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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장. 반격#2-
쾅!
“어떤 놈이냐!”
버럭 소리를 지른 남자가 모니터를 뚫어져라 노려본다.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는 큰 키에 다부진 체격이었다. 단정하게 자리 잡은 또렷한 이목구비는 얼핏 봐도 잘생긴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 두 눈에서는 살기가 번들거리고 있었다.
모니터에는 두 명의 남자, 이시이 카게루와 마츠다 오가가 방구석의 게이트로 들어가는 장면이 담긴 동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적색? 아니, 항상 고고한 척하는 금색인가? 그도 아니면 청과 녹, 그 두 위선자 놈들?’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어쨌든 한 가지 사실만큼은 분명했다.
5인 위원회, 거기에 속해 있는 놈들 중 하나가 한 짓이다.
저런 식의 게이트를 생성할 수 있는 이는 위원회 소속의 던전 관리자밖에 없었다.
남자는 위원회의 은색이었다. 즉, 준혁에게 핵 공격을 한 텐구가 바로 이 남자였다.
이시이 카게루와 마츠다 오가는 중요한 인물이 아니었다.
‘버러지 같은 놈 둘이 사라진 것은 문제가 아니지만…….’
두 버러지가 죽건 말건 텐구에게는 상관이 없었다.
일종의 미끼로 가둬 두고 있었을 뿐이었다.
두 버러지는 김준혁이 죽은 이후 몰래 조직의 라인을 뒤져 본 배신자였다.
놈들의 말로는 자신들을 버린 조직에게 복수하겠다는 생각이었다고 하는데 가소롭기 짝이 없었다.
그럼에도 살려 둔 이유는 두 버러지가 노출되었기 때문이다.
이시이 카게루는 이미 한국에서 노출된 조직원이었다.
5인 위원회의 눈은 한국에서의 사태를 주목했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이시이 카게루의 존재를 눈치챘을 가능성이 컸다.
마츠다 오가는 일본에서 이시이 카게루와 접촉한 유일한 인물이었다. 당연히 그 또한 위원들의 감시망에 걸렸을 터.
그래서 살려 두었다.
다른 위원을 추격하기 위한 미끼로 쓰기 위해서였다.
그런 두 버러지가 지금 게이트를 타고 사라진 것이었다.
“후우!”
애써 흥분을 가라앉힌 남자는 가만히 눈을 감은 채 생각했다.
‘이제 시작되는 건가?’
사실 놀랄 일은 아니다.
5인 위원회는 시스템에 의해 강제로 묶인 합의체였다.
그리고 던전 관리자를 죽이면 그 권한을 강탈할 수 있다.
이런 규칙이 존재하는데 화기애애한 분위기일 수는 없다.
첫 만남부터 이미 균열은 예정되어 있었던 셈이다.
그 시기가 단지 지금일 뿐이었다.
‘어차피 두 버러지가 아는 것은 없으니 걱정할 것은 없다.’
냉정하게 상황을 바라본 남자는 차분하게 한 걸음 물러서며 전면을 크게 훑었다.
수많은 모니터가 벽을 한가득 채우고 있었고, 기계 장치들이 복잡하게 엉켜 있었다.
모니터의 상황을 쭉 살핀 남자가 장치의 버튼 하나를 눌렀다.
『네, 총장님.』
스피커에서 젊은 여자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남자가 입을 열었다.
“한국 문제는 어떻게 되고 있나?”
『문제의 동영상으로 여론이 다시 끓어오르는 중입니다.』
“김준혁의 사망에 대해서는?”
『아침까지만 해도 죽음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습니다만, 강이찬이라는 스트리머로 인해 생존 가능성도 다시 올라오는 중입니다.』
“방사능에 대한 정보를 흘려. 그리고 거기에 유민섭을 엮어.”
『네? 하지만 그랬다가는…….』
S급 각성자는 어지간한 미사일 정도로는 죽일 수 없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그런데 방사능에 죽는다는 소문이 퍼진다면?
그로 인해 S급 각성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알 수가 없었다.
“상관없다.”
『빌런들이 엉뚱한 짓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게 자칫…….』
“스즈모토 군!”
『네, 총장님!』
“누가 당신에게 의견을 말하라고 했나?”
『죄송합니다.』
“당장 실행해.”
『네!』
대화를 마친 남자가 거칠게 장치를 껐다.
“후우!”
그리고 담배를 입에 물고 옷을 갈아입었다.
타이를 매지 않은 때 묻은 셔츠, 후줄근한 재킷과 바지를 입고 방 밖의 현관으로 가 낡은 구두를 신었다.
그리고 머리를 마구 헝클어 더벅머리로 만든 후에야 현관문을 열었다.
***
김준혁 사망설의 진위로 대한민국은 물론 세계의 여론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양쪽 모두 근거는 있었다.
사망설을 지지하는 이들은 이렇게 시끄러운데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을 근거로 들었다.
개인적인 사정이 있을 수는 있지만, 이 정도로 숨어 있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라는 주장이었다.
생존설을 지지하는 이들의 근거 또한 있었다.
그 정도 스탯을 가진 이가 사망하는 것이 가능한가였다.
보통 S급 각성자는 게이트 너머 던전에서 레이드 중 사망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부고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준혁의 스탯은 그 수준을 까마득히 뛰어넘는다.
스탯의 총합이 600만 넘어도 S급인데, 준혁은 한 개 스탯만 1,999였다.
어떤 상상력을 동원해도 그런 능력자가 죽는다는 건 불가능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두 가지 주장 모두 제대로 된 근거는 될 수 없었다.
객관적인 척하지만 결국은 추측에 의한 이야기들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그런 혼란한 판에 폭탄 같은 소식이 떨어졌다.
러시아에서 터져 나온 뉴스였다.
러시아 연방 보안국(FSB) 각성자 전담 부서 출신이라는 한 내부 고발자에게서 나온 소식이었다.
러시아 정부가 S급 각성자들이 반란을 도모할 경우, 그에 대한 대책 마련을 위해 여러 가지 실험을 해 보았다.
그중 유일하게 성공한 사례가 폴로늄 210을 이용한 암살이었다는 내용의 보도였다.
세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진짜 초인으로 여겼던 S급 각성자가 어처구니없는 방법으로 죽을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소식이 또 다른 의혹을 자아냈다.
‘김준혁은 방사능 피폭을 견딜 수 있을까?’
누군가가 던진 그 질문에 김준혁 사망설 또한 급격하게 여론이 움직였다.
준혁이 긴 시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그 내용이 더해지며 사망설이 점점 힘을 얻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기에 또 하나의 폭탄이 투하되었다.
<혼원 길드 유민섭 대표, 과거 무훈 길드 대표 시절 러시아 수차례 드나들어.>
그 근거로 과거의 기사가 발굴되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유민섭이 러시아에 갔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러시아에서 열린 각성자 포럼이나 러시아 헌터 길드와의 교류를 위한 방문이었다.
하지만 이 연관성 없는 두 가지 사건을 언론은 교묘하게 엮었다.
<유민섭 대표의 러시아 방문에 존재하는 의혹.>
<유민섭, 그는 왜 러시아를 다섯 번이나 방문했는가?>
목적이 불분명한 방문이 존재하며, 공식 일정을 제외한 개인 일정에서 행적이 불투명하다는 내용이었다.
더 가관은 기사의 마무리였다.
<러시아의 S급 각성자 음독 암살 사건과 유민섭 대표의 러시아 방문은 과연 연관성이 없을까?>
<이해할 수 없었던 유민섭 대표의 러시아 방문과 러시아발 암살 소식이 떠오른 것은 필자의 억측일까?>
무조건 러시아의 방사능 암살 사건을 꿰어다 붙였다.
“기레기 새끼들! 왜 기레기를 하고 있냐? 소설을 쓰지!”
강이찬이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유민섭의 표정은 차분했다.
“언론들이 이러는 게 한두 번이 아닌데 뭘 그렇게 흥분합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냥 대놓고 민섭 형님이 준혁 형님을 암살한 것처럼 써 놨잖아요.”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네?”
“방사능 암살 이야기 나올 거 예상했다고요.”
“아아, 그렇……. 어, 가만? 그럼 민섭 형님은 방사능이 각성자를 죽일 수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는 말이에요?”
물어보는 강이찬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알고 있었죠. 왜요?”
“아무도 몰랐던 사실을 어떻게……. 설마…….”
강이찬이 눈을 게슴츠레 뜨며 슬쩍 뒷걸음질까지 쳤다.
“쯧! 재미없는 장난이네요. 자자, 이제 두 번째 페이즈로 갑시다.”
짝!
유민섭의 박수 소리에 잠시 쉬고 있던 아르바이트생들이 서둘러 자기 자리를 찾아가 앉았다.
유민섭이 아르바이트생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페이즈 2의 핵심은 메신저의 신뢰를 무너트리는 겁니다.”
메시지를 반박할 수 없다면 메신저를 공격하라.
정치적으로 숱하게 사용하는 전술이다.
지금의 경우는 반박할 수는 있었다. 증거 또한 이미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유민섭의 결백을 증명하고, 그것이 대중들의 인식에 자리 잡게 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러니 순서를 뒤바꾼다.
메신저의 신뢰를 무너트린 후, 증거를 제시한다.
신뢰가 무너진 기사에 사람들이 의구심을 품고 있을 때 증거를 내밀면 ‘그러면 그렇지.’ 하는 반응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걸 위해서는 이찬 씨가…….”
강이찬은 이미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드디어 얼굴 공개의 시간이군요. 고소장 어마어마하게 날아들겠네.”
강이찬의 말에 유민섭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변호인단 이미 구성해 뒀습니다. 걱정 마세요.”
“실형만 안 받으면 되죠. 믿겠습니다.”
강이찬도 어차피 각오한 바였다.
3층의 방음 시설이 설치된 방으로 들어온 강이찬이 재빨리 방송을 열었다.
시청자들이 기다렸다는 듯 입장하고, 채팅창에 온갖 이야기가 빠르게 올라왔다.
당연히 그 핵심은 방사능과 유민섭에 대한 것이었다.
“자자, 차니차니 이차니가 돌아왔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인사 오지게 박습니다!”
입장 인사와 동시에 강이찬이 본론을 꺼냈다.
“네, 언론에서 말들이 많죠. 아니, 그런데……. 제가 궁금한 게 있거든요? 유민섭 길드장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각성자 중 하나예요. 그런 사람이 러시아 몇 번 간 게 이상한가요? 러시아 정부가 극비로 다루던 걸 유 길드장이 어떻게 안답니까? 결정적으로…….”
잠시 말끝을 흐린 강이찬이 채팅창을 살폈다.
강이찬의 말에 동조가 절반, 반박이 절반이었다.
“남한테 지시받아서 가짜 기사나 쓰는 것들이 하는 헛소리를 도대체 무슨 수로 믿습니까? 오늘도 볼까요? 이상한 헛소리 기사 처음 낸 게 누구누구인지?”
노트북을 조작한 강이찬이 기사 몇 개를 방송 화면에 순서대로 띄웠다.
“보이십니까? 여기 이름들? 제가 모자이크로 보냈던 그 기자 다섯 명인 거 확인하셨죠?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부족하죠? 제 말도 진짜인지 아닌지 못 믿겠죠? 그래서 제가 오늘 인실좆 각오합니다.”
강이찬은 단단히 각오한 표정을 지은 후 잠시 뜸을 들였다가 말했다.
“이제 모자이크 깝니다. 그 후에도 제가 기레기 새끼들을 모함한 거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네요. 그리고 그때도 저 기레기 새끼들 믿을 수 있을지도 참 궁금합니다.”
***
‘여기도 아니네.’
준혁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은 후 손을 들어 택시를 잡았다.
“아사쿠사역으로 가 주십시오.”
얼굴에 마스크를 껴 입을 가리고 있었다. 영화를 통해 대화는 가능하지만 입 모양이 달라 괜한 시선을 끌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준혁은 택시 기사가 건네는 말을 건성으로 흘려들으며 태블릿을 꺼내 문서 한 장을 열었다.
여러 개의 리스트가 쓰여 있는 문서였는데, 그중 가장 상단에 있는 이름을 지웠다.
‘이제 마지막인데…….’
준혁은 지금 발로 뛰며 서천회의 꼬리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이는 유민섭이 찾아낸 것이었다.
가짜 뉴스 때문에 일본 가십지와 인터넷 신문을 주시하다가 묘하게도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한국과 같은 기사가 나오는 곳 몇 군데를 발견한 것이었다.
그중 리스트를 추리고 추려 낸 것이 모두 13개 회사. 그리고 지금 가는 회사가 마지막이었다.
그렇기에 준혁은 회의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럴 때 마지막에 극적으로 진짜를 찾게 될 확률은 지극히 낮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확인은 해야 하는 법.
도로를 달리던 택시가 멈추고, 돈을 치른 준혁이 차에서 내렸다.
그런데.
‘뭐?’
준혁의 발걸음을 붙드는 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