가 손을 잡고 강이찬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개인 방송을 갓 시작했던 당시의 영상을 가지고 와 비웃었다.
강이찬이 공개한 동영상이 조작된 것이라고 욕했다.
그리고 법적으로 처리하겠다며 겁을 주었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어리둥절했다.
김준혁의 사망설, 방사능 물질, 유민섭의 음모설 등으로 기사를 쏟아 내던 언론들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개인 스트리머 하나를 공격하니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그로 인한 역효과였다.
아무리 유명하다 해도 어차피 개인 방송을 하는 스트리머였다.
개인 방송계에서는 유명하지만 관심이 없는 사람이 훨씬 더 많다.
그런데 언론들이 떠들기 시작하니 오히려 ‘강이찬’이라는 스트리머에 대한 관심이 급상승했다.
“아이고, 저 죽을 것 같아요. 법적 대응 하겠대요. 저보고 막 거짓말쟁이라고 하고, 제 옛날 흑역사 끌고 와서 막 놀려요. 흑흑…….”
강이찬이 화면 속에서 눈물 흘리는 시늉을 하더니 갑자기 고개를 번쩍 치켜들었다.
“이럴 줄 알았냐? 이 기레기 새끼들아?”
강이찬은 오히려 활짝 웃었다. 아니, 좀 더 심하게 표현하면 즐거워 죽을 것 같다는 표정이다.
“역시 공중파와 일간지의 힘은 대단하군요. 시청자 수가 엄청 늘었어요. 홍보해 줘서 땡큐다, 이 기레기들아! 내가 시원하게 큰절 한 번 올려 주지!”
그러고는 과장된 몸짓으로 진짜 절을 한다.
“자, 일단 조작된 영상이라는 것부터 깨 주죠. 긴말 않겠습니다. 영상부터 보시죠.”
강이찬이 또다시 화면에 동영상을 띄웠다.
그리고 또 한 번 대한민국이 뒤집어졌다.
강이찬이 올렸던, 기자들이 통화하는 장면에서 이어지는 동영상이었다.
해당 기자들이 통화를 마치고, 소속 언론사에 출근해 업무를 보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절대 부정할 수 없는 증거였다.
동영상이 조작이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대한민국 여론의 판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그 전까지의 느낌이 ‘혼 좀 내주마.’였다면, 동영상 공개 이후에는 ‘사생결단’의 느낌이었다.
모두 하나같이 강이찬의 과거 행적이나 실수 등을 들춰냈다.
메시지를 반박할 수 없으면 메신저를 공격하라.
유민섭이 사용한 전술을 똑같이 들고 나온 것이다.
하지만 언론들은 이미 지고 시작하는 싸움이었다.
거대 언론 연합과 개인 스트리머 강이찬의 싸움이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대립 구도가 형성된 순간, 언론은 이겨도 진 싸움인 셈이었다.
물론 그 모든 것은 유민섭이 한 가지 결과를 내기 위해 기획한 일이었다.
갑작스러운 대립 구도로 인해 김준혁 사망설이나 유민섭 음모론 기사가 확연하게 줄어든 것, 그것이 유민섭의 진짜 노림수였다.
***
‘음, 전개가 묘한데?’
준혁은 복잡한 표정으로 한산한 술집 내부를 지켜보았다.
‘모리 카이토(森 海斗).’
준혁이 ‘세계 주간’ 잡지사 앞에서 보았던 의심스러운 기자의 이름이었다.
그리고 모리 카이토는 지금 도쿄 외곽의 한 구석진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모여 앉은 일행은 모리 카이토를 포함해 모두 13명이었다.
그리고 그 13명은 모두 준혁이 아는 얼굴들이었다.
유민섭이 뽑았던 가십 언론사의 숫자가 모두 13개, 그리고 지금 모인 사람이 모두 13명.
모두 각 잡지사나 신문사에서 목격했던 얼굴들이었다.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닌 광경이었다.
비슷한 성격의 회사들이니 그 소속 기자들끼리 친분이 있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13개 회사에서 한 명씩 나와 13명이 모였다.
우연일 수 없는 모임이었다.
또 하나, 기자라는 직업은 취재라는 것을 한다.
회사에 앉아 있을 때보다 취재를 위해 밖을 돌아다닐 때가 더 많은 직업이다.
그런데 준혁이 갔던 13군데 회사에는 지금 눈에 들어온 13명의 기자가 모두 회사에 앉아 있었다.
많이 양보해서 절반까지는 그럴 수 있지만 13명 모두 그렇다는 건 단순한 우연이라고 보기 힘들었다.
‘음!’
모리 카이토를 미행한 지 오늘로 사흘째였다.
준혁은 가만히 지난 사흘을 돌이켜보았다.
‘확실히.’
이상했다.
아침이 되면 회사에 출근했다.
특별히 취재를 하거나 하는 일 없이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은 채 영양가 없는 기사를 끄적였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퇴근해서 곧장 집으로 갔다.
집에서 하는 일은 ‘취재원’이라는 사람에게서 오는 메일을 받고, 그걸 토대로 기사를 만드는 일이었다.
첫날, 후배 기자와 ‘카나 짱’이라는 연예인의 스캔들 기사를 만든 것도 그런 방식인 듯했다.
하지만 딱히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가십지 기자, 제대로 취재하고 기사를 쓸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모임을 보니 지극히 이상한 장면이 되었다.
‘유 길드장이 뽑은 리스트가 전부 당첨인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술집 주인이 아까부터 보이지 않았다.
아예 저들만의 밀담을 나누기 위해 만들어진 장소가 아닌지 의심스러운 느낌이었다.
그때 지금까지 별다를 것 없이 흘러오던 한담을 끊는 이야기가 나왔다.
“자, 그럼 이제 한국 이야기를 좀 해 볼까?”
잠깐의 정적이 지나간 후 대화가 시작되었다.
“강이찬이라는 스트리머가 전세를 완전히 바꿔 놨죠.”
“그 강이찬은 유민섭과 친하지.”
“결국 지금 한국 여론의 판도는 유민섭의 의도대로 흘러온 상황이라는 거야.”
“보통 사람은 아닙니다. 단 한 명의 스트리머로 언론을 궁지로 몰아넣었어요.”
“내가 생각하는 더욱 대단한 점은 다른 거야. 김준혁이 죽었잖아. 그럼 유민섭도 지금 패닉일 거라고. 그런데도 언론의 집중포화를 견디고 판도를 바꿨어. 이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이 정도면 패배를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대화 내용을 듣는 준혁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당첨!’
추측이 아닌 확정이었다. 저 13명의 기자 모두가 서천회와 관계가 있었다.
즉, 13개 언론사 모두 서천회의 말단이었다는 뜻이다.
그때 누군가가 말했다.
“판도를 바꿀 방법은 아직 있지.”
모리 카이토였다.
그 말에 나머지 12명이 말을 멈추고 시선을 모았다.
모두의 얼굴에 궁금증이 짙어질 무렵 모리 카이토가 말했다.
“죽음.”
모두의 얼굴에 더욱 짙은 의문이 번졌다.
“음? 죽음이라니?”
“누굴요?”
“유민섭이나 강이찬은 건드리기 힘들어요. 유민섭도 유민섭이지만, 강이찬도 A급 마법사입니다.”
모리 카이토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이렇게 상상력이 빈곤해서 어쩌자는 건지.”
“도대체 그게 무슨?”
“잘 생각해 봐.”
모리 카이토가 손가락으로 제 관자놀이를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강이찬의 표적이 된 기자 다섯 명, 그중 하나가 자살을 한다면?”
“어?”
“여론의 압박, 스트레스, 우울증, 억울함을 호소하는 유서까지 곁들이면 더욱더 효과적이지.”
“훌륭합니다! 그 말이 맞네요. 기자 중 하나가 자살하면 당연히 그 책임은 강이찬에게로 돌아가죠. 강이찬이 몰아붙인 탓에 자살에 이르렀다.”
“그거야 여론을 또 한 번 반전시킬 수 있지.”
모리 카이토가 기분 좋게 웃으며 술잔을 기울였다.
이야기를 들은 준혁이 재빨리 골목으로 돌아 들어가 전화를 걸었다.
상대는 당연히 유민섭이다.
(네, 준혁 씨.)
휴대폰은 따로 구해 놓은 차명폰이었다.
“지금 통화 가능하죠?”
(물론입니다.)
“유 길드장이 촬영한 다섯 명 있죠?”
(기자들이요?)
“네. 지금 여기 놈들이 그 기자들을 노립니다.”
휴대폰을 통해 흘러나오는 유민섭의 목소리에 당혹감이 서렸다.
(기자들을 노려요?)
“네. 그중 한 명을 죽이고 자살로 위장해서 유 길드장 쪽에 타격을 주려고 합니다.”
(와! 이 쪽바리 새끼들이 진짜!)
흥분한 유민섭이 비하성 욕까지 입에 담으며 외쳤다.
“이럴 때가 아닙니다.”
(아니죠. 당장 조치하겠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이야기를 해 준 걸 보니……. 뭔가 찾은 모양이군요?)
“유 길드장이 뽑은 리스트가 전부 당첨입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죠.”
(아, 그래야죠. 알겠습니다.)
준혁은 통화를 마친 후, 술집 안에 은신한 채 웅크리고 있는 흑호와 시야를 공유했다.
그런데 그곳에 조금 전까지 없던 사람이 하나 더 있었다.
큰 키와 다부진 체격에 조금 후줄근한 차림을 한 더벅머리의 남자였다.
그런데 느낌이 뭔가 묘하다.
준혁은 슬쩍 골목 밖으로 나가 술집이 보이는 모퉁이에서 고개만 살짝 내밀었다.
그리고 관찰을 사용했다.
[?]
[?], [?]
[상태창]
근력:[?] 순발력:[?]
지구력:[?] 감각:[?]
마나:[?]
그놈이었다.
게이트 안에서 준혁에게 핵을 쏘았던 텐구 가면의 남자가 분명했다.
준혁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번졌다.
‘오랜만이다, 이 코 큰 개새끼.’
욕이 아니었다.
텐구의 한자 표기는 천구(天狗)였으니 ‘개’가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