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각성받고 각성 더!-124화 (124/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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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장. 랜딩#1-

“치프.”

노크 후 대답도 듣지 않고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스미스의 모습이 대단히 급해 보였다.

로건 베런즈에게 극진할 정도로 예의를 차리는 스미스의 평소 모습을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급한 보고가 있다는 이야기.

로건 베런즈도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무슨 일입니까?”

“일본 조직의 한국 측 허브가 지금 일본행 항공권을 발권했다고 합니다.”

로건 베런즈가 치프로 있는 ‘노 네임(NO NAME, 무명회)’은 던전 관리자들이 운영하는 비밀 조직을 색출하는 데 많은 자원을 쏟아붓고 있었다.

지금 말한 ‘허브’는 각 조직의 지역 중간책을 부르는 무명회 내부 용어였다.

“네? 이렇게 갑자기?”

“네. 예약도 없이 갑작스러운 귀국입니다.”

“동행은?”

“없습니다.”

로건 베런즈는 팔짱을 낀 채 고개를 외로 꼬았다.

혼자 고민할 때 나오는 로건 베런즈의 버릇이었다.

홀로 고민을 끝낸 로건 베런즈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해당 허브의 도착 시간은 어떻게 됩니까?”

“도쿄 시각으로 오전 11시 정각, 하네다 공항으로 도착합니다.”

“시간이 얼마 없네요. 혹시 하네다 공항에 인력을 보냈습니까?”

“5분 전에 알파 팀과 찰리 팀이 출발했습니다.”

“나쁜 판단은 아니지만 이번에는 잘못된 판단입니다. 복귀시켜요.”

“네?”

이해를 못한 스미스가 반문했지만 로건 베런즈는 대답 대신 명령을 이었다.

“그리고 자정부터 오전 11시까지, 한국에서 하네다 공항으로 들어오는 모든 항공편 승객들을 조사하세요. 그중 의심스러운 인물의 명단을 작성하십시오.”

“네!”

스미스는 패드를 꺼내 재빨리 로건 베런즈의 명령 사항을 입력했다.

“그리고…….”

몸을 일으킨 로건 베런즈의 뒤편 전면 창으로 복잡한 도쿄 도심의 전경이 펼쳐졌다.

“일본 지부 모든 인원은 지금부터 비상 대기 상태로 전환합니다. 오메가 팀은 500미터 이상 거리를 두고 저를 지원합니다.”

깜짝 놀란 스미스가 물었다.

“직접 가실 생각입니까?”

“한국의 허브 정도 되는 인물이 단신으로, 그것도 갑작스러운 일정으로 일본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죠?”

“그야 일본 조직의 테러……. 어? 혹시 김준혁이 관련되어 있습니까?”

던전 관리자 중 은색은 일본인으로 거의 확정된 상태였다.

그리고 은색은 얼마 전 한국에 게이트를 이용한 테러를 자행했다. 그것도 혼원 길드 본사를 직접 기습하는 방식으로.

김준혁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이상한 일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난데없는 한국 허브의 단독 행동은, 그 의심의 종착점에 김준혁을 둘 수밖에 없었다.

“미스터 스미스.”

“네, 치프.”

“당신이 가진 장점은 아주 많아요. 하지만 한 가지 단점이 있죠. 시야가 너무 좁습니다. 그게 당신을 향한 내 지지의 한계를 만듭니다.”

“노력하겠습니다!”

“기회가 많지는 않을 겁니다.”

날카롭게 한마디 던진 로건 베런즈가 급히 걸음을 옮겼다.

***

-넌 의심받을 수밖에 없어. 살고 싶으면 내 말대로 하는 게 좋아.

이시이 카게루는 머릿속에서 울리는 목소리에 또 한 번 흠칫 놀랐다.

‘텔레파시라는 거겠지.’

이시이 카게루는 오늘 아침 갑작스러운 준혁의 요구에 급히 비행기를 잡았다.

그 탓에 한 번도 앉아 본 적 없는 이코노미석에 앉아서 비행을 하게 되었다.

제대로 다리 펼 공간조차 부족한 좁은 좌석에 불편함을 호소할 만했지만, 이시이 카게루는 그럴 여유조차 없었다.

잠깐 마음을 놓을 만하면 머릿속에서 울리는 준혁의 목소리에 긴장을 놓을 수 없는 탓이었다.

비행기가 살짝 기우뚱하는가 싶더니, 창 너머로 커다란 공항의 모습이 드러났다.

나리타 공항과 함께 일본의 관문 역할을 하는 하네다 공항이었다.

‘빅 버드(Big Bird)’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하는 곳으로 정식 명칭은 ‘도쿄 국제공항’이었다.

안전벨트 등에 불이 들어오고, 승객들이 재빨리 벨트를 맸다.

살짝 분주하면서도 차분해지는 기내 상황 속에서 준혁은 팔짱을 낀 채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견제 관계라는 건 확실한데…….’

던전 관리자들에 대해서였다.

모두 다섯 명. 그중 둘에 대한 실마리는 잡은 상태였다.

하나는 로건 베런즈였다. 배면계 귀환자인 동시에 던전 쪽의 각성자이기도 한 것으로 의심되는 인물.

그리고 시스템 융합의 주범으로 심증이 굳어진 놈이기도 했다.

또 다른 하나는 볼런트 라일이었다. ITO의 사무총장인 동시에, BR코퍼레이션의 대표이사.

그 볼런트 라일을 미행했던 두 사람이 있었다.

하나는 이세연과 지유를 납치하려 했던 여자 각성자였고, 또 하나는 배면계 귀환자였다.

배면계 귀환자는 잠정적으로 무명회 소속이라 볼 수 있으니 로건 베런즈의 수하였다.

던전 관리자로 의심되는 볼런트 라일을 미행하는 두 사람. 그리고 그 두 사람이 속해 있는 조직.

이 정도 정황이라면 서로 견제하는 상황이 확실했다.

준혁의 생각은 로건 베런즈를 처음 만난 그 순간으로 향했다.

‘광화문, 갑자기 거기는 왜?’

그날 광화문에는 로건 베런즈와 배면계 귀환자들이 잔뜩 깔려 있었다.

무언가 중요한 볼일이 있기 때문이리라.

그러다 문득 그날 광화문으로 가기 전의 상황이 떠올랐다.

‘감시 대상은 물리적으로 그곳에 갈 수 없는 위치에 있습니다.’

‘주 감시 대상 볼런트 라일을 후보군에서 제외합니다.’

볼런트 라일을 쫓던 두 명의 미행자가 각각 했던 말이었다.

‘이 정도면 서로의 정체조차 모른다는 뜻이고……. 가만, 물리적으로 그곳에 갈 수 없다고?’

그 당시에 말한 ‘그곳’이라면 광화문 광장이었다.

지금의 상황을 종합하면 두 가지 가정을 할 수 있었다.

‘로건 베런즈는 그날 그곳에서 누군가를 만나기로 했거나, 그곳에 누군가 나올 거라고 예상했다. 그리고 볼런트 라일을 미행했다는 건 아마도 던전 관리자 중 한 사람을 기다렸을 거라는 뜻인데?’

즉, 그날 광화문에는 어쩌면 로건 베런즈 외에 또 다른 던전 관리자가 있었을 거라는 추측이 가능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얘들은 견제 관계인 것도 모자라 서로의 정체조차 모르고 있다는 뜻인데?’

던전 관리자의 정체를 모르기 때문에 가장 의심스러운 볼런트 라일을 미행했다는 뜻이다.

‘이거 잘하면 내가 가장 많이 알게 될 것 같은데?’

현재 준혁은 로건 베런즈가 던전 관리자라는, 혹은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일본에서는 이시이 카게루를 통해 일본에 있는 서천회의 던전 관리자를 찾아낼 예정이었다.

‘그런데 이거 이상한데?’

생각을 하다 보니 뭔가 아주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자식은 왜?’

로건 베런즈의 행동이 앞뒤가 맞지 않았다.

로건 베런즈, 그리고 그가 이끄는 무명회의 목적은 던전과 배면계 두 시스템의 융합이었다.

꽤 오래전부터 진행해 온 일이고, 이제는 거의 마무리 단계라고 볼 수 있었다.

그 부분에서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이 발생했다.

‘그 자식 성격상 대책 없이 일을 진행했을 리는 없고…….’

준혁이 로건 베런즈에게 받은 인상은 매우 철두철미한 인간이었다. 전직 CIA 요원이라는 점도 그런 생각을 뒷받침했다.

그런 인물이 시스템 융합을 진행했다면, 그 후에 융합된 시스템을 통제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기에 그 일을 진행했을 것이다.

‘왜 다른 던전 관리자를 추적하는 거지? 그러고 보니 시스템 융합도 갑자기 멎은 것 같은데?’

시스템 융합의 진행 상태를 생각하면 이미 그것이 마무리되었어야 할 시간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진행이 멈췄다.

‘왜?’

연달아 ‘왜’라는 질문을 던진 준혁은 어느 순간 하나의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마무리를 하려면 던전 관리자들을 찾아야 한다?’

지금 떠올릴 수 있는 이유는 둘 중 하나였다.

첫째는, 시스템 융합을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다섯 관리자의 권한을 모두 장악해야 한다.

둘째는, 융합한 시스템의 관리를 위해서는 다섯 관리자의 권한을 장악해야 한다.

어쨌든 결론은 다섯으로 나뉜 관리 권한이 모두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이 자식이 지금 상황을 이용하려고 들 거라는 말인데?’

게이트를 이용한 공격은 다섯 명의 관리자가 모두 협의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로건 베런즈라면 준혁이 그에 대해 반격할 거라는 정도는 충분히 예상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준혁을 이용해 일본에 있는 던전 관리자를 찾아내려 할 거라는 예상도 충분히 가능했다.

‘이 자식이, 나를 사냥개로 쓰겠다는 말이네?’

이를 한 번 더 생각하면, 지금 일본에서 로건 베런즈 혹은 무명회를 만나게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뜻이었다.

준혁의 입꼬리가 삐죽 올라갔다.

‘어디 한 번 해 보시든가.’

그렇게 생각을 마무리했을 때, 비행기가 긴 활주로에 안착했다.

***

-미리 말하고 움직여라.

“끄윽!”

이시이 카게루가 억눌린 비명과 함께 머리를 부여잡고 비틀거렸다.

연달아 날아드는 준혁의 목소리에 머리가 지끈거리며 순간적으로 중심을 잃은 것이었다.

“제발 그냥 통신기로 말씀하시면 안 되겠습니까?”

마침 옆에 있던 기둥을 짚어 겨우 넘어지는 것을 면한 이시이 카게루가 애원하듯 말했다.

지금 그의 귓속에는 비행기에 타기 전 준혁에게 받은 초소형 통신기가 들어 있었다.

이걸 이용하면 충분히 대화가 가능한데도 준혁은 그것으로 말을 하지 않았다.

비행기를 타고 오는 내내 이 텔레파시만을 이용해서 말을 걸었다.

일반인인 이시이 카게루의 육체에는 더할 수 없는 부담이었고, 결국 과부하가 발생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시이 카게루의 애원이 준혁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좋은데?’

그런 준혁의 시야에는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라 있었다.

[‘감응’의 숙련도가 올랐습니다.]

[‘감응’의 잠겨 있던 옵션이 해제되었습니다.]

서둘러 상태창을 열어 ‘감응’ 항목을 살펴보았다.

[감응]

대상과 정신 감응을 통해 사용자의 생각을 전달할 수 있다.

대상과 사용자 사이에 생각을 통한 대화가 가능하다.

‘잠김’ 대상에게 사용자의 생각을 강제할 수 있다.

숙련도가 올라가면 감응의 적용 범위와 대상의 수가 늘어난다.

숙련도:[50/100]

적용 범위:[30미터]

적용 대상:[5명]

숙련도가 50으로 올랐고, 범위와 대상의 수가 늘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대상과 사용자 사이에 생각을 통해 대화할 수 있다고 쓰여 있던 부분 앞의 ‘잠김’이라는 글자가 사라졌다는 점이었다.

즉, 이제부터는 일방이 아닌 쌍방 대화가 가능하다는 뜻이었다.

‘이 쉬운 걸 왜 못하는 거야?’

문득 든 생각은 혼원 길드에 와서 마나를 깨우치겠다고 훈련받는 헌터들이었다.

‘감응’의 숙련도가 오른 것은 단순히 준혁이 ‘감응’을 통해 텔레파시를 많이 보냈기 때문이 아니었다.

끈질긴 노력 덕분이었다.

준혁은 기술을 사용하는 순간의 메커니즘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했었다.

영력이 어떻게 움직이고, 그것을 어떻게 컨트롤했을 때 효율이 높은지에 대한 탐구였다.

그것이 배면계에서 홀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진짜 이유였다.

기술을 더 잘 사용하고, 영력의 운영 능력이 좋다 보니 성장 또한 빨랐다.

그것이 결국 혼원급이라는 전대미문의 등급에 오를 수 있게 해 준 근본이었다.

그리고 새롭게 얻은 스킬에 대해서는 그러한 탐구를 멈추지 않았다.

그중 가장 공을 들인 것이 ‘감응’이었다.

그리고 이시이 카게루에게 끊임없이 ‘감응’을 사용하며 마나 컨트롤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그 결과 빠르게 숙련도가 올라갔고, 마침내 잠겨 있던 옵션 하나를 해제한 것이었다.

준혁은 기둥에 기댄 채 힘겨워하는 이시이 카게루의 모습을 보며 통신기를 통해 말했다.

“당분간은 통신기를 통해 말한다.”

이시이 카게루가 괴로워하는 것은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서천회와 접촉하기도 전에 죽어 버리면 곤란했다.

그러니 당분간은 뇌에 가는 부담을 덜어 줄 필요가 있었다.

-아, 그 전에 테스트.

갑작스러운 텔레파시에 이시이 카게루가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너 나한테 말을 한다는 느낌으로 생각을 해 봐라.

이시이 카게루가 고개를 갸웃거린 직후였다.

-말을 한다는 느낌으로 말입니까?

-어, 그렇게. 됐다.

‘감응’을 이용한 무언의 대화는 대상에게 특별히 어떤 요령이 필요한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앞으로 내가 생각으로 말하면, 너도 생각으로 대답해라.”

(네, 알겠습니다.)

“그럼 앞장서.”

(네.)

이시이 카게루가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겼고, 준혁은 거리를 벌린 채 그 뒤를 따랐다.

이시이 카게루가 달아날 걱정 따위는 할 필요가 없었다.

놈의 손목에 구련환을 채워 놓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흑호.

준혁의 부름에 흑호가 은신한 상태로 ‘도약’을 통해 준혁 앞에 나타났다.

-쫓아가.

말이 끝나기 무섭게 흑호가 이시이 카게루가 탄 차량의 뒤를 쫓았다.

그리고 준혁은 느긋하게 차량 렌트를 위해 발길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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