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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장. S급을 죽이는 방법#2-
“그래서 그 대답이 뭔데?”
그때 게이트에서 튀어나온 놈들이 문제의 원통을 동시에 내던졌다.
던진 놈들은, 원통을 던진 직후 게이트를 통해 그대로 사라졌다.
그 순간 텐구의 주변 공기가 달라졌다.
게이트를 통해 반쯤은 다른 공간으로 나가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제각각의 포물선을 그리는 30개의 원통.
착지점은 한 곳이 아니었다.
준혁을 중심으로 사방 곳곳을 목적지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걸 가만히 보고 있을 준혁이 아니었다.
슈욱!
흐릿한 잔상을 만들어 낸 준혁이 빠르게 그 자리를 이탈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콰아앙-!
갑자기 허공에서 불꽃이 번쩍이며 무시무시한 폭음이 울려 퍼졌다.
콰콰콰쾅!
한두 개가 아니다. 30개의 원통이 동시에 허공에서 폭발했다.
준혁은 그대로 폭발에 휘말렸다.
몰려오는 폭발의 압력에 준혁의 몸이 밀려났다.
“흡!”
하지만 준혁이 저도 모르게 두 눈을 부릅떴다.
‘이건!’
폭발의 화염도, 그 압력으로 인한 충격도 아무런 데미지가 없었다.
그저 체중의 한계로 인해 압력에 밀려 흔들렸을 뿐이었다.
그런데 몸속에서 묘한 반응이 일어났다.
몸속 깊은 곳에 무언가 바스러지는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
생전 처음 겪어 보는 감각.
‘뭐지, 이거?’
그때 바로 옆에서 또다시 텐구의 목소리가 들렸다.
“러시아 정부에서 1급 수배령을 내린 S급 빌런이 있었지.”
허공에 떠오른 준혁의 바로 옆에 텐구가 모습을 드러내 말을 이었다.
텐구 주변에 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는 것이, 아무래도 그 게이트 능력으로 저렇게 돌아다니는 듯했다.
“그리고 러시아의 독재자가 놈의 지인을 이용해 놈에게 뭔가를 먹였는데, 그게 뭐였을 것 같아?”
바닥에 착지한 준혁이 약간 비틀거리며 텐구를 노려보았다.
텐구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큰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그 유명한 방사능 홍차였어. 정확하게는 폴로늄 210. 그리고 문제의 S급 빌런은 즉사는 아니지만 한 달을 고생하다 결국 죽었단 말이야. 그래서 핵배낭을 선물로 준비해 봤어. 마음에 드나?”
“흑호!”
준혁의 외침에 순식간에 공간이 열리며 흑호가 튀어나왔다.
하지만 텐구가 조금 더 빨랐다.
어느새 꺼내 손에 쥐고 있던 작은 스위치를 눌렀다.
꾸우우우웅-!
동시에 준혁의 발밑에서 무시무시한 폭발이 일어났다.
발밑의 암반이 그대로 터져 나가고, 무시무시한 화염이 준혁을 집어삼켰다.
촤르르륵!
묵린갑이 순식간에 면적을 넓히며 준혁의 온몸을 감쌌다.
물조차 새지 않을 정도로 완전한 밀폐.
생존을 위한 준혁의 본능적인 반응이었다.
“끄아아악!”
하지만 밀폐된 묵린갑 속에서 준혁의 비명이 메아리치며 울려 퍼졌다.
발밑에서 솟구친 폭발에 그대로 휩쓸려 몸뚱이가 허공으로 튕겨 올라갔다.
어느새 입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조차 폭발에 덮여 들리지 않는다.
하늘로 솟구친 버섯구름이 걷히고, 사방에 낙진이 검은 눈이 되어 떨어지고 있었다.
방사능을 잔뜩 머금은 죽음의 검은 재였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사람 형상으로 낙진이 불룩하게 쌓인 곳에서 무언가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끄으으으!”
준혁이었다.
힘겹게 상체만을 일으킨 준혁은, 폭발 직전 펼친 묵린갑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전히 감싸고 있었다.
하지만 묵린갑의 부피를 줄이고 드러난 준혁의 몰골은 그야말로 처참했다.
터져 나간 피부 밑으로 드러난 시뻘건 속살에서 쉴 새 없이 진물이 흘렀다.
코와 입은 물론 귀와 눈에서까지 피가 흘러내린다.
묵린갑으로도 방사능 피폭은 막을 수 없었던 것이다.
준혁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적사, 흑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흑호가 ‘도약’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적사는 흑호의 머리 위에 똬리를 틀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환수는 반사능의 영향을 받지 않는 모양이었다.
“적사.”
준혁의 부름에 적사가 냉큼 다가와 그의 손등에 이빨을 박아 영력을 밀어 넣었다.
“크으으윽!”
피폭으로 엉망이 된 몸에 거대한 영력을 밀어 넣는 것만으로도 고통에 치가 떨릴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
영력이 보충되니 조금은 버틸 만해졌다.
상처가 회복되지는 않았다.
이 순간에도 몸속은 세포 단위에서 구조의 붕괴가 일어나고 있었다.
힘겹게 영력을 끌어 올려 온몸으로 돌렸다.
하지만 끊임없이 진행되는 세포 단위의 붕괴는 막을 수 없었다. 그저 조금 늦추는 것이 한계.
힘겨우나마 몸을 움직이는 정도만 겨우 가능한 수준.
그때 하늘이 갑자기 사라졌다.
정확하게는 눈에 보이는 하늘의 한 부분이 흐릿하게 변하더니 아무것도 없는 무(無)로 변했다.
하늘만이 아니었다.
구름도, 암반도, 심지어 하늘의 태양까지도 하나둘 사라지고 있었다.
무슨 현상인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게이트를 닫는 중이다!’
여기에 가만히 있다가는 존재 자체가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흑호!”
다급히 흑호를 가까이 부른 준혁이 엉거주춤 흑호의 등에 올라타며 말했다.
“바다로 가자.”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흑호가 ‘도약’을 펼쳤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도교 국제공항 바로 옆의 도쿄만을 낀 해변.
흑호가 직접 본 적이 있는 가장 가까운 바다가 이곳이었던 것이다.
준혁은 서둘러 몸에 걸치고 있던 모든 것을 벗어 던졌다.
움직일 때마다 몸뚱이가 그대로 떨어져 나갈 정도로 아팠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
나신이 된 준혁은 그대로 바닷물에 몸을 던졌다.
당장 방사능을 어떻게 씻어 내야 할지 방법을 알지 못하니 일단 물로 뛰어든 것이다.
“끄아아아악!”
단말마에 가까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드러난 속살을 소금물에 담갔으니 그 고통이 오죽할까?
까드드드득!
준혁은 이를 악물고 참았다.
빠르게 진행되는 세포의 붕괴에 이가 그대로 으스러져 흩어졌다.
몸의 이상 상태가 빠르게 진행되었다.
가장 먼저 촉각이 사라졌다. 뒤이어 미각, 후각, 청각, 시각이 차례대로 마비되며 오감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럼에도 준혁은 기계적으로 한참 동안 몸을 씻었다.
인간은 시각 하나만 잃어도 움직임에 엄청난 제약을 받는다.
평소에 똑같이 하던 행동도, 눈을 감고 할 때는 꽤 큰 차이를 느끼게 된다.
하물며 준혁은 모든 감각이 삭제된 상태였다.
초인의 몸이 되어 얻은 육감도, 영력의 확장으로 얻는 초월적인 감각도 그 베이스는 원래 가지고 있는 오감이었다.
그 오감이 마비되니 단순한 행동 하나도 제대로 하기가 힘들었다.
몸을 씻었지만 실제로 몸을 씻었는지도 확신할 수 없는 상태였다.
완전한 무감각의 세계.
그 속에서 준혁은 기계적으로 손을 움직였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알 수 없었다.
‘이 정도면 충분할까?’
자신이 없다.
겨우 이런 정도로 방사능이 씻겨 나갈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럴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사이에 몸의 상태가 얼마나 나빠졌을지도 걱정이었다.
확인할 수는 없지만 일단은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할 때였다.
불쑥 허공으로 내민 준혁의 손이 갑자기 공간에 먹힌 듯 사라졌다가 나왔다.
인벤토리.
던전 계열로 두 번째 각성을 하면서 얻은 인벤토리였다.
인벤토리에서 꺼낸 것은 다름 아닌 엘릭서였다.
처음 유민섭을 만난 후, 골드 드래곤의 레어를 공략해 주는 조건으로 얻었던 그 물건.
그 엘릭서가 준혁에게는 4개나 있었다.
뚜껑이 있을 거라 생각하는 부분에 손을 대고 열었다.
실제로 뚜껑을 열고 있는 것인지도 확인할 길이 없다. 그저 육체에 각인된 기억을 믿고 움직일 뿐이었다.
흑호의 ‘도약’으로 유민섭이나 린디웨에게 가서 엘릭서 먹는 걸 도움을 받을까 하는 생각도 잠깐은 해 보았다.
하지만 그들이 혼자 있으리라는 보장도 없고, 방사능이 어떤 영향을 끼칠지도 알 수 없었다.
일단은 혼자 해야 했다.
‘음!’
몸속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가장 먼저 돌아온 감각은 촉각이었다.
그리고.
“끄아아아악!”
촉각과 함께 되돌아온 통각으로 인해 무시무시한 통증이 올라왔다.
뇌를 그대로 갈아 버리는 것 같은 고통 속에서 준혁은 자신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발버둥을 쳤다.
허리까지 잠긴 바닷물 속에서 넘어지고 자빠지며 버둥거렸다.
그렇게 한참 발버둥 친 후에야 하나씩, 하나씩 감각이 되돌아왔다.
그리고 고통도 점점 사그라져 갔다.
시력이 회복되고, 그렇게 잡힌 시야에는 온몸을 감싸고 있던 은은한 빛이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
그리고 고통이 완전히 사그라졌을 때, 준혁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언제 그렇게 아팠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몸에 힘이 넘쳤다.
천천히 영력과 마나를 움직여 보았다.
“음!”
몸속의 영력은 물론 마나가 힘차게 맥동하고 있었다.
가장 놀라운 것은 마나였다.
이전에 비해 마나의 양이 확연히 늘어나 있었다.
‘엘릭서의 효과인가?’
재빨리 상태창을 열었다.
[상태창]
김준혁
직업:엽사(獵師)
등급:혼원급(混元級)
클래스:관찰자
근력:[1,999] [142]
순발력:[1,999] [194]
지구력:[1,999] [215]
감각:[1,999] [351]
영력:[1,999]
마나:[894]
마나만이 아니었다.
모든 스탯이 꽤 늘어나 있었다.
김준석이 엘릭서를 마시고 등급이 올랐던 점이 이런 이유였던 것 같았다.
물에서 나온 준혁은 일단 사방에 널브러져 있는 장비들을 보았다.
모두 방사능에 오염된 상태의 물건이었다.
‘이걸 어쩐다?’
이대로 파묻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로 인한 영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단은 회수.’
인벤토리에 넣어 두기로 했다. 인벤토리는 흔히 아공간이라 부르는 공간이고, 그 공간은 시간이 정지된 곳이다.
방사능에 오염된 물건을 넣어 둔다고 다른 물건들도 그리되지는 않으리라.
모든 것을 회수한 후, 준혁은 흑호를 불러냈다.
‘도약’으로 향한 곳은 일본에 와서 묵었던 호텔 방이었다.
나체로 돌아다닐 수는 없기에 일단은 옷부터 입었다.
가벼운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은 후 준혁이 향한 곳은 이시이 카게루의 방이었다.
흑호가 이시이 카게루와 마츠다 오가를 던져 놓은 곳이 이 호텔 방이었다.
이번에도 ‘도약’을 사용했다.
준혁이 그 게이트 너머에서 핵 공격을 받고 살아남았다는 사실은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준혁에게는 오히려 찬스인 상황이었다. 그러니 호텔 복도에 혹시나 있을지 모를 CCTV는 조심하는 게 좋았다.
“헉!”
갑자기 등장한 준혁의 모습에 이시이 카게루와 마츠다 오가가 기겁하며 뒤로 물러섰다.
“너희 둘.”
“네!”
“넵!”
준혁에게 절대 승복하지 않은 두 사람이었지만, 구련환에 의한 육체의 행동은 즉각적이었다.
“지금부터 미션을 준다.”
“말씀하십시오!”
“우선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은 절대 함구할 것.”
“네!”
“내가 잠시 몸을 숨기고 있는 동안 너희 조직의 실체를 파악해 놓을 것.”
준혁의 말에 두 사람이 동시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나는 이미 조직에서 버림받았습니다.”
“저는 자결을 명령받은 이상 돌아가도 받아 주지 않을 겁니다.”
서천회라는 조직은 이미 두 사람을 버린 패로 여긴 상태였다.
하지만 준혁이 굳이 그런 사정까지 봐줄 이유가 없었다.
“알아서 잘해라.”
“네!”
역시나 구련환의 효과는 확실했다.
사실 큰 기대를 하는 건 아니었다. 뭔가 성과가 있으면 좋은 거고, 없어도 상관없었다.
그리고 두 놈의 배신을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구련환은 이름 그대로 ‘개목걸이’다. 그게 걸려 있는 이상 두 놈은 절대 준혁의 통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럼 나중에 보자.”
가볍게 인사를 마친 준혁은 또다시 흑호의 등에 올라타 ‘도약’을 펼쳤다.
이번에는 혼원 길드에 있는 준혁 본인의 사무실이었다.
딱히 사무를 볼 일은 없지만, 유민섭이 길드를 만들면서 공략 팀 헌터들에게 개인 사무실을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후우!”
자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공간으로 돌아오니 그제야 조금 여유가 생겼다.
‘이제부터 어떻게 움직이지?’
생존 사실을 숨기는 것은 기본이었다.
극도로 은밀하게 놈들에게 카운터를 날릴 준비를 해야 했다.
한참을 고민한 준혁이 살기등등한 기세로 몸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