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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받고 각성 더!-121화 (12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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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장. 각성 받고, 각성 더#1-

‘이, 이런!’

준혁은 당황하고 있었다.

‘어쩌다가!’

실수였다.

그것도 크나큰 실수였다.

“이건 말이지…….”

말꼬리를 흐리는 준혁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떨리는 동공에 비친 것은 지유의 호기심 가득한 초롱초롱한 눈망울이었다.

“보여 줘, 삼촌! 보여 줘!”

방방 뛰며 애원을 하는 지유의 모습에 준혁은 한층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준혁의 스탯은 지구 최강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그리고 지유는 그저 어린아이일 뿐이었다.

준혁이 힘 조절에 실낱같은 실수만 해도 지유에게는 엄청난 참사가 일어날 수도 있을 정도의 차이였다.

그런데도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방심했다.’

말 그대로 방심이었다.

‘적사 이 자식!’

준혁의 팔뚝에 감겨 있는 적사를 지유가 보고 말았다.

조심성 없는 적사가 소매 너머로 고개를 내밀었고, 그 순간이 지유의 눈에 들어갔다.

황급히 가리기는 했지만 상황은 이미 끝난 후.

이렇게 애원하는 모습으로 보아 지유는 준혁의 소매에서 튀어나온 게 뭔지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래서 더 문제였다.

적사는 환수라고는 해도 그 외형은 가죽이 새빨간 ‘뱀’일 뿐이었다.

100퍼센트는 아니지만 대부분은 ‘뱀’이라는 동물을 보면 ‘징그럽다’, ‘무섭다’ 같은 혐오감을 먼저 느끼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른도 아닌 어린 여자아이에게 뱀을 보여 준다는 게 쉬울 리가 없었다.

“야, 뭔데 그렇게 꽁꽁 감추냐?”

“그래. 갑자기 왜 그래?”

상황 파악 안 되는 김준석과 이세연이 눈치 없이 거들었다.

준혁이 간절한 표정으로 세차게 고개를 내저었다.

그때였다.

“아아~ 땀쫀, 땀쫀! 보여 줘~”

지유의 입에서 혀 짧은 소리가 애원과 함께 튀어나왔다.

준혁이 절대 이기지 못하는 필살기였다. 조카 바보의 숙명이었다.

‘아, 나도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 싶은 마음으로 준혁이 번쩍 들고 있던 손을 내리고, 자세를 낮춰 지유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지유야.”

“네, 삼촌!”

눈치도 빠르다. 순식간에 혀 짧은 소리가 쏙 들어갔다.

“보고 놀라면 안 돼.”

“네!”

크게 고개를 끄덕이는 지유를 보며 준혁이 왼손을 내밀었다.

-적사, 천천히 나와라. 지유 안 놀라게.

왕왕!

니아아아!

옆에 늘어져 있던 소형화한 청랑과 흑호가 슬그머니 다가왔다.

-작은 주인님을 놀라게 하면 머리를 씹어 주지.

송곳니를 번뜩이는 청랑의 협박이 있었고.

-에휴, 오버하기는…….

시큰둥하게 대답하며 앞발의 발톱을 세우는 흑호의 압박이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적사가 스르륵 준혁의 손바닥 위로 내려왔다.

“꺄아!”

지유의 날카로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역시!’

-적사 이놈!

-뱀 자식!

한 명의 엽사와 두 마리 환수가 동시에 반응했다.

적사가 올라앉은 준혁의 손바닥이 압착기 수준으로 오므라지고, 청랑의 날카로운 송곳니가 들이닥치고, 흑호의 발톱이 날아들려는 찰나였다.

“귀여워!”

지유의 입에서 즐거운 비명이 터져 나오는 순간 한 명의 엽사와 두 마리 환수가 그대로 굳은 듯 멈췄다.

덥석!

앙증맞은 작은 손을 뻗어 적사를 움켜쥔 지유가 세상 환한 얼굴로 방방 뛰었다.

키아~

방금, 자신이 진짜 죽을 뻔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적사가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즐거움에 가득 찬 바람 소리를 흩뿌렸다.

준혁과 청랑, 흑호의 머쓱한 눈빛이 허공에서 얽혀 들었다.

“험험!”

준혁이 헛기침을 하며 가장 먼저 시선을 피했다.

와앙!

황급히 방향을 튼 청랑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지유 주변을 맴돌며 같이 놀아 주는 척을 했다.

마지막으로 흑호는 적반하장으로 한심하다는 시선을 던지며 구석으로 어슬렁어슬렁 걸어가 식빵 굽는 자세를 잡았다.

“배, 뱀! 지유야! 버려, 버려!”

“꺄아악!”

오히려 눈치 없던 김준석과 이세연이 뒷북을 치며 호들갑을 떨어 댔다.

하지만 지유는 적사를 품에 꼭 끌어안으며 세찬 도리질을 쳤다.

“싫어!”

그 모습을 지켜보던 준혁은 허망한 표정을 지어야 했다.

그런 준혁 앞으로 지유가 총총거리며 달려왔다.

“삼촌!”

얼굴에는 ‘나 신났다’는 표정이 한가득이었다.

“응, 지유 왜?”

“얘도 지유 친구 해도 돼요?”

“그럼, 되지. 대신에…….”

“응, 알아. 삼촌 필요할 때 잠깐 나갔다 오는 거요.”

그 말에 슬쩍 시선을 돌리니, 이세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흑호와 백효를 데려갔던 일 때문에 이세연이 미리 설명해 놓은 모양이었다.

“그래, 지유 친구 해.”

“이름도 내가 정할 거야.”

지유의 말에 준혁은 순간적으로 짙은 호기심을 느꼈다.

청랑, 백효, 흑호에게 지유가 지어 준 이름이 있었다.

‘파랑이, 뽀송이, 야옹이였었나?’

이쯤 되니 적사에게는 무슨 이름을 지어 줄지 궁금해졌다.

“얘 이름은 꿈틀이!”

키아아!

적사는 좋다며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어 댔다.

준혁은 모두 포기하는 마음으로 복잡한 한숨을 내쉬었다.

‘내 조카 취향이……. 독특하구나.’

그리고 적사의 취향도 특이했다.

혹은 아무 생각이 없거나.

***

“벌써 끝났어요?”

준혁이 조금 놀란 얼굴로 물었다. 여권이 준비됐다는 유민섭의 연락에 급히 찾아온 참이었다.

사흘이 걸린다더니, 하루 앞서 이틀 만에 연락이 온 것이다.

“예, 끝났어요.”

“빠르네요.”

“진짜 비싼 겁니다.”

유민섭이 괜히 거들먹거리며 여권을 건넸다.

“음?”

그런데 여권의 모양이 낯설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준혁을 향해 유민섭이 설명을 부연했다.

“물 건너온 물건이에요. 진짜 구하기 힘든 거.”

여권의 상단에는 ‘PASSPORT’라고 쓰여 있었다. 가운데는 독수리 문양이, 그 아래에는 ‘United States of America’라는 글자가 박혀 있었다.

미국 여권이었다.

문외한인 준혁이 보아도 매우 정교하게 만든 물건이었다.

“허, 무슨 여권 하나 구하는 데 이렇게 힘을…….”

“진짜 여권입니다.”

“네?”

“방금 말했잖아요. 물 건너왔다고. 무려 태평양을 건너온 놈입니다, 그거.”

“근데 방금 진짜라고?”

유민섭이 팔짱까지 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미국 정부에서 발급한 진짜 여권이니까요.”

“아!”

그제야 준혁도 눈치챌 수 있었다.

“이거 설마 백악관 측에 부탁한 겁니까?”

“맞습니다.”

준혁은 한국 정부보다 미국 정부와 훨씬 가까운 사이였다.

한국 정부 쪽에는 아예 아는 사람이 없는데, 미국은 대통령의 직통 번호를 알고 있으니 더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그래도 번거롭게 뭔 미국 여권을…….”

“아뇨, 이건 그렇게 단순하게 볼 일이 아니죠.”

“네?”

“생각해 봐요.”

“뭘요?”

“일본 가서 뭐 할 거예요?”

너무 당연한 걸 묻는 말에 준혁은 오히려 멈칫해야만 했다.

“그야, 서천회라는 놈들…….”

“그렇죠. 다 때려 부술 거잖아요.”

“네.”

“그런데 그 사람이 한국 국적이면 어떻게 되겠어요?”

“아!”

그렇잖아도 빌미만 생기면 트집을 잡아 대는 일본이었다.

양국 간의 외교적인, 혹은 군사적인 문제로 비화할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이해 안 가는 부분이 있었다.

“그럼 미국은요?”

미국인이 들어가서 난동을 피우는 건 괜찮은가 하는 질문이 뒤따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유민섭은 아주 여유로운 표정으로 검지를 세워 흔들었다.

“일본이 언제 미국에 대드는 거 봤습니까?”

“음?”

“다른 나라는 몰라도 이상하게 미국에는 개기는 걸 못 봤단 말이죠. 뭐, 그게 내 편견일 수도 있기는 한데…….”

국가와 국가 사이의 일이라는 건 아주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에, 심층적으로 파악하지 않으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가능성이 훨씬 컸다.

한 번 뜸을 들인 유민섭이 말을 이었다.

“그래도 뭐 문제없습니다.”

“문제없다니요?”

“미국에 이미 말했어요. 이 여권으로 입국한 준혁 씨가 일본에서 난동을 피울 수도 있다고.”

“그랬더니?”

“신경 쓰지 말고, 편한 대로 하라던데요?”

“허! 아무튼 대단하네요.”

준혁이 진심으로 칭찬을 하자 유민섭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사실은…….”

“네?”

“개런이 여기 있잖아요.”

“아!”

“개런한테 물어봤죠. 이런 거 괜찮겠냐고.”

리처드 개런은 미국에서도 국가 자산으로 대우할 정도로 중요한 인물이었다.

그런 사람이 대답해 준 것이라면 분명 사실일 터.

“그랬더니?”

“워싱턴에 그런 애들이 많아요. 일본 쪽 돈 먹고, 일본에 유리한 이야기 하는 싱크탱크들.”

“얼핏 들은 것 같아요.”

“지난번에 우리가 미국이랑 계약한 후에 그놈들이 거품 물면서 결사반대를 했는데…….”

“했는데?”

“지금은 전부 찬밥이랍니다. 크하하하! 어찌나 고소한지. 아예 거기 출신이라고 하면 모임에 끼워 주지도 않는다더라고요.”

앙천대소를 터트리는 유민섭을 보며 준혁은 진심으로 궁금한 점이 생겼다.

“혹시 조상님 중에…….”

“독립운동하신 분 없습니다.”

“아뇨.”

“네?”

“혹시 친일파 있었어요? 지금 혹시 그것 때문에 이미지 세탁하려고 그러는 건…….”

“아니거든요!”

“발끈하는 게 더 수상한데?”

“와, 진짜! 내가 족보를 깔 수도 없고!”

발끈하는 유민섭의 모습에 준혁은 슬그머니 발을 뺐다.

“미안해요. 그냥 장난인데.”

“장난할 게 따로 있죠. 친일파 후손이라니? 그리고 친일파 후손은 뭐 죄인입니까? 연좌제도 아니고 말이지.”

이것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지금도 그런 짓을 하고 다닌다면 몰라도 조상의 죄를 후손에게 낙인찍을 필요는 없었다.

“뭐, 그건 그렇죠. 지금도 친일하는 거 아니면 상관없죠.”

하지만 이 발언으로 인해 준혁의 마음속에는 더욱 진한 질문이 자리 잡게 되었다.

준혁은 머릿속에 자리 잡은 질문을 애써 외면했다.

‘하긴 진짜 뭔 상관이야?’

부모가 범죄자라고 자식이 범죄자 취급을 당하는 건 옳지 않은 일이었다.

유민섭이 물었다.

“비행기는 어떻게 준비해 줄까요?”

“내일……. 아니!”

준혁이 얼른 고개를 내저었다.

생각해 보니 아직 할 일이 하나 남아 있었다.

“모레, 모레 떠나는 걸로 준비해 주세요.”

“모레요?”

“네.”

아직 중요한 일 하나가 남아 있었다. 그 일이 어찌 될지 모르니 여유를 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혹시 다른 볼일은?”

“없습니다.”

“그럼 이만 가 볼게요.”

간단한 인사와 함께 준혁이 사라졌다.

그리고 홀로 남은 유민섭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아직도 일이 산더미네.”

종로의 괴물 습격 사태의 뒷수습은 아직 시작도 못하고 있었다.

그걸 다 처리하려니 머리가 지끈 아파지는 유민섭이었다.

***

“음, 여기는 안 좋은 기억이 있는데…….”

준혁이 슬쩍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지금 그가 서 있는 곳은 여전히 허허벌판으로 남아 있는 잠실 종합운동장 터였다.

이곳에서 로건 베런즈와 맞붙은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특별히 로건 베런즈에게 당한 게 있지는 않지만, 그를 놓친 일이 이상하게 자존심이 상했다.

구시렁거리는 준혁을 향해 린디웨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어쩔 수 없잖아.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안전한 데서 해야지.”

“뭐, 그건 그래.”

고개를 끄덕이는 준혁을 향해 린디웨가 무언가를 던졌다.

턱!

가볍게 받아 낸 무언가는 전부터 린디웨가 세공을 하던 술석이었다.

“이거냐?”

“그거지.”

“그냥 쓰면 되는 거냐?”

“거, 성질머리하고는. 일단 니네 애들 좀 불러.”

“우리 애들?”

“환수들.”

준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호위. 그 일이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잖아. 일반 각성자들이야 별일 없지만, 네 경우는 조금 다르니까 대비를 해야지.”

“그건 그러네.”

고개를 끄덕인 준혁이 흑호와 적사를 불렀다.

백효는 여전히 볼런트 라일을 감시 중이고, 청랑은 가족들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모든 것이 갖춰진 후, 준혁은 아예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리고 손에 든 술석에 영력을 밀어 넣었다.

쩌엉-!

맑은 소리와 함께 술석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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