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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장. 각성 받고, 각성 더#2-
[시스템 적성 인자를 탐색합니다.]
망막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어?’
그리고 준혁은 두 눈을 가늘게 좁혔다.
세상이 바뀐 지 10년이다.
각성 순간에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졌다.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상식이나 다름없었다.
[상태창을 불러옵니다.]
아무런 징조도 없이 갑자기 눈앞에 떠오르는 메시지라고 했다.
그런 후, 자신의 상태창이 떠오르는 것으로 각성 과정은 끝난다.
그 후에 갑자기 예민해진 감각으로 인해, 받아들이는 오감에서 위화감을 느낀다거나 하는 정도의 증상을 느낀다.
처음 사람들이 각성 순간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 반응은 대부분이 ‘김빠진다.’였다.
뭔가 대단한 경험을 할 것 같은 기대를 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눈앞에는 0퍼센트에서 시작한 숫자가 어느새 70퍼센트를 넘어가고 있었다.
‘인위적인 각성이라 그런가?’
린디웨가 강제로 각성시키는 것이니 그럴지도 모를 일.
준혁은 일단은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마침내 진행률이 98퍼센트에서 99퍼센트를 넘어 막 100퍼센트에 도달하려는 찰나였다.
갑자기 숫자가 제 마음대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뭐야?’
흠칫 놀라는 찰나 갑자기 눈앞이 암전되더니, 시야에는 시스템 메시지만이 남아 요동치기 시작했다.
[심각한 오류가 발생하였습니다.]
[호환할 수 없는 연산이 발견되었습니다.]
[연산의 논리 구조를 수정합니다.]
[수정 진행률 0퍼센트.]
‘야, 뭐? 이거 무슨 짓이야?’
준혁이 버럭 호통을 질렀다. 하지만 호통은 소리가 되어 나오지 못했다.
그리고 들이닥친 것은 배꼽 아래에서 시작되는 뻐근한 통증.
0퍼센트에서 시작한 진행률이 순식간에 50퍼센트를 돌파했다.
까드득!
이를 악물었다.
아무리 문외한이라지만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눈치채지 못하는 게 이상한 일이다.
‘호환할 수 없는 연산’이라는 건 준혁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영력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리고 ‘연산의 논리 구조를 수정’한다는 건 영력에 대한 무언가를 바꾸겠다는 뜻이다.
절대 있을 수 없는 일.
‘이게 어디서 감히!’
살인적인 환경의 배면계에서 10년을 구르며 얻은 힘이었다.
배면계에서 귀환한 후 영력을 봉인당했을 때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10년의 세월 끝에 얻은 승리를 송두리째 부정당한 패배감, 몸속 가득 넘치던 힘을 잃은 상실감, 정체성에 대한 혼란과 무기력까지.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쏟아져 끝없이 나락으로 추락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금방 털고 일어날 수 있었던 계기도 배면계에서의 10년이었다.
그곳에서 단련한 강인한 멘탈이 있었기에 빠르게 회복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 영력에 손을 대겠다고?
누구 마음대로.
감히!
한껏 영력을 끌어 올렸다.
배면계에서 함께 지냈던 동료들끼리 농담 삼아 ‘단전’이라고 불렀던 영력의 저장소에서 시작한 영력의 흐름이 온몸을 휘돈다.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
순환을 거듭할 때마다 아랫배에서 시작한 통증이 온몸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온몸 전체를 쥐어짜는 듯한 통증에 그대로 정신을 놓아 버릴 것 같았다.
[수정 진행률 97퍼센트.]
한편으로는 순환을 거듭할 때마다 준혁이 배가시키는 힘이 더해지며 영력은 더욱 빠르고 강력하게 몸속을 순환했다.
그리고 마침내 준혁의 영력이 몸속에 가득 차고, 급기야 몸이 부풀어 터질 정도로 팽창하기 시작했다.
변화가 찾아온 것도 그 순간이었다.
[수정 진행률 94퍼센트.]
수정 진행률이 갑자기 낮아지기 시작했다.
[호환 불가의 연산 구조의 증식으로 통제권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마침내 떠오른 메시지에 준혁이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지금 준혁의 눈앞에 떠 있는 것은 배면계가 아닌 던전 시스템의 메시지였다.
그 던전 시스템이 가진 통제권에 문제가 발생한 상황이다.
정확한 내용은 파악 못했어도 저 메시지가 자신에게 유리하다는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점유율이 하락합니다.]
[점유율 96퍼센트.]
‘헙!’
점유율 하락과 동시에 준혁의 표정이 급변했다.
‘이건 또 뭐?’
처음 덮쳐들었던 통증이 사라진 후 찾아온 낯선 감각 때문이었다.
준혁은 지금 영력을 한계까지 끌어 올린 상태였다.
이로 인해 감각 또한 한계까지 증폭된 상태였다.
이 감각이 작용하는 범위 내에서는 잡아내지 못할 변화가 없었다.
뼛속 골수에서 피가 생성되고, 수명을 다한 혈액이 비장에서 파괴되는 과정까지 감지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었다.
그것이 지금 아주 낯선 무언가를 감지했다.
몸속에 무언가 이질적인 것이 자리 잡고 있었다.
특정 부위에 있는 것이 아니다.
스펀지가 물을 머금은 것 같은 상태라고 할 수 있었다.
스펀지는 스펀지 상태 그대로지만, 내부 전체에 물이 스며들어 있는 것 같은 형국이었다.
준혁의 몸 상태로 말하자면, 몸을 구성하는 세포 하나하나에 그 낯선 무언가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온몸에 퍼진 영력이 ‘그것’과 서로 집어삼키기 위해 거칠게 싸우고 있었다.
바보가 아닌 이상 이것이 무엇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던전 시스템.’
준혁은 모든 신경을 집중해 그 싸움을 지켜보았다.
영력이 ‘그것’과 싸우는 이유는 일종의 본능이었다.
혈액의 구성 요소인 백혈구가 몸속으로 침입한 세균을 공격하는 면역 체계와 흡사한 움직임인 셈이었다.
즉, 굳이 인위적으로 영력을 운용하지 않아도 알아서 싸운다. 그러니 준혁이 할 일은 그 변화를 지켜보는 것뿐이었다.
‘후우, 후!’
싸움은 생각보다 격렬했다.
탐색전을 하고, 페이크로 상대를 현혹하고, 변칙적인 움직임으로 상대의 빈틈을 만드는가 하면, 이때다 싶으면 폭풍처럼 몰아쳐서 상대에게 데미지를 쌓는다.
마치 무림 고수들의 건곤일척 승부를 보는 듯하다.
전체적으로는 영력이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점유율 67퍼센트.]
여유가 생긴 준혁은 싸움 상황과 몸속의 상황을 끊임없이 비교 관찰했다.
[점유율 49퍼센트.]
변화가 발생한 기점은 ‘그것’의 점유율이 50퍼센트 이하로 내려간 순간이었다.
‘음!’
‘그것’들이 장소를 이탈했다.
싸움판을 떠난 ‘그것’들이 몰려든 곳은 영력이 흐르는 기맥.
하나둘 모인 ‘그것’이 기맥 안에서 점점 덩치를 불리더니 순식간에 하나의 흐름이 되었다.
영력 또한 빠르게 반응했다.
‘그것’을 쫓아가는 대신 최단 경로를 따라 단전으로 집결했다.
기맥에서 완전히 하나로 뭉친 ‘그것’의 최종 목적지가 단전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챈 것이었다.
마침내 거대한 덩어리가 된 ‘그것’이 단전으로 쇄도했다.
쿠쿠쿠쿵-!
“끄아아아악!”
준혁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물론 소리가 되어 밖으로 새어 나가지는 못하는 비명.
충돌의 여파에 단전이 터져 나갈 것 같은 고통이 척추를 타고 올라와 뇌가 저릿해질 지경이었다.
까드드득!
이쯤에서는 준혁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이를 악물고 영력을 피워 올렸다.
뿜어내고 있던 모든 영력을 몸속으로 갈무리하며 큰 싸움판에 지원군을 보탰다.
쿵, 쿠쿵!
한 번 부딪칠 때마다 밀려오는 고통에 기절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준혁은 끈질기게 정신을 붙들고 싸움에 몰두했다.
길지는 않았다.
싸움은 의외로 싱겁게 끝났다.
수차례 충돌한 끝에 ‘그것’이 다시 한 번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것이 만들어 낸 여파는 상상을 불허했다.
‘이런 미친… 끅!’
기맥을 타고 움직이던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 길을 뚫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단전에서의 충격은 말 그대로 새 발의 피였다.
몸속의 신경 줄을 수십만 마리 개미가 물어뜯는 듯한 고통이었다.
2차 통증이 일어났다.
이번에는 영력이었다.
‘그것’이 달아나기 위해 뚫은 길에 영력이 들어섰다.
‘그만해! 이 미친 것들아!’
속으로 욕을 퍼부었다.
하지만 이대로 죽어 버릴 것 같은 그 고통 속에서도 준혁은 ‘그것’의 움직임에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그것’이 마침내 준혁의 심장 어림에 도착했다.
마치 그곳에 자리를 잡고 결사 항전 하겠다는 듯한 의지로 보였다.
하지만 그곳 역시 준혁이 ‘술(術)’의 사용을 위해 작은 크기의 영력을 모아 놓는 곳이었다.
단단한 방어에 자리를 잡는 것조차 힘든 상황.
‘그것’이 또 한 번 후퇴해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
심장 어림에서 수직으로 솟구치더니 순식간에 경추를 타고 올라가 머릿속에 자리를 잡았다.
‘아!’
갑자기 긴장감이 몰려왔다.
이질적인 기운인 ‘그것’이 인체의 가장 중요한 기관 중 하나인 뇌에 모였으니 긴장할 수밖에.
설상가상으로 사력을 다해 쫓아가던 영력이 갑자기 덜컥 멈췄다.
더는 쫓아가서는 안 된다는 듯 ‘그것’ 주위를 뱅뱅 맴돌았다.
그러다 갑자기 무언가 결심을 한 듯, 그것 전체를 감싸는 하나의 막을 형성했다.
새로운 변화가 찾아온 것은 그 직후였다.
[점유율 33퍼센트.]
[대상의 일부분에 대한 통제권을 획득하였습니다.]
[새로운 적성 인자를 발견하였습니다.]
[새로운 적성 인자에 적합한 시퀀스를 탐색합니다.]
[발견한 시퀀스를 따라 적성 인자를 구현합니다.]
[시퀀스 진행에 모든 가용 자원을 소비합니다.]
[진행률 0퍼센트.]
고통은 이미 멈췄다.
준혁은 시스템 메시지를 끊임없이 곱씹으며 그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애썼다.
‘적성 인자라는 건 아마도 각성을 말하는 것일 텐데, ‘새로운 적성’이라는 건 뭐지?’
‘가용 자원을 소비한다고?’
준혁이 이해할 수 없는 내용투성이였다.
어렴풋이 각성이 진행된다는 정도만 눈치챌 뿐이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진행률은 쉬지 않고 올라갔다.
그리고 마침내.
[진행률 100퍼센트.]
[시퀀스 진행을 완료했습니다.]
[새로운 적성 인자의 구현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시스템 메시지가 사라지고 시야가 완전히 까맣게 변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어둠이 아니었다.
준혁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완벽한 ‘무(無)’의 공간이었다.
동시에 준혁은 급작스럽게 어딘가로 추락하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이거 설마?’
불현듯 찾아온 기시감.
딱 한 번 느껴 본 적 있는 감각이었다.
린디웨와 함께 시스템 내부로 침입해, 시스템에 직접 접촉했을 때의 그 느낌이었다.
‘대원칙’이라는 그것에 빨려 들어갔던 그때의 그 감각이었다.
하지만 이곳에는 위기 상황에서 자극을 주어 정신을 차리게 해 줄 적사가 없었다.
‘어떻게 탈출하……. 아니, 잠깐!’
그때의 그 ‘대원칙’에 쓸려 가던 그 느낌은 분명했지만 다른 것이 하나 있었다.
당시의 준혁은 순식간에 무아(無我)의 상태로 접어들어 아무런 사고도 유지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또렷하게 정신이 유지되고, 마음먹은 대로 사고가 가능했다.
‘다른 건가?’
그때였다.
갑자기 몸이 붕 떠오르는 느낌과 함께 시야를 가득 메웠던 무(無)의 공간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큭!”
반사적으로 신음이 터져 나왔다.
갑자기 들이닥친 강렬한 빛에 망막이 타 버릴 것 같은 통증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준혁의 몸은 절대적인 초인의 그것.
눈 깜짝할 새 몸의 이상 상태를 회복하고 곧장 시력을 되찾았다.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긴장한 표정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린디웨의 얼굴이었다.
눈을 뜬 준혁을 향해 린디웨가 물었다.
“어때? 성공?”
준혁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그의 눈앞에 떠 있는 메시지가 무엇보다 확실하게 성공 여부를 알려 주고 있었다.
[상태창을 불러옵니다.]
린디웨가 물었다.
“그래서 각성한 클래스는 뭐냐?”
그리고 준혁의 눈앞에 상태창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