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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장. 자충수#3-
<김준혁이 죽었다는 소문이 있던데? 들어 봄?>
“크하하! 그거 진짜 신박한 개소리네요.”
<진짠데?>
“방송하는데 욕 나오게 하시네?”
<요새 훈련하느라 짱박히더니 소문 못 들었나 보네?>
어지간하면 방송 중에는 꼭 웃으려고 노력하는 강이찬이었다.
그리고 시청자, 특히 풍선을 쏘는 시청자는 단 1개의 풍선만 쏴도 충성을 다짐하는 강이찬이었다.
지금 채팅창에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늘어놓는 사람도 종종 풍선을 쏘았었다.
<나 아는 사람 중에 헌터 잡지 기자 있는데, 그 기자한테 들었다.>
하지만 자낳킹 강이찬도 절대 참을 수 없는 영역이 있었다.
“와~ 나 씨발 진짜! 장난도 정도껏 치세요. 네? 말이 되는 얘기를 해야죠. 흑태자 님 공식 스탯이 올 스탯 1,999예요. 그런 사람이 죽는 게 말이 됩니까? 그 정도면 자살도 못하겠네.”
<그럼 김준혁 지금 어디 있는데?>
“모릅니다.”
<그거 죽어서 그런 거라니까?>
중구난방으로 올라오던 채팅창에는 이제 한 사람의 메시지만이 올라왔다.
일상적인 잡담을 하던 방송은 어느새 두 사람의 설전으로 장르를 이동했다.
“후우! 나 지금부터 반말한다.”
깊이 숨을 고른 강이찬이 선언하듯 말했다.
<차니, 반말 좋지.>
<이찬이 형, 반말하고 욕할 때 포스 쩔어 줌.>
눈치 없는 몇몇 시청자가 분위기 깨는 채팅을 올리는 순간, 강이찬의 말이 다시 시작되었다.
“야이, 개새끼야. 그렇다더라, 누구한테 들었다. 그 씨발 망할 놈의 ‘카더라’가 얼마나 졸렬한 짓인지 아냐?”
강이찬의 눈에 살기가 돌기 시작했다.
“뭘 말하려면 근거를 가지고 와라. 아니, 근거처럼 대단한 건 너희 같은 놈 대가리에는 개념 자체가 안 만들어져 있겠네. 내가 씨발, 십만 번 양보할게. 어디 나도는 찌라시라도 들고 와서 말해라. 응?”
<그럼 내가 거짓말했다는 거냐?>
“최소한 책임질 수 있는 말을 한 건 아닌 것 같은데?”
평소 가볍게 뛰놀던 목소리는 어느새 나지막한 저음으로 바뀌었다.
흥분한 목소리가 아니다.
차분하다. 발음도 평소보다 훨씬 정갈했다.
“하! 내가 지금 갑자기 미래가 보였거든? 너를 위해 오늘 특별히 작두 한번 타 줄게. 나중에 그 말이 거짓말이라는 거 밝혀지면 네가 무슨 소리 할지 방금 보였거든. 뭐냐고? 내가 한 말이 아니고, 그렇게 전해 들은 거다. 그럴 거지? 이 씹새끼야?”
채팅창에는 단 한 줄의 글도 올라오지 않았다.
“헌터 잡지 기자? 그럼 그 기자를 데리고 오든가, 하다 못해 녹취라도 해서 갖고 와. 응?”
<진짜거든?>
“그러니까 근거를 갖고 오라고. 응? 씨발! 다른 이야기도 아니고 사람 죽었다는 이야기다. 그게 가볍게 이랬대, 저랬대 할 얘기냐? 넌 사람 살고 죽는 얘기가 그렇게 가벼워? 그것도 그 사람이랑 가까운 사람한테 할 말이야? 무슨 소시오패스쯤 되십니까, 이 개새끼야? 니가 하는 짓이 약도 없다는 기레기병이야, 씹새끼야.”
<말 함부로 하지 마라.>
“풍선 받아먹고 사는 나 같은 찌질이도 최소한 팩트 체크는 한다. 응? 아, 미안하다. 너 팩트도 뭔지 모르겠네.”
<영상 저장 뜨고 있다.>
“지랄하고 자빠졌네. 영상 저장하면 내가, 응? 아이고, 죄송합니다. 사과드리겠습니다. 그럴 것 같아? 고소해. 나도 어디 인실좆이라는 거 한번 당해 보자.”
그때 강이찬의 뒤로 누군가가 다가오며 물었다.
“이찬 씨, 왜 그렇게 흥분했어?”
<어? 유민섭이다.>
<유 길드장!>
<갓민섭! 손 하트 한번 해 줘요!>
심각했던 방송 분위기가 유민섭의 등장으로 대번에 바뀌었다.
하지만 강이찬의 분노는 아직 사그라지지 않았다.
“민섭 형님! 마침 잘 왔습니다.”
“왜, 무슨 일 있어요?”
“아니, 어떤 기레기 같은 새끼가 흑태자 님이 죽었다잖아요.”
그때였다.
유민섭이 살짝 얼굴을 굳히더니 황급히 손을 뻗었다.
강이찬이 간이로 방송하기 위해 켜 놓은 노트북을 향해서였다. 정확하게는 노트북의 전원 버튼이었다.
그리고 유민섭과 강이찬이 의미심장한 시선을 주고받았다.
유민섭의 손에 들린 휴대폰에는, 까만 화면에 강이찬의 방송이 종료되었다는 메시지만 떠 있었다.
“됐습니까?”
“네, 이찬 씨. 입금 확인하세요.”
“하하! 정확하게 하셨겠죠. 그런데 혹시 오해할지도 몰라 드리는 말인데, 저 돈 때문에 이러는 것 아닙니다. 진짜예요.”
“물론입니다. 그런 오해 안 하니 걱정하지 마세요.”
“후우! 근데 저 고소당하면 진짜 책임지는 거죠?”
“제가 100명짜리 변호인단 구성해 줄 테니 걱정하지 말아요.”
사실은 모두 연출이었다.
강이찬이 보여 준 분노의 사자후도, 유민섭의 당황한 얼굴과 다급한 노트북 전원 끄기도 모두 사전에 준비한 연출이었다.
유민섭은 앞으로 있을 여론전에 대비해 작은 팀을 구성했다.
본인과 린디웨, 리쉬옌, 강이찬으로 구성된 팀이었다.
그중 첫 주자로 나선 것이 강이찬이었다.
며칠 동안 꾸준히 방송을 진행하며 누군가 저 소문을 언급해 주기를 기다렸던 것이다.
하지만 소문을 말한 사람에게 했던 말은 미리 준비한 게 아니었다.
진심으로 던진 이야기였다.
이미 그런 소문이 돌 거라는 걸 알고 있었는데도, 실제로 보는 순간 뇌가 저릿할 정도로 화가 치밀었던 탓이다.
강이찬이 조금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데…….”
“네?”
“흑태자 형님 안 죽은 거 맞죠?”
“하하! 그렇다니까요?”
믿지도 않고, 믿고 싶은 마음도 없지만 실제로 그런 채팅을 보니 괜히 불안한 것이다.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이거 정말 괜찮겠어요?”
“이거?”
“오히려 의심을 키우는 거잖아요. 소문이 더 크게 번지면…….”
강이찬의 말대로였다.
유민섭이 지은 당혹스러운 표정, 급하게 노트북 전원을 끄는 모습은 고스란히 방송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런 모습은 오히려 소문의 불길에 기름을 붓는 꼴이었다.
“거짓말로 공격을 당할 때 택할 수 있는 방법은 둘입니다.”
“둘?”
“적극적으로 진실을 알리거나, 무대응으로 있거나. 하지만 지금은 진실을 알릴 수 없는 상황이죠.”
팀을 구성하기는 했지만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다.
그저 중요한 이유가 있어서 모습을 드러낼 수 없다고만 전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지금 하신 건 둘 다 아니잖아요.”
“어디까지나 일반론입니다. 우리는 단순히 피해를 막는 게 아니라 역습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차라리 장작을 넣어 주었다. 일단 사건을 키울 수 있는 데까지 키우는 것이 목적이었다.
“일단 지켜봐요. 보다 보면 느낌이 올 겁니다. 이찬 씨는 주어진 일만 잘해 주세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냥 방송해라. 맞죠?”
“맞습니다. 그리고…….”
“흑태자 형님 이야기는 그냥 무시해라.”
“그렇죠. 그것만 지키고 꾸준히 방송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
<흑태자 사망설. 단순한 루머인가, 은폐된 진실인가?>
<당황스러운 얼굴 뒤에 숨어 있는 김준혁의 생사.>
<20일 가까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김준혁, 과연 어디에?>
언론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모든 언론이 한꺼번에 김준혁의 생사에 관한 기사를 쏟아 냈다.
그런데 기사의 방향이 묘했다.
김준혁의 생사를 이야기하면서 마지막에는 유민섭이 무언가 숨기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하며 마무리된다.
융단폭격처럼 쏟아지는 기사에 여론도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그래서 흑태자가 살아 있다는 거냐, 죽었다는 거냐?>
└죽었다고 봐야지.
└무슨 근거로?
└이렇게 떠드는데도 안 나오는 게 나만 이상하냐?
<잘 뒈졌다. 야구 할 때부터 재수 없었다.>
└그래, 니 인성.
└밥은 먹고 다니냐?
<뭔 개소리? 김준혁 스탯이 다섯 개 전부 1,999다. 그런 능력자가 죽는 게 말이 됨?>
└나랑 같은 생각 하는 사람이 또 있어서 위안.
└백퍼 동감. 강이찬 말마따나 그 스탯이면 자살도 못할 것 같은데 어떻게 죽는다는 거?
└내 말이 그 말.
다들 준혁의 생사에 대해 갑론을박을 벌였다.
그런데 이상한 부분이 있었다.
<근데 기사처럼 유민섭이 뭔가 숨기고 있는 거 아니냐?>
└이건 또 어디 음모론자냐?
└유민섭이 얼마나 착한데 그딴 소리를 하는 거?
└이미지는 만들기 나름이지. 뒤로 뭔 짓 할지 알 게 뭐냐?
준혁의 생사에 대해 토론을 벌이다가도 항상 결론에서는 유민섭의 이야기가 나왔다.
언론이 쏟아 내는 기사와 같은 흐름이었다.
유민섭이 노린 부분이기는 하지만, 이 정도로 일관된 방향성은 우연으로 볼 수 없었다.
“민섭 형님을 노린 게 확실하네요.”
강이찬의 말에 유민섭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이런 상황으로 유도한 건 맞지만, 이 정도 반응이면 뒤에서 누가 움직인다고 봐야죠.”
“그렇죠. 그래서 이다음은 뭔가요?”
“존버.”
“네?”
“아직 불이 작습니다. 불이 커질 대로 커져야 해요.”
“괜찮겠어요?”
급히 묻는 강이찬의 얼굴에 걱정이 한가득 담겨 있었다.
“뭘 그렇게 걱정해요?”
“그게…….”
뭔가 우물쭈물하는 강이찬의 모습에 유민섭이 물었다.
“무슨 일 있습니까?”
“아뇨. 무슨 일이 있는 게 아니고, 방송하면서 계속 무시했더니 별의별 이야기가 다 나와요. 요즘은 제가 민섭 형님이랑 공모해서 흑태자 형님 죽인 거라는 얘기까지 올라오더라고요. 그 정도만으로도 나는 죽을 맛인데, 민섭 형님은 얼마나 힘들까 싶어서 그래요.”
유민섭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거짓말에 흔들릴 정도로 제 멘탈이 그렇게 약하지 않습니다.”
자신 있는 목소리로 말한 유민섭이 문을 열었다.
촤촤촤촤촤!
카메라 플래시 터지는 소리가 거센 폭우처럼 휘몰아쳤다.
유민섭은 아랑곳하지 않고 단상으로 향하며 환하게 웃는 얼굴로 여유롭게 손까지 흔들었다.
지금 저 자리는 기자회견장이었다. 하지만 준혁의 죽음에 대한 것이 아닌, 종로의 괴물 사태에 대한 기자회견이었다.
물론 기자들이 질문 세례를 퍼붓겠지만 유민섭은 그에 응할 생각이 없었다.
“기자회견을 시작하기에 앞서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흑태자 김준혁에 대한 질문은 받지 않겠습니다. 이 점 꼭 지켜 주십시오.”
모여 있는 기자들이 야유에 가까운 고함을 질렀지만 유민섭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리고 단상 옆 문틈으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강이찬은 그 단단한 멘탈에 혀를 내둘렀다.
***
“됐다!”
짧게 외치는 준혁의 손에는 메구탈이 들려 있었다.
자유로운 움직임을 위해서 가장 필요한 물건이 이 메구탈이었다.
메구탈을 쓴 준혁은 일단 얼굴 형태를 바꾼 후 흑호를 불렀다.
-흑호.
생각과 거의 동시에 흑호가 ‘도약’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 흑호를 쳐다보다 갑자기 준혁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감응이 얘들한테도 먹히려나?’
준혁과 환수들은 영혼으로 이어져 있는 사이였다. 하지만 완벽하게 대화를 나눌 수는 없었다.
준혁이 하는 말은 환수들이 알아듣지만, 환수들의 말은 준혁이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저 전달되는 이미지로 대강의 의미를 이해할 뿐이었다.
하지만 ‘감응’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더욱 편할 것이다.
준혁은 곧장 흑호를 향해 ‘감응’을 사용했다.
-흑호, 형이랑 가족들은 다 잘 지내지?
말을 건네자마자 준혁의 두 눈이 커다랗게 벌어졌다.
-네가 직접 가면 되지, 망할 주인 놈아.
생각지도 못한 내용에 준혁은 눈꼬리가 파르르 떨릴 지경이었다.
-뭐라고?
-아, 잘 있다고, 주인 놈아.
-노옴?
-음?
-지금 주인 ‘놈’이라고 했냐, 이 고양이 시키야?
-네?
-주인 놈이라…….
파다다닥, 쾅!
네 발을 황급히 놀려 구석으로 달린 흑호가 벽에 머리를 처박았다.
그런 흑호 위로 준혁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흑호의 기분을 대변하는 것인지 오늘따라 유독 준혁의 그림자가 짙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